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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책방

"돈은 받았지만, 유죄를 때렸습니다" 어느 판사의 위험한 거래

by 제 4의 창 2026. 5. 14.

https://youtu.be/icdjN9155iw

『유리 저울』은 전직 판사 김홍민이 경제적 곤란과 가족의 위기 속에서 변호사 장준혁과 유착하며 재판을 거래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창작 오디오북입니다. 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이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저울을 기울이는 순간, 진실은 무너지고 가정은 파괴됩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극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법조계의 어두운 단면을 깊이 탐구하는 몰입형 법정 드라마입니다.

 

프롤로그
 
 
비가 내리는 밤이었습니다.
 
서울 도심 한복판, 스물두 층짜리 법원 청사의 불빛이 빗속에서 번지고 있었습니다. 그 건물 안에는 수백 개의 방이 있었고, 수천 장의 서류가 있었으며, 수만 개의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채 잠들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그 건물 앞 횡단보도에 서 있었습니다.
 
우산도 없이, 코트 하나만 걸친 채, 빗속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건물을 바라보았습니다. 15층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 불빛은 그가 12년 동안 앉아 있던 방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가 한때 그랬던 것처럼,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는 천천히 시선을 내렸습니다.
 
빗물이 그의 얼굴을 타고 흘렀습니다. 그 물이 눈물인지 빗물인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이 장면을 목격한 한 시민은 경찰 조서에 이렇게 진술했습니다.
 
"그 남자는 마치 자신이 누군가를 죽인 사람처럼 서 있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자기 자신을 죽인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 남자의 이름은 김홍민이었습니다. 나이 마흔여섯. 직책 전직 판사. 그리고 현재 피의자.
 
이 이야기는 그가 어떻게 그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범죄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 사람이 스스로를 얼마나 깊이 합리화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법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사람이 그 법을 얼마나 정밀하게 우회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이 가장 먼저 그 진실을 알아챘을 때, 그것이 한 가정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저울은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저울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누군가 그 위에 아주 작은 돌 하나를 올려놓았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그 돌의 무게가, 결국 모든 것을 끝냈습니다.
 
 
제1장
무너지기 시작한 저울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모릅니다.
 
지방 소도시에서 자란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거기에는 명문 학원도 없고, 인맥도 없고, 아버지의 명함도 없습니다. 오직 성적표만이 그 아이를 어딘가로 데려다줄 수 있는 유일한 통행증이었습니다.
 
경상남도 밀양 출신인 김홍민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작은 농기계 수리점을 운영했습니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밤 열 시에 들어오는 사람이었습니다. 손가락 마디마다 기름이 배어 있었고, 여름에는 그을렸고, 겨울에는 갈라졌습니다. 어머니는 시장 구석에서 채소를 팔았습니다. 두 분은 한 번도 아들에게 공부를 강요한 적이 없었습니다. 대신 그들의 일상이 곧 무언의 압력이었습니다.
 
김홍민은 그 압력을 가장 정직한 방식으로 받아냈습니다. 공부였습니다.
 
읍내 도서관에는 그의 지정석이 있었습니다. 오래된 나무 의자, 창가 두 번째 자리. 그는 매일 그 자리에 앉아 여섯 시간씩 책을 읽었습니다. 교과서만이 아니었습니다. 법률 관련 책이 한 권이라도 있으면 빌렸고, 없으면 서울에서 구해달라고 사서에게 부탁했습니다.
 
왜 법을 공부하고 싶었냐는 물음에, 열여섯 살의 김홍민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는 힘 있는 사람이 옳고, 힘 없는 사람이 그릅니다. 법은 그걸 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서울대 법학과에 수석으로 입학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수리점 문을 하루 닫았습니다. 그것이 그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의 방식이었습니다.
 
사법시험 역시 그는 수석권으로 통과했습니다. 사법연수원 성적도 우수했습니다. 어디에서나 그는 조용하고 성실하며 흔들리지 않는 사람으로 기억되었습니다. 동기들 사이에서 그는 "청교도"라는 별명으로 불렸습니다. 회식 자리에서 술을 권해도 정중히 사양했고, 누군가 청탁성 부탁을 꺼내면 자리를 떴습니다. 거만함이 아니라 불편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판사가 되었습니다.
 
초임지는 부산 지방법원이었습니다. 2년 후 대구. 그 후 수원, 그리고 서울. 서울 중앙지방법원 판사로 발령받은 날, 그는 휴대전화를 들어 어머니에게 먼저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는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김홍민이 판사가 된 지 8년째 되던 해, 그는 박성희를 만났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다시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대학 시절 같은 문화 동아리에서 잠깐 얼굴을 비쳤던 사이였습니다. 박성희는 음대 바이올린 전공이었고, 김홍민은 당시 법학과 학생이었습니다. 그 시절 두 사람은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다른 사람들이었습니다.
 
다시 만난 것은 지인의 작은 음악회에서였습니다.
 
박성희는 그날 연주를 하지 않았습니다. 진행을 도왔습니다. 그녀는 한때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려 했지만, 유학 자금이 바닥나면서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귀국 후 작은 음악 교습소를 차렸고, 소박하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웃는 얼굴이 따뜻했고, 말수가 많지 않았습니다.
 
김홍민은 그날 이후 그녀에게 두 번 문자를 보냈고, 한 번 커피를 마셨고, 두 달 후 청혼했습니다.
 
박성희는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소박했습니다. 하객이 80명이었고, 꽃은 흰 장미였습니다. 신혼집은 서울 외곽의 조그만 아파트였습니다.
 
그 후 13년이 지났습니다.
 
그 13년의 끝에서, 김홍민은 빗속에 서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거기까지 데려갔는지 이해하려면, 이야기는 3년 전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2년 전 봄이었습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작은 건물 3층에 자리 잡은 박성희의 음악 교습소는 그 계절에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히는 무너진다는 표현보다 흘러내린다는 표현이 더 맞았습니다. 물이 종이를 적시듯, 서서히 그리고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문제의 시작은 건물 리모델링이었습니다. 건물주가 갑자기 공사를 시작하면서 엘리베이터가 두 달째 멈춰 있었고, 소음 때문에 수업이 번번이 중단되었습니다. 학부모 민원이 쌓였고, 원생 수가 줄었습니다. 거기에 같은 골목에 프랜차이즈 음악학원이 들어서면서 가격 경쟁마저 시작되었습니다.
 
박성희는 반년을 버텼습니다.
 
월세를 밀렸습니다. 강사 인건비를 자신의 생활비에서 충당했습니다. 카드 대출을 받아 운영비를 댔습니다. 밤에 혼자 장부를 들여다보다가 펜을 내려놓고 천장을 바라보는 날이 늘었습니다.
 
김홍민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그가 맡고 있는 사건의 무게 역시 만만치 않았습니다. 대기업 임원의 횡령 사건, 공직자 뇌물 혐의, 건설업계 담합 사건. 서울 중앙지법에서 그에게 배당되는 사건들은 크고 복잡했습니다.
 
매일 밤 그는 서류를 들고 집에 왔습니다. 식탁에 앉아 자정을 넘겨 판결문 초안을 손봤습니다. 박성희가 차 한 잔을 가져다 놓아도 고개만 들었다 내렸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각자 다른 나락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위기가 본격화된 것은 그해 늦가을이었습니다.
 
교습소를 정리해야 할 것 같다고 박성희가 말한 것은 어느 수요일 저녁이었습니다. 그녀는 감정을 거의 싣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히려 그게 더 이상했습니다.
 
김홍민은 서류에서 눈을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얼마나 밀렸어?"
 
박성희는 잠시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월세 세 달이요. 강사비 한 달 반. 카드 잔액이 한계에 가까워요."
 
김홍민의 눈빛이 조용히 흔들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통장 잔액을 머릿속으로 계산했습니다. 대출 원리금, 아버지 병원비, 생활비. 여유 자금은 없었습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무언가가 균열을 시작했습니다. 아주 가늘고, 아주 조용하게.
 
저울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순간부터였습니다.
 
그로부터 보름 후, 김홍민의 휴대전화에 낯선 번호로 문자 한 통이 왔습니다.
 
"선배님, 오랜만입니다. 시간 되실 때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좋은 자리 하나 알고 있습니다."
 
발신자는 장준혁이었습니다.
 
법대 2년 후배. 지금은 대형 로펌의 파트너 변호사.
 
그리고 그 문자가,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제2장
침묵의 청탁
 
 
장준혁이라는 인물을 이해하려면, 그의 웃음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그는 항상 웃었습니다. 인사를 할 때도, 협상을 할 때도, 거절을 당할 때도. 그 웃음은 친절하지도 않고 불친절하지도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도구였습니다. 상대방이 경계를 풀고, 마음을 열고, 결국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정밀한 도구.
 
서른여덟 살의 장준혁은 로펌 에이치앤파트너스의 파트너 변호사였습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위치한 그 로펌은 규모 면에서는 대형사에 속하지 않았지만, 맡는 사건의 질과 승소율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특히 기업 형사 사건과 금융 분쟁에서 그들의 승률은 업계 평균을 훨씬 넘었습니다.
 
그 승률의 상당 부분이 장준혁의 이름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법대 시절 그는 김홍민의 2년 후배였습니다. 성적은 중간 정도였지만, 사람을 다루는 능력은 누구보다 뛰어났습니다. 교수들과도 친분을 유지했고, 선배들의 이름을 기억했으며, 졸업 후에도 동기와 선후배 네트워크를 정성스럽게 관리했습니다.
 
그가 처음 판사 출신 선배들에게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변호사 개업 5년 차 무렵이었습니다.
 
방식은 노골적이지 않았습니다. 밥 한 끼, 술 한 잔, 명절 선물. 어느 것 하나 문제 삼기 어려운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접촉의 빈도가 늘어날 때쯤,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선배님, 이번에 저희 사건 하나가 선배님 부에 배당됐네요. 잘 봐주세요."
 
처음에 선배들은 웃으며 넘겼습니다. 농담처럼 들렸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두 번, 세 번 반복되면서 농담인지 진심인지의 경계가 흐려졌습니다. 그리고 그 경계가 완전히 사라졌을 때, 장준혁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갔습니다.
 
김홍민은 그 과정을 알고 있었습니다. 법조계에 오래 있으면 이런 움직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저절로 파악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장준혁이 연락을 해올 때마다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술자리에는 되도록 나가지 않았고, 나갔더라도 일찍 자리를 떴습니다.
 
그런 그가 그 문자에 답장을 보낸 것은, 박성희와의 대화가 있은 지 나흘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 저녁 어때요."
 
장준혁은 서울 중구 명동의 한 일식당을 예약했습니다. 한 사람당 저녁 식사만 십만 원이 넘는 곳이었습니다. 김홍민은 그 가격표에서 이미 신호를 받았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날 그는 그냥 앉았습니다.
 
두 사람은 처음 한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대화했습니다. 법대 시절 이야기, 공통으로 아는 동기들의 근황, 재판 환경 변화 같은 것들. 장준혁은 능숙했습니다. 절대 먼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술잔이 채워졌을 때 그가 말했습니다.
 
"선배님, 요즘 힘드시다는 얘기 들었어요."
 
김홍민은 젓가락을 내려놓았습니다.
 
"누구한테 들었어요?"
 
"법조계가 좁잖아요. 사모님 교습소 이야기도 들렸고, 어르신 병원비도 쉽지 않으시다고. 말씀 안 하셔도 압니다."
 
김홍민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거예요."
 
장준혁은 그 말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술잔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목소리를 낮췄습니다.
 
"선배님, 저 이번에 맡은 사건 하나가 선배님 재판부에 배당될 것 같아요. 케이엠건설 횡령 건입니다. 아시죠?"
 
알고 있었습니다.
 
케이엠건설 대표 이사 강재호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위반 사건. 피해 금액이 수십억 원에 달하는 대형 사건이었습니다. 검찰에서 두 차례 구형을 미루다 이제야 기소한 것이어서, 법조계 안에서도 꽤 주목받고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그 사건이 나한테 배당된다는 거 확실해요?"
 
"거의 그렇게 될 거예요. 저희 측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증거가 충분히 있어요. 선배님이 검토하시면 당연히 그 판단이 나올 겁니다."
 
김홍민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준혁씨,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 있죠?"
 
"압니다."
 
"그럼 왜."
 
"선배님이 힘드시니까요."
 
그 말이 떨어진 후 식당 안은 오래 조용했습니다. 주방 쪽에서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 너머로 사람들 웃음소리가 새어 들었습니다.
 
김홍민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식사는 잘했어요."
 
그리고 자리를 나섰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그는 한 번도 하지 않았을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케이엠건설 건.
 
변호인 측 자료를 봐야 했지만, 그가 들은 것만으로도 이 사건은 무죄와 유죄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검찰 측 증거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무죄 판결이 타당한 사건일 수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택시 창밖으로 서울의 불빛이 흘렀습니다.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집에 도착했을 때 박성희는 소파에 앉아 지출 내역서를 보고 있었습니다. 안경을 낀 채, 형광등 아래서, 한 줄 한 줄 숫자를 짚어가며.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김홍민은 외투를 걸고 그녀 옆에 앉았습니다.
 
잠시 후 그녀가 말했습니다.
 
"이번 달 월세까지 내면 카드 한도가 없어요."
 
김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새벽 두 시였습니다. 형광등이 꺼진 방 안에서 그의 눈만 열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처음으로 그 계산을 끝까지 했습니다.
 
만약 장준혁이 말한 것처럼, 그 사건에 실제로 무죄 요소가 충분히 있다면. 그리고 무죄 판결이 법리적으로 타당하다면. 그 결론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누군가의 말이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결과 자체는 옳은 것이 아닌가.
 
법은 결과를 판단한다.
 
과정이 아니라.
 
그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왜곡인지,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울이 조용히 기울었습니다.
 
그로부터 사흘 후, 그의 재판부에 케이엠건설 사건이 정식 배당되었습니다.
 
그 문서를 받아 든 순간, 김홍민의 손이 아주 잠깐 떨렸습니다.
 
그는 그 떨림을 무시했습니다.
 
법관으로서 가장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그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제3장

흔들리는 판결
 
 
케이엠건설 주식회사 대표 이사 강재호.
 
1972년생. 충청북도 청주 출신. 상업고등학교 졸업 후 건설 현장 인부로 시작해 서른다섯에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그 후 15년간 수도권 아파트 단지와 공공 건물 시공을 통해 자산 수백억 원의 중견 건설사를 일궈냈습니다. 업계에서는 악착같다는 평이 있었고, 거래처에서는 계산이 빠르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검찰이 그에게 적용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 배임, 그리고 횡령이었습니다. 피해 금액은 43억 원으로 특정되어 있었습니다.
 
공소 사실의 요지는 이러했습니다. 강재호는 케이엠건설의 자금을 자신이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유령 법인에 이전하고, 그 금액을 개인 사업에 유용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청업체 대금 명목으로 위장 계약서를 작성했으며, 내부 회계 담당자를 통해 이중 장부를 운영했습니다.
 
검찰은 해당 유령 법인의 법인 통장 거래 내역, 계약서 원본과 위조본 대조 자료, 전직 회계 담당자의 진술서를 주요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장준혁은 이 사건의 주임 변호인이었습니다.
 
그가 변호인단을 구성한 방식은 치밀했습니다. 형사 전문 파트너 1인, 회계 전문 보조 변호사 2인, 금융범죄 전문 자문위원 1인. 그리고 그 자신이 직접 공판 전략을 총괄했습니다.
 
첫 공판 기일이 잡혔습니다.
 
법정은 서울 중앙지방법원 311호 법정이었습니다. 오전 열시에 시작될 예정인 공판 준비 기일에, 방청석에는 기자 두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금액이 크고 피고인이 알려진 기업인인 만큼 취재 관심이 있었습니다.
 
김홍민은 법복을 입고 법정에 들어섰습니다.
 
그 법복을 처음 입었을 때의 감각을 그는 잊지 않았습니다. 묵직하고, 서늘하고, 무게가 있었습니다. 판사석에 앉을 때마다 그것은 일종의 의식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개인이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켜주는 옷.
 
그날도 그 감각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딘가 달랐습니다. 무게가 법복 안이 아니라 가슴 안쪽에서 느껴졌습니다.
 
검사는 이재현이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 전담부 소속. 30대 후반의 단단한 인상을 가진 검사로, 금융사건 수사 경험이 길었습니다. 그는 서류를 정리하면서 한 번 법대 쪽을 봤습니다. 판사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장준혁은 변호인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남색 수트, 정갈한 넥타이. 그는 고개를 들어 판사석의 김홍민을 바라보았습니다. 표정은 평온했습니다. 눈짓도 없었고 신호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평온함 자체가 신호였습니다.
 
"공판 준비 기일을 시작하겠습니다. 사건 번호를 확인합니다."
 
김홍민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오랜 훈련이 그 목소리를 고정해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 뒤에서, 그의 머릿속은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습니다.
 
 
공판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습니다.
 
첫 번째 공판에서 검사 측은 증거 목록을 제출하고 증인 신청을 했습니다. 전직 회계 담당자인 오창수가 핵심 증인이었습니다. 그는 이중 장부 작성에 직접 관여했으며, 피고인의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서에서 밝혔습니다.
 
장준혁은 그 진술의 신빙성을 공격했습니다.
 
"오창수는 피고인에게 해고된 전 직원입니다. 그의 진술에는 개인적 원한이 개입되어 있을 여지가 분명합니다. 또한 제출된 계좌 이동 내역은 합법적인 투자 목적의 자금 집행이었으며, 이를 증명하는 계약서와 투자 협약서를 이미 제출했습니다."
 
이재현 검사가 반박했습니다.
 
"변호인 측이 제출한 계약서는 날짜 오류와 인감 불일치가 확인되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원 문서 감정 결과를 이미 제출했고, 해당 계약서가 사후에 작성된 것임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법정의 공기가 팽팽해졌습니다.
 
김홍민은 두 사람의 말을 들으며 메모를 했습니다. 객관적인 메모였습니다. 어느 쪽에도 기울어지지 않은 손으로 적은 것들이었습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두 번째 공판에서 오창수가 증인석에 섰습니다.
 
그는 50대 초반의 남성으로, 오른손이 눈에 띄게 떨렸습니다. 검사의 주신문에서 그는 자신이 어떻게 지시를 받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장부를 작성했는지를 상세하게 진술했습니다. 목소리는 작았지만 내용은 구체적이었습니다.
 
장준혁의 반대 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오창수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천천히 질문했습니다.
 
"증인은 2019년 3월에 피고인을 상대로 퇴직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있죠?"
 
"네."
 
"그 소송에서 패소했고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네."
 
"그 패소 이후 피고인에 대한 형사 진술을 시작한 거죠?"
 
"그건 아닙니다. 처음부터 수사에 협조하기로."
 
"증인이 검찰에 최초 접촉한 날짜는 2019년 4월 7일입니다. 패소 판결 이후 열여섯 번째 날입니다. 이 사실은 맞습니까?"
 
오창수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법정이 조용해졌습니다.
 
이재현 검사가 이의를 제기했지만, 김홍민은 그 이의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습니다.
 
그날 밤 김홍민은 판결문 초안을 처음 열었습니다. 아직 공판이 끝나지 않았는데 초안을 검토하는 것은 이례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열었습니다.
 
세 번째 공판에서 결정적인 국면이 왔습니다.
 
장준혁이 예고 없이 새로운 증거를 신청했습니다. 제목은 "투자협약 이행 관련 내부 보고서"였습니다. 케이엠건설 내부 직원이 작성한 것으로, 문제의 자금 이동이 사전에 이사회 승인을 받았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재현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해당 보고서는 사전에 제출 목록에 없었습니다. 또한 그 보고서의 작성 주체와 날짜의 진위성이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장준혁이 답했습니다.
 
"검찰도 공소 제기 과정에서 새로운 증거를 추가한 바 있습니다. 소송 지휘권은 재판장에게 있습니다."
 
모든 시선이 판사석으로 향했습니다.
 
김홍민은 잠시 서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몇 초의 침묵이 법정 안에서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해당 증거를 채택하겠습니다. 다만 검사 측에 진위 감정 기회를 충분히 부여하겠습니다."
 
이재현의 눈빛이 달라졌습니다.
 
그것은 실망이 아니었습니다. 의심이었습니다.
 
재판이 끝나고 법원 복도를 걷는 이재현의 옆에 조사관이 다가섰습니다.
 
"검사님, 오늘 재판장 반응이 좀 이상하지 않았습니까?"
 
이재현은 멈추지 않고 걸으면서 말했습니다.
 
"기록해두세요."
 
 
그 주말, 김홍민은 아버지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갔습니다.
 
경기도 외곽의 요양 병원이었습니다. 복도는 길었고, 낡은 형광등이 윙윙거렸습니다. 아버지는 6인실 병상에 누워 있었습니다. 허리 수술 후 합병증으로 석 달째 입원 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보자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왔나."
 
"네, 아버지."
 
두 사람은 오래 말이 없었습니다. 창밖으로 낙엽이 졌습니다. 아버지의 손 등에는 링거 바늘 자국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아직도 판사 해?"
 
"네."
 
"좋은 판결 하고 있나?"
 
김홍민은 대답하는 데 1초가 걸렸습니다.
 
"노력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