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대한민국 유통 재벌 태성그룹 창업주 강태운의 죽음과 함께 시작됩니다. 그의 유언장이 공개되면서 자녀들에게 분배될 것으로 예상된 재산의 절반 이상이 정체불명의 청람복지재단에 귀속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가족들은 유언 무효 소송을 준비하고, 국세청은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합니다. 탐사보도 기자와 변호사는 이천 물류창고 화재 사건과 재단의 연결고리를 추적하며, 은닉된 자산과 재벌가의 비밀이 서서히 밝혀집니다. 이는 단순한 상속 분쟁을 넘어, 재벌가의 그림자와 사회적 책임을 묻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어떤 죽음은, 죽은 뒤에도 오래도록 살아 움직입니다.
강원도 홍천 외곽, 해발 팔백 미터 산중에 자리한 그 저택은 바깥에서 보면 그저 낡은 별장처럼 보였습니다. 회색 돌벽과 짙은 청색 기와가 맞닿은 자리에는 담쟁이덩굴이 무성하게 올라 있었고, 철제 대문 위에는 녹이 슬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유통 재벌의 마지막 비밀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강태운. 대한민국 유통업계의 전설이라 불리던 사람이었습니다. 태성그룹의 창업주이자 회장. 한때 시가총액 이십조 원을 넘었던 기업 왕국의 절대적 군주. 그의 이름 석 자는 유통업계에서 하나의 신화였습니다. 하지만 신화는 이미 오래전부터 금이 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쓰러진 것은 이른 봄 아침이었습니다. 집무실 소파에서 그를 발견한 것은 십오 년을 함께 일한 비서 윤재원이었습니다. 응급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강태운의 심장은 이미 멎어 있었습니다. 일흔두 살. 지병이던 심장 질환이 마침내 그를 앗아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이 단순히 한 노인의 자연사로 끝났다면, 이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의 한 빌딩 삼십이 층에 자리한 법무법인 동광의 회의실은 오전 열 시부터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창밖으로는 초봄의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회의실 안에서는 그 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기다란 참나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강태운의 세 자녀가 마주 앉아 있었습니다. 장남 강현식, 차남 강현수, 그리고 외동딸 강유란이었습니다.
셋 모두 검은 상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 표정만큼은 슬픔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지 불과 삼 일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그들의 눈빛 속에는 이미 다른 무언가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장남 강현식은 마흔여섯이었습니다. 미국 조지타운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뒤 태성그룹의 경영기획실에서 이십 년을 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직계 후계자로 업계에서는 공공연히 여겨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몸에서는 늘 고급 향수 냄새가 났고, 말을 할 때는 언제나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습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 신중함이 무너지기 직전처럼 보였습니다.
차남 강현수는 마흔셋이었습니다. 형과 달리 국내 대학 법학과를 졸업한 뒤 사법고시를 준비했으나 두 번 낙방하고 결국 태성그룹의 법무팀에 입사한 이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형의 그늘 아래 있었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그는 달랐습니다. 어깨를 쫙 펴고 양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눈을 가늘게 뜨고 있었습니다.
막내 강유란은 서른아홉이었습니다. 파리에서 패션 디자인을 공부하고 돌아온 뒤 태성그룹 계열의 패션 브랜드를 이끌고 있었습니다. 오빠들과는 달리 아버지와의 사이가 소원했지만, 그렇다고 유산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두 오빠보다 더 복잡했습니다.
법무법인 동광의 선임 변호사 이성태가 서류 봉투를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이십 년 넘게 강태운 회장의 법률 자문을 맡아온 인물이었습니다.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흰머리 하나 없이 단정하게 정돈된 모습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그의 눈가에 피로가 역력했습니다.
봉투 안에는 두 가지 문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강태운 회장이 이 년 전 작성한 유언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불과 석 달 전에 새롭게 작성된 유언장이었습니다.
이성태 변호사의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습니다.
유언장 낭독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몇 분간은 예상 가능한 내용들이었습니다. 태성그룹의 경영권을 장남 강현식에게 위임한다는 내용, 차남 강현수에게는 부동산 자산의 일부를, 강유란에게는 패션 계열사 지분을 남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다음 문장에서 회의실 안의 공기가 굳어버렸습니다.
총 자산의 오십오 퍼센트는 강태운 회장이 생전에 설립한 비영리 재단 '청람복지재단'에 귀속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강현식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강현수는 반사적으로 몸을 앞으로 기울였고, 강유란은 두 손을 꼭 쥐었습니다.
청람복지재단. 그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성태 변호사는 문서를 내려놓으며 천천히 숨을 들이켰습니다. 그는 이 반응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어쩌면 이 순간을 수십 번 머릿속으로 그려보았을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막상 세 사람의 눈빛이 자신에게 쏠리자, 그의 얼굴에도 무언가 불편한 기색이 떠올랐습니다.
유언장은 공증된 것이었습니다. 강태운 회장이 직접 서명하고, 두 명의 증인이 서명한, 법적으로 완전히 유효한 문서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틀 뒤, 태성그룹의 법무팀장 황태준은 유언 무효 소송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변호인으로 선임된 것은 법무법인 정동의 손진혁 변호사였습니다. 그는 재벌가 유산 분쟁 전문 변호사로 국내에서 손꼽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이틀 만에 경제 전문 매체들에 흘러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운 단신 기사였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자 주요 경제지들이 이 소식을 특종처럼 다루기 시작했습니다. 태성그룹 창업주 강태운 회장 사망. 비밀 유언장 공개. 자녀들 유언 무효 소송 준비.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순식간에 재계 전반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그 기사들을 맨 처음 읽은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김동민이었습니다.
김동민은 서울 서초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는 변호사였습니다. 마흔한 살. 한때는 국내 최대 로펌으로 꼽히는 법무법인 한양의 파트너 변호사였습니다. 서울대 법학대학원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사법연수원을 수석 수료한 뒤 한양 로펌에 입사했고, 십 년 남짓 그곳에서 기업 분쟁과 조세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그러나 육 년 전, 그는 한양 로펌을 떠났습니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아니, 표면적으로는 단순해 보였습니다. 당시 그는 대기업 계열사의 탈세 사건을 맡고 있었는데, 상대편 세무조사를 담당하던 국세청 조사관이 로펌 측에 편의를 봐주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하는 정황을 포착했습니다. 김동민은 이를 내부적으로 보고했지만, 한양 로펌의 수뇌부는 그 문제를 덮으려 했습니다. 결국 그는 혼자서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고, 그 결과 관련 조사관은 징계를 받았지만 김동민 자신은 로펌에서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독립 변호사로 활동했습니다. 대형 사건은 없었지만, 기업 분쟁과 세금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그를 찾는 의뢰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날 아침, 김동민은 태성그룹 관련 기사를 읽으며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의 눈이 기사의 한 줄에서 멈췄습니다.
청람복지재단.
그는 그 이름이 어딘가 낯설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들었는지는 금방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노트북을 열고 재단 이름을 검색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법인 등록 기록조차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김동민은 커피 잔을 내려놓으며 천천히 뒤로 기댔습니다. 무언가가 그의 직감을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이십 년 가까이 기업 법무를 다루며 길러진, 설명하기 어려운 그 감각이었습니다.
박성희는 경쟁하듯 바쁜 서울 마포구의 한 건물 오층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독립 언론매체인 리얼타임스코리아의 탐사보도팀 소속 기자였습니다. 서른여덟 살.
그녀는 연세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왔고, 첫 직장은 국내 메이저 일간지였습니다. 사회부에서 시작해 산업부로 옮겼고, 삼 년 뒤에는 특별취재팀에 발탁되었습니다. 빠르고, 끈질기며, 무엇보다 정확했습니다. 그 세 가지가 그녀를 어디서나 돋보이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메이저 언론을 떠난 것은 오 년 전이었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자신이 쓴 기사가 지면에 실리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사는 경기도 이천에 있는 대형 물류창고 화재 사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이십 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화재로 인부 열두 명이 사망했고, 이 사건은 당시 단순 산업재해로 처리되었습니다. 하지만 박성희가 추적한 결과, 그 창고는 불법 건축 구조물이었고 당시 건축 허가를 담당한 관청이 묵인해준 정황이 있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그 창고를 소유한 물류회사가 당시 기세를 키워가던 태성그룹의 계열사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기사는 편집국장의 선에서 막혔습니다. 태성그룹과의 광고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박성희는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사직서를 냈습니다.
리얼타임스코리아로 온 뒤로 그녀는 더 자유롭게 일했습니다. 매체의 규모는 작았지만, 광고주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독자층은 작은 대신 충성도가 높았습니다.
강태운 회장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을 때, 박성희의 손은 자연스럽게 예전 취재 파일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서랍 깊숙이 보관해두었던 두툼한 봉투 하나가 나왔습니다. 그 안에는 이천 물류창고 화재 피해자 가족들의 증언, 당시 건축 허가 서류 사본, 그리고 태성그룹 전신인 태성상사의 계열사 구조도가 들어 있었습니다.
오 년이 지났어도 그 서류들은 여전히 생생했습니다.
그녀가 리얼타임스코리아 편집장에게 특별취재 제안서를 올린 것은 강태운 회장 사망 이틀 뒤였습니다. 제목은 이것이었습니다. 태성그룹 창업주의 죽음, 그리고 이천 화재의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편집장 최진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오래 생각했지만 결국 승인을 내렸습니다. 단, 법적 분쟁이 될 수 있는 내용은 사전 법률 검토를 받으라는 조건이었습니다.
박성희가 법률 검토를 의뢰하기 위해 연락한 곳이 바로 김동민의 사무실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사 년 전이었습니다. 박성희가 취재했던 한 중견 건설사의 분식회계 사건에서 김동민이 내부고발자 측 대리인을 맡은 것이 인연이었습니다. 직접적인 협력은 아니었지만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계기였고, 이후 몇 번 간접적으로 접촉이 있었습니다.
만남은 서초동의 작은 커피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박성희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봉투를 꺼내 놓았습니다. 김동민은 그 봉투를 보더니 잠시 숨을 멈추었습니다.
이천 화재. 그 이름이 나오자 그의 눈빛이 살짝 바뀌었습니다.
사실 그 사건은 김동민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한양 로펌에 있을 때 관련 기업의 대리인으로 참여했던 사건은 아니었지만, 당시 재계에서 조용히 이야기되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한양 로펌을 떠날 즈음, 그 사건과 관련된 내부 문서 하나가 그의 손에 스친 적이 있었습니다. 단 몇 초였지만, 그는 그 내용을 잊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커피숍 창밖으로는 봄바람이 사람들 사이를 스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김동민은 박성희라는 사람을 처음 직접 마주 앉아 보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예상보다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기자라면 으레 날카롭고 공격적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박성희는 오히려 듣는 데 더 능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동안 절대 끼어들지 않았고, 노트를 꺼내는 것도 자제했습니다. 하지만 그 눈빛만큼은 모든 것을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박성희는 자신이 취재한 내용을 차분하고 명확하게 설명했습니다. 이천 창고의 건축 위반 사항, 당시 관청의 묵인 가능성, 태성그룹 계열사와의 관계, 피해자 가족들의 증언. 그리고 결정적인 것 하나를 더 꺼냈습니다.
당시 화재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사고가 나기 사흘 전, 창고 관리 책임자가 인부들에게 '이번 주 중으로 어떤 서류를 없애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서류인지는 당시에도 알 수 없었습니다.
김동민은 손끝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습니다.
그는 당장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관여하게 되면 어떤 파장이 생길지를 먼저 계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단순한 법률 검토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무언가가 그를 붙잡았습니다.
청람복지재단.
그 이름이 또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커피숍을 나서며 그는 박성희에게 말했습니다. 일주일 뒤 다시 만나자고. 그때까지 자신도 알아볼 것이 있다고.
박성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그 눈빛은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헤어진 뒤, 김동민은 곧장 사무실로 돌아와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파일 하나를 꺼냈습니다. 한양 로펌 시절, 내부 감사 과정에서 잠깐 그의 손에 들어왔던 문서의 사본이었습니다. 당시 담당 사건과 무관하게 분류 오류로 섞여 들어온 것이었는데, 그 안에는 태성그룹의 초기 물류 계열사 목록과 함께 한 법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서울 종로구 수송동, 국세청 본청 건물 칠 층에 자리한 특별조사국은 평소에도 조용한 곳이었습니다. 민감한 사안을 다루는 부서 특성상 복도에서 큰 소리가 나는 일 자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강태운 회장 사망 이후 이 층에는 이전과 다른 종류의 고요함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특별조사국 사무관 윤재호는 서른다섯 살의 젊은 조사관이었습니다. 성균관대 세무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통해 국세청에 들어온 지 팔 년 째였습니다. 그는 빠른 승진으로 주변의 주목을 받았지만, 그 속도만큼이나 그가 다루는 사건들도 굵직하고 복잡한 것들이었습니다.
윤재호의 책상 위에는 태성그룹 관련 서류가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아직 공식 조사 지시가 떨어지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기초 자료를 검토했습니다. 공개된 재무제표, 공시 자료, 언론 기사들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태성그룹이 십 년 전부터 홍콩에 등록한 페이퍼컴퍼니 세 곳이었습니다. 세 곳 모두 실제 사업 활동이 없는 것으로 보였지만, 국내 계열사들과 정기적으로 자금 이동이 있었습니다. 그 규모는 연간 수십억 원에서 수백억 원 사이였습니다.
이것 자체가 범죄는 아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윤재호의 경험에 따르면, 실체 없는 해외 법인으로 자금이 반복적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의미했습니다. 합법적인 자금 관리이거나, 아니면 재산 분산과 세금 회피였습니다.
그가 이 사안을 상급자에게 보고한 것은 강태운 회장 사망 닷새 뒤였습니다. 특별조사국장 이용범은 서류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보름 뒤, 공식 조사 착수가 결정되었습니다. 태성그룹의 상속 재산과 관련된 세금 탈루 여부를 집중 검토하는 특별 세무조사였습니다.
이 소식은 즉각 재계에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태성그룹의 주가는 하루 만에 팔 퍼센트 급락했습니다.
태성그룹의 공식 입장은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룹 내부에서는 즉각 비상체제가 가동되었습니다. 법무팀은 물론이고 재무팀, 기획팀까지 총출동했습니다. 누군가가 국세청에 제보를 했을 가능성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장남 강현식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그는 법무팀장 황태준을 불러 긴급 회의를 열었고, 아버지의 자산 구조를 전수 재검토하도록 지시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강현식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차명 자산이었습니다.
강태운 회장은 생전에 여러 사람의 이름으로 자산을 분산 보유해 왔습니다. 그것은 재벌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관행이었지만, 세법적으로는 명백한 위반이었습니다. 강현식은 그 중 일부를 알고 있었지만, 전체 규모는 알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비밀을 온전히 아들들에게도 나누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만약 국세청이 그 자산들을 전부 파악한다면, 상속세는 공개된 재산을 기준으로 계산된 것보다 수천억 원이 더 늘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 숫자는 강현식에게 실제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치였습니다.
윤재호는 이 모든 상황을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사 착수 전에 가능한 한 많은 기초 자료를 확보해두려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의 관심을 끈 것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청람복지재단이었습니다.
이 재단은 국내에서 법인 등록이 된 비영리법인이었는데, 설립일은 이십이 년 전이었습니다. 소재지는 강원도 원주로 되어 있었고, 대표자는 강태운 회장 본인이 아니라 정삼진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재단의 계좌에는 매년 일정 금액이 입금되어 있었고, 지출 내역의 상당 부분은 '복지 지원금' 명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지원금이 실제로 어디로 흘러갔는지는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윤재호는 정삼진이라는 이름을 기록해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는, 조사가 더 깊어진 뒤에야 알 수 있을 것이었습니다.
같은 시각, 박성희는 이천 화재 생존자 중 한 명을 직접 만나기 위해 경기도 남양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사고 현장에서 탈출하여 살아남은 박종철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화재 이후 이십 년 가까이 신체 장애를 안고 살아왔습니다.
그와의 만남은 짧았지만 묵직했습니다.
박종철은 말을 아꼈습니다. 하지만 그가 꺼낸 한마디는 박성희의 취재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사고 직전 창고 관리자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당시 창고에는 단순 물류 서류가 아닌 다른 종류의 서류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어딘가의 회계 장부. 그리고 그 장부에는 어떤 건물의 이름이 여러 차례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 건물의 이름은 청람빌딩이었습니다.
박성희는 차 안에서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청람복지재단. 청람빌딩. 같은 이름의 한자를 쓰는지는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이 연결고리가 우연이 아닐 수 있다는 직감이 그녀를 짓눌렀습니다.
김동민과 박성희는 다시 만났습니다. 이번에는 서초동 사무실이었습니다. 창문으로 어둑한 저녁 빛이 들어오는 가운데, 두 사람은 화이트보드에 정보들을 하나씩 정리해나갔습니다.
한쪽에는 청람복지재단에 관한 내용이 적혔습니다. 설립 이십이 년 전. 대표자 정삼진. 원주 소재. 그리고 강태운 유언장에서 전 재산의 오십오 퍼센트를 귀속시킨다는 내용.
다른 한쪽에는 이천 화재에 관한 내용이 적혔습니다. 이십 년 전 발생. 사망자 열두 명. 태성그룹 물류 계열사 소유 창고. 화재 직전 회계 장부 관련 증언. 청람빌딩이라는 이름.
화이트보드를 가운데에 두고 두 사람은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김동민이 먼저 말했습니다. 정삼진이라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고. 그리고 청람빌딩이 어디 있는지도.
박성희는 이미 그 두 가지를 추적 중이었습니다. 그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정삼진은 현재 칠십 대 초반의 남성으로 원주에서 작은 복지 관련 사무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재단 설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재단의 얼굴마담 역할을 해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청람빌딩은 강원도 춘천에 있는 건물로, 이십 년 전 태성그룹 계열사가 소유했다가 이후 이름을 알 수 없는 법인으로 소유권이 이전된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 법인의 이름은 청람에셋이었습니다.
김동민은 청람에셋을 법인 등기부에서 조회했습니다. 회사는 이십 년 전 설립되어 현재까지 존속 중이었습니다. 대표이사는 정삼진이었습니다. 사업 목적란에는 부동산 임대업과 자산 관리로 적혀 있었습니다.
청람복지재단과 청람에셋. 같은 인물이 대표로 있는 두 법인.
그리고 강태운 회장이 유언으로 자산을 귀속시킨 재단.
이것이 단순한 복지 목적의 재단이 아닐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김동민은 조심스럽게 가설을 정리했습니다. 강태운 회장이 생전에 차명 자산을 분산 보유할 때, 일부를 이 재단과 연계 법인을 통해 숨겨두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언장을 통해 그 자산들을 다시 합법적으로 정리하려 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그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는 아직 없었습니다.
박성희는 또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 재단이 단순한 재산 은닉처가 아니라 이천 화재 피해자들을 위해 만든 것이라면 어떨까 하고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강태운 회장이 그 사건에 도덕적 책임감을 느껴 남몰래 보상 창구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왜 지금까지 피해자 가족들은 그 혜택을 받지 못했을까. 박종철은 이십 년 동안 보상다운 보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두 가지 가능성이 서로 맞부딪혔습니다. 재산 은닉인가, 아니면 죄책감의 흔적인가.
아니면 두 가지 모두인가.
며칠 뒤, 김동민은 뜻밖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강현수였습니다. 강태운 회장의 차남이었습니다.
강현수는 사무실에 들어서며 주변을 한 번 훑더니 조용히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어딘가 불안한 기색이 묻어 있었습니다. 그는 형 강현식의 법무팀이 선임한 변호사와는 별개로, 개인 자격으로 김동민을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강현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습니다. 자신은 아버지의 유언장을 무효화하는 데 반드시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이 단합하여 소송을 진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김동민은 그 말의 의미를 천천히 소화했습니다.
강현수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그것을 바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아버지가 그 유언장을 쓴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이 밝혀지는 것이 두렵다고.
두렵다.
그 단어는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게 솔직한 것이었습니다.
김동민은 묻지 않았습니다. 강현수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그것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드러날 것이었습니다.
강현수가 사무실을 나간 뒤, 김동민은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서울의 저녁 하늘은 짙은 회색이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이 유언 분쟁이나 세금 문제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안에는 더 오래된, 더 깊은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죽은 사람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두려움을 통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박성희로부터 짧은 문자가 왔습니다.
정삼진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입을 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청람에셋이 최근 춘천 부동산 일부를 처분한 내역이 있습니다. 날짜를 보니 강태운 회장이 쓰러지기 두 달 전이었습니다.
강태운 회장이 사망한 지 삼 주가 지났습니다. 유언 무효 소송은 정식으로 법원에 접수되었고, 국세청의 특별 세무조사는 공식 개시 통보가 태성그룹에 전달되었습니다. 주가는 여전히 불안정했고, 그룹 내부의 긴장감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이 와중에 김동민의 사무실로 한 통의 익명 우편물이 도착했습니다.
봉투 안에는 유에스비 드라이브 하나와 짧은 쪽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이 전부를 말해줄 것입니다.'
유에스비 드라이브를 노트북에 꽂았을 때, 파일이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음성 녹음 파일이었습니다. 용량으로 보아 사십 분 가량의 분량이었습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나이 든 남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낮고 거친 목소리였지만, 말의 속도는 느리고 침착했습니다. 녹음 상태는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군데군데 잡음이 섞였고, 주변 소리로 보아 실내에서 녹음된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강태운 회장의 목소리였습니다.
김동민은 녹음을 듣는 동안 한 번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쪽지 한 장 가득히 메모를 적어내려갔지만, 손이 떨렸습니다. 그것은 공포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진짜라면, 이 사건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강태운 회장은 녹음 속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의 전 재산 중 절반 이상을 청람복지재단에 남기기로 한 것은 이십 년 전의 결정이었다고. 이천 물류창고 화재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고. 창고의 설계 결함을 자신이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그것을 고치지 않고 방치했고, 그것이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고.
그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감정이 없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의 밑에 무언가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김동민은 느꼈습니다.
강태운 회장은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당시 화재 원인을 덮기 위해 관련 공문서 일부를 사라지게 했다고. 이 과정에서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것이 당시 경기도청 건축 담당 공무원이었다고. 그 공무원은 이후 태성그룹 계열사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그 공무원의 이름은 박형준이었습니다.
김동민은 그 이름을 두 번 적었습니다.
녹음은 계속되었습니다. 강태운 회장은 청람복지재단을 설립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보상을 주고 싶었지만, 법적으로 책임을 인정하면 회사가 무너질 수 있었다고. 그래서 재단이라는 형식으로 우회하여 지원하려 했다고. 하지만 그 지원이 실제로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고.
이 부분에서 그의 목소리에 균열이 생겼습니다. 짧은 침묵이 있었습니다.
재단의 실질적인 운영은 정삼진이 맡았는데, 그가 재단 자금의 상당 부분을 개인 이익에 사용했다는 것을 강태운 회장은 오 년 전에야 파악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처리하면 재단의 설립 경위 자체가 드러날 것이었고,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고.
그래서 그는 정삼진을 통제하면서 조용히 재단을 정상화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몸이 나빠지면서 시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녹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강태운 회장은 말했습니다. 자신이 죽은 뒤 이 녹음이 올바른 사람 손에 들어가기를 바란다고. 재단이 원래의 목적대로 운영되기를 바란다고. 그리고 이천 화재 피해자들이 진정한 보상을 받기를 바란다고.
그 마지막 문장 뒤로는 아무 소리도 없었습니다.
김동민은 노트북을 덮으며 한참 동안 생각했습니다.
이 녹음이 진짜라면 몇 가지가 달라졌습니다. 첫째, 청람복지재단은 진짜 복지 목적으로 설립된 것이었습니다. 둘째, 유언장은 조작되지 않았고 오히려 강태운 회장의 진심이 담긴 것이었습니다. 셋째, 그 재단의 운영에 문제가 있었고 그것은 정삼진이 핵심이었습니다. 넷째, 이천 화재에는 의도적인 은폐가 있었고 박형준이라는 인물이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녹음의 진위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그리고 이것을 누가 왜 자신에게 보낸 것인가.
김동민은 즉시 박성희에게 연락했습니다. 두 사람은 그날 저녁 사무실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박성희는 녹음을 끝까지 듣더니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박형준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 년 전, 그녀가 이천 화재를 취재하면서 당시 경기도청 건축 담당자의 이름을 확인하려 했을 때 번번이 막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담당자의 이름이 어딘가에서 지워진 듯 확인이 되지 않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름 없는 제보 하나를 통해 그 사람이 박형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이후 행방을 확인하지 못했었습니다.
이제 그 이름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두 사람은 그날 밤 늦게까지 논의했습니다. 녹음 파일의 진위 검증이 필요했습니다. 법적 증거력이 있는지도 따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박형준의 현재 행방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현수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가 이제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강현수는 이 녹음의 존재를 알고 있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혹은 아버지가 남긴 비밀의 일부를 알고 있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언을 무효화하는 소송에 반대했던 것일 수도 있었습니다.
봄이 깊어지는 서울의 어느 날 오전, 국세청 특별조사국의 윤재호는 홍콩 금융당국에 요청한 자료의 일부를 수령했습니다. 상호 조세행정 지원협약에 따라 공식 협조 요청을 했고, 두 달 만에 일부 자료가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홍콩 쪽 페이퍼컴퍼니 세 곳의 계좌 거래 내역이었습니다.
윤재호는 그 자료를 몇 시간에 걸쳐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자금 흐름이 드러났습니다.
세 법인에서 자금이 흘러가는 최종 목적지 중 하나가 국내의 개인 계좌들이었습니다. 그 계좌들 중 몇 곳은 태성그룹 임원들 명의로 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전형적인 우회 증여 구조였습니다. 세금 없이 재산을 넘기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윤재호의 눈을 고정시킨 것이 있었습니다.
자금 목적지 중 하나가 청람에셋이었습니다.
청람에셋으로 흘러들어온 자금의 규모는 십 년간 총 삼백억 원이 넘었습니다. 그 자금의 일부는 청람에셋에서 다시 청람복지재단으로 이전되었고, 일부는 정삼진의 개인 자산으로 전환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재산 은닉을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조직적인 탈세였습니다.
윤재호는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손을 한 번 멈추었습니다.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강태운 회장이 생전에 이 자금 흐름의 전모를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도 모르는 사이에 정삼진에게 이용당한 것일까.
그 질문의 답은 아직 없었습니다.
같은 시각, 박성희는 춘천에 있었습니다. 정삼진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작고 오래된 사무실 건물 이 층에서 혼자 일하고 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선 박성희를 보자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했습니다.
그는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박성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미리 준비해온 몇 가지 자료를 꺼내 테이블에 놓았습니다. 청람에셋의 자금 흐름 일부, 그리고 이천 화재 피해자 박종철의 증언 요약본이었습니다.
정삼진은 그 서류들을 내려다보며 오래 침묵했습니다.
결국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전부 말하지는 않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 분명히 하겠다고.
청람복지재단은 처음에는 정말로 강태운 회장의 진심으로 설립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이천 화재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재단의 이사회 구성이 바뀌고, 외부에서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그 원래의 목적이 흐려졌다고 했습니다.
외부 압력. 박성희는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정삼진은 그 대답 대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은 오랫동안 두 주인을 섬겨왔다고. 하나는 강태운 회장이었고, 다른 하나는 다른 누군가였다고. 그리고 두 주인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순간이 오자 자신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그가 더 이상 말하려 하지 않아서 박성희는 그날의 만남을 그것으로 마무리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그녀는 정삼진의 마지막 말을 계속 머릿속에서 반복했습니다. 두 주인. 강태운 회장 외의 또 다른 누군가. 그것이 재단 자금의 방향을 바꾼 것이었다면, 그 누군가는 이 사건 전체의 또 다른 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김동민은 그동안 박형준의 행방을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알아낸 바에 따르면 박형준은 현재 서울 마포구에서 부동산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십 년 전 경기도청을 떠난 이후 태성그룹 계열사에서 십 년을 일하다가 퇴직한 것이었습니다. 현재 나이는 육십사 세였습니다.
김동민이 박형준에게 접근 방법을 고민하는 동안, 뜻밖의 일이 생겼습니다.
강현수가 다시 연락해 온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전화가 아니라 직접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번에는 훨씬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강현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자신을 따로 불렀다고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버지는 자신에게 한 가지를 고백했다고 했습니다. 유언장의 내용에 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훨씬 오래된 이야기였습니다.
강태운 회장은 강현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장남인 강현식이 실제로는 자신의 친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강현식의 어머니, 즉 강태운 회장의 첫 번째 아내는 강현식을 임신할 당시 다른 남성과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그 사실을 강태운 회장은 결혼 이후 수십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고.
하지만 강태운 회장은 그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습니다. 강현식 자신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상속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강현수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김동민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면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이제 단순한 세금 문제나 유언 분쟁을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가족의 근본적인 구조, 수십 년 동안 유지되어온 거짓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강현수에게 한 가지를 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왜 자신에게 하는가 하고.
강현수는 말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형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고. 다만 아버지가 남긴 것의 진실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그리고 그 진실을 올바르게 처리해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법원에서의 첫 심리가 열린 것은 사건이 불거진 지 두 달이 지난 뒤였습니다. 유언 무효 소송 사건번호가 정식으로 부여되었고, 원고 측인 강현식과 강유란 측의 법무법인 정동과 피고 측인 청람복지재단 측 법률 대리인이 출석했습니다.
재단 측 대리인을 맡은 것은 놀랍게도 김동민이었습니다.
그가 이 사건에 직접 변호인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하나는 강현수가 재단 측과의 연결을 주선했기 때문이었고, 다른 하나는 청람복지재단의 새로운 이사진이 정삼진을 대신해 구성되면서 재단의 정상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김동민에게 위임을 결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삼진은 박성희와의 만남 이후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이후 그의 행방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법정 분위기는 무거웠습니다. 원고 측 변호인 손진혁은 세 가지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첫째, 유언장이 작성된 시점에 강태운 회장은 심신이 미약한 상태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청람복지재단은 실질적인 복지 활동이 없는 유령 단체라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유언장 작성 과정에 외부 압력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주장은 표면적으로는 설득력이 있어 보였습니다. 하지만 김동민은 그 각각에 반론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첫째에 대해서는 강태운 회장이 유언장 작성 당시 주치의로부터 정기 검진을 받은 기록이 있었습니다. 그 기록은 회장이 판단 능력이 온전했음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둘째에 대해서는 재단이 설립 이후 실제로 일부 피해자 가족들에게 지원을 제공한 내역이 있었습니다.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완전히 허위 단체는 아니었습니다. 셋째에 대해서는 증거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김동민이 진짜 집중한 것은 이 세 가지에 대한 방어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공격적인 방향을 선택했습니다.
강태운 회장의 녹음 파일을 증거로 제출하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그는 오래 망설였습니다. 녹음 파일에는 이천 화재 은폐에 관한 회장 자신의 고백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은 재단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이었지만, 동시에 강태운 회장의 법적 책임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고인의 유산을 지키는 일이, 고인의 평판에 흠집을 낼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강태운 회장 자신이 이 녹음을 남긴 것은,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김동민의 결론이었습니다.
녹음 파일이 법정에 제출되던 날, 방청석이 술렁였습니다.
강태운 회장의 목소리가 법정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동안, 강현식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습니다. 그는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 목소리가 말하는 내용의 일부는 처음 듣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그는 어딘가에서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몰랐습니다.
강유란은 눈을 내리깔았습니다.
녹음이 끝난 뒤 법정 안의 침묵은 짧았지만 깊었습니다.
원고 측 변호인 손진혁은 즉각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녹음의 출처가 불분명하고, 진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담당 판사는 녹음 파일의 감정을 실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음성 전문가가 녹음이 강태운 회장의 목소리임을 감정하고, 편집 여부를 확인하도록 했습니다.
법원 밖에서는 이 소식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박성희는 이미 기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법원에서의 진행 상황을 일반에 공개할 수 있는 범위에서, 그리고 이천 화재와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탐사보도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그 기사가 나가기 전에, 그녀는 한 가지 확인을 더 하고 싶었습니다.
박형준이었습니다.
김동민이 마련한 접촉 루트를 통해, 박성희는 박형준과 짧은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도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박성희가 녹음 파일의 존재를 언급하자, 긴 침묵 끝에 그가 말했습니다.
자신이 당시 상황을 말할 준비는 되어 있다고. 하지만 조건이 있다고.
그 조건은 하나였습니다. 자신이 증언을 하기 전에 먼저 가족에게 이야기할 시간을 달라고. 이십 년 동안 숨겨온 것을 세상에 꺼내기 전에, 먼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고.
그 요청에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습니다. 김동민은 그것을 두려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박성희는 후회라고생각했습니다.
같은 날 저녁, 국세청 윤재호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그는 공식 채널이 아닌 개인적인 방법으로 김동민에게 연락했습니다. 청람에셋에서 강현식 명의 계좌로 흘러간 자금 내역을 확인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강현식이 재단의 자금 흐름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그중 일부가 그에게도 흘러들어온 정황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강현식이 단순히 유산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탈세와 횡령 연루 혐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음성 감정 결과가 법원에 제출된 것은 심리가 시작된 지 삼 주 뒤였습니다. 국내 두 곳의 음성 분석 전문 기관과 해외 한 곳이 독립적으로 감정을 실시한 결과, 세 기관 모두 동일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강태운 회장의 육성이 맞으며, 녹음에 편집이나 조작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법정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원고 측 변호인 손진혁은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더 이상 유언 무효의 핵심 근거를 심신 미약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대신 새로운 논거를 꺼냈습니다. 청람복지재단이 설립 이후 실질적인 복지 활동을 이행하지 못했으므로 재단의 목적 자체가 실패했고, 따라서 유언 집행의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좀 더 현실적인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김동민에게는 이미 반론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재단의 새로운 이사진과 함께 피해자 가족 지원 계획서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재단의 정상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함께, 이천 화재 피해자 가족 열두 세대에 대한 즉각 지원을 약속하는 확약서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박종철을 포함한 생존자들의 진술서가 첨부되었습니다.
판사는 양측의 주장을 청취한 뒤 신중하게 말했습니다. 재단의 정상화 가능성이 입증된다면, 유언의 목적이 이행될 수 있다고 판단할 여지가 있다고.
같은 날, 국세청의 특별 세무조사가 일부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태성그룹의 계열사를 통한 우회 증여와 차명 자산 보유가 확인되었으며, 추가 조세 부과 및 고발 조치를 검토 중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공개된 내용에서는 구체적인 인물이 명시되지 않았지만, 재계에서는 강현식이 직접 연루되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게 돌았습니다.
그날 오후, 강현식 측의 변호인이 김동민 측에 비공개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면담은 다음 날 아침 법무법인 정동의 회의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손진혁 변호사와 강현식 본인이 참석했고, 김동민이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강현식은 처음으로 공격적인 태도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소송을 취하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그 한마디에 담긴 것이 무엇인지, 김동민은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패배 인정이 아니었습니다. 국세청 조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법정에서 추가로 불리한 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막으려는 판단이었습니다.
하지만 김동민은 쉽게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강현식에게 물었습니다. 이천 화재와 관련해서 알고 있는 것이 있느냐고.
강현식은 오랫동안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했습니다. 자신은 몰랐다고. 아버지가 그 사건에 연루되어 있다는 것을, 자신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알지 못했다고. 재단의 존재도 유언장이 공개되기 전까지 몰랐다고.
그 말이 사실인지 거짓인지는,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판단하기 어려웠습니다.
김동민은 강현식에게 한 가지를 말했습니다. 소송 취하는 재단 측이 수용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이 이천 화재 피해자들에 대한 책임과 보상의 문제를 소멸시키지는 않는다고. 그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강씨 가문 전체가 그것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현식은 그 말에 아무 반박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이틀 뒤, 박성희의 기사가 리얼타임스코리아에 게재되었습니다. 제목은 이것이었습니다. 이십 년의 침묵, 이천 화재의 진실과 태성그룹 창업주의 마지막 고백.
기사는 박형준의 실명 증언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카메라 앞에 나섰습니다. 이십 년 전 건축 서류를 묵인한 사실, 이후 태성그룹 계열사 임원직을 받은 사실, 그리고 그것이 잘못이었음을 이제야 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분명했습니다.
기사는 빠르게 퍼졌습니다. 주요 언론들이 이를 받아 재보도했고, 이천 화재 피해자 유가족 단체는 즉각 태성그룹과 관련 공무원 직계 가족에 대한 민사 손해배상 소송을 예고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유언 무효 소송이 취하되었습니다.
법원은 유언의 유효성을 인정하면서, 청람복지재단의 정상화 이행을 조건으로 유언 집행 절차를 개시하도록 결정했습니다. 강태운 회장이 남긴 전 재산의 오십오 퍼센트는 재단에 귀속되었습니다.
재단의 새 이사장으로는 이천 화재 생존자 대표로 추대된 박종철이 선임되었습니다. 그것은 판사의 결정도, 법무팀의 기획도 아닌, 새로운 이사진 전원의 만장일치였습니다.
박종철은 이사장 취임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이 오기를 이십 년 기다렸는데, 이제는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중요한 것은 누군가가 기억해준다는 것이라고.
법원이 유언 유효성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리던 날 아침, 서울 하늘에는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오전 열 시, 법원 건물 앞에는 이미 방송국 카메라와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법정 안의 결정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그날의 결과를 예측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태성그룹의 주가는 그날 개장과 동시에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업 가치가 흔들리면 그것은 단순히 숫자가 줄어드는 것이 아닙니다. 수천 명의 직원들이 다니는 회사의 미래가 불확실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강태운 회장이 남긴 비밀과 아무 관련이 없었지만, 그 파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이런 사건들이 가지는 또 다른 비극이었습니다. 결정을 내린 사람과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 강태운 회장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그가 남긴 것들의 무게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습니다.
법무법인 정동의 손진혁 변호사는 법원 결정이 나온 뒤 기자들의 질문에 짧게 답했습니다. 항소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이미 힘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이 단순한 유언 분쟁이 아니었다는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변호인으로서 의뢰인을 변호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습니다.
그것이 법이라는 제도의 특성이었습니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이전에, 각자의 주장을 공정하게 펼칠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것. 그 과정에서 진실이 드러나는 것은 법이 의도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다행히 그런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다행함 뒤에는 여전히 씁쓸한 것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강태운 회장이 남긴 녹음 파일 속에는 그가 직접 하지 않은 말들도 있었습니다. 이천 화재 피해자 열두 명 한 명 한 명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그들이 남긴 가족들이 이십 년을 어떻게 버텼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그가 끝까지 그 이름들을 마주할 용기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랐습니다.
재단의 첫 번째 지원금이 박종철에게 전달되던 날, 그는 그 봉투를 한동안 들고만 있었습니다. 안에는 돈 이외에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강태운 회장이 생전에 쓴 편지였습니다. 개인적인 사과의 말이 담긴 것이었습니다.
박종철은 그 편지를 읽고 나서 접어서 다시 봉투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뒤, 세상은 빠르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그것이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었습니다.
국세청 조사는 계속되었습니다. 강현식은 결국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었습니다. 혐의가 인정된다면 수백억 원 규모의 추징과 함께 형사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었습니다. 그의 얼굴은 재판 방청석에서도, 언론 카메라 앞에서도 한결같이 굳어 있었습니다.
강현수는 이천 화재 피해자 유가족 단체와 자발적인 합의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형의 길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가 진심에서 그렇게 한 것인지, 아니면 생존 본능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결과였습니다.
강유란은 패션 계열사 지분을 받아 독립적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이 모든 소동에서 가장 적게 말하고 가장 조용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오래 살아남는 방법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몰랐습니다.
정삼진은 결국 자수했습니다. 재단 자금 유용과 조세 포탈 혐의였습니다. 그는 조사에서 두 번째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진술했고, 그 이름은 재계에 또 한 번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박형준은 증언 이후 사회적 시선을 피해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는 민사 소송의 피고가 되었지만, 이십 년 전 도망쳤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법정에 나왔습니다.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윤재호는 이 사건의 공로로 특별 표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았습니다. 사건이 마무리된 뒤 그가 국세청 내부 게시판에 짧은 글을 올렸는데, 그 내용은 이것이었습니다. 세금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김동민은 서초동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책상 위에 쌓인 서류들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무언가가 달라졌다는 것을 그 자신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한 말로 표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다만, 한양 로펌을 떠난 뒤 오랫동안 그를 짓누르고 있던 무언가가 조금 가벼워진 것 같았습니다.
박성희는 다음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녀의 책상 위에는 새로운 봉투가 놓여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이름, 또 다른 사건, 또 다른 침묵이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열기 전에 창밖을 잠시 바라보았습니다. 서울의 하늘은 맑고 높았습니다.
청람복지재단은 정식으로 운영을 재개했습니다. 이천 화재 피해자 유가족 열두 세대에게 생활 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금액이 이십 년간의 고통을 완전히 보상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공식적인 사과와 함께 그 돈이 전달되었다는 점에서, 그것은 단순한 지원금이 아니었습니다.
박종철은 이사장 취임 첫날, 이천 화재 현장 인근의 작은 공원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작은 추모석이 있었습니다. 이름도, 날짜도 없이 그냥 돌 하나가 놓인 자리였습니다. 누가 놓아두었는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는 그 앞에 한참 서 있었습니다.
유리 금고는 결국 열렸습니다.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한 사람의 무너지지 않은 마지막 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양심이 살아생전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사실 앞에서, 누구도 쉽게 박수를 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 이 이야기가 남기는 무게였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유산이 있습니다. 하나는 땅에 묻히는 유산이고, 다른 하나는 살아남은 사람들이 짊어지는 유산입니다. 강태운 회장이 남긴 것은 두 번째 종류였습니다. 그것은 돈의 형태로 시작했지만, 결국 질문의 형태로 남았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침묵이 다른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는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김동민은 그 질문을 가지고 오랫동안 살아갈 것이었습니다. 그는 법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지만, 법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사건에서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법은 증거로 말하지만, 사람은 기억으로 삽니다. 그 둘이 일치하지 않을 때 생기는 간극 안에서, 진실은 언제나 불완전한 형태로만 드러났습니다.
박성희는 그 불완전함을 기사에 담으려 했습니다. 완전한 해답이 아닌, 올바른 질문을 남기는 것. 그것이 탐사보도의 본질이라고 그녀는 믿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 믿음을 흔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강화했습니다.
이천 화재 현장. 이십 년 전 불이 났던 그 자리에는 지금 큰 도로가 생겼습니다. 창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 중 그 땅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박종철은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몇 명이 더 알게 되었습니다.
아는 사람이 하나씩 늘어나는 것. 그것이 결국 침묵을 이기는 방법이었습니다.
돈은 사람보다 오래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침묵은 반드시 먼저 죽습니다. 그것이 언제인지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살아있는 사람들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