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는 의사이자 작가였습니다.

그는 진료실에서 인간을 보았고, 원고지 위에서 사회를 해부했습니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차분했지만, 그 차분함 뒤에는 냉혹한 진실이 숨어 있었습니다.
19세기 말 러시아의 지방 도시들은 거대한 제국의 변방이었습니다.
수도의 화려함과는 달리, 그 도시들은 무기력과 권태, 그리고 끝없는 무관심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병원이라는 공간은 그 무관심이 가장 짙게 고인 곳이었습니다.
아픈 자들이 모여들었지만, 치유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시간이 흘렀고, 사람들은 잊혔습니다.
체호프는 묻습니다.
누가 정상이고 누가 광인인가.
벽 안에 갇힌 자가 미친 것인가, 아니면 그 벽을 세운 자가 미친 것인가.
이 작품은 그 질문을 조용히, 그러나 집요하게 던집니다.
지금부터 당신은 6호 병동 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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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썩어가는 것들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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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도시에는 병원이 하나 있었습니다.
중심가에서 두 블록쯤 벗어난 곳, 낡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부지 안에 병원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원래는 귀족 가문의 저택이었다고 전해졌지만, 그런 이야기를 믿을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었습니다.
세월이 건물의 품위를 지워버렸고, 남은 것은 오직 낡음뿐이었습니다.
정문을 지나면 곧바로 돌바닥이 나왔습니다.
봄이 되면 그 사이에서 잡초가 올라왔고,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붙어 사람들이 종종 미끄러졌습니다.
정원이라 부르기에는 너무 황량한 공터였습니다.
가끔 보호자들이 그곳에 서서 담배를 피웠지만, 오래 머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공터에 서 있으면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본관 건물은 이층짜리였습니다.
회색 외벽에는 크고 작은 균열이 가 있었고, 창문마다 유리가 흐릿했습니다.
1층에는 내과, 외과, 부인과 병동이 있었습니다.
복도는 항상 약 냄새와 소독약 냄새, 그리고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곰팡이 냄새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청소부 여인이 하루에 두 번 걸레질을 했지만,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건물 자체에서 나오는 냄새였습니다.
벽 속에, 천장 속에, 마루 틈새에 스며든 수십 년의 질병과 죽음이 내뿜는 냄새였습니다.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곳, 부지 안쪽 구석에 작은 별채가 있었습니다.
외관은 본관과 비슷했지만, 창문에 쇠창살이 박혀 있다는 점이 달랐습니다.
출입문은 두꺼운 참나무로 만들어졌고, 자물쇠가 두 개 달려 있었습니다.
그곳이 6호 병동이었습니다.
정신병자들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그 별채를 화제로 삼는 일이 드물었습니다.
병원이 있다는 것은 알아도, 그 안에 6호 병동이 있다는 것은 애써 잊으려 했습니다.
모른 척하는 것이 편했기 때문입니다.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6호 병동 안에는 다섯 개의 침대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침대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입니다.
쇠 프레임에 얇은 매트리스를 얹은 구조물이었는데, 매트리스는 오래전에 원래의 형태를 잃었고 사람의 체중이 닿는 부분은 움푹 꺼져 있었습니다.
담요는 있었지만 두껍지 않았습니다.
겨울에는 특히 그 담요가 얼마나 얇은지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병동 한가운데에 있는 난로는 연료 사정에 따라 불규칙하게 때졌습니다.
관리인이 기분이 좋은 날에는 석탄을 넉넉히 넣었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추위 속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습니다.
안드레이 예피미치 라긴이라는 의사가 그 병원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 이 도시에 부임했을 때 젊었습니다.
야망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무언가를 품고 의대를 졸업했고, 지방 병원이 자신에게 첫 걸음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걸음은 첫 걸음으로 끝났습니다.
세월이 흘렀고,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처음 몇 해 동안 그는 병원을 바꾸려 했습니다.
더 나은 약품을 요청하고, 더 깨끗한 침구를 요구하고, 직원들에게 위생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는 벽에 부딪혔습니다.
예산이 없다는 대답, 지금도 충분하다는 대답, 그리고 가장 자주 듣던 대답인 원래 이렇게 해왔다는 말이 모든 노력을 무너뜨렸습니다.
몇 해가 지난 뒤, 라긴은 더 이상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요청이라는 행위 자체가 그에게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이 어떤 노력도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 어느 순간 그 노력을 멈추게 됩니다.
라긴이 그 지점에 도달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대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진료 시간에도 책을 펼쳤고, 저녁에는 관사에 돌아와 등불 아래서 밤이 깊도록 책을 읽었습니다.
철학서를 좋아했습니다.
스토아 철학자들의 글을 특히 아꼈습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문장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고, 그 안에서 일종의 위안을 찾았습니다.
인간의 고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인식에서 온다는 생각이 그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즉, 무엇이 일어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그 생각을 믿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점점 더 많은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환자들로부터 거리를 두었습니다.
동료 의사들로부터 거리를 두었습니다.
도시의 일상적인 소음으로부터, 이웃들의 이야기로부터, 계절의 변화로부터도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 거리감은 처음에는 지혜처럼 보였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 담담한 사람, 초연한 사람.
그러나 사실은 달랐습니다.
그것은 지혜가 아니라 포기였습니다.
아름다운 이름을 붙인 항복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오전에 병원에 출근했습니다.
진료를 보았지만, 진료라기보다는 의례에 가까웠습니다.
환자가 들어오면 몇 가지 질문을 했고, 청진기를 대고, 처방을 내렸습니다.
그 과정에 감정은 없었습니다.
환자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는 일도 없었고, 환자의 이름을 기억하려는 노력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간호사가 라긴에게 말했습니다.
6호 병동 환자가 어젯밤에 울었는데, 꽤 오래 울었다고.
라긴은 고개를 끄덕이고 진료 기록부를 펼쳤습니다.
그것이 그의 반응의 전부였습니다.
그 간호사는 나중에 동료에게 말했습니다.
라긴 원장은 살아 있는지 죽어 있는지 모르겠다고.
병원 내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은 호보트이라는 조수였습니다.
그는 원래 외과 조수로 부임했지만, 오랜 세월 동안 영역을 넓혀 왔습니다.
행정 처리를 맡았고, 물품 발주를 처리했으며, 직원들과의 관계를 관리했습니다.
라긴이 무관심한 공백을 그가 채워갔습니다.
그 채워감이 처음에는 합리적으로 보였습니다.
원장이 신경 쓰지 않으니 누군가는 해야 하지 않겠냐는 논리였습니다.
그러나 권한이 쌓이면서, 호보트는 병원이 자신의 것이라는 감각을 서서히 내면화했습니다.
그는 정식 자격도 없이 처방을 내렸고, 약품 재고를 멋대로 조정했으며, 직원들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라긴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그에게는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였습니다.
모든 것은 결국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흘러간다는 생각이 그를 지배했습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그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6호 병동을 담당하는 것은 니키타라는 관리인이었습니다.
퇴역 군인 출신인 그는 덩치가 크고 표정이 없었습니다.
병동 열쇠를 언제나 허리에 차고 다녔고, 환자들이 규정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지체 없이 제압했습니다.
제압이라는 단어는 완곡한 표현입니다.
실제로는 주먹을 썼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병원 안에 없었습니다.
규율이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고 니키타는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 말이 정당화가 되었습니다.
6호 병동 안에 다섯 명의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이반 드미트리치 그로모프였습니다.
그는 다른 환자들과 달리 대화가 가능했고, 생각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었으며, 눈빛이 살아 있었습니다.
그가 왜 이곳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지금은 다만, 그가 그곳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그를 알아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만 기억해 두십시오.
병원 밖 도시는 평온했습니다.
아니, 평온해 보였습니다.
시장이 열렸고, 상점들이 문을 열었으며, 아이들이 길을 뛰어다녔습니다.
교회 종소리가 아침마다 울렸고, 저녁이면 가로등이 켜졌습니다.
그러나 그 평온함의 저변에는 무언가 고여 있었습니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무언가가.
사람들이 서로의 불행을 외면함으로써 유지되는 평화.
그 평화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6호 병동의 쇠창살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도시는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알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외면했을 뿐입니다.
라긴이 그날도 진료를 마치고 관사로 돌아갔을 때, 겨울 해는 이미 낮게 기울어 있었습니다.
그는 코트를 벗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아 책을 펼쳤습니다.
에픽테토스의 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따라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참 동안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회색 하늘 아래 도시가 서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날 그는 6호 병동 쪽을 바라보게 되었을까요.
그 방향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시선이 그리로 향했습니다.
쇠창살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그 안에서 불빛 하나가 깜박였습니다.
라긴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책을 내려다보았습니다.
페이지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무언가가, 아주 조금, 달라진 것 같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는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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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망각으로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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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병동의 환자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망가져 있었습니다.
그 망가짐의 형태가 모두 달랐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별로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모두 이 방 안으로 들어오기 전의 세상으로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을 그들 스스로가 알고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가장 나이 많은 환자는 모이세이카라고 불렸습니다.
원래 이름은 따로 있었지만,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때 유대인 모자 장수였다고 했습니다.
도시 외곽의 작은 가게에서 모자를 팔았고, 나름의 삶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이상이 생겼는지는 불분명했습니다.
어느 날 가게에서 불이 났고, 그 후로 그는 가끔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했으며, 나중에는 길 위를 걷다가 주저앉아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가족이 그를 이 병동에 맡겼습니다.
가족은 처음 몇 달은 면회를 왔습니다.
그러다 점점 뜸해졌고, 어느 시점부터는 완전히 오지 않았습니다.
모이세이카는 그것을 눈치채고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아닌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는 병동 안을 천천히 걸어다니거나, 창가에 서서 마당을 내려다보거나, 니키타의 눈을 피해 다른 환자의 음식을 집어 먹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가끔 마당에 나갈 수 있는 날에는 쓰레기통을 뒤져 무언가를 집어 들고 흡족한 얼굴을 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남아 있는 즐거움의 전부였습니다.
두 번째 환자는 그로모프였습니다.
앞서 말했던, 눈빛이 살아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원래 법원 관련 일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소도시의 하급 관리직이었지만, 책을 좋아했고 생각이 깊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지식인이라 불렀습니다.
그것이 좋은 의미인지 어떤지는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그가 이 병동에 오게 된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 그는 체포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아무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는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었고,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두려움을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길을 걷다가 경찰관의 얼굴을 보면 식은땀이 흘렀고, 누군가 뒤에서 걸어오면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밤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낮에는 거리에 나가기가 두려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처음에 그것을 신경 쇠약이라 했습니다.
좀 쉬면 나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쉬어도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증상이 심해졌습니다.
어느 날 그는 거리 한복판에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잡으러 오지 말라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그 사건 이후 그는 여기로 보내졌습니다.
그로모프는 자신이 이곳에 와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은 틀리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틀리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서 이 병동의 자물쇠가 열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 번째 환자의 이름은 아무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다들 그냥 아보샤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진짜 이름인지 별명인지도 불분명했습니다.
그는 말이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침대에 앉아 양쪽 발목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자세로 있었습니다.
식사 시간에는 누군가 앞에 내밀어 주는 그릇을 받아서 천천히 먹었고, 그 외에는 어떤 활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의 시선은 항상 어딘가, 이 방 너머 어딘가를 향해 있었습니다.
네 번째 환자는 코스탸레프였습니다.
그는 거의 매일 웃었습니다.
이상한 주제에, 이상한 타이밍에 웃음을 터뜨렸고, 그 웃음의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기분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공간에 있다 보면 그 웃음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안에 즐거움이 없었습니다.
그저 웃음이 흘러나올 뿐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환자는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귀족 청년이었는데,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냈습니다.
이 다섯 사람이 6호 병동의 전부였습니다.
그들의 하루는 단순했습니다.
아침에 니키타가 문을 열고 죽 같은 것을 들여왔습니다.
그들은 먹었습니다.
이따금 마당에 나가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그것도 니키타의 기분에 달려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다시 문이 닫혔습니다.
그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방문이 없었습니다.
치료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읽을 것도, 들을 것도, 할 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그로모프는 그 시간의 흐름을 견디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는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생각할 거리가 있어야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병동 안에서 생각은 독이 되었습니다.
바깥을 생각하면 분노가 왔습니다.
자신이 여기 있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면 절망이 왔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생각하면 공허함이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떤 날에는 일부러 생각을 멈추려 했습니다.
천장을 바라보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로모프는 가끔 바닥에 주저앉아 큰 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이 상황의 부당함에 대해서, 사회가 약자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 권력과 폭력의 관계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환자들은 듣고 있지 않았습니다.
니키타는 그 소리가 너무 커지면 와서 입을 닥치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모프는 말했습니다.
말하는 것이 남아 있는 유일한 자유였기 때문입니다.
그를 병원에 입원시킨 것은 사실 그의 어머니였습니다.
형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도 오래전에 없었습니다.
혼자 남은 어머니는 두려웠을 것입니다.
아들이 점점 이상해져가는 것이.
길거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밥도 제대로 먹지 않고, 혼자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것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어머니는 병원을 택했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모프는 어머니의 결정을 용서하지 못했습니다.
병동 안에서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졌습니다.
사랑이 분노와 뒤섞이면 어떤 온도가 되는지를 그는 이 안에서 배웠습니다.
라긴 의사가 6호 병동을 방문하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정기 점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서류상의 방문이었습니다.
문을 열고, 환자들을 한 바퀴 둘러보고, 이상 없음이라고 기록하는 것.
그 과정에서 그로모프의 눈빛을 마주친 일이 있었지만, 라긴은 거기서 아무것도 읽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방어 방식이었습니다.
보지 않으면 느끼지 않아도 된다.
느끼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
행동하지 않으면 상처 입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날, 라긴이 점검을 마치고 돌아서려던 순간, 그로모프가 말을 했습니다.
조용하고 명확한 목소리였습니다.
"당신은 부끄럽지 않습니까."
짧은 문장이었습니다.
고함도 아니었고, 흐느낌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하나의 물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라긴의 등이 굳었습니다.
그는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복도에 서서 라긴은 잠시 멈췄습니다.
등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고, 자물쇠 잠기는 소리가 뒤따랐습니다.
그는 계속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 물음은 걸음을 따라왔습니다.
당신은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 말이 걷는 사이사이, 숨을 쉬는 틈마다 끼어들었습니다.
라긴은 저녁에 다시 에픽테토스를 펼쳤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글자들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래도록 같은 페이지를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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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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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긴이 다시 6호 병동을 찾아간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였습니다.
그것은 계획된 방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날 오후, 진료를 마치고 관사로 돌아가는 길에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라긴 자신도 왜 그런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습관도 아니었고, 의무도 아니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무언가에 이끌린 것이었습니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습니다.
니키타가 문을 열었을 때, 병동 안은 평소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모이세이카는 창가에 서 있었고, 아보샤는 침대 위에서 발목을 감싸 쥐고 있었습니다.
코스탸레프는 아무 이유 없이 웃고 있었습니다.
귀족 청년은 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모프는 구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무릎 위에 손을 올려놓고,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라긴은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습니다.
원래 의사들이 쓰는 작은 의자였는데, 오래된 탓에 삐걱거렸습니다.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로모프가 먼저 눈을 떴습니다.
그는 라긴을 바라보았습니다.
경계하는 눈빛이었습니다.
다시 무언가를 기록하러 온 것인지, 아니면 상태를 확인하러 온 것인지를 재는 눈빛이었습니다.
라긴이 말했습니다.
지난번 당신이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고.
그래서 왔다고.
그로모프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을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로모프는 말하는 사람이었지만, 그동안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니키타는 들을 생각이 없었고, 다른 환자들은 들을 능력이 없었으며, 라긴을 포함한 의료진은 들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누군가 맞은편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로모프는 말했습니다.
이 병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아느냐고.
치료하는 곳인지, 아니면 가두는 곳인지.
그 둘의 차이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해달라고.
라긴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침묵이 더 정직한 대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로모프는 계속했습니다.
자신은 이 방에 오기 전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근거 없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잡힐 것 같다는 두려움, 어딘가로 끌려갈 것 같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 너무 커져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고.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 두려움이 과연 근거 없는 것이었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자신은 잡혀서, 어딘가로 끌려왔으니까.
그 두려움이 예감이었던 것인지, 아니면 예언이었던 것인지.
라긴은 그 말을 들으며 묘한 감각을 느꼈습니다.
그로모프의 말이 논리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신이 무너진 사람의 말이 아니라, 분명한 사유를 거친 사람의 말이었습니다.
라긴은 말했습니다.
두려움 자체는 병이 아니라고.
두려움이 일상을 잠식할 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곳에서 그 잠식을 막을 수 있다면, 그것이 치료의 목적이라고.
그로모프는 잠시 멈추었다가, 조용히 웃었습니다.
냉소적인 웃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코스탸레프의 공허한 웃음과는 달랐습니다.
그 안에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형태는 갖추었지만 아직 이름을 붙이지 못한 감정이.
"일상을 잠식하지 못하게 막는 방법이 일상을 완전히 빼앗는 것이라면,"
그로모프가 말했습니다.
"그것을 치료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라긴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진짜 대화였습니다.
이후 며칠 동안 라긴은 그 대화를 생각했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시간에 생각이 돌아왔습니다.
진료 중에도,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잠들기 전에 책을 읽으면서도.
그로모프의 말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불편함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오랫동안 믿어온 어떤 것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라긴은 자신의 철학을 오래 신뢰해 왔습니다.
인간의 고통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인식에서 온다는 것.
따라서 환경을 바꾸는 것보다 내면을 단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 믿음이 그를 지탱했습니다.
그것이 없었다면 그는 이 병원에서, 이 도시에서, 이 삶에서 오래전에 무너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모프의 물음은 그 믿음을 향해 날카롭게 찔러왔습니다.
당신이 그 철학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당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쇠창살 없이 방에 있을 수 있고, 원하면 나갈 수 있고,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고, 언제든 이 도시를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말하는 내면의 평정이란 무엇인가.
선택이 없는 사람에게도 그 철학이 유효한가.
라긴은 그 물음에 쉽게 답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병동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더 빠르게.
그로모프는 이번에도 구석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라긴이 앉는 것을 보고 조금 더 편안한 자세를 취했습니다.
두 번째 방문이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를 만들었습니다.
아직 신뢰라고 부르기는 이른 것이었지만, 적어도 적대적이지 않은 무언가가.
그날 그들은 오래 이야기했습니다.
그로모프는 청년 시절 읽었던 책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러시아 문학에 대해,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철학적 논쟁에 대해, 사회 변혁의 가능성에 대해.
라긴은 처음에는 주로 들었습니다.
그러다 서서히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의 생각은 여러 지점에서 갈렸습니다.
라긴은 개인의 내면적 자유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외부 세계가 어떻든, 자신의 정신이 온전하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로모프는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
그것은 호사스러운 생각이라고.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은 사회의 책임을 지우는 것이라고.
당신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런 생각을 갖는 것은, 이 안에 있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라긴은 불쾌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공격받는 것이 불쾌한 것이 아니라, 그 공격이 정확하게 느껴지는 것이 불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더 이야기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라긴은 발걸음이 이상하게 가벼워진 것을 느꼈습니다.
오랫동안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습니다.
이 도시에서 그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니,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6호 병동 안에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생각이 그를 당황스럽게 했습니다.
동시에 무언가 활기 같은 것이 돌아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라긴은 그날 밤, 오랜만에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다음에 또 병동을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결심 뒤로 어두운 그림자가 따라붙었습니다.
그 그림자가 무엇인지, 라긴은 아직 제대로 이름 붙이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위험의 예감인지, 아니면 오래전에 묻어두었던 양심이 다시 기어 나오는 것인지.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그의 일상이 이제 병동을 향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이 어디로 이어질지를 그는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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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균열이 사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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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먼저 눈치챈 것은 라긴이 스스로 인식하기 전이었습니다.
병원 직원들은 오래전부터 서로에 대한 감시가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작은 도시 안의 작은 기관에서 새로운 사건이란 귀한 것이었습니다.
변화 하나가 오랫동안 이야깃거리가 되었습니다.
라긴이 6호 병동을 자주 방문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그 작은 세계 안에서 상당히 큰 사건이었습니다.
간호사 아브라모브나가 처음 말을 꺼냈습니다.
요즘 원장 선생님이 이상하다고.
진료도 일찍 끝내고, 6호 쪽으로 가더라고.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청소부 여인도 맞장구를 쳤습니다.
복도에서 6호 병동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발걸음도 예전과 달랐다고.
예전에는 그쪽 방향을 아예 보지도 않았는데.
그 이야기가 호보트에게 전달되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호보트는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원장이 정기 점검을 조금 더 자주 하는 것이라면 나쁠 것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모브나가 덧붙인 말이 그의 귀를 세웠습니다.
그냥 둘러보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래 있다 온다고.
그것도 그로모프라는 환자 옆에서.
호보트는 이마를 찌푸렸습니다.
그는 라긴이 무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무능한 것이 아니라 무관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무관심이 자신에게는 편리했습니다.
라긴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자신이 병원을 사실상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처방도 내리고, 물품도 조정하고, 직원들도 관리했습니다.
그 구조가 수년간 안정적으로 유지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라긴이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방향이 엉뚱했지만, 움직인다는 사실 자체가 호보트에게는 불안 요소였습니다.
움직이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보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호보트는 일단 직접 6호 병동을 방문했습니다.
니키타에게 요즘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니키타는 특별한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다만, 원장 선생이 요즘 자주 온다고 했습니다.
아까도 한 시간쯤 앉아 있다 갔다고.
호보트는 더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표정이 굳어 있었습니다.
라긴이 6호 병동을 방문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의사가 환자를 보는 일이니까요.
그러나 의사가 환자와 한 시간씩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특히 그 환자가 그로모프처럼 말 잘 하는 사람이라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가 문제였습니다.
그로모프가 무슨 말을 했을지를 생각하면, 호보트는 불편해졌습니다.
이 병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습니다.
관리 방식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습니다.
니키타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습니다.
그 가능성들이 호보트를 자극했습니다.
라긴은 그러한 움직임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그는 지금 다른 세계 안에 있었습니다.
그의 방문은 점점 규칙성을 띠어갔습니다.
격일이 되었다가, 곧 매일이 되었습니다.
오후 진료가 끝나면 병동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니키타가 문을 열어주었고, 라긴은 안으로 들어가 그로모프 옆에 앉았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매번 새로운 방향으로 흘렀습니다.
어떤 날에는 문학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로모프는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했고, 라긴은 투르게네프를 더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 차이가 각자의 세계관 차이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두 사람 모두 느꼈습니다.
어떤 날에는 죽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죽음이 두려운지, 두렵다면 무엇이 두려운지.
라긴은 소멸 자체는 두렵지 않다고 했습니다.
다만 의미 없이 끝나는 것이 두렵다고 했습니다.
그로모프는 의미라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에 만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죽은 후에 의미가 있든 없든, 살아 있는 동안 그것을 찾는 것이 삶이라고.
그 대화를 마치고 나오면서 라긴은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이 어떻게 이곳에 있을 수 있을까.
저 사람을 이곳에 있게 만든 것이 과연 무엇인가.
그리고 그 생각 다음에, 자신은 무엇을 했는가, 라는 물음이 이어졌습니다.
그 물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라긴은 이제 그 불편함을 예전처럼 쉽게 닫아버릴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라긴이 병동에서 나오다가 호보트와 마주쳤습니다.
호보트는 복도에서 서류를 들고 있었는데, 라긴을 보고 잠깐 멈추었다가 다가왔습니다.
요즘 6호 병동에 자주 가시던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눈빛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라긴은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했습니다.
환자 상태를 좀 더 면밀히 살피고 싶었다고.
호보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그 고개 끄덕임에는 수긍이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시 의료 감독관에게서 병원으로 서한이 왔습니다.
정기 감사를 통보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정기 감사는 보통 일 년에 한 번이었는데, 지난 감사가 석 달도 되지 않았습니다.
라긴은 그 서한을 받아 들면서 잠깐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과 연관된 무언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행정 절차에 늘 무감했기 때문입니다.
서한을 책상 서랍에 넣고 그는 다시 병동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날의 대화에서 그로모프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라긴이 물었습니다. 오늘은 왜 조용하냐고.
그로모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계속 오는 것이 좋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고.
라긴이 왜 두려우냐고 물었습니다.
그로모프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언제든 나갈 수 있다고.
대화가 끝나면 저 문을 열고 나가서, 저녁 식사를 하고, 책을 읽고, 잠을 자고, 내일 아침에 일어날 수 있다고.
나는 그렇지 않다고.
당신이 오는 것이 좋지만, 당신이 나간 뒤에 그 차이를 더 선명하게 느끼게 된다고.
라긴은 그 말을 듣고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로모프가 다시 말했습니다.
그것이 당신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저 사실이 그렇다고.
라긴이 돌아온 뒤, 관사 안에서 그는 평소보다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등불 아래 그림자가 길었습니다.
책은 덮어 두었습니다.
그로모프의 말이 그에게 무언가를 남겼습니다.
그것은 비판이 아니었습니다.
비판보다 더 깊이 찌르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한 사실의 진술.
당신은 나갈 수 있고, 나는 그렇지 않다.
라긴은 생각했습니다.
자신이 그 문 앞에 서서 그로모프를 바라보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나간다는 것이 선택이 되려면, 머문다는 것도 선택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모프에게 머문다는 것은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 비대칭이 그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아니, 불편하다는 말로는 부족했습니다.
무언가 더 무겁고, 더 오래가는 것이었습니다.
도시의 의사들이 모임을 갖는 날이 있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여럿이 모여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라긴은 그 모임에 빠지는 일이 많았지만, 그날은 참석했습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 물었습니다.
요즘 병원이 어떻냐고.
라긴은 별다른 것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옆에 앉은 의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6호 병동에 자주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라고.
라긴은 그 말에서 이상한 온도를 느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가벼운 대화였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꺼낸 사람의 눈빛에는 무언가 더 있었습니다.
모임 안의 다른 사람들도 잠깐 조용해졌다가, 이내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라긴은 그 침묵의 질감을 기억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은 흐려 있었습니다.
바람이 차가웠습니다.
라긴은 코트 깃을 올리고 천천히 걸었습니다.
무언가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공기 안에 무언가가 쌓이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그러나 분명히 감지되는 것이.
그것이 위험의 전조인지, 아니면 자신이 너무 예민해진 것인지.
라긴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 공기가 이미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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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경계가 흐릿해지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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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깊어지면서 도시는 더 조용해졌습니다.
눈이 내리면 소리가 줄었습니다.
발소리도, 마차 소리도, 아이들의 목소리도 눈 안으로 흡수되었습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6호 병동의 쇠창살은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낮에는 차가운 빛을 반사했고, 밤에는 어둠 속에서 윤곽만 남겼습니다.
라긴은 이제 매일 병동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 자신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병동으로 가는 발걸음은 다른 어떤 곳으로 가는 발걸음보다 가벼웠습니다.
그로모프와의 대화는 더 깊어졌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정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회가 개인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 요구가 정당한지.
그로모프는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는 긴박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단순한 지적 유희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끌어올린 말들이었습니다.
"세상이 나를 광인이라 부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로모프가 말했습니다.
"진단서 한 장이면 됩니다.
그 한 장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을 덮어버립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책을 읽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그 모든 것이 한 단어 아래로 사라집니다.
비정상. 그 단어 하나로 충분합니다."
라긴은 반박하려 했습니다.
진단이라는 것은 다르다고, 그것은 치료를 위한 것이라고.
그러나 말을 꺼내면서도 그 말이 공허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병동 안에서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라긴은 그것에 대한 대답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로모프는 계속했습니다.
"당신과 나의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당신은 이 세상이 작동하는 방식을 받아들였고, 나는 받아들이지 못한 겁니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잡힐 것 같다고 했는데, 잡혔습니다.
어딘가에 갇힐 것 같다고 했는데, 갇혔습니다.
나의 두려움이 망상이었을까요, 아니면 예지였을까요."
라긴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것은 반박할 수 없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로모프의 두려움은 비이성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이성적인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두려움을 망상이라 부를 수 있는가.
아니면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된 것이 우연인가.
라긴의 머릿속에서 오래된 철학적 구분들이 흔들렸습니다.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그 경계를 누가 긋는가.
무슨 권한으로.
그날 병동에서 나온 뒤, 라긴은 직접 그로모프의 진료 기록을 꺼내 보았습니다.
몇 장 되지 않는 기록이었습니다.
입원 당시의 상태 요약, 담당 의사의 짧은 소견, 그리고 그 이후로는 거의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수년이 지나도록 기록이 추가되지 않았습니다.
치료가 없었으니 기록할 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라긴은 그 얇은 파일을 오래 들고 있었습니다.
소문이 도시 안에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장이 정신병동 환자와 친하게 지낸다는 이야기가.
매일 가서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눈다는 이야기가.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옮겨가면서 형태가 바뀌었습니다.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원장도 좀 이상한 것 같다고.
원래 좀 별난 사람이었는데, 요즘 더 심해진 것 같다고.
정신병자랑 어울리다 보면 사람이 물든다고.
나쁜 것은 전염된다는 것을 모르냐고.
그 말들이 마을 이발소에서 오갔고, 시장 안에서 퍼졌으며, 의사들의 모임으로 흘러들었습니다.
호보트는 그 모든 이야기를 수집했습니다.
그는 정보를 모으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정보는 힘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제 사용할지는 몰라도, 쌓아두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었습니다.
그는 감독관에게 보낸 서한의 내용을 이미 충분히 준비해 두었습니다.
라긴의 행동이 병원 운영에 미치는 영향이 우려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환자와 지나친 친밀 관계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의료 윤리상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아직 보내지 않은 서한이었습니다.
호보트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자신 편이라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라긴은 그 무렵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6호 병동 안에 자신이 앉아 있는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맞은편에 앉은 것이 그로모프가 아니었습니다.
낯선 사람이었는데, 얼굴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낯선 사람이 라긴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것은 처음에 그로모프가 했던 말이었습니다.
꿈에서 깨어난 뒤, 라긴은 오래도록 누워 있었습니다.
천장을 바라보면서, 그 꿈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아니, 의미보다도 먼저 그 꿈에서 느꼈던 감각을 생각했습니다.
6호 병동 안에 앉아 있었을 때, 그가 느낀 것은 공포가 아니었습니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었습니다.
마치, 그곳이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인 것처럼.
그 느낌이 잠에서 깨어난 뒤에도 남아 있었습니다.
라긴은 그것이 불안한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낮에 그로모프를 만났을 때, 라긴은 꿈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대화는 왜인지 조심스럽게 흘렀습니다.
그로모프는 라긴을 똑바로 보며 말했습니다.
요즘 당신이 뭔가를 느끼는 것 같다고.
전과 달리 눈빛이 좀 불안해 보인다고.
라긴은 괜찮다고 했습니다.
그로모프는 믿지 않는다는 표정을 했지만, 더 묻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한참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침묵이 편하게 느껴졌습니다.
라긴에게 그것은 오랜만의 느낌이었습니다.
누군가와 침묵을 나눈다는 것.
그 침묵이 어색하지 않다는 것.
그러나 결국 라긴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로모프는 그 뒤에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라긴이 문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문이 열리고, 라긴이 나가고, 문이 닫히는 것을.
쇠 자물쇠 잠기는 소리가 병동 안에 울렸습니다.
그로모프는 다시 구석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웬일인지 그 소리가 더 크게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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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벽이 움직이기 시작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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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의료 감독관이 병원을 방문한 것은 3월 초였습니다.
날은 흐렸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낮은 구름이 깔렸고, 오후에는 진눈깨비가 조금 내렸습니다.
감독관은 조수 두 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외투가 깨끗했고, 가죽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는 호보트에게 먼저 인사했습니다.
라긴에게는 그다음 인사했습니다.
그 순서가 이미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감독관은 병원을 돌아보았습니다.
각 병동을 차례로 확인했고, 서류를 살펴보았으며, 직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그 과정이 표면적으로는 일상적인 감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라긴은 그것이 일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감독관의 시선이 여러 번 자신에게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6호 병동을 확인할 때, 감독관은 특히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로모프와 눈이 마주쳤을 때, 감독관은 무표정했습니다.
그로모프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그 두 시선이 잠깐 부딪혔다가 떨어졌습니다.
감독관은 라긴에게 잠깐 따로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원장실에서 마주 앉았습니다.
감독관은 서류 가방에서 종이 몇 장을 꺼냈습니다.
우선 병원 전반적인 운영에 대해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행정 처리가 원장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고 조수에 의해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는 보고가 있었다고.
의료 행위의 주체와 책임 소재가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고.
라긴은 그 말을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것이 사실임을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독관이 다음으로 꺼낸 주제는 달랐습니다.
6호 병동 환자와 지속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그것이 치료 목적인지, 아닌지를 물었습니다.
라긴은 잠깐 멈추었습니다.
치료 목적이라고 해야 하는가.
아니면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가.
그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치료 목적이라기보다는 지적 교류였다고.
그로모프는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고, 그와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것들이 생겼다고.
감독관은 메모를 했습니다.
지적 교류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생각해보셔야 할 것 같다고 감독관이 말했습니다.
의사가 환자와 지적 교류를 위해 병동을 방문하는 것은 의료 관계의 정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관계가 의사의 판단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고.
라긴은 판단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물었습니다.
감독관은 잠깐 망설였다가 말했습니다.
환자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의사가 환자와 개인적 유대 관계를 형성하면, 그 환자에 대한 진단과 처우에 있어서 객관성을 잃을 수 있다고.
그리고 반대 방향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즉, 의사 자신이 영향을 받는다면.
그 말 뒤에 긴 침묵이 있었습니다.
라긴은 그 침묵의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감독관이 말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만약 의사가 환자로부터 영향을 받아 판단이 흐려진다면, 그 의사는 의사로서의 자격에 의문이 생긴다.
그것이 그 침묵이 담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감독관이 자리를 떠난 뒤, 라긴은 원장실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창밖으로 진눈깨비가 내렸습니다.
정원의 나무들이 흰 것과 갈색 것이 뒤섞인 채로 서 있었습니다.
라긴은 처음으로 자신의 처지가 위태롭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막연하지 않은, 구체적인 위태로움이었습니다.
이것이 무언가의 시작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위태로움 앞에서 라긴은 방향을 돌릴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6호 병동에 가는 것을 그만두면 이 상황이 끝날 수도 있었습니다.
호보트에게 손을 내밀면 무언가 달라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날 저녁, 라긴은 다시 병동을 찾았습니다.
그로모프는 그를 보고 조금 놀라는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이미 낮에 왔는데, 라고.
라긴은 앉으면서 말했습니다.
감독관이 왔다고.
그로모프는 잠깐 침묵했다가 물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했냐고.
라긴은 대략 이야기했습니다.
그로모프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의 표정에는 놀람이 없었습니다.
마치 예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이제 당신도 느끼고 있겠군요."
그로모프가 말했습니다.
"이 도시가 어떻게 사람을 다루는지."
라긴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말이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느끼지 않으려 했던 무언가가, 이제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병원 안에서 라긴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모브나는 라긴과 시선이 마주치면 급히 다른 쪽을 보았습니다.
호보트는 정중했지만 거리를 두었습니다.
다른 직원들도 예전보다 말수가 줄었습니다.
라긴은 그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고립이 그를 위축시키지 않았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불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에게는 이상하게도 명확함이 생겼습니다.
어떤 것들이 중요하고 어떤 것들이 중요하지 않은지.
무엇이 진짜 대화이고 무엇이 형식적인 교환인지.
누가 자신에게 정직하게 말하고 있는지.
그 명확함은 6호 병동 안에서만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라긴이 병동으로 가는 길에 이웃 의사를 만났습니다.
그 의사는 잠깐 멈추었다가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요즘 소문이 좋지 않다고.
주위 사람들이 걱정한다고.
자신도 걱정된다고.
라긴은 고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걸어갔습니다.
이웃 의사는 라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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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문이 바뀌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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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나중에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건들이 단계적으로 이어진 것인지, 아니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인지.
라긴 자신에게도 그 과정이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어느 날 아침, 그는 자신이 어떤 경계를 이미 건너온 것을 느꼈습니다.
그 경계가 어디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같은 쪽에 있지 않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감독관의 방문 이후 몇 주가 흘렀습니다.
그 기간 동안 라긴을 둘러싼 상황들이 조용히 변해갔습니다.
먼저, 원장으로서의 그의 권한이 조금씩 줄었습니다.
공식적인 조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달라졌습니다.
행정 서류들이 더 이상 그의 책상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결정들이 호보트에 의해 이루어졌고, 라긴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직원들은 그를 여전히 원장이라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호칭이 이제 실질을 담지 않았습니다.
형식이 되어버렸습니다.
라긴은 그 변화에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저항할 의지가 없다기보다는, 저항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 결과를 바꾸지 못한다는 것을.
그는 더 자주 6호 병동을 찾았습니다.
다른 할 일이 줄어든 것도 이유였지만,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그 공간이 이제 그에게 가장 솔직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위계도 없고, 형식도 없고, 자신을 다르게 보이려 할 이유도 없었습니다.
그로모프는 라긴의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직접 들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라긴의 얼굴이 달라졌습니다.
조금 더 피곤해 보였고, 눈 아래에 그늘이 생겼습니다.
병동에 와서 말하는 양도 전보다 줄었습니다.
어느 날 그로모프가 물었습니다.
"당신 괜찮습니까."
라긴은 잠깐 생각했습니다.
괜찮다고 해야 할지, 아닌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로모프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문제의 날은 이월 하순이었습니다.
그날 라긴이 출근하니 원장실 문 앞에 호보트가 서 있었습니다.
그 옆에 낯선 사람이 두 명 있었습니다.
감독관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호보트가 말했습니다.
병원 운영 관련해서 몇 가지 확인이 필요하다고.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다고.
원장실 안에 네 사람이 앉았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서류를 꺼냈습니다.
거기에는 라긴에 관한 여러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병원 관리 소홀, 의료 행위 외의 행동에 지나친 시간 소비, 일부 동료들과의 갈등, 그리고 6호 병동 환자와의 지속적인 비의료적 접촉.
마지막 항목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습니다.
라긴은 그 서류를 읽으면서 묘한 감각을 느꼈습니다.
분노가 와야 할 것 같은데 오지 않았습니다.
억울함이 와야 할 것 같은데 그것도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떤 투명한 고요함이 있었습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예상하고 있었던 것을 드디어 확인하는 것 같은.
그 낯선 사람들 중 하나가 말했습니다.
당신의 정신 건강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고.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도 전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라긴은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실소했습니다.
짧은 웃음이었습니다.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방 안의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라긴은 알았습니다.
그로모프가 처음 했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당신은 부끄럽지 않습니까.
그로모프의 두려움이 현실이 되었듯이, 지금 자신에게도 무언가가 현실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후 며칠 동안 라긴은 병원에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건강 상의 이유였습니다.
그 건강이 육체적인 것인지 정신적인 것인지는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관사에 혼자 있는 동안,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이 도시에 처음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처음의 야망이 어떻게 무관심이 되었는지.
무관심이 어떻게 일종의 방어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 방어가 결국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
돌아보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돌아보지 않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도 이제는 알았습니다.
이웃 도시의 병원에서 정신과 의사가 왔습니다.
공식적인 평가를 위한 방문이었습니다.
라긴은 그 의사와 한 시간 남짓 이야기했습니다.
그 대화는 이상했습니다.
의사가 하는 질문들이 너무 단순했습니다.
요즘 잠은 잘 자는지, 식욕은 있는지,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지.
라긴은 그 질문들에 성실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대답들이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이 진짜 문제인지를 그 짧은 대화 안에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철학적 각성이 위험으로 분류되는 상황에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평가 결과는 며칠 후에 나왔습니다.
문서가 공식 경로를 통해 전달되었습니다.
그 문서는 라긴이 정상적인 직무 수행에 어려움이 있는 상태라고 판단했습니다.
일시적인 것인지 아닌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동안은 업무에서 배제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권고했습니다.
그리고 경과 관찰을 위해 일정 기간 의료 시설에 머무는 것을 권장한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 권장이 어떤 시설을 의미하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라긴은 알았습니다.
그가 수년간 원장으로 있었던 그 병원.
그 병원 구석에 있는 별채.
쇠창살이 있는 창문, 두꺼운 참나무 문, 두 개의 자물쇠.
6호 병동.
라긴은 그 문서를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딘가에서 그로모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은 나갈 수 있고, 나는 그렇지 않다.
이제 그 말의 의미가 다르게 들렸습니다.
그가 짐을 싸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책이 많았지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몇 권뿐이었습니다.
어떤 책을 고를까 한참 서 있다가, 결국 에픽테토스를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려놓았습니다.
다시 집어 들었습니다.
결국 그것을 들고 나왔습니다.
병원으로 걸어가는 길에 눈이 내렸습니다.
가늘고 조용한 눈이었습니다.
라긴은 걸으면서 발자국이 눈 위에 찍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발자국들이 뒤로 이어졌습니다.
앞에는 아직 발자국이 없었습니다.
6호 병동 문이 열렸습니다.
니키타가 문을 잡고 있었습니다.
표정이 없었습니다.
라긴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로모프가 그를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다음은 알 수 없는 표정이었습니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그 둘이 뒤섞인 것인지.
문이 닫혔습니다.
자물쇠 잠기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는 라긴에게 익숙한 소리였습니다.
수년 동안 그 소리를 바깥에서 들어왔습니다.
이제 그 소리를 안에서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예전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그는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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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침묵이 말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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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 병동 안에서의 첫날 밤을 라긴은 잠들지 못했습니다.
매트리스가 낡아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알고 있는 것과 직접 그 위에 눕는 것은 달랐습니다.
등이 아팠고, 담요가 얇았습니다.
병동 안의 난로는 밤중에 꺼졌고, 이후로는 냉기가 천천히 방을 채웠습니다.
그는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회색 천장이었습니다.
예전에도 이 천장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점검 때마다 올려다보았던 천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와 지금은 달랐습니다.
보는 것과 갇혀서 보는 것은 달랐습니다.
새벽에 다른 환자들이 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이세이카의 낮은 중얼거림.
코스탸레프의 뜬금없는 웃음.
그 웃음 소리가 어둠 속에서는 더 기이하게 들렸습니다.
그로모프는 조용했습니다.
자고 있는지 깨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라긴은 생각했습니다.
이 침묵이, 이 어둠이, 이 냉기가.
매일 밤 반복된다는 것.
그로모프가 수년 동안 이 안에서 이것들을 견뎌왔다는 것.
그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아니, 알고 있었지만 느끼지 못했습니다.
느끼지 않으려 했습니다.
아침이 왔습니다.
니키타가 문을 열고 죽을 들여왔습니다.
그 과정이 라긴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원장이었던 사람과 다른 환자들 사이에 차이가 없었습니다.
라긴은 그 죽을 먹으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이 병동의 아침 식사가 어떤 것인지를 서류로 본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직접 먹어보니, 서류에 적힌 것이 얼마나 형식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로모프가 말을 걸어온 것은 오전 중반쯤이었습니다.
표정은 여전히 복잡했습니다.
"어떻습니까."
그로모프가 물었습니다.
라긴은 잠깐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수년 동안 이것을 견뎌왔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로모프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한참 앉아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 니키타가 라긴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조용히 있을 것이냐고.
아니면 소란을 피울 것이냐고.
그 물음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분명했습니다.
라긴은 조용히 있겠다고 했습니다.
니키타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갔습니다.
며칠이 흘렀습니다.
라긴은 점차 병동의 리듬에 적응했습니다.
아침 식사, 아무것도 없는 오전, 점심, 아무것도 없는 오후, 저녁.
가끔 마당에 나가는 것이 허락되는 날에는 잠깐 바깥 공기를 맡을 수 있었습니다.
그 바깥 공기가 예전과 달랐습니다.
예전에는 그냥 공기였습니다.
지금은 그것이 허락된 것이었습니다.
그 차이가 작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자유란 무엇인가를 라긴은 이제 다른 방식으로 이해했습니다.
내면의 자유만으로 충분하다고 그는 오랫동안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내면의 자유를 말하기 위해서는 먼저 바깥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선택이 없는 자리에서 내면의 평정을 유지하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지.
그 생각이 그를 무너뜨렸습니다.
아니, 무너뜨렸다는 말이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명확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랫동안 믿어온 것이 틀렸다는 것을.
그리고 그 틀림을 인식하는 것이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그로모프는 라긴을 관찰했습니다.
뭔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라긴이 무너지는 것 같기도 했고, 오히려 더 온전해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그로모프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라긴이 말했습니다.
"내가 틀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로모프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습니다.
"무엇이 틀렸습니까."
라긴이 말했습니다.
"모든 것이요. 그러나 특히, 보지 않으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틀렸습니다. 이 방이 이 안에서 어떤 것인지를 나는 알지 못했습니다. 알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모프는 오래 침묵했습니다.
그 침묵이 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늦었지만 알았다면, 그것으로 무언가는 달라진 것입니다."
그것이 위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라긴에게 그 말은 어떤 것보다 무겁게 닿았습니다.
며칠 뒤, 라긴에게 몸살이 왔습니다.
병동의 냉기와 영양 부족이 원인이었습니다.
열이 올랐고, 몸이 무거웠습니다.
누가 찾아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웃 의사가 한 번 들렀습니다.
간단히 상태를 확인하고 갔습니다.
표정에 무언가가 있었지만, 오래 있지 않았습니다.
라긴은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몸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정신은 맑았습니다.
아니, 맑았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혼탁함이 걷힌 것 같았습니다.
오랫동안 자신을 감싸고 있던 것들이 사라졌습니다.
사회적 지위, 의사라는 호칭, 원장이라는 자리, 철학적 확신, 이 모든 것이 지금은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그냥 한 사람이었습니다.
추운 방에 누워 있는 한 사람.
그것이 두렵기도 했고, 이상하게 가볍기도 했습니다.
열이 가장 높던 밤에, 라긴은 꿈을 꾸었습니다.
넓은 들판이었습니다.
눈이 쌓인 들판이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얗고, 조용했습니다.
그 들판 위에 서 있는데, 어딘가에서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차가웠지만 날카롭지 않았습니다.
라긴은 그 바람 안에서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꿈 안에서 그는 울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우는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울었습니다.
오랫동안.
새벽에 열이 내렸습니다.
눈을 떴을 때 창밖이 희뿌옇게 밝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로모프가 그의 침대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거기 있었습니다.
라긴은 그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을 다시 감았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수십 년 동안 하지 않았던 것이구나, 라고.
곁에 있는 것.
그냥, 곁에 있는 것.
그가 병원에 왔던 모든 그 긴 세월 동안, 그는 한 번도 환자의 곁에 그냥 앉아 있은 적이 없었습니다.
목적 없이, 형식 없이, 그냥.
그것을 이제야 배웠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쇠창살 안에서.
라긴은 며칠 후 열이 완전히 내렸을 때, 다시 일어나 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몸은 여전히 약했습니다.
어느 오전, 니키타가 무언가 이유 없이 기분이 나빠 보였습니다.
라긴이 마당에 나가겠다고 했을 때, 니키타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라긴이 왜 그러느냐고 하자, 니키타는 대답 없이 그를 밀었습니다.
그것이 폭력이었습니다.
라긴은 벽에 부딪혔습니다.
충격이 왔습니다.
육체적인 것이었지만,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의사로서 이 공간 안에 있었습니다.
그 수십 년 동안 이런 일이 환자들에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끼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는 느꼈습니다.
벽에 기대어 라긴은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수년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그로모프에게, 모이세이카에게, 아보샤에게.
그리고 이 방을 거쳐 간 수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에게.
그 생각이 무거웠습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그날 저녁 라긴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숨쉬기가 어려웠습니다.
이웃 의사가 다시 불려왔습니다.
그는 진찰을 했고, 처방을 내렸습니다.
그러면서 라긴의 눈을 보았습니다.
그 눈 안에 무언가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더 맑아진 것 같기도 하고, 더 먼 것을 보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이웃 의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습니다.
밤이 깊어졌습니다.
병동 안은 조용해졌습니다.
라긴은 눈을 감았습니다.
밖에서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가 들판 위의 바람 소리와 비슷했습니다.
꿈에서 들었던 소리.
그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아침이 다시 왔습니다.
그러나 라긴이 눈을 뜨지 않았습니다.
니키타가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라긴은 침대에 누운 채로 있었습니다.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로모프가 먼저 알아챘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라긴의 손을 잡았습니다.
차가웠습니다.
병동 안에 잠깐 침묵이 흘렀습니다.
그로모프는 라긴의 손을 잡은 채로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말이 없었습니다.
그의 눈 안에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분노도 아니었고, 슬픔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어쩌면 그것은 이해였습니다.
뒤늦게 도착한, 그러나 진짜인 이해였습니다.
창밖으로 빛이 들어왔습니다.
쇠창살 사이로.
그 빛이 좁고 기울어진 줄기로 바닥에 닿았습니다.
병동 안은 여전했습니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문은 잠겨 있었습니다.
자물쇠는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니키타는 복도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6호 병동은, 그날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마치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거기 있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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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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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는 이 이야기를 통해 세상이 어떻게 이상한 자와 정상적인 자를 구분하는지를 묻습니다.
그 구분이 진실에 근거한 것인지, 아니면 편의에 근거한 것인지.
권력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기준을 정하는 쪽에 있었습니다.
그 기준이 공정한지를 묻는 사람은, 그 기준에 의해 위험한 사람으로 분류될 위험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라긴의 이야기는 무관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잔인한 의도를 가진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 보지 않음이 오랜 시간 쌓여서 결국 그 자신을 삼켰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묻게 됩니다.
우리가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은 무엇인지.
우리가 관여하지 않으려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외면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6호 병동의 쇠창살은 여전히 어딘가에 있습니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본질은 같은 것이.
그리고 그 안과 밖의 경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흐릿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느 쪽에 서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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