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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책방

아들이 왜 죽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by 제 4의 창 2026. 5. 12.

https://youtu.be/7X3nX30WgiY

이 이야기는 단순한 군 사고사가 아닙니다. 눈 덮인 강원도의 산속에서 사라진 한 청년의 죽음, 그리고 국가가 끝내 숨기려 했던 진실이 드러납니다. 부검 없는 종결, 삭제된 기록, 사라진 CCTV… 모든 흔적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지워졌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수사관과 유족의 변호사가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침묵의 제복 속에 감춰진 목소리, 국가와 군의 어두운 그림자, 그리고 끝내 밝혀져야 할 진실. 이 영상은 단순한 사건 기록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반드시 마주해야 할 질문을 던집니다.

 

제1장. 산이 삼킨 사람

겨울의 강원도는 다른 계절과 달리 소리가 없습니다.

눈이 내리면 세상이 닫힙니다. 산이 닫히고, 도로가 닫히고, 부대 정문의 철제 차단기마저 얼어붙어 삐걱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못합니다. 철책을 따라 늘어선 소나무들은 눈의 무게를 견디며 가지를 낮게 드리웁니다. 바람은 능선 위를 달려 내려와 초소 앞에서 잠시 맴돌다가 다시 산 아래로 사라집니다. 그 계절에, 그 산속에서, 한 사람이 사라졌습니다.

이십이 사단 산악경계대대 소속 하사 이재형. 나이 스물여섯 살. 입대 전 강릉 출신의 어촌 마을에서 자랐으며, 군 복무 삼 년 차에 접어든 직업군인이었습니다. 그는 이월 열사흘 자정 순찰 임무를 받고 초소를 나섰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부대 후방 능선 아래 절벽 사면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되었습니다. 눈 속에 반쯤 묻혀 있었습니다. 왼손에는 장갑이 없었고, 오른쪽 장화의 끈이 풀려 있었습니다. 소총은 어깨에 걸려 있었지만 안전장치는 해제된 상태였습니다. 얼굴은 차가운 눈 위를 향하고 있었고, 그 눈 위에는 이재형 하사가 마지막으로 내쉰 숨결의 흔적인 듯 작은 구멍이 패여 있었습니다.

군은 즉각 발표했습니다.

순찰 중 실족에 의한 사망. 사고사.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강민호가 처음 사건 파일을 받은 것은 이월 열다섯 날, 오후 두 시 십 분이었습니다. 군사경찰단 수사과 사무실.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는 끝자리 책상에서였습니다. 파일은 얇았습니다. 의심스러울 만큼.

삼십삼 세의 강민호는 그 파일을 받아들면서 잠시 무게를 느꼈습니다. 물리적 무게가 아니었습니다. 이 얇은 파일이 한 사람의 삶 전체를 담고 있다는 사실에서 오는 무게였습니다. 스물여섯 해를 살아온 청년이 이 얇은 종이 몇 장으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강민호는 책상 위에 파일을 내려놓기 전에,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강민호 중사가 군 수사관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강원도 삼척 출신이었습니다. 아버지 강태성은 탄광 굴진 작업 현장 감독이었습니다. 성실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났고, 밥 한 그릇을 빠르게 먹은 뒤 낡은 작업복을 입고 집을 나섰습니다. 강민호가 여섯 살 때부터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그것이었습니다. 어두운 새벽, 뒷모습.

강민호가 열한 살이던 해 이월, 아버지가 일하던 탄광의 갱도 일부가 붕괴했습니다. 강민호는 학교에서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이 조용히 그를 교실 밖으로 불렀고, 교장실에 어머니가 와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눈이 이미 빨갛게 부어 있었습니다.

구조 작업은 나흘이 걸렸습니다. 강태성은 셋째 날에 발견되었습니다. 생존자가 아니었습니다.

사고 이후 국가와 광산 운영 회사가 내놓은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안전 기준 내의 사고였으며, 예측 불가능한 지질 변동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배상은 법정 최소 기준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안전 기준 위반 여부에 대한 조사는 진행되었지만, 결론은 무혐의였습니다. 수사 기간은 삼 개월. 관계자 처벌은 없었습니다.

어머니 강정희는 그 뒤로 식당 주방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른 아침 여섯 시부터 늦은 밤 열 시까지. 강민호는 학교가 끝나면 동네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중학생이었지만 주인이 나이를 묻지 않았고, 강민호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강민호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는, 국가가 사고라고 말하는 것이 반드시 사고가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진실을 얻으려면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열한 살의 강민호는 포기했습니다. 어머니가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싸울 돈도, 싸울 힘도, 싸울 시간도 없었습니다.

강민호는 그 포기를 지켜보면서 마음속에 무언가를 새겼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자신은 포기하지 않겠다고. 힘이 생기면, 자격이 생기면,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겠다고.


그가 지방 국립대 법학과에 진학한 것은 그 다짐 때문이었습니다.

삼척에서 대전까지 버스로 네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는 학교 앞 반지하 월세방에서 생활했습니다. 장학금을 받았고, 부족한 생활비는 과외와 아르바이트로 충당했습니다. 학점은 상위 오 퍼센트를 유지했습니다. 법학을 공부하면서 그는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법이 강력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 그리고 그 도구가 항상 옳은 방향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감.

졸업 후 그는 군에 자원했습니다. 법조계 취직보다 군이 먼저였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국가 조직의 내부를 알아야 그 조직이 어떻게 잘못되는지를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군 내부에서 법을 다루는 자리, 군 수사관은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위치였습니다.

보병 중사로 복무하면서 그는 군 내부의 구조를 배웠습니다. 명령 체계, 보고 경로, 침묵의 문화. 군은 외부와 단절된 사회였습니다. 그 사회 안에서 개인은 작았고, 계급은 절대적이었습니다. 강민호는 그 구조 안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남았습니다. 윗사람에게 반기를 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잘못된 것 앞에서는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좌천의 계기가 된 내부 고발 사건은 그가 중사 진급 이후 두 번째 해에 일어났습니다.

당시 그가 소속된 부대의 군수 보급 계통에서 군수품 빼돌리기가 있었습니다. 소규모였지만, 오 년 이상 반복된 행위였습니다. 관련 부사관이 셋이었고, 그 중 한 명은 상급자인 원사였습니다. 강민호는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보급 창고에서 수량 불일치를 발견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상관에게 보고했습니다. 상관은 일주일 뒤 그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없던 일로 하는 게 좋겠다고.

강민호는 군사경찰에 직접 신고했습니다.

조사가 시작되었고, 관련자 세 명이 처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처벌은 가벼웠습니다. 그리고 강민호는 얼마 뒤 현 부대에서 군사경찰단 수사 지원 파트로 전출되었습니다. 공식 이유는 인원 재배치였습니다. 실질적인 이유는 모두가 알았습니다. 그는 불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출 통보를 받던 날 저녁, 강민호는 숙소에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군 내부의 논리를 그는 이미 알았습니다. 정직함은 보상이 아니라 처벌을 부른다는 것. 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그는 다시 똑같이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 외에 다른 선택이 그에게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가 배운 것은 포기하지 않는 것이었고, 그 포기하지 않음의 방식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창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강원도의 눈이었습니다.


파일을 펼쳤습니다.

첫 장에는 현장 약도가 있었습니다. 절벽 사면의 낙하 추정 지점, 시신 발견 위치, 최초 목격자 동선. 두 번째 장에는 의무대 소견서가 있었습니다. 사인은 다발성 외상에 의한 출혈. 세 번째 장에는 부대장 보고서가 있었습니다. 세 장. 단 세 장짜리 파일이 한 사람의 죽음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강민호는 파일을 닫았다가 다시 펼쳤습니다.

뭔가 이상했습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현장 약도를 짚었습니다. 시신 발견 지점은 절벽 아래였습니다. 수직으로 떨어졌을 경우의 추정 지점. 그런데 약도에 표시된 시신의 위치는 절벽에서 수평으로 사 미터 떨어진 지점이었습니다. 걷다가 실족했다면 수직으로 떨어졌을 것입니다. 사 미터 바깥으로 나가려면 달리다가 뛰어야 합니다. 혹은 누군가에게 밀렸거나.

강민호는 파일 여백에 짧게 메모했습니다. 낙하 궤적 불일치. 재측정 필요.

그는 의무대 소견서를 다시 읽었습니다. 다발성 외상. 그것은 추락 사고에서 흔히 나타나는 표현이었습니다. 하지만 소견서 어디에도 추락 전 발생했을 수 있는 외상, 즉 타격 흔적에 대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부검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사고사로 결론이 나자마자 시신은 유족에게 인계되었습니다. 부검 없이. 독성 검사 없이.

강민호는 메모를 이었습니다. 부검 미실시. 독성 검사 없음.


그날 저녁, 그는 현장에 직접 올라갔습니다.

능선을 오르는 데 사십 분이 걸렸습니다. 이월의 강원도 산은 얼음이었습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눈이 뭉개지며 무릎까지 빠졌습니다. 군복 안으로 파고드는 바람은 칼날처럼 날카로웠습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 안쪽이 얼어붙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손전등 하나를 들고 절벽 끝에 섰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봤습니다.

손전등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이 아래에 있었습니다. 바람이 절벽 면을 타고 올라오면서 코끝을 얼렸습니다. 눈발이 수평으로 날렸습니다. 강민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절벽 끝의 눈을 살펴봤습니다.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공식 보고서에는 이재형 하사가 혼자 순찰을 나갔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절벽 끝의 눈 위에는 적어도 두 개 이상의 발자국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났고 눈이 다시 내렸기 때문에 흔적은 희미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두 방향으로 찍힌 압흔이 있었습니다. 한 방향은 절벽 끝을 향하고, 다른 방향은 다시 되돌아가는 형태였습니다.

강민호는 사진을 찍었습니다. 열두 장.

내려오는 길에 그는 멈췄습니다. 능선 중간, 소나무 군락 사이에 낡은 금속 케이스 하나가 반쯤 눈에 덮여 있었습니다. 씨씨티브이 보조 카메라 케이스였습니다. 공식 기록에는 해당 구역에 카메라가 없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케이스는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그것도 최근에 무언가를 제거한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볼트 구멍 주위의 녹이 긁혀 있었고, 주변 소나무 껍질에 긁힌 자국이 있었습니다. 흙 위에는 눈이 덮여 있었지만, 케이스 아래쪽은 눈이 없었습니다. 최근까지 케이스가 고정되어 있었다는 증거였습니다.

강민호는 다시 메모했습니다. 비공식 카메라 위치. 제거 흔적. 최근.

숙소로 돌아와 그는 샤워를 하지 않았습니다. 젖은 군복째로 책상에 앉아 노트를 폈습니다. 그리고 이재형 하사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파일에 붙어 있던 신분증 사진 속의 그 얼굴을. 어촌 마을에서 자라 군인이 된 스물여섯 살의 그 얼굴을. 웃고 있었습니다. 신분증 사진인데도 웃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노트 첫 줄에 썼습니다.

이것은 사고가 아닙니다.


이틀 뒤, 부대 인사과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수사는 종결되었으니 파일을 반납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군 검찰 차원에서 사고사로 결론이 났다고 했습니다. 강민호에게 더 이상 관여하지 말라는 말을 정중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전달했습니다.

강민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파일을 반납했습니다.

하지만 사진 열두 장과 노트는 반납하지 않았습니다.


이재형 하사의 어머니, 이순임 씨는 아들의 죽음 통보를 전화로 받았습니다. 강릉의 작은 어촌 마을, 이월의 차가운 오전에. 통보를 전한 사람은 부대 행정 장교였습니다. 통화 시간은 삼 분 이십 초. 그 삼 분 이십 초 안에 아들은 죽었고, 사고로 처리되었고, 국가의 손에서 조용히 놓여났습니다.

이순임 씨는 그 뒤 열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보낸 마지막 편지를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요즘 야간 순찰이 늘었다는 구절에서 그녀의 눈이 멈췄습니다. 아들이 힘들다고 하면서도 괜찮다고 썼던 그 구절. 아들은 항상 괜찮다고 했습니다. 힘들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이재형 하사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머니에게는 지금 가장 견디기 어려운 기억이었습니다. 아들이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어버렸다는 것이.

열하루째 되던 날, 그녀는 버스를 탔습니다. 목적지는 서울이었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인터넷에서 찾아낸 변호사 사무소의 주소가 적힌 종이가 들려 있었습니다.

공민희 법률사무소.

국가배상 및 군 관련 인권 소송 전문.


제2장. 지워진 목소리

공민희의 사무실은 서울 마포구의 낡은 건물 사 층에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없었습니다. 계단은 좁고 빛이 적었습니다. 이 층과 삼 층 사이에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겨울이면 창문틀에서 바람이 새어 들어와 복도 전체를 냉동고처럼 만들었습니다. 사 층 복도 끝, 공민희 사무소 문 앞에 서면 바닥의 낡은 리놀륨이 발밑에서 약간 꺼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래도 임대료가 저렴했고, 공민희는 임대료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의뢰인들 대부분이 돈이 없었으므로.


서른아홉 살의 공민희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길은, 그녀가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길이었습니다.

오빠 공성준은 공민희보다 여덟 살 위였습니다. 공민희가 기억하는 오빠는 항상 웃는 사람이었습니다. 큰 소리로 웃었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박장대소했습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동네에서는 힘쎈 형으로 알려졌지만 막내 여동생에게는 한 번도 큰 소리를 낸 적이 없었습니다.

오빠가 군에 갔을 때 공민희는 열네 살이었습니다. 오빠는 이 년을 복무하면 돌아온다고 했습니다.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공민희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오빠가 복무 칠 개월 만에 부대 내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군은 개인 사정에 의한 자해라고 발표했습니다. 유서는 없었습니다. 현장에는 오빠의 물품만 있었고, 다른 사람의 흔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조사는 빠르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유족 면담은 형식적이었습니다. 군은 위로금을 제시했습니다. 소리 없이, 빠르게, 덮었습니다.

공민희의 어머니는 처음에는 싸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법을 몰랐고 돈이 없었습니다. 국선 변호인을 요청했지만 국가 상대 민사 소송에 국선 변호인은 배정되지 않았습니다. 알아봐 준다는 사람들은 말만 하고 사라졌습니다. 어머니는 결국 위로금을 받고 서명했습니다. 법적 책임 일체를 묻지 않겠다는 합의서에.

공민희는 그 서명 장면을 기억합니다. 열네 살의 자신이 어머니 옆에 앉아 군 관계자가 내미는 서류를 바라보던 장면을. 어머니가 손을 떨며 볼펜을 집던 장면을. 그 순간 공민희는 무언가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오빠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에서 무언가가.

그녀가 법학을 공부하겠다고 처음 말했을 때 어머니는 말렸습니다. 힘든 길이라고. 어차피 돈 있는 사람이 이긴다고. 공민희는 그래서 하겠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돈 있는 쪽이 이긴다면, 그 구조를 바꾸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대형 로펌에서의 칠 년은 공민희에게 복잡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녀는 뛰어났습니다. 국가배상 사건 분야에서 그녀의 분석력과 서면 작성 능력은 동기들 중 가장 앞섰습니다. 팀 내에서 빠르게 인정받았고, 이 년 만에 팀장급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연봉도 높았습니다. 사무실도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칠 년 동안 그녀가 한 일은, 국가 상대 소송을 제기한 유족들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로펌의 주요 의뢰인은 국방부와 연관된 공공기관이었습니다. 소송이 들어오면 공민희는 반박 서면을 만들었습니다. 증거를 희석시키는 논리를 만들었습니다. 유족의 주장이 법적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을 조목조목 증명했습니다. 그녀는 그 일을 잘 해냈습니다. 너무 잘 해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입사 칠 년 차의 어느 사건이었습니다.

군 복무 중 의문사한 하사 유족이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유족 측 변호인은 경력이 짧은 젊은 변호사였습니다. 공민희는 그 사건을 맡아 반박 서면을 작성했습니다. 완벽한 서면이었습니다. 법리적으로 흠잡을 곳이 없었습니다. 유족 측은 패소했습니다.

판결이 난 날 저녁, 공민희는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그날 작성한 서면을 다시 읽었습니다. 논리는 완벽했습니다. 하지만 그 완벽한 논리의 결과로 한 어머니가 아들의 죽음에 대한 어떠한 공식적 인정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공민희는 서면을 서랍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사직서를 꺼내 쓰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파트너에게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파트너는 만류했습니다. 지금까지 쌓은 것을 버리는 것이라고. 공민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쌓은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들을 돌려받으러 간다고 했습니다.

파트너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공민희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이순임 씨가 사 층 계단을 올라오던 날, 공민희는 서류 더미 앞에 앉아 식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순임 씨는 의자에 앉자마자 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입술을 단단히 다물고 아들의 사진을 꺼냈습니다. 군복 입은 아들의 사진. 웃고 있는 얼굴의 사진.

공민희는 사진을 받아들었습니다.

그녀는 그 사진 속의 얼굴을 보면서 잠시 숨을 참았습니다. 오빠의 얼굴과 겹쳐지는 것을 막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막히지 않았습니다. 이십 대의 군복, 환한 웃음. 그것은 오빠의 사진과 너무 비슷했습니다.

이순임 씨가 말했습니다. 아들이 죽기 일주일 전에 전화를 했다고. 목소리가 이상했다고. 뭔가 말하려다 멈추는 것 같았다고. 부대 안에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더니 아들이 웃으면서 괜찮다고 했다고. 그게 마지막 통화였다고.

공민희는 수첩을 꺼냈습니다.

사건을 맡았습니다.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하려면 먼저 사실관계를 확보해야 했습니다. 공민희는 첫 번째로 이재형 하사의 복무 기록을 열람 신청했습니다. 군은 거부했습니다.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두 번째로 부대 순찰 기록 제출을 요청했습니다. 역시 거부당했습니다. 작전 보안상 이유로. 세 번째로 씨씨티브이 녹화 영상 보전 신청을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법원은 접수했지만, 부대 측은 해당 구역에 씨씨티브이가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공민희는 그 답변서를 읽으며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습니다.

해당 구역에 씨씨티브이가 없다.

그것은 거짓말이거나, 거짓말을 만들어 낸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녀는 이재형 하사의 동기 전화번호를 수소문했습니다. 같은 부대 출신으로 전역한 사람들. 열 명에게 연락했습니다. 아홉 명이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한 명이 받았다가 부대 얘기를 꺼내자 전화를 끊었습니다.

공민희는 수첩에 적었습니다. 공포. 아직 조직 안에 있거나, 조직이 무섭거나.


이 무렵 공민희는 밤에 잠들지 못하는 날이 늘었습니다.

새벽 두 시, 사무실 불을 끄지 못하고 서류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이재형 하사의 편지들을 다시 읽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보내는 편지들이었습니다. 손으로 쓴 글씨였습니다. 문장이 서툴렀습니다. 맞춤법도 가끔 틀렸습니다. 하지만 그 서툰 문장들 안에는 진심이 있었습니다.

한 편지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밥은 잘 먹고 있습니다. 어머니도 밥 잘 드세요. 아들이 건강하니까 걱정 마세요.

공민희는 그 구절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이 편지를 쓰던 스물여섯 살의 청년은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썼습니다. 마지막까지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공민희는 조용히 서류를 덮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메일 하나가 왔습니다.

발신자 이름은 없었습니다. 제목도 없었습니다. 본문에는 단 한 줄이 있었습니다.

강원도 이십이 사단 현장에 직접 다녀오십시오. 수사관 강민호를 찾으십시오.

그것뿐이었습니다.

공민희는 그 이메일을 오래 바라봤습니다. 발신 경로를 추적해 봤지만 익명 이메일 서비스를 경유한 것이라 발신자를 특정할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내부 정보를 흘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신원을 노출하지 않으면서.

그것 자체가 하나의 신호였습니다. 이 사건 주변에 무언가가 있다는. 그리고 그것을 아는 누군가가 있다는.


공민희가 군사경찰단을 찾아간 것은 삼 월 초였습니다.

강원도는 아직 겨울이었습니다. 도로 양쪽으로 눈 쌓인 소나무가 줄지어 섰고, 부대 정문 앞에는 완전무장한 위병이 두 명 서 있었습니다. 공민희는 차에서 내려 변호사 신분증을 제시했습니다. 위병은 상관에게 확인 전화를 했습니다. 이 분이 지났습니다. 삼 분이 지났습니다.

결국 방문을 허가받았습니다.

군사경찰단 수사과는 부대 후방 건물 일 층에 있었습니다. 복도는 형광등 빛이 희고 고르지 않았습니다. 끝 쪽 형광등 하나는 미세하게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깜빡이는 것이 아니라 불규칙하게. 그 깜빡임에 맞춰 복도의 그림자가 흔들렸습니다

 

사무실에는 책상이 여섯 개였는데 그 중 끝자리 하나에만 사람이 있었습니다.

강민호였습니다.

그는 공민희를 보자 눈썹을 약간 올렸습니다. 예고 없는 방문이었습니다.

공민희가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강민호는 명함을 받아 읽었습니다. 그리고 명함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침묵했습니다. 깜빡이는 형광등 소리가 작게 들렸습니다.

강민호가 먼저 말했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공민희가 대답했습니다. 이재형 하사 사건 때문에 왔습니다. 수사 기록을 보셨을 텐데, 이상한 점을 발견하셨습니까.

강민호의 표정이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공민희에게는 답처럼 보였습니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부대 외곽의 국도변 식당에서 마주 앉았습니다.

식당은 작았습니다. 테이블이 네 개. 주인 할머니 혼자 운영하는 곳이었습니다. 손님은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트로트 음악이 낮고 약하게 공간을 채웠습니다.

강민호는 조심스러웠습니다. 그는 사진을 보여줄지 말지를 한참 고민했습니다. 군 수사관으로서 수사 정보를 외부에 유출하는 것은 규정 위반이었습니다. 하지만 수사는 이미 종결되었다고 그에게 통보된 상태였습니다. 종결된 수사의 기록이라면, 엄밀히는 수사 중 정보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허가를 내렸습니다.

사진 열두 장을 테이블 위에 펼쳤습니다.

공민희는 사진을 하나씩 살펴봤습니다. 손가락으로 절벽 끝의 발자국 흔적을 짚었습니다. 씨씨티브이 케이스를 짚었습니다.

그녀가 물었습니다. 통신 기록은 확인하셨습니까.

강민호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확인을 요청했는데, 해당 날짜 자정 이후 구간의 기록이 없다는 답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공민희가 다시 물었습니다. 삭제된 것입니까, 아니면 처음부터 없는 것입니까.

강민호가 잠시 멈췄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삭제된 것입니다. 로그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기록이 지워졌고, 그 지워진 흔적조차 지우려 한 흔적이 있습니다.

공민희는 식당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국도에는 차가 없었습니다. 산 너머는 어둠이었습니다. 가끔 눈발이 창유리에 부딪혀 소리도 없이 녹아 사라졌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누가, 왜 지웠는지가 문제입니다.

강민호가 말했습니다. 그게 제가 알고 싶은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식당의 낡은 라디오에서 일기예보가 흘러나왔습니다. 내일 강원도 산간 지방에 눈이 더 내릴 예정이라는 예보였습니다.


제3장. 부대는 말하지 않는다

이십이 사단 산악경계대대의 새벽은 다른 어떤 곳의 새벽과도 달랐습니다.

오전 다섯 시 삼십 분, 기상 나팔 소리가 산 전체에 울렸습니다. 소리는 금속성이고 날카로웠으며, 눈 쌓인 소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올라가 능선 너머까지 퍼졌습니다. 막사 안에서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발소리, 세면대 물소리, 군복을 여미는 소리. 그 소리들이 겹쳐 하나의 웅성거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재형 하사가 죽은 뒤, 그 웅성거림 안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섞였습니다. 침묵이었습니다. 말을 하는데도 침묵 같은 그런 종류의 것. 부대원들은 서로의 눈을 오래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식당에서는 예전보다 빠르게 밥을 먹고 자리를 떴습니다. 소등 이후 막사 복도에서 나누던 잡담이 사라졌습니다.

이십이 사단 산악경계대대는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해발 팔백 미터 이상의 산악 지형에 자리 잡고 있었고, 외곽 도로는 군 차량 전용이었습니다. 부대 반경 오 킬로미터 이내에 민간 건물이 없었습니다. 즉, 이 부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민간의 눈에는 닿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산이 부대를 감쌌고, 철책이 그 산을 다시 감쌌습니다. 이중의 고립이었습니다.


강민호가 부대 내부에 접근할 수 있는 공식 방법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수사는 종결되었고, 그는 이 사건의 담당 수사관에서 이미 해임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직 군사경찰 수사관 신분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규정에는 수사관이 현장 확인을 이유로 관련 부대를 방문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수사가 종결된 사건의 현장이라도, 재확인 목적이라면 가능했습니다.

그는 그 조항을 이용했습니다.

삼 월 중순의 어느 오전, 강민호는 이십이 사단 정문에 수사관 신분증을 제시했습니다. 위병이 상관에게 연락했습니다. 십 분이 지났습니다. 이십 분이 지났습니다. 그 대기 시간이 강민호에게는 하나의 정보였습니다. 누군가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단순 방문이라면 대기 시간이 이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결국 대대 행정 장교가 직접 정문까지 나왔습니다.

중위 계급의 젊은 장교였습니다. 이름은 전찬우. 눈빛이 조심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조심스러움 뒤에 다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강민호는 그것을 두려움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순수한 직업적 긴장이 아닌, 무언가 개인적인 공포에 가까운 것.

전찬우 중위가 강민호를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내는 철저하게 제한된 경로였습니다. 행정동 로비, 회의실, 다시 정문. 강민호가 순찰 경로를 보고 싶다고 하자, 전찬우는 그 구역은 현재 작전 구역이라 민간인 동행 없이도 외부 수사관이 접근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민호는 군 수사관이지 민간인이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전찬우는 그래도 불가하다고 했습니다.

강민호는 그 자리에서 물러섰습니다.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회의실로 안내받은 강민호는 약 이십 분 동안 혼자 기다렸습니다.

회의실은 낡았습니다. 테이블 위에 긁힌 자국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벽에는 부대 훈련 일정표와 교육 포스터가 붙어 있었습니다. 천장의 형광등 하나가 약하게 윙 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환기가 되지 않는 방 특유의 냄새가 났습니다. 습하고 오래된 공기의 냄새.

강민호는 그 방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조용히 주변을 관찰했습니다. 회의실 문 너머로 복도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발소리. 대화. 하지만 대화 내용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회의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으면서 그는 시선을 자연스럽게 흘렸습니다. 보급창 앞을 지나치는 순간, 열려 있는 문 사이로 무언가가 보였습니다.

군 표준 보험 가입 서류 묶음이었습니다.

그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군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보험 처리가 진행되는 것은 일반적인 절차였습니다. 하지만 강민호의 눈을 멈추게 한 것은 그 서류 위에 찍혀 있는 스탬프였습니다.

서류 제출 완료. 삼 월 이 일.

이재형 하사의 시신이 발견된 것은 이월 열넷이었습니다. 사고사로 공식 확정이 난 것은 이월 열다섯. 그런데 보험 서류가 삼 월 이 일에 완료 처리되어 있었습니다.

불가능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빨랐습니다. 너무나 빨랐습니다. 사망 확정 열다섯 일 만에 모든 보험 서류가 완료 처리된다는 것은, 사전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은 속도였습니다.

강민호는 그 장면을 머릿속에 새겼습니다.


부대를 떠나면서 그는 정문 옆 위병 초소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는 상병 한 명을 발견했습니다. 나이가 어려 보였습니다. 이십 대 초반. 군복 깃이 올라가 있었고, 귀 끝이 빨갛게 얼어 있었습니다.

강민호는 자연스럽게 그 옆에 섰습니다. 자신도 담배를 꺼냈습니다. 불을 빌렸습니다.

상병이 불을 켜 줬습니다.

강민호가 말했습니다. 요즘 부대 분위기가 어떻습니까.

상병이 짧게 대답했습니다. 괜찮습니다.

강민호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담배를 피웠습니다. 침묵이 흘렀습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이 두 사람 사이를 지나쳤습니다.

상병이 먼저 침묵을 깼습니다.

이재형 하사 때문에 오신 거 맞지요.

강민호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대답이었습니다.

상병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날 밤 이재형 하사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같이 나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강민호의 심장이 한 박자 빠르게 뛰었습니다. 그는 표정을 유지했습니다. 숨을 고르게 내쉬었습니다.

이름을 물었습니다.

상병이 담배를 바닥에 눌러 껐습니다. 그리고 초소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이름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강민호는 그 자리에 잠시 서 있었습니다. 산 너머에서 바람이 내려왔습니다. 소나무 가지가 흔들렸습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었습니다. 연기가 바람에 금세 흩어졌습니다.

그날 밤 그는 공민희에게 전화했습니다. 목소리를 낮추고,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습니다. 목격자가 있습니다. 아직 이름은 모릅니다.


공민희는 전화를 받으며 사무실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서울의 밤하늘에는 별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이재형 하사의 복무 기록을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공식 기록은 아직 열람이 불가능했지만, 이순임 씨가 아들에게서 받은 편지들이 있었습니다. 손으로 쓴 편지들. 군인이 어머니에게 보내는, 솔직하고 소박한 편지들.

편지 중 하나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요즘 야간 순찰이 늘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원래는 격주였는데 이번 달부터 매주입니다. 좀 힘들지만 괜찮습니다. 건강하니까요.

편지 날짜는 이재형 하사 사망 삼 주 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편지에는 이런 구절도 있었습니다.

요즘 창고 쪽으로 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어머니, 군대에서 이상한 일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모른 척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말해야 하는 건지.

이 편지의 날짜는 사망 이 주 전이었습니다.

공민희는 그 구절에 두 줄로 밑줄을 그었습니다.

이상한 일. 창고.

이재형 하사는 무언가를 봤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제4장. 보고서의 냄새

서울로 돌아온 공민희는 국방부 앞에서 정보공개 청구서를 제출했습니다.

이십이 사단 산악경계대대 최근 육 개월 순찰 일지. 해당 기간 야간 순찰 횟수 변경 경위. 이재형 하사 사망 당일 출동 기록 전체.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추가했습니다. 이재형 하사 사망 관련 의무대 소견서 원본. 부검 여부 및 그 사유.

국방부는 십사 일 이내로 회신한다는 수령증을 발급했습니다.

공민희는 그 수령증을 들고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십사 일을 기다렸습니다. 십오 일이 됐습니다. 십칠 일이 됐습니다. 회신이 없었습니다.

이십이 일째 되는 날, 회신이 도착했습니다. 내용은 단 한 줄이었습니다. 해당 기록은 군사 보안 자료로 분류되어 공개가 불가합니다.

부검에 대한 답변은 별도로 왔습니다. 유족이 부검을 요청하지 않아 시행하지 않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공민희는 그 회신서를 읽고 이순임 씨에게 전화했습니다.

이순임 씨는 아들 사망 후 부검 동의서를 받았는지를 묻는 질문에, 한참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받지 못했다고. 그런 서류를 본 적이 없다고.

공민희는 통화를 끊고 수첩에 적었습니다. 부검 동의 미수령. 군 측 주장과 배치.

이것이 또 하나의 거짓말이었습니다.


한편 강민호는 다른 경로를 추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군 통신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기술부사관 출신 지인을 통해 이십이 사단의 통신망 로그에 대한 비공식 정보를 얻으려 했습니다. 직접적인 정보는 얻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인이 귀띔해 준 것이 있었습니다.

이십이 사단에서 이 월에 외부 통신망 정비 작업이 있었다는 것. 정비 업체는 군 공식 계약 업체가 아니었다는 것. 민간 업체였는데, 그 업체 이름이 특이했습니다. 한울 시스템즈.

강민호는 그 이름을 검색했습니다.

한울 시스템즈는 강원도에 등록된 소규모 통신 기술 회사였습니다. 설립 삼 년 차. 대표이사는 정명석. 직원은 네 명. 매출은 미미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이십이 사단의 통신 정비를 담당했다는 것은, 일반적인 군 계약 절차를 생략했다는 의미였습니다.

강민호는 다시 검색했습니다. 한울 시스템즈 대표 정명석.

한 가지 연결고리가 나왔습니다.

정명석은 이십이 사단 전 군수과장 출신이었습니다. 이십 년 근무 후 전역. 전역 후 한울 시스템즈를 설립. 전역한 군인이 자신이 근무하던 부대의 통신망을 민간 업체로 맡는 것. 그것은 단순한 인맥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구조였습니다. 군과 민간 업체 사이에 만들어진, 감시받지 않는 통로.

강민호는 이 연결고리를 공민희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강민호는 또 다른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한울 시스템즈가 이십이 사단 외에도 세 개의 다른 군 부대와 유사한 계약을 맺고 있었습니다. 모두 강원도 산간 지역 부대들이었습니다. 계약 내용은 통신망 유지 보수 및 데이터 관리. 그리고 세 부대 모두 최근 삼 년 이내에 군 훈련 성과 보고서를 상부에 제출했으며, 그 성과 수치가 이례적으로 높았습니다.

훈련 성과가 높다는 것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강민호가 확인한 것은 그 성과 보고서의 수치가 실제 훈련 장비 점검 기록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비 사용 기록을 보면 사용 횟수가 보고서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즉, 훈련을 실제보다 더 많이 한 것처럼 보고서가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허위 훈련 보고.

그것은 훈련 예산 횡령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강민호는 이재형 하사의 편지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창고 쪽으로 가는 일이 생겼다는 구절. 이재형 하사는 창고에서 무언가를 봤을 것입니다. 장비 실제 사용 현황과 보고서가 다르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덮어야 할 비밀이었습니다.


공민희는 전화를 받으며 두 눈을 감았습니다.

방산 비리. 허위 훈련 보고. 예산 횡령. 그리고 그것을 목격한 청년.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통신 기록을 삭제한 것이 이 업체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삭제했는가가 핵심입니다.

강민호가 말했습니다. 삭제할 이유가 있는 통신 내용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재형 하사가 누군가에게 연락했거나, 누군가와 나눈 대화 내용이 담겨 있었거나.

공민희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통신 내용을 이재형 하사가 알고 있었을 가능성.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이 무렵 예상치 못한 곳에서 정보가 왔습니다.

이재형 하사가 군에 오기 전 다니던 교회의 목사였습니다. 이재형 하사가 사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연락을 한 민간인이 그 목사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순임 씨로부터 연락처를 받아 공민희가 직접 전화했습니다.

목사는 조심스러웠지만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전한 내용은 짧았습니다. 이재형 하사가 사망 열흘 전 자정에 전화를 했다고 했습니다. 목소리가 낮고 긴장되어 있었다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고. 그리고 이런 말을 했다고 했습니다. 나쁜 일을 알게 됐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고.

목사는 그에게 용기를 내라고 했다고 합니다. 옳은 일을 하는 것이 두렵더라도.

그것이 그 둘의 마지막 대화였다고 했습니다.

공민희는 통화를 마친 뒤 수첩을 닫았습니다. 덮힌 수첩 위에 손을 얹었습니다.

이재형 하사는 싸우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혼자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죽음으로 이끌었습니다.


강민호에게 상관으로부터 경고가 왔습니다.

군사경찰단 수사과장 대령 박형대. 그가 강민호를 호출했습니다.

강민호는 수사과장실에 들어섰습니다. 방은 넓었습니다. 벽에는 표창장과 부대 사진이 빽빽하게 걸려 있었습니다. 표창장 틀들은 광이 나도록 닦여 있었고, 사진 속 인물들은 모두 웃고 있었습니다. 박형대 대령은 창가에 서서 밖을 바라보다가 강민호가 들어오자 몸을 돌렸습니다.

대령이 말했습니다. 이재형 하사 사건 관련해서 개인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강민호가 대답했습니다. 현장 재확인 차원에서 방문한 것입니다.

대령이 말했습니다. 수사는 종결됐습니다. 더 이상 관여하지 마십시오.

강민호가 물었습니다. 왜입니까.

대령이 잠시 멈췄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강민호는 경례했습니다. 그리고 나왔습니다.

복도를 걸어 나오면서 그는 생각했습니다. 명령이라는 말은 이유가 없을 때 쓰는 말이라고. 이유가 있다면 이유를 말하면 됩니다. 이유 없는 명령은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리고 그는 한 가지를 더 느꼈습니다. 박형대 대령의 눈빛에서 강민호가 본 것은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두려움이었습니다. 명령을 내리는 사람의 눈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명령이 단순히 박형대 대령에게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곳에서 내려온 것임을 의미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사직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멈췄습니다. 아직 아닙니다. 아직 안에 있어야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직서를 서랍 안에 넣어뒀습니다.


제5장. 보험증서의 그림자

공민희가 국가배상 소송을 정식으로 법원에 제기한 것은 사 월 초였습니다.

피고는 대한민국이었습니다.

소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국가는 이재형 하사의 사망이 단순 사고임을 주장하고 있으나, 현장 증거, 통신 기록 삭제 흔적,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할 때 사고사로 단정 짓기 어려우며, 군의 은폐 시도 및 직무유기가 유족에게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 피해를 입혔습니다.

소장이 접수되자 군은 즉각 대응에 나섰습니다. 국방부 법무관실 소속 변호인단이 구성되었습니다. 삼 인 구성의 변호인단. 공민희 혼자 대 셋의 구도가 만들어졌습니다.

피고 측 수석 변호인은 경력 이십 년의 군 법무관 출신이었습니다. 이름은 오상준. 크고 안정적인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법정에서의 자신감이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공민희는 그 이름을 보고 잠시 멈췄습니다. 오상준. 그녀가 로펌에서 일할 때 한 번 대척점에서 만난 적 있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때 오상준은 국가 측 변호인이었고 공민희가 로펌 측으로 들어갔으므로, 그들은 같은 편이었습니다. 이제는 반대편이었습니다.

공민희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 구도를 예상했습니다.


소송이 시작된 직후, 강민호는 뜻밖의 정보를 얻었습니다.

이재형 하사가 사망하기 사 개월 전, 그의 이름으로 군인 단체 보험이 추가 가입되어 있었습니다. 기존 국가 보험 외에, 별도의 민간 보험이었습니다. 보험료는 월 사만 오천 원. 사망 보험금은 이억 원.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보험 가입 서류에 적힌 이재형 하사의 서명. 필체 전문가에게 비공식으로 보여줬더니, 이재형 하사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의 필체와 일치율이 낮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즉, 서명이 위조되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보험의 수익자 지정란에는 이재형 하사 본인이 아니라 부대 공제회가 적혀 있었습니다.

군 부대 공제회가 사망 보험금 수익자인 보험. 서명이 위조된 보험.

강민호는 이 정보를 공민희에게 전달했습니다.

공민희는 파일을 열었습니다. 손이 잠시 멈췄습니다. 그녀는 이 구조를 알았습니다. 로펌에서 일하던 시절 유사한 사례를 다룬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국가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의 자신이 지금의 이 자리에서 마주친 것이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공제회 회계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강민호가 말했습니다. 그건 저도 접근할 수 없습니다. 회계는 부대 내부 자료입니다.

공민희가 말했습니다. 법원을 통하면 됩니다. 소송이 시작됐으니까요.


이 무렵 또 하나의 반전이 등장했습니다. 이것이 이 사건의 첫 번째 반전이었습니다.

공민희가 보험 계약서를 입수하기 위해 보험사에 공문을 보냈을 때, 보험사로부터 예상치 못한 답변이 왔습니다. 해당 보험 계약은 이재형 하사 명의가 아니라, 처음부터 부대 공제회 명의로 체결된 단체 보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재형 하사는 단순히 피보험자로 등록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체 보험에서 개인을 피보험자로 등록하려면, 그 개인의 동의서가 필요합니다. 동의서 서명란에 이재형 하사의 서명이 있었습니다. 그 서명이 위조 의심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것이 있었습니다.

이 보험을 체결한 보험 대리점의 담당자. 그 담당자의 이름은 임성호. 그런데 강민호가 임성호를 추적했을 때, 임성호가 이십이 사단 전 군수과장 정명석, 즉 한울 시스템즈 대표와 같은 골프 동호회 회원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골프 동호회. 표면적으로는 취미 모임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구조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군 계약, 통신망 관리, 보험 계약. 모두 같은 연결망 안에 있었습니다.

 

강민호는 이것을 공민희에게 전달하면서 말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은폐가 아닙니다. 사전에 설계된 구조입니다.


공민희는 증거 보전 신청을 법원에 추가로 제출했습니다. 이십이 사단 부대 공제회 최근 이 년치 회계 자료. 이재형 하사 명의 민간 보험 계약서 원본. 그리고 한울 시스템즈의 이십이 사단 용역 계약서.

법원은 증거 보전 신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군은 즉각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군사 비밀을 이유로. 하지만 판사는 공익 목적의 소송에서 군사 비밀 주장을 무분별하게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자료가 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자료를 검토하는 데 사흘이 걸렸습니다.

공민희는 사무실에서 이틀을 꼬박 새웠습니다. 회계 자료를 한 줄씩 읽었습니다. 숫자들 사이에서 패턴을 찾는 작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평범해 보였습니다. 그러다가 사흘째 새벽 세 시, 하나의 항목에서 그녀의 손가락이 멈췄습니다.

훈련 보조 장비 임차료. 분기별 일천사백만 원.

공민희는 이 항목의 수취 업체를 확인했습니다. 수취 업체는 한울 시스템즈였습니다.

통신 관리 업체가 훈련 보조 장비 임차료를 수취하고 있었습니다. 그 금액은 실제로 장비를 임차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비 사용 기록과 임차료 청구 금액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장비를 사용하지 않은 기간에도 임차료가 지출되었습니다.

예산이 빠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조직적으로. 반복적으로.

공민희는 강민호에게 전화했습니다. 새벽 세 시 이십 분이었습니다.

강민호가 받았습니다. 자고 있지 않았습니다.

공민희가 말했습니다. 찾았습니다.


한편 이 시점에서 첫 번째 주요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강민호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전찬우 중위. 이십이 사단 행정 장교. 강민호가 부대를 방문했을 때 그를 안내했던 바로 그 인물.

그가 강민호의 군사경찰단 숙소 앞에 나타난 것은 밤 열한 시였습니다.

전찬우는 창백한 얼굴이었습니다. 눈 아래 그늘이 짙었습니다. 군복이 구겨져 있었습니다. 냉기가 그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밖이 추워서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강민호는 그를 안으로 들였습니다.

전찬우가 말했습니다. 이재형 하사와 함께 그날 밤 순찰을 나간 사람이 있습니다. 부대장 직속 선임 부사관입니다. 윤상기 원사.

강민호의 입술이 굳었습니다.

전찬우가 계속 말했습니다. 저는 당시 야간 당직이었습니다. 윤상기 원사가 이재형 하사와 함께 초소를 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자정이 조금 지나서였습니다. 그런데 윤상기 원사는 두 시간 뒤 혼자 돌아왔습니다.

강민호가 물었습니다. 그것을 보고했습니까.

전찬우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못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부대장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어젯밤에 대해 묻는 사람이 있으면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하라고.

강민호가 물었습니다. 왜 지금 이걸 말합니까.

전찬우가 잠시 침묵했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습니다. 전찬우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가 천천히 열었습니다.

자기 동생이 이재형 하사와 같은 마을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서로 알던 사이였다고. 동생이 이재형 하사의 어머니를 만났다고. 그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왔다고. 더 이상 침묵할 수가 없었다고.

방 안에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숙소 건물 밖에서 바람이 불었습니다. 창문이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강민호가 물었습니다. 진술을 공식적으로 해 줄 수 있습니까.

전찬우가 대답했습니다. 하겠습니다. 하지만 저를 보호해 줄 수 있습니까.

강민호는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것이 그가 줄 수 있는 유일한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전찬우가 사무실을 나간 다음 날 아침, 강민호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습니다.

두 번째 반전이었습니다.

전찬우 중위가 그날 밤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숙소에서 나가 부대로 돌아가는 산길에서. 차는 산 아래로 굴렀고, 전찬우는 중상을 입어 강원도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습니다.

단순 빙판길 사고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강민호는 사고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빙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고 차량이 미끄러진 방향과 가드레일의 충격 흔적이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차량이 미끄러졌다면 후방에 충격이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충격 흔적은 측면에 있었습니다. 다른 차량이 옆에서 부딪혔을 때 나타나는 패턴이었습니다.

강민호는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는 즉시 공민희에게 전화했습니다. 목소리를 낮추고,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습니다. 목격자가 당했습니다.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이 시점에서 세 번째 반전이 왔습니다. 이것은 두 사람 모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왔습니다.

강민호가 전찬우의 사고 현장을 조사하고 있을 때, 군사경찰단 수사과장 박형대 대령으로부터 호출이 왔습니다. 강민호는 이번에는 다른 무언가를 직감하며 수사과장실로 들어갔습니다.

박형대 대령은 혼자였습니다.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목소리를 낮췄습니다.

대령이 말했습니다. 강 중사, 내가 지금 당신에게 명령이 아니라 경고를 하는 겁니다.

강민호가 기다렸습니다.

대령이 말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까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나도 멈추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나는 그 지시를 따랐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하십시오.

강민호가 물었습니다. 얼마나 위까지입니까.

박형대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습니다.

강민호가 나오면서 깨달았습니다. 박형대 대령은 이 구조의 일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구조를 알고 있었고,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래서 강민호를 막고 있었습니다. 적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군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무서워서 침묵을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강민호는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 사람처럼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6장. 법정의 온도

오 월이 되었습니다.

서울의 봄은 이르게 왔지만, 법정 안은 계절이 없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 십이 민사부 법정. 형광등 빛이 흰 천장에 반사되어 낮고 차갑게 내려앉았습니다. 방청석은 반쯤 채워졌습니다. 이순임 씨가 맨 앞줄에 앉았습니다. 검은 상복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겨울 외투였습니다. 하지만 그 얼굴에는 계절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이 월부터 멈추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오른손에는 손수건이 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눈에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그냥 쥐고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이 무언가를 쥐는 방식으로.

법정 안의 공기는 묵직했습니다. 사람들의 숨소리가 모여 공기를 짓눌렀습니다. 판사가 들어서면서 모두 일어났고, 그 발소리가 법정 전체에 울렸습니다.


피고 측 변호인단은 세 명이었습니다. 모두 국방부 법무관실 출신. 오상준 변호사가 수석이었습니다. 그는 법정에 들어서면서도 여유가 있었습니다. 서류를 가볍게 들었고, 앉는 자세가 안정적이었습니다. 국가를 대리한다는 자신감이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공민희는 그 자신감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신감은 다른 종류라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오상준의 자신감은 규모와 시스템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공민희의 자신감은 진실에서 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쪽이 법정에서 더 강한지는, 법정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첫 기일에 피고 측은 간단한 답변서를 제출했습니다. 이재형 하사의 사망은 순찰 중 실족으로 인한 사고사이며, 군의 직무유기는 없었으며, 원고의 주장은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공민희는 그 답변서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반박 준비서면을 제출했습니다.

삼십 페이지짜리 서면이었습니다.


첫 번째 쟁점은 씨씨티브이 존재 여부였습니다.

피고 측은 해당 구역에 씨씨티브이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공민희는 강민호가 촬영한 카메라 케이스 사진과 볼트 제거 흔적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피고 측 변호인이 반박했습니다. 해당 케이스는 오래전에 철거된 장비의 잔재이며, 이재형 하사 사망 사건과 무관하다고.

판사가 물었습니다. 언제 철거되었습니까.

피고 측이 잠시 멈췄습니다. 그리고 답했습니다. 기록을 확인 중입니다.

판사가 말했습니다. 다음 기일까지 제출하십시오.

그 잠깐의 멈춤. 강민호는 방청석에서 그것을 봤습니다. 피고 측이 준비되지 않았다는 뜻이었습니다. 혹은 준비할 수 있는 답변이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두 번째 쟁점은 통신 기록이었습니다.

공민희가 제출한 증거는 통신 로그 삭제 흔적이었습니다. 강민호의 지인이 비공식적으로 확인해 준 내용을 기반으로, 포렌식 전문가에게 의뢰한 분석 보고서였습니다. 보고서는 이십이 사단 통신 시스템에서 이 월 열셋 자정 이후 두 시간 분량의 로그가 삭제된 흔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피고 측 변호인이 반박했습니다. 해당 분석은 공식 접근 권한 없이 수행된 것이므로 증거 능력이 없다고.

공민희가 반박했습니다. 분석의 방법론이 아니라 분석의 결과가 문제입니다. 로그 삭제 흔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피고 측이 부인한다면, 피고 측이 해당 시스템의 원본 로그를 제출하면 됩니다. 원본으로 삭제 흔적이 없음을 증명하면 그것으로 반박이 됩니다.

법정 안이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판사가 피고 측에 물었습니다. 원본 로그 제출이 가능합니까.

피고 측이 대답했습니다. 보안 자료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판사가 말했습니다. 보안 해제 요청 절차를 진행하십시오.

공민희는 서류를 내려놓으면서 아주 잠깐, 눈을 감았습니다.

이것이 싸움이었습니다.


세 번째 쟁점이 법정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습니다.

공민희가 이재형 하사 명의의 위조 서명 보험 계약서를 제출했을 때입니다. 법정 안이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이억 원 사망 보험. 수익자는 부대 공제회. 서명은 위조 의심. 그리고 보험 대리점 담당자 임성호와 한울 시스템즈 대표 정명석의 연결.

피고 측 수석 변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해당 보험은 이재형 하사가 자발적으로 가입한 것이며, 서명 불일치는 필체 변화의 자연스러운 범위 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공민희는 예상치 못한 카드를 꺼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피고 측에 추가 질문이 있습니다. 이 보험의 가입 시점은 이재형 하사 사망 사 개월 전입니다. 보험 계약 당시 이재형 하사는 어떤 경위로 이 보험에 가입하게 되었는지, 피고 측이 알고 있는 내용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상준이 잠시 멈췄습니다.

공민희가 계속했습니다. 부대 공제회가 수익자인 보험에 부대원 개인이 자발적으로 가입한다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이 가입 절차가 누구의 주도로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이순임 씨가 방청석에서 일어났습니다. 판사가 제지했습니다. 이순임 씨는 다시 앉았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두 손은 무릎 위에서 떨리고 있었습니다. 떨리는 손을 그녀는 서로 잡아 눌렀습니다. 손가락 관절이 하얘졌습니다.

공민희가 말했습니다. 필체 감정서를 추가 제출하겠습니다. 독립적인 두 명의 전문가가 동일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서명 일치율 삼십이 퍼센트. 이것은 동일인의 필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판사가 양측의 주장을 모두 기록에 올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보험 수익자 지정 경위에 대한 소명 자료를 제출하라고 피고 측에 명했습니다.

피고 측이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 침묵이 법정 안에 퍼졌습니다.


법정이 끝나고 공민희는 법원 복도에서 잠시 멈췄습니다.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오상준이었습니다. 그가 공민희 옆으로 왔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나란히 복도를 걸었습니다.

오상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랫동안 잘 해왔는데.

공민희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말했습니다. 지금도 잘 하고 있습니다.

오상준이 말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합니다.

공민희가 말했습니다. 복잡할수록 오래 파야 나옵니다.

두 사람은 복도 끝에서 방향이 달라졌습니다. 공민희는 왼쪽으로, 오상준은 오른쪽으로.


오 월의 법정을 오가면서, 강민호는 서울과 강원도를 수차례 왕복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수사관 신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상관의 경고를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언제 문제가 될지 몰랐습니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광산에서 죽었을 때, 국가는 사고라고 했습니다. 보상은 최소한이었습니다. 진상 조사는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뒤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평생을 고생했습니다. 강민호는 그 세월을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그래서 그는 알았습니다. 국가가 사고라고 말할 때 그것이 진짜 사고인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그것이 국가가 선택한 결론이라는 것을.

이재형 하사의 사건은 후자였습니다. 강민호는 확신했습니다.


네 번째 반전은 법정 밖에서 일어났습니다.

강민호가 이재형 하사의 군 병원 기록을 우회 경로로 입수했습니다. 이재형 하사는 사망 한 달 전, 부대 의무실을 방문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진단명은 수면 장애 및 불안 증세. 의무관의 소견에는 스트레스 관련 증상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의무 기록에는 이재형 하사의 자필 소견서가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군에서는 특정 증상의 경우 병사 본인이 증상 경위를 직접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이재형 하사는 그 소견서에 이렇게 썼습니다.

부대 내에서 알게 된 일들 때문에 잠을 못 자고 있습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 소견서는 공식 의무 기록에 첨부되어 있었지만, 공식 수사 과정에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사고사로 결론을 내리는 과정에서 이 소견서는 검토되지 않았습니다. 혹은 검토되었지만 무시되었습니다.

강민호는 그 소견서의 사본을 손에 들고 오래 서 있었습니다.

말하고 싶지만 말할 수 없는 상황.

이재형 하사는 살고 싶었습니다. 도망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었습니다.

그 사실이 강민호의 가슴을 눌렀습니다. 오래, 무겁게.


제7장. 마지막 증언

유 월이 됐습니다.

전찬우 중위는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습니다. 오른쪽 다리와 갈비뼈에 골절이 있었습니다. 뇌 충격 증상은 없었습니다.

강민호가 병실로 찾아갔습니다. 병실은 작았습니다. 침대 하나와 협탁 하나. 창문 너머로 병원 주차장이 보였습니다. 전찬우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강민호가 들어서자 그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습니다. 링거 수액이 천천히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규칙적이고 조용한 소리였습니다.

전찬우가 먼저 말했습니다. 제가 본 걸 법정에서 말하겠습니다.

강민호가 말했습니다. 보호 조치를 요청해 뒀습니다. 변호사도 알고 있습니다.

전찬우가 말했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때 말하지 못한 것이.

강민호가 의자를 당겨 앉았습니다.

전찬우가 말했습니다. 이재형 하사가 사망하기 열흘 전에, 저한테 뭔가를 줬습니다. 유에스비였습니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열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이 농담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숙소 서랍에 넣어뒀습니다.

강민호의 손이 무릎 위에서 조용히 굳었습니다.

전찬우가 말했습니다. 사고 이후에 숙소로 돌아가 열어봤습니다. 영상 파일 하나가 있었습니다. 부대 내부 어딘가를 찍은 영상이었습니다. 어두웠습니다. 하지만 사람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강민호가 물었습니다. 그 유에스비가 지금도 있습니까.

전찬우가 말했습니다. 병원 이송 전에 숙소로 돌아갔을 때 사라져 있었습니다.


강민호는 병실을 나왔습니다.

복도는 조용했습니다. 링거 수액이 천천히 떨어지는 소리, 간호사의 발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방송 소리. 그는 복도 끝 창문 앞에 서서 밖을 바라봤습니다. 병원 바깥의 유월 하늘은 맑았습니다. 구름이 없었습니다.

그 유에스비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가.

이재형 하사는 무엇을 알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죽었는가.

강민호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다섯 번째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

공민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처음 보는 번호였습니다. 받자마자 상대가 말했습니다. 오래 통화하기 어렵습니다. 녹음 파일이 있습니다.

공민희가 물었습니다. 누구십니까.

상대가 말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알게 됩니다. 지금은 파일을 먼저 보내겠습니다.

전화가 끊겼습니다. 삼십 초 뒤 이메일이 왔습니다. 첨부 파일이 하나였습니다.

공민희는 이어폰을 꽂고 파일을 열었습니다.

음성 파일이었습니다. 녹음 품질이 좋지 않았습니다. 바람 소리가 섞여 있었습니다. 실외에서, 아마도 차 안이나 건물 외부에서 녹음된 것 같았습니다.

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첫 번째 목소리가 말했습니다. 이 월 이후로 조용합니까.

두 번째 목소리가 말했습니다. 서류는 다 정리됐습니다. 보험도 처리 완료됐습니다.

첫 번째 목소리가 말했습니다. 그 중위는요. 혹시 아는 거 있지 않습니까.

두 번째 목소리가 말했습니다. 처리했습니다. 빙판길에서.

공민희는 이어폰을 뽑았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전찬우의 사고는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계획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행한 사람이, 지금 녹음 파일 속에서 자신의 입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강민호에게 전화했습니다. 손가락이 번호를 누를 때 약간 떨렸습니다.


녹음 파일의 발신자는 이틀 뒤에 정체를 밝혔습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이자 가장 큰 반전이었습니다.

발신자는 군사경찰단 수사과장 박형대 대령이었습니다.

강민호가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그는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강민호에게 사건에서 손을 떼라고 경고했던 그 사람. 명령이라는 말로 막아섰던 그 사람. 하지만 그가 두려움 때문에 침묵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강민호는 이미 감지했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결국 그를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습니다.

박형대 대령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녹음 파일을 공민희에게 보냈습니다. 그것은 이 월 이후 자신이 직접 수집한 자료였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이 구조의 일부로 움직이라는 압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전찬우 중위의 사고 소식을 들었을 때 결심이 바뀌었습니다. 자신은 침묵했지만, 그 침묵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것을 그때서야 실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진술서도 함께 보냈습니다.

강민호는 그 진술서를 읽으면서 아버지를 생각했습니다. 탄광에서 죽은 아버지. 그 죽음 뒤에도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침묵했던 사람들. 그들 모두가 박형대 같은 이유로 침묵했을 것입니다. 두려워서. 혹은 나 하나가 뭘 바꿀 수 있겠냐는 생각에서. 그래서 진실은 묻혔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금도 그 진실을 모릅니다.

강민호는 진술서를 접었습니다. 그리고 공민희에게 말했습니다. 이걸로 법정에서 싸울 수 있습니다.


공민희는 녹음 파일과 박형대 대령의 진술서를 법원에 추가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동시에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했습니다. 대상은 이십이 사단 부대 관계자 및 한울 시스템즈 관련 인물들이었습니다.

언론도 움직였습니다.

한 탐사보도 매체가 이 사건을 보도했습니다. 군 내부 비리와 의문사를 연결 짓는 기사였습니다. 기사가 나가자마자 국방부는 반론 보도를 요청했습니다. 사건은 수사 중이라 보도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뉴스는 퍼졌습니다.

이순임 씨의 얼굴이 화면에 나왔습니다. 카메라 앞에서 그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사진 한 장을 들었습니다. 아들의 사진. 군복을 입고 웃고 있는 사진.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세 번째 주요 반전이자, 법정 안에서 일어난 가장 큰 충격은 공민희 자신이 만들어낸 것이었습니다.

법정 기일이 다시 열렸습니다.

이번에는 전찬우 중위가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목발을 짚고 있었습니다. 법정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전찬우는 선서를 하고 증언석에 앉았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이 월 열셋 자정이 넘어서, 저는 당직 근무 중에 윤상기 원사가 이재형 하사와 함께 초소 정문을 나가는 것을 직접 봤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 윤상기 원사만 돌아왔습니다. 저는 그것을 부대장으로부터 덮으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피고 측 변호인이 즉각 일어났습니다. 반박 심문이 이어졌습니다. 날카로운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당신이 본 것이 착각일 수 있지 않습니까. 어두운 새벽이었는데 식별이 가능했습니까. 당신은 본 사건과 이해관계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당신 자신이 직접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그 충격으로 인해 기억이 왜곡되었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마지막 질문이었습니다. 그 충격으로 인해 기억이 왜곡되었을 가능성. 그것은 치밀한 공격이었습니다. 전찬우의 신체적 손상을 전찬우의 진술 신뢰성 훼손에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전찬우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목발을 짚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습니다. 저는 봤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 짧은 문장이 법정 안에 울렸습니다.

그리고 공민희가 일어났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증인의 기억이 왜곡되었는지 여부는, 본 법정에 추가로 제출된 녹음 파일과 비교하면 판단이 가능합니다. 녹음 파일 속 발화자는 이 월 이후 전찬우 중위를 처리했다고 직접 언급하고 있습니다. 처리의 대상이 된 인물이 증언석에 앉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인물은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이 법정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법정 안이 완전히 조용해졌습니다.

방청석에서 이순임 씨가 손수건으로 눈을 가렸습니다. 소리는 없었습니다. 눈물만 있었습니다.

공민희는 그 모습을 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보면 흔들릴 것 같았으므로. 그녀는 서류를 바라봤습니다. 손가락이 서류 모서리를 꽉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날 법정이 끝난 뒤, 또 하나의 진실이 드러났습니다.

윤상기 원사의 소재가 파악되었습니다. 이재형 하사 사망 이후 그는 전출되어 다른 부대에 근무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자, 그의 부대 동료 중 한 명이 익명으로 공민희에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윤상기 원사가 이 월 이후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라는 것이었습니다. 식사를 제대로 못 하고, 밤마다 잠을 못 자고, 혼자 중얼거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그가 부대 종교 시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시킨 것이었습니다.

그 말 한 마디.

강민호는 그 말을 전해 듣고 오래 눈을 감았습니다.

윤상기 원사. 그는 실행자였습니다. 그리고 실행을 지시한 사람이 따로 있었습니다. 그 위에 또 누군가가 있었습니다. 구조는 개인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일곱 번째 반전은 가장 조용하게, 그러나 가장 오래 여운을 남기는 방식으로 왔습니다.

이재형 하사가 사망하기 한 달 전, 그의 어머니 이순임 씨에게 문자 하나가 왔었습니다. 발신자는 이재형 하사였습니다. 새벽 두 시의 문자였습니다.

어머니, 저 나중에 무슨 일 생기면 이 번호로 연락하세요. 제 군대 친구 번호입니다.

이순임 씨는 그 문자를 받고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들이 걱정할까 봐 묻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죽은 뒤 그 번호를 잊고 있었습니다.

공민희가 이순임 씨의 휴대폰을 살펴보면서 그 문자를 발견했습니다.

번호로 연락을 했습니다.

받은 사람은 전역한 상병이었습니다. 이름은 최병준. 이재형 하사와 같은 분대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이재형 하사가 사망 이 주 전에 자신에게 파일 하나를 이메일로 보냈다고 했습니다. 무슨 파일인지 열어보지 말라고 했다고. 만약 재형이 형이 문제가 생기면 그때 열라고 했다고.

최병준은 이재형 하사가 죽었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봤다고 했습니다. 그때서야 이메일을 열었다고. 하지만 파일이 암호로 잠겨 있어 열지 못했다고.

공민희는 그 이메일을 포렌식 전문가에게 넘겼습니다.

암호는 이재형 하사의 생년월일이었습니다. 그것을 알아내는 데 하루가 걸렸습니다.

파일 안에는 이재형 하사가 직접 작성한 문서가 있었습니다. 날짜별 기록이었습니다. 그가 창고에서 목격한 것들. 훈련 장비가 실제로 사용되지 않으면서 사용된 것처럼 기록이 남겨지는 현장. 외부인이 창고를 드나드는 장면. 그 외부인 차량의 번호판.

번호판 번호.

강민호가 그 번호를 조회했습니다.

차량은 임성호 명의였습니다. 보험 대리점 담당자. 한울 시스템즈 대표 정명석의 골프 동호회 회원.

원이 완성되었습니다.


제8장. 눈 내리는 길

판결 선고 기일은 십이 월 중순으로 잡혔습니다.

그 사이 여러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검찰은 윤상기 원사를 피의자로 소환했습니다. 방산 비리 의혹과 관련된 중령 계급의 인물도 내사에 착수했습니다. 한울 시스템즈 대표 정명석은 자진 출두하여 일부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군 계약 청탁과 예산 조작에 연루되었다는 것. 그러나 이재형 하사의 사망과의 직접적 연관성은 부인했습니다.

임성호는 잠적했습니다. 출국 금지가 내려졌지만, 그전에 이미 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나라인지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수사는 느리게 진행되었습니다. 군 조직은 협조를 최소화했습니다. 자료 제출 요구마다 시간이 걸렸습니다. 군 특성상 수사 기관의 접근도 제한적이었습니다.

강민호는 이 과정을 지켜보며 이를 악물었습니다.


강민호는 결국 수사관직을 사퇴했습니다.

더 이상 군 내부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이미 얻었고, 이제는 법정 바깥에서 공민희를 돕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사직서를 제출하던 날, 수사과장 박형대 대령은 이미 자진 진술로 인해 직위 해제된 상태였습니다. 새로 온 과장은 강민호를 별로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서랍 안에 있던 사직서를 꺼내 최종 제출하면서, 그는 삼 년 전 처음 이 책상에 앉았을 때를 생각했습니다. 좌천된 수사관. 끝자리 책상. 깜빡이는 형광등.

그 형광등은 지금도 깜빡이고 있을 것입니다.

강민호는 건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강원도의 십이 월 공기가 폐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차가웠습니다. 그래도 숨이 쉬어졌습니다.


박형대 대령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는 자진 진술 이후 직위 해제되었고, 내부 감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사전에 이 구조를 인지하고도 방조했다는 혐의였습니다. 그는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가담은 부인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알면서 침묵했습니다.

결국 그는 감봉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조기 전역했습니다.

퇴임식은 없었습니다.

강민호는 그 소식을 들었습니다. 복잡한 감정이었습니다. 박형대 대령이 결국 한 발자국을 내디뎠습니다. 늦었지만. 그 한 발자국이 이 사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한 발자국 이전에 얼마나 오래 침묵했는가도 사실이었습니다.

강민호는 그 복잡함을 정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복잡한 것은 복잡한 채로 두는 것이 더 정직할 때가 있었습니다.


십이 월의 서울은 겨울이었습니다.

법원 앞 광장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이 사건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된 시민들. 유사한 경험을 가진 다른 유족들. 군 인권 단체 관계자들. 그들은 각자의 손에 피켓을 들었습니다. 내용은 달랐지만 핵심은 하나였습니다. 진실을 밝혀라.

광장 한쪽에는 이재형 하사의 사진이 담긴 현수막이 있었습니다. 신분증 사진 속의 그 웃는 얼굴. 그 얼굴이 십이 월의 찬 공기 속에서 법원 건물 앞에 걸려 있었습니다.

공민희는 법원 앞 계단을 올랐습니다. 코트 깃을 올렸습니다. 바람이 차가웠습니다.

강민호가 옆에 섰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공민희가 말했습니다. 오늘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강민호가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자리까지 온 것은 맞습니다.

공민희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법원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판결문 낭독은 오전 열 시에 시작되었습니다.

법정 안은 가득 찼습니다. 방청석에 이순임 씨가 앉았습니다. 그녀 옆에는 이재형 하사의 누나가 앉았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습니다. 눈이 아주 깊었습니다. 아들을 닮아 있었습니다.

판사가 판결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법원은 다음과 같이 판단합니다.

피고 대한민국은 이재형 하사의 사망 원인에 대한 충분한 조사를 수행하지 않았으며, 관련 자료의 보전 및 제출 과정에서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로 인해 원고가 적절한 진상 규명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었습니다.

국가는 이재형 하사 유족에게 위자료로 삼천오백만 원을 지급하라.

법정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순임 씨가 눈을 감았습니다. 옆에 앉은 딸이 그녀의 손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판결문에는 또한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이재형 하사의 사망 원인이 타인의 행위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현재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입증이 불충분하여 해당 부분 청구는 기각합니다.

공민희는 그 부분을 읽으면서 펜을 내려놓았습니다.

기각.

타인에 의한 사망. 즉, 살인의 가능성. 그것은 입증되지 못했습니다.


법원 앞 계단으로 나왔을 때, 기자들이 모였습니다.

이순임 씨는 기자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하지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아들이 왜 죽었는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돈이 필요해서 온 것이 아닙니다. 진실이 필요했습니다. 재판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진실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습니다. 이 월의 하늘처럼 하얗게.


판결이 나고 나서 이 주일 뒤.

언론에 또 다른 기사가 났습니다.

이재형 하사 사건을 계기로 비슷한 의문사를 겪은 다른 유족들이 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삼 개의 가족. 다른 시기, 다른 부대, 다른 이름. 하지만 구조는 닮아 있었습니다. 사고사. 빠른 처리. 조용한 합의 압박.

공민희의 사무실로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사흘 동안 열두 통.

그녀는 전화를 하나씩 받았습니다. 노트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날짜를 적었습니다. 부대명을 적었습니다.

노트가 반 페이지 채워질 때쯤, 그녀는 노트를 잠시 내려놓았습니다.

너무 많았습니다.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이재형 하사가 유일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구조는 오래되었고, 반복되었고, 그 반복 속에서 이름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녀는 다시 노트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이름을 받아 적었습니다.


검찰 수사는 느리게 이어졌습니다.

윤상기 원사는 결국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고의적 살인이 아닌, 과실에 의한 사망. 그것이 검찰이 입증할 수 있는 최대치였습니다. 영상 속 중령급 인물의 신원은 특정되지 않았습니다. 음성 분석도 결정적 증거가 되지 못했습니다. 방산 비리 수사는 진행 중이었지만, 이재형 하사의 죽음과 직접 연결 짓는 증거 고리는 끊겨 있었습니다.

임성호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구조는 드러났지만, 구조의 최상단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민희는 그 사실 앞에서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분노가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분노가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았습니다. 법은 모든 것을 밝힐 수 없었습니다. 법이 닿지 않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법 말고는 그녀가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이 년 뒤.

공민희는 국가배상 항소심에서 위자료 액수를 일억 이천만 원으로 증액 받았습니다. 법원은 군의 불성실한 자료 제출과 조직적 은폐 시도를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사망 원인에 대한 형사 책임은 여전히 윤상기 원사 개인에게만 귀속되었습니다. 그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이순임 씨는 선고 날 법정에 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강릉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아들의 기일을 지켰습니다. 혼자였습니다. 밥 한 그릇을 차렸습니다. 아들이 좋아하던 명태찌개였습니다. 찌개에서 김이 올라왔습니다. 김은 조용히 퍼지다가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자리를 차려 놓고 오래 앉았습니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곁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고, 동시에 그녀가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였습니다.


강민호는 수사관을 그만둔 뒤 공민희 법률사무소의 조사 보조원으로 일했습니다. 정식 직책도 아니었고 급여도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 일이 맞았습니다.

마포구의 낡은 건물 사 층.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 깔깔거리는 리놀륨 바닥. 형광등이 때로 깜빡이는 사무실. 그 공간에서 그는 매일 출근했습니다. 사건 자료를 정리하고, 현장을 조사하고, 증인을 추적했습니다.

어느 날 공민희가 물었습니다. 후회합니까.

강민호가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느낌은 있습니다.

공민희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생각이 같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았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삼 년이 지난 겨울.

강민호는 현충원에 혼자 갔습니다.

이재형 하사의 묘는 현충원 군인 묘역 끝자락에 있었습니다. 작은 비석. 비석 위에 이름과 계급과 생몰 연도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강민호는 비석 앞에 섰습니다.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이 비석 위에 쌓였습니다. 강민호는 손장갑을 벗고 비석 위의 눈을 천천히 털어냈습니다. 차가웠습니다. 비석 돌의 차가움이 손바닥을 통해 팔까지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장갑을 다시 끼지 않았습니다. 그 차가움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는 오래 서 있었습니다.

멀리 현충원 정문 쪽에서 군악대의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습니다. 어느 다른 묘역에서 추모식이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소리는 바람에 섞여 흩어졌습니다. 완전히 사라지지도, 완전히 들리지도 않는 그 소리가 겨울 공기 속을 떠돌았습니다.

강민호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하얀 하늘이었습니다. 구름과 눈이 구분되지 않는, 그냥 하얀 하늘이었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 나라는 당신에게 제복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그 제복 안에서 무언가를 알게 됐을 때, 당신을 산 아래로 밀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제복으로 당신을 덮었습니다.

침묵의 제복으로.

당신은 말하고 싶었습니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택했습니다. 유에스비를 건넸습니다. 파일을 이메일로 보냈습니다. 목사에게 전화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번호를 문자로 남겼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손을 뻗었습니다.

그 손들이 결국 이 자리까지 닿았습니다.

늦었습니다. 하지만 닿았습니다.

강민호는 장갑을 다시 꼈습니다. 천천히 몸을 돌렸습니다.


현충원을 나서면서 그는 입구 쪽에서 누군가와 마주쳤습니다.

공민희였습니다.

그녀도 혼자였습니다. 코트 깃이 올라가 있었습니다. 손에는 작은 국화 한 다발이 들려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습니다.

말이 없었습니다.

공민희가 먼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강민호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출구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눈이 내렸습니다.


이 사건이 언론에 본격 보도된 이후, 사회적 파장은 예상보다 컸습니다.

국회에서는 군 내부 사망 사고 처리 절차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되었습니다. 의원 열여덟 명이 공동 발의했습니다. 군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위원회 설치를 요구하는 청원에는 십삼만 명이 서명했습니다. 국방부는 공식 입장 발표를 세 번 연기했습니다.

하지만 법은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청원은 청원으로 남았습니다. 법률 개정안은 상임위원회에서 계류되었습니다. 특별위원회는 구성되지 않았습니다.

강민호는 그 경과를 신문 기사로 확인했습니다. 읽다가 기사를 접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사건 파일을 열었습니다.


공민희는 이재형 하사 사건이 마무리된 뒤에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사무실은 여전히 마포구 낡은 건물 사 층이었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없었습니다. 형광등은 여전히 깜빡였습니다.

다만 한 가지가 달라졌습니다.

오빠의 사진이 서랍에서 나왔습니다.

그녀는 책상 한쪽 구석에 오빠의 사진을 세워뒀습니다. 작은 사진이었습니다. 군복을 입은 스물두 살의 오빠. 웃고 있는 얼굴.

그녀는 매일 아침 그 사진을 보며 출근했습니다.

오빠에게 아직 해야 할 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계속 싸우는 것으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

국가는 오늘도 침묵합니다.

그 침묵은 산에서 내려오는 바람처럼, 아무 이유 없이 차갑습니다. 하지만 이유가 없는 차가움은 없습니다. 바람은 어딘가에서 불어오고, 침묵은 누군가가 선택한 것입니다.

이재형 하사는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 말은 유에스비 안에 있었고, 이메일 속에 있었고,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 속에 있었고, 교회 목사와 나눈 새벽 전화 속에 있었습니다. 그 말들이 흩어져 있다가, 결국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구조 전체를 바꾸지는 못했습니다. 처벌은 부분적이었고, 진실은 일부만 밝혀졌고, 가장 높은 곳에 있던 손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름을. 그 얼굴을. 그 겨울을.

우리가 그 침묵의 이름을 알게 되는 날.

그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재형 하사가 새벽에 목사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처럼, 손을 뻗는 사람이 있는 한, 그날은 오고 있습니다.

언제나 그렇게, 아주 천천히.


《침묵의 제복》 확장 완전판 완


작품 후기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부대명, 사건은 완전한 창작입니다. 특정 실존 사건이나 인물을 묘사하거나 재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이야기가 담고 있는 질문, 즉 국가는 개인의 죽음 앞에서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가, 그리고 침묵은 누구를 지키는가 하는 질문은, 여전히 이 사회가 마주해야 할 현실입니다.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모든 이름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