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러시아. 광활한 설원과 귀족의 저택, 그리고 그 안에 웅크린 인간의 욕망. 레프 톨스토이는 그 시대 러시아 문학의 거인이었습니다.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했던 그가, 말년에 이르러 가장 어둡고 도발적인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 시대 러시아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습니다. 귀족 사회의 낡은 질서와 근대의 거센 바람이 충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결혼은 신성한 제도였고, 정절은 여성에게 부과된 가장 무거운 의무였습니다. 남성의 욕망은 묵인되었으나 여성의 자유는 철저히 통제되었습니다. 그 위선의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사랑을 이야기했고, 동시에 서로를 옭아맸습니다.
1889년, 《크로이체르 소나타》가 처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러시아 황실은 이 작품의 출판을 금지했습니다. 결혼 제도와 성적 욕망을 정면으로 해부하는 이 소설은, 당시 사회의 도덕적 근간을 흔드는 폭탄과 같았습니다. 아내를 살해한 한 남자의 고백. 그것이 이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단순한 살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랑이 집착으로, 집착이 광기로, 광기가 파멸로 이어지는 인간 심리의 해부도입니다. 질투라는 감정이 어떻게 한 인간의 이성을 서서히 갉아먹는지, 그 치밀하고 잔인한 과정을 톨스토이는 주인공 포즈드니셰프의 입을 통해 낱낱이 드러냅니다.
지금 당신이 들으실 이야기는 기차 안에서 시작됩니다. 한 낯선 남자의 고백. 그리고 그 고백 속에 숨겨진 어둠. 준비가 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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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기차 안의 낯선 고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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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밤, 모스크바발 남행 열차가 어둠 속을 가르고 있었습니다. 기관차의 연기가 뒤로 길게 흩어지고, 바퀴가 철로 위에서 내는 규칙적인 소리가 어둠 속에 박자를 새겼습니다. 객차 안에는 희뿌연 등불이 흔들리고, 승객들은 저마다의 피로와 졸음을 껴안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창밖으로는 끝없는 눈벌판이 펼쳐져 있었고, 그 흰 공백은 마치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겠다는 침묵처럼 보였습니다.
천장에 매달린 등불은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함께 흔들렸습니다. 그 불빛이 승객들의 얼굴 위로 흔들리는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어떤 얼굴은 졸음 속에 무너지고, 어떤 얼굴은 창밖의 어둠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좌석의 낡은 벨벳 천에서는 오래된 먼지와 양초 기름 냄새가 났습니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기침을 했고, 그 소리가 객차 전체에 울렸다가 사라졌습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그 기차 안의 한 승객입니다. 그는 맞은편 칸에 앉은 중년 남자에게 처음부터 묘한 시선을 느꼈습니다. 회색빛 눈동자, 뾰족한 코, 그리고 무언가를 억누르는 듯 꽉 다문 입술. 그 남자는 이따금 창밖을 바라보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결혼과 사랑에 대해 나누는 대화가 그 남자의 귓속으로 스며들었고, 그때마다 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습니다.
그 흔들림은 아주 작은 것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파문. 그러나 오래 그를 바라보던 이야기의 전달자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남자의 손이 무릎 위에 놓여 있었는데, 가끔씩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마치 말을 삼키려 하다가 삼키지 못하는 사람처럼. 혹은 오래 참아온 무언가가 이제 막 표면으로 올라오려는 사람처럼.
객차 안에서는 어느 부인과 변호사가 이혼 문제를 놓고 가벼운 토론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여성의 권리, 결혼의 의미, 현대 사회에서 부부란 무엇인가. 그 대화는 지적이고 세련된 척했지만, 어딘가 공허한 울림을 담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삶에서 건져 올린 진실이 아니라, 머리 속에서 빌려 온 언어들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그 남자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짧고 낮은 목소리였지만, 그 한마디는 객차 안의 공기를 순식간에 얼려 버리는 힘이 있었습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느냐, 아니면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에게 거는 가장 오래된 최면인가. 그 물음은 질문이라기보다 선언에 가까웠습니다. 오랜 시간을 혼자 품고 있다가 마침내 밖으로 꺼낸 결론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습니다. 그는 불편한 관심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마지못해, 오래 참아온 무언가를 드디어 뱉어내는 사람처럼 느릿느릿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의 시선은 대화 상대를 향하지 않았습니다. 창밖의 어둠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혹은 그 어둠 너머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은 포즈드니셰프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였습니다. 아내를 죽인 남자라고.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그 무죄가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진짜 죄는 법정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객차 안에 침묵이 흘렀습니다. 누군가 헛기침을 했습니다. 부인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습니다. 변호사는 손 안의 서류를 다시 펼쳤지만, 눈은 글자 위를 헛돌고 있었습니다. 객차 한켠에 앉아 있던 노인은 담배 파이프를 내려놓고 그 남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어머니의 소매를 잡아당겼지만, 어머니는 아이를 달래면서도 그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과거라는 이름의 밀실 안에. 그 방의 문은 오래전에 안으로 잠겼고, 그는 여전히 그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그에게는 닿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닿아도 더 이상 의미가 없게 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침묵을 선택하는 단계는 이미 오래전에 지나쳐 버린 사람.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포즈드니셰프 옆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작은 등불 하나가 놓여 있었고, 그 불빛은 고백자의 얼굴을 절반은 환하게, 절반은 어둡게 물들였습니다. 밝은 쪽의 얼굴은 그저 평범한 중년 남자의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두운 쪽의 얼굴에는 무언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름 붙이기 어려운 무언가가.
고백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기차가 흔들릴 때마다 그의 목소리도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번 열린 문은 다시 닫히지 않는 법이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이야기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처음이란 자신이 결혼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아내를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자신을 이끌어 왔는지였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감은 채로 조용히 숨을 들이켰습니다. 마치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그 기억의 냄새를 다시 맡아보는 것처럼. 혹은 그 기억의 무게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것처럼. 그 잠깐의 침묵 속에서, 객차 안의 다른 소리들이 갑자기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철로 위를 달리는 바퀴 소리. 창틀이 진동하는 소리. 누군가의 느린 숨소리.
열차는 계속 달렸습니다. 창밖의 눈벌판은 아무것도 반사하지 않는 거울처럼 고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고요 속으로, 포즈드니셰프의 고백이 천천히 스며들어 갔습니다.
당신도 들으시겠습니까. 이 이야기의 끝을 이미 알고 있더라도. 끝을 알면서 듣는 것이 때로는 더 무섭습니다. 왜냐하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그래서 어느 순간에 멈출 수 있었는지를, 우리는 너무 또렷이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어느 순간이 언제였는지를 생각하면서 듣는 것. 그것이 이 이야기를 듣는 방법입니다. 단순히 한 남자의 비극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 안의 포즈드니셰프를 만나는 것. 그것이 톨스토이가 이 고백을 우리에게 건네는 진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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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젊음의 방종과 결혼이라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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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드니셰프는 귀족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넉넉한 재산, 좋은 교육, 그리고 사회가 인정하는 지위. 겉으로 보기에 그는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모스크바의 번화한 거리를 걷는 그의 뒷모습에는 타인이 쉽게 넘보지 못하는 어떤 무게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재산의 무게이기도 했고, 집안 이름의 무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주 오랫동안 그 무게가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이면에는 청년 시절부터 쌓아온 어두운 습관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밤은 길었고, 귀족 청년들에게 허용된 방탕의 범위는 넓었습니다. 사교 클럽, 은밀한 뒷골목, 돈으로 살 수 있는 친밀함. 그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성인의 통과의례처럼 여겨졌습니다. 주변의 어른들은 눈을 감았고, 동료들은 서로를 부추겼습니다.
그는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젊었을 때, 여자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당시 귀족 사회에서 청년들의 방탕한 생활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습니다. 여자는 쾌락의 대상이었고, 그 쾌락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도 그 물결 속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휩쓸렸습니다. 아니, 죄의식이 없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죄의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앎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는 기술이 그에게는 이미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을 회상할 때, 포즈드니셰프의 목소리는 묘하게 중립적이었습니다. 자책도 아니었고, 변명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사실을 나열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 중립성이야말로 오히려 더 서늘하게 느껴졌습니다. 스스로의 과거를 이미 충분히 들여다본 사람, 그래서 더 이상 새롭게 놀라지 않는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활을 하면서도, 그는 결혼에 대해서는 다른 이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랑. 영혼이 맞닿는 교감. 육체를 넘어선 정신적 합일. 그 이상은 그가 방탕하게 살수록 오히려 더 강렬하게 그를 붙들었습니다. 자신이 더럽힌 것들에 대한 보상심리였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인간이 욕망을 채울수록 더 큰 공허를 느끼듯, 그 공허를 메우기 위한 환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 환상은 구체적인 모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깨끗하고 순수한 여자. 자신의 과거를 알지 못하는 여자. 아니, 알더라도 용서해 줄 수 있는 여자. 그리고 그 여자와 함께 만들어 가는 새로운 삶. 그 삶 속에서 자신은 달라질 것이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었습니다. 결혼이 그를 구원해 줄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믿었던 환상이었습니다.
인간이 구원을 타인에게서 찾을 때, 그 타인은 얼마나 무거운 짐을 지게 되는 것인지를, 그는 그때 알지 못했습니다.
그가 미래의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모스크바의 한 사교 모임에서였습니다. 봄이 막 시작되던 무렵이었습니다. 살롱의 넓은 방에는 촛불이 켜져 있었고, 봄 저녁의 차가운 공기가 열린 창문 사이로 스며들었습니다. 꽃향기와 향수 냄새와 왁스 냄새가 뒤섞인 그 공간에서, 그녀는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이 대본에서 끝까지 밝혀지지 않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그녀를 그저 아내라고 불렀습니다. 마치 그녀의 고유한 이름보다 그와의 관계가 그녀를 정의하는 것처럼. 그 호칭 자체가 이미 그가 그녀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드러냅니다. 그녀는 처음부터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그와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녀는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포즈드니셰프에게 더 깊은 인상을 준 것은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었습니다. 건반 위를 흐르는 손가락, 눈을 살짝 감고 음악 속으로 잠기는 표정, 그리고 그 순간만큼은 세상 모든 것을 잊은 듯한 집중. 포즈드니셰프는 그 모습에서 자신이 오래 찾아온 무언가를 본 것 같았습니다. 순수함이었습니다. 자신이 이미 잃어버린 것. 자신이 갖지 못한 것.
그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렀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욕망이었습니다. 다만 아름다운 포장지 안에 담긴 욕망이었을 뿐입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자신이 갖지 못한 무언가를 소유하려는 충동이었습니다. 그 무언가가 그녀의 음악 속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녀와 함께하면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포장지를 벗기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주 많은 시간이.
약혼 기간 동안 두 사람은 행복했습니다. 아니, 포즈드니셰프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녀는 그에게 피아노를 쳐 주었고, 그는 그 음악 속에서 자신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여자와 함께라면, 자신의 지난 방탕한 삶을 씻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 시절, 포즈드니셰프의 하루는 그녀를 만나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녀의 집 앞에서 기다리던 오후들. 함께 산책을 하던 저녁들. 그녀가 피아노를 치는 동안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그 시간들. 그것들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기억했습니다. 심지어 지금 이 기차 안에서도, 그 기억들이 통증처럼 떠올랐습니다. 한때 아름다웠던 것들이 나중에 무기가 된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식 직전, 처음으로 균열의 징후가 나타났습니다. 그녀에게 자신의 과거를 고백했을 때였습니다. 그 고백은 진심이었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여자들과 얼마나 추잡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는지. 그것이 자신의 솔직함의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출발 앞에서 모든 것을 털어내는 행위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그 고백을 하던 밤을 정확히 기억했습니다. 살롱의 작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촛불이 두 사람 사이 탁자 위에서 타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손이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는 그 손을 바라보면서 말을 했습니다. 처음에 그 손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손가락들이 천천히 오므라들었습니다. 고통이나 분노의 몸짓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는, 본능적인 움츠림이었습니다.
그녀는 울었습니다. 그리고 용서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그 용서가 진정한 사랑의 증거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순간부터 그녀의 마음 한켠에 무언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작고 차가운 돌멩이처럼. 그 돌멩이가 나중에 무엇으로 자라날지, 두 사람 모두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용서했다고 생각하지만, 몸이 기억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슴 깊은 곳이 기억하는 것들이. 그것들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단지 잠들어 있을 뿐입니다.
결혼식 날, 포즈드니셰프는 신부의 손을 잡으며 생각했습니다. 이제 시작이라고. 새로운 삶의 문 앞에 서 있다고. 그 문 너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교회의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하얀 촛불들이 흔들렸습니다. 그녀의 얼굴은 베일 뒤에서 창백하고 아름다웠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그 얼굴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인지, 그는 지금도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이 원하는 것만 봅니다.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눈앞에 있어도 보이지 않습니다. 포즈드니셰프도 그랬습니다. 그는 그녀의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녀의 음악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본질적인 낯섦은 보지 못했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빛이 그 낯섦을 덮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빛이 꺼지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리고 빛이 꺼진 자리에는 언제나 이전보다 더 짙은 어둠이 찾아오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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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허니문이 끝나고 — 진짜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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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초기의 행복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를 포즈드니셰프는 냉소적으로 묘사했습니다. 사흘이었다고 했습니다. 그가 처음으로 진정한 불편함을 느끼기까지. 물론 그것은 아직 불화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사소한 마찰. 생활 방식의 차이. 아침 식사를 먹는 방법, 실내 온도에 대한 취향, 잠드는 시간. 그런 것들이 처음으로 두 사람 사이에 잔잔한 파문을 만들었습니다.
신혼 살림을 차린 모스크바의 집은 크고 밝았습니다. 넓은 창문으로 아침 햇빛이 들어왔고, 새로 들인 가구들은 아직 냄새가 났습니다. 그 집은 모든 것이 새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삶도 그 집처럼 새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새것은 오래 새것으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매일 사용되면서 낡아갑니다. 그것이 삶이고, 그것이 결혼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불편함을 느낀 것은 아주 작은 일에서였습니다. 그녀가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이 그보다 한 시간가량 늦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일찍 일어나서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조용한 이른 아침의 그 시간이 그에게는 하루를 시작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늦게까지 잠자리에 머물렀습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와 달랐습니다. 그 다름이,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다름은 쌓였습니다. 실내 온도에 대한 취향도 달랐습니다. 그녀는 따뜻한 것을 좋아했고, 그는 서늘한 공기를 선호했습니다. 식사의 취향도 달랐습니다. 그녀는 달고 풍성한 것을 좋아했고, 그는 간단하고 담백한 것을 원했습니다. 이것들 하나하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함께 쌓이면, 그것들은 두 사람이 서로 얼마나 다른 사람인가를 매일매일 상기시키는 증거가 됩니다.
하지만 포즈드니셰프가 더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은 그런 일상적 차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과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당연한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당연한 사실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연애 시절, 두 사람은 서로를 이상화했습니다.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덧칠해서 보았습니다. 그 덧칠이 벗겨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과정은 느렸습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마치 안개가 천천히 걷히듯, 조금씩 조금씩 실체가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그 실체는 포즈드니셰프가 기대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자신의 환상을 완성시켜 줄 누군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독립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내는 강한 여자였습니다. 의견이 분명했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처음에 그것을 매력으로 느꼈습니다. 그러나 결혼 후에는 그것이 도전으로 다가왔습니다. 자신의 말에 순순히 따르지 않는 아내, 자신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반론을 제기하는 아내. 그는 그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억압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억압의 시도가 그녀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 강하게 맞서는 사람으로.
첫 번째 큰 싸움이 언제였는지를 그는 정확히 기억했습니다. 결혼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원인은 사소했습니다. 너무 사소해서 그가 기차 안에서 그 내용을 말하면서도 스스로 부끄러워했습니다. 요리사를 해고하는 문제였습니다. 아내는 그 요리사가 마음에 든다고 했고, 포즈드니셰프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그 문제를 놓고 주고받은 말들은 요리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 말들은 각자의 두려움에서 나왔습니다. 내가 이 관계에서 진정으로 존중받고 있는가. 나의 의견이 이 집에서 의미를 가지는가. 나는 이 사람에게 어떤 존재인가. 그런 두려움들이 요리사라는 작은 문제 위에 폭발한 것이었습니다.
그날의 싸움은 오래 지속되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목소리를 높였고, 아내는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 눈물이 포즈드니셰프를 멈추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눈물이 그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잘못했다는 죄책감과, 그 죄책감을 느끼게 만든 그녀에 대한 묘한 반감이 뒤섞였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이렇게 복잡합니다. 논리로 정리되지 않습니다.
싸움이 끝난 뒤, 두 사람은 화해했습니다. 그 화해는 달콤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그때의 화해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다시 열병 환자가 된 것 같았다고. 싸움과 화해가 만들어 내는 강렬한 감정의 진동이, 그것이 사랑의 증거라고 착각했다고. 그러나 그것은 사랑의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이미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건강한 의존이 아니라, 서로를 아프게 함으로써만 확인할 수 있는 종류의 의존.
그 패턴은 반복되었습니다. 싸움, 화해, 잠시의 평온, 그리고 다시 싸움. 파도처럼. 파도는 언제나 다시 밀려오고, 그 높이는 점점 높아졌습니다. 평온의 기간은 점점 짧아졌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첫째, 둘째, 셋째. 아이들이 생기자 두 사람의 관계는 더 복잡해졌습니다. 아이의 양육을 둘러싼 의견 차이. 수유 방법, 교육 방식, 훈육의 정도. 그것들 하나하나가 싸움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태어나면서 또 다른 변화도 찾아왔습니다. 아내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포즈드니셰프를 향하던 그 집중과 에너지가, 이제는 아이들에게로 옮겨갔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이는 돌봄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고, 어머니는 그 돌봄을 본능적으로 수행합니다. 그러나 포즈드니셰프는 그 자연스러운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는 소외감을 느꼈습니다. 그 소외감을 인정하기가 싫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아내의 주의를 독차지하고 싶어하는 작고 유치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는 다른 방식으로 그 감정을 표현했습니다. 아내의 양육 방식을 비판하는 것으로. 아이에게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것으로. 자신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으로.
그것이 관계를 더 날카롭게 갈라놓았습니다. 아이라는 존재는 두 사람을 하나로 묶는 대신, 두 사람이 서로에게 쏟아낼 비판의 영역을 두 배로 늘려 주었습니다. 아이에 대한 의견 차이는 상대방의 인격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겨울 저녁의 기억을 그는 특별히 언급했습니다. 셋째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아내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고, 포즈드니셰프는 서재에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난로에 불이 피워져 있었고, 창밖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그 장면은 표면적으로 평화로웠습니다. 그러나 그 평화는 각자의 분리된 세계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같은 집 안에 있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닿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그날 밤 서재에서 혼자 긴 시간을 보내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결혼에 대해서였습니다. 자신이 기대했던 것과 실제 자신이 살고 있는 것 사이의 간격에 대해서였습니다. 그 간격은 해가 갈수록 넓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간격을 어떻게 좁힐 수 있는지,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그 모든 싸움과 상처 속에서도 두 사람이 서로를 놓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랑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습관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서로를 아프게 함으로써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되어버린 것이었을까요.
포즈드니셰프는 그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그 이야기 속에는 한 사람이 더 등장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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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트루카체프스키 — 음악이라는 이름의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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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은 트루카체프스키였습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이는 포즈드니셰프보다 몇 살 아래였고, 외모는 상당히 빼어났습니다. 넓은 어깨와 가는 손가락, 그리고 음악을 할 때 특유의 몰입하는 표정. 사교 모임에서 여자들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어모으는 그런 유형의 남자였습니다.
그러나 포즈드니셰프가 처음 그를 보았을 때, 특별한 경계심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 사교계에 드나드는 여러 사람 중의 하나로 보았습니다. 그가 위험한 존재라고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인의 집에서 열린 저녁 모임이었습니다. 트루카체프스키는 그 자리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포즈드니셰프의 아내는 피아노 반주를 맡았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음악을 만들어 낸 순간이었습니다.
그 저녁의 공간을 포즈드니셰프는 세밀하게 기억했습니다. 높은 천장, 흰 벽에 걸린 촛불 샹들리에, 창가에 드리워진 짙은 커튼, 그리고 방 한쪽에 놓인 그랜드 피아노. 손님들은 반원 모양으로 의자를 배치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연주가 시작되기 전의 그 잠깐, 공간이 조용해지면서 모든 것이 집중되는 그 순간. 아내는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펼쳤습니다. 트루카체프스키는 바이올린을 들고 그 옆에 섰습니다. 두 사람은 짧게 눈을 맞추었습니다. 연주자들이 시작 전에 늘 그렇게 하듯이.
포즈드니셰프는 그 눈맞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무것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연주는 아름다웠습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서로를 부르고 응답하는 그 교환은, 마치 두 개의 서로 다른 언어가 만나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 같았습니다. 트루카체프스키의 활이 현 위를 달릴 때, 소리는 방 안의 공기를 가로질러 모든 사람의 가슴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소리는 호소하는 것 같기도 했고, 위로하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연주가 끝난 뒤, 포즈드니셰프는 아내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녀는 활기차 보였습니다. 눈에 빛이 돌았고, 볼에 혈색이 돌았습니다. 트루카체프스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그 웃음은 오래전 포즈드니셰프를 향했던 웃음처럼 보였습니다. 아주 오래전,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웃음.
그는 그 비교를 의식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든 것이었습니다. 찰나였습니다. 그러나 그 찰나가 그의 안에 박혔습니다. 바늘처럼 가늘고 날카롭게.
포즈드니셰프는 그 순간 자신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불쾌함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날카로웠고, 분노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이름을 붙일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그것에 이름을 붙인다면, 그것은 질투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는 그 이름을 피하려 했습니다. 왜냐하면 질투를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아내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그것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우려라고. 걱정이라고. 그 남자가 상당히 경박해 보인다고. 여자들에게 너무 친절하게 구는 것 같다고. 그는 합리적인 이유를 찾아내서 자신의 감정을 포장했습니다. 그 포장은 겉으로 보기에 그럴듯했습니다. 심지어 스스로도 잠깐은 믿었습니다.
귀가하는 마차 안에서 아내는 오늘 연주가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트루카체프스키가 정말 뛰어난 연주자라고. 포즈드니셰프는 짧게 동의했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동의 뒤에,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달리는 마차 창밖으로 모스크바의 밤거리가 흘러갔습니다. 가로등 불빛이 번쩍이다 사라졌습니다. 그 빛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지만, 그는 실제로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서 그날 저녁의 장면들이 다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트루카체프스키가 그들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아내가 초대했습니다. 함께 연습을 하고 싶다고. 포즈드니셰프는 그 초대를 알고 있었고, 동의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동의는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거절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에 동의한 것이었습니다. 명분 없는 거절은 자신의 의심을 드러내는 것이었고, 그 의심을 드러내는 것은 패배처럼 느껴졌습니다.
트루카체프스키가 집에 들어섰을 때, 포즈드니셰프는 현관에서 그를 맞았습니다. 악수를 했습니다. 그 손의 온도를, 그 악수의 힘을, 그는 기억했습니다. 그 기억이 무언가를 의미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억했습니다. 이미 의식이 이 남자를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연습은 오후에 시작되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서재에 앉아 책을 읽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읽혀지지 않았습니다. 아래층 응접실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 소리와 피아노 소리가 책의 문장들을 지워버렸습니다. 두 악기가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소리. 서로의 멜로디를 붙들고 놓지 않으려는 소리.
그는 책을 덮었습니다. 일어났습니다. 복도를 천천히 걸어 응접실 문 앞에 섰습니다.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문에 기대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자세가 어떤 자세인지 그 자신도 알고 있었습니다. 엿듣는 자의 자세. 의심하는 자의 자세. 그러나 발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당당하게 들어갈 수도 없었고, 서재로 돌아가 문을 닫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 그는 고착되어 있었습니다.
베토벤의 크로이체르 소나타였습니다. 그 곡은 포즈드니셰프에게 이미 알려진 곡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그 문 앞에서 들은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이전에 알던 그 음악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가 달랐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 내는 그 음악에는, 단순한 연주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습니다. 적어도 포즈드니셰프에게는 그렇게 들렸습니다.
음악은 감정을 직접 건드립니다. 언어를 우회하여 곧장 심장으로 들어오는 것이 음악입니다. 그날 포즈드니셰프가 그 문 앞에서 느낀 것은, 이성이 아니라 본능이었습니다. 그 음악이 두 사람 사이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는 본능. 음악이 두 사람을 하나의 세계 속에 가두고 있다는 느낌. 그 세계 안에 자신의 자리는 없다는 감각.
그는 문을 열었습니다. 두 사람은 연주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건반 위에 집중하고 있었고, 트루카체프스키는 활을 당기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시선은 악보와 서로에게만 향해 있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가 들어왔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니면, 의식하면서도 연주를 멈추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소파에 앉았습니다. 미소를 지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미소가 어색하게 얼굴에 붙어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등이 소파의 쿠션에 닿았지만, 몸은 긴장해 있었습니다. 편안하게 앉는 자세를 취했지만, 근육 하나하나가 경직되어 있었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아내가 트루카체프스키를 향해 말했습니다. 정말 좋았다고. 음악이 살아 있는 것 같다고. 포즈드니셰프는 그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저 말을 나에게 했었다고. 저런 눈빛으로 나를 보았었다고.
그날 이후, 무언가가 달라졌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트루카체프스키는 계속 방문했고, 두 사람은 계속 함께 연습했습니다. 그러나 포즈드니셰프의 내면에서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느리게, 그러나 멈추지 않고.
그는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그 대답은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그 대답을 인정하는 것이, 그 대답보다 더 두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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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의심이라는 이름의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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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은 처음에 아주 작게 시작됩니다. 머릿속 한구석에 작은 씨앗 하나가 심어지는 것처럼. 그 씨앗은 스스로 자라납니다. 물을 주지 않아도, 햇빛을 주지 않아도. 오히려 무시하려 할수록 더 빠르게 자라납니다. 그것이 의심이라는 것의 본성입니다. 부정할수록 커집니다. 외면할수록 깊어집니다.
포즈드니셰프는 아내의 모든 행동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트루카체프스키에게 웃을 때. 그녀가 그와 이야기할 때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의 톤이 달라질 때. 그녀가 연습 날짜를 잡으면서 유난히 기뻐 보일 때. 이것들 하나하나가 포즈드니셰프의 의심을 먹고 자랐습니다.
아침 식사 자리에서 아내가 트루카체프스키의 이름을 꺼낼 때, 포즈드니셰프는 빵 위에 버터를 바르던 손을 잠깐 멈추었습니다. 그 멈춤을 아내가 눈치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멈춤은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의 증거였습니다. 식사 자리의 평범한 대화 속에서 그 이름이 들릴 때마다, 그의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목이 살짝 굳어지는 것, 눈이 잠깐 좁아지는 것, 손가락이 미세하게 힘을 주는 것. 그 반응들은 아주 작았습니다. 그러나 쌓였습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이성적으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아내는 음악을 좋아한다. 뛰어난 바이올리니스트와 함께 연주하는 것이 그녀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트루카체프스키는 그저 음악 동료일 뿐이다. 이런 논리들로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지만, 설득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습니다. 논리가 이기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다시 의심이 올라왔습니다. 밀려났다가 다시 밀려오는 파도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들이 늘었습니다. 아내가 자는 동안, 포즈드니셰프는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들과 씨름했습니다. 그 생각들은 점점 구체적으로 변해갔습니다. 두 사람이 연습하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자신이 없을 때 두 사람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가. 그녀가 그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가.
방은 어두웠습니다. 아내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습니다. 잠든 사람의 편안하고 느린 숨소리. 그 소리가 포즈드니셰프에게는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그는 이 숨소리가 정말로 편안한 잠에서 나오는 것인가, 아니면 연기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을 한 순간, 스스로 소름이 끼쳤습니다. 자는 사람의 숨소리를 의심하는 자신이. 그러나 그 자기혐오도 의심을 거두어들이지는 못했습니다.
그 무렵, 그는 거울 앞에 서면 오래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 얼굴에서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것처럼. 자신이 아직 괜찮은 사람인지를.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줄 만큼 자신이 부족한 사람인지를. 그 시선은 자기 자신을 향한 의심이기도 했습니다. 그 의심이 더 깊어질수록, 그는 외부를 향해 더 공격적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인들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려 했습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아주 자연스러운 척 질문을 던졌습니다. 오늘 손님이 오셨나. 몇 시에 가셨지. 마님은 무엇을 하셨나. 하인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포즈드니셰프는 그들의 대답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단서를 찾으려 했습니다.
그것은 있지도 않은 죄를 찾아내려는 수사였습니다. 혹은 자신이 이미 결론 내린 판결의 증거를 모으는 과정이었습니다. 인간은 믿고 싶은 것을 믿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아내를 의심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의심이야말로 그가 느끼는 불안의 유일한 설명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의심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공허함과 불안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사실을 보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그는 일찍 집에 돌아왔습니다. 응접실에서 트루카체프스키의 웃음소리가 들렸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문 앞에 잠시 멈췄습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습니다. 손이 차가워졌습니다. 목 안에서 무언가가 조여드는 느낌이 났습니다. 그 순간의 신체적 반응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정면으로 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두 사람은 악보를 펼쳐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음악에 대해. 포즈드니셰프가 들어오자 두 사람은 반겼습니다. 아내는 차를 가져오라고 했고, 트루카체프스키는 최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들은 연주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완벽하게 평범한 오후였습니다.
그런데 포즈드니셰프는 그 평범함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평범함이 더 의심스러웠습니다. 두 사람이 자신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서둘러 자세를 고쳐 앉은 것은 아닌가. 그 자연스러운 모습이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것은 아닌가. 인간의 의심은 이렇게 작동합니다. 어떤 증거도 결백의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결백해 보일수록 더 의심스럽습니다.
차를 마시면서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포즈드니셰프는 트루카체프스키의 손을 바라보았습니다. 가늘고 긴 손가락. 활을 잡는 손. 그 손이 악보를 짚을 때, 그 손가락들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동작이었습니다. 그러나 포즈드니셰프의 눈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 포즈드니셰프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트루카체프스키와의 연습을 그만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목소리는 조심스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날카로웠습니다.
아내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빛 속에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그것이 죄책감이라고 읽었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은 서운함이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의심받고 있는지 깨달은 사람의 서운함. 그리고 그 서운함 뒤에는 분노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말했습니다. 자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잘못이냐고. 트루카체프스키는 단지 음악 동료라고. 그리고 이런 의심을 받는 것이 모욕스럽다고.
포즈드니셰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명분이 없었습니다. 구체적인 증거도 없었습니다. 그저 자신의 의심과 불안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침묵했습니다. 그러나 침묵이 의심을 거두어들인 것은 아니었습니다. 의심은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기 위해.
두 사람이 같은 방에 앉아 있는 시간이 달라졌습니다. 이전에는 같은 방에 있다는 것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이제는 같은 방에 있는 것이 긴장이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달랐습니다. 말은 줄었고, 시선은 피해졌습니다. 같은 식탁에 앉아 같은 음식을 먹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세계에 있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의 세계에는 의심이 가득했고, 아내의 세계에는 억울함이 가득했습니다. 두 세계는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 다 자신이 피해자라고 느꼈습니다. 그 느낌이 두 사람을 동시에 고립시켰습니다.
이것이 결혼의 붕괴가 시작되는 방식입니다. 대단한 사건이 아니라, 아주 작고 일상적인 균열들로부터. 그 균열들이 모이면, 언젠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순간이 옵니다. 그 순간을 향해, 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걸어가고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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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크로이체르 소나타 — 망상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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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집에서 조촐한 저녁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포즈드니셰프가 직접 초대한 자리였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아내와 트루카체프스키가 함께 연주하는 것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보고 싶었습니다. 마치 자신이 그 관계를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려는 것처럼. 혹은 공개적인 자리에서라면 자신의 의심이 근거 없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였는지도 모릅니다.
그 두 가지 이유가 그의 안에서 동시에 존재했습니다.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확인하고 싶다는 것과, 확인이 두렵다는 것. 그 모순을 직시하지 않은 채, 그는 손님을 초대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방을 꾸몄습니다.
저녁의 응접실은 따뜻했습니다. 벽난로에 불이 피워져 있었고, 촛대에는 여러 개의 촛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 불빛이 벽지의 패턴 위로 흔들리는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테이블에는 음식과 와인이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집 안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것들이 그날 저녁에는 모두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그 집은 행복한 가정의 완벽한 모습이었습니다.
손님들이 모였습니다. 와인이 오갔고, 대화가 오갔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주인으로서 손님들을 맞았습니다. 웃고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웃음은 자연스러웠습니다. 오래 연습된 자연스러움이었습니다. 사교 모임에서 익힌 그 기술이 그날 저녁 그의 얼굴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끝없이 아내와 트루카체프스키에게 향했습니다. 두 사람이 연주 준비를 하면서 나누는 말들. 악보를 펼치는 손. 조율을 하면서 주고받는 눈짓. 포즈드니셰프는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눈의 한쪽은 언제나 그 두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그 상태가 지속되었는지, 그는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목이 뻐근하도록 오래였다는 것은 기억했습니다.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베토벤의 크로이체르 소나타. 제1악장이 시작되는 순간, 포즈드니셰프는 무언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 음악은 단순히 귀로만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온몸으로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그 맹렬하고 격정적인 시작부,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첫 화음을 함께 내지르는 순간, 그는 심장이 조여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움에 감동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가 깨어나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억눌려 있던 것이.
연주자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내의 손이 건반 위를 달렸습니다. 트루카체프스키의 활이 현을 긁었습니다. 두 사람의 몸이 음악에 맞추어 흔들렸습니다. 마치 하나의 생명체처럼. 아내가 고개를 들어 트루카체프스키를 보았습니다. 그의 눈이 그녀를 받았습니다. 그 눈맞춤은 음악의 일부였습니다. 연주자들은 언제나 그렇게 합니다. 서로의 호흡을 맞추기 위해.
그러나 포즈드니셰프에게 그 눈맞춤은 달리 보였습니다. 그것은 음악적 교감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무언가였습니다. 그는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아무런 근거 없이. 순전히 자신의 내면에서 자라난 공포로부터 도출된 확신이었습니다.
제2악장이 시작되었습니다. 느리고 감미롭고, 무언가를 향해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 것 같은 선율. 그 선율 속에서 바이올린이 먼저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길고 긴 활의 선이 하나의 음을 오래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가 그 노래를 받았습니다. 두 악기가 같은 선율을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그 선율이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 음악이 두 사람 사이에서 무언가를 속삭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 속삭임이 자신을 배제하는 것 같았습니다. 음악 안에 자신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 두 악기는 서로를 향해 있었고, 그 원 안에 세 번째 사람을 위한 공간은 없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자신이 그 원 바깥에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손님들은 음악에 빠져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살짝 고개를 흔드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만이 음악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울리는 다른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는 음악보다 더 크고, 음악보다 더 집요했습니다. 그것은 의심의 소리였습니다. 공포의 소리였습니다.
와인 잔을 들었습니다. 마셨습니다. 그러나 맛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잔을 내려놓았습니다. 다시 들었습니다. 그 행동이 자신이 지금 무언가와 싸우고 있다는 것의 증거였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이성은 이미 감정에 밀려나 있었습니다.
연주가 끝났을 때,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아내는 일어나서 인사를 했고, 트루카체프스키도 함께 인사를 했습니다. 두 사람이 동시에 인사를 하는 그 순간, 그들 사이의 거리가 아주 가까웠습니다. 어깨가 닿을 것 같은 거리. 포즈드니셰프는 그 거리를 측정했습니다. 머릿속으로.
저녁 파티가 끝나고 손님들이 돌아갔습니다. 트루카체프스키도 돌아갔습니다. 아내와 단둘이 남겨졌습니다. 응접실에는 촛불 몇 개만 남아 흔들렸습니다. 손님들이 남기고 간 잔들, 접시들, 냅킨들이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파티의 잔재들. 그 어수선함 속에 두 사람이 서 있었습니다.
아내는 오늘 파티가 즐거웠다고 말했습니다. 트루카체프스키가 정말 훌륭한 연주자라고. 그 말이 그날 저녁 포즈드니셰프에게 어떻게 들렸는지를, 그는 기차 안에서 설명했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습니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것은 비교였습니다. 그리고 그 비교에서 자신은 열세에 있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잔에 남은 와인을 마셨습니다. 한 잔, 두 잔. 아내가 이상하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잔을 내려놓고 아내를 바라보았습니다. 당신은 그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왔습니다. 조용하게.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 담긴 것은 폭풍이었습니다.
아내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잠시의 침묵. 그리고 그녀는 웃었습니다. 비웃는 것인지, 황당해서 웃는 것인지 모를 웃음이었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날 밤의 다툼은 격렬했습니다. 말들이 날카로워졌습니다. 두 사람 다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말들을 골라서 뱉었습니다. 오래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서로의 가장 약한 곳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싸울 때 그 약한 곳을 정확히 찌르는 법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장 오래된 관계가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싸울 수 있는 이유입니다. 낯선 사람이 줄 수 없는 상처를, 가장 가까운 사람은 정확히 줄 수 있습니다.
새벽이 되어서야 두 사람은 각자의 방으로 물러났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침대에 누웠지만 잠들지 못했습니다. 창밖에서 새벽의 차가운 바람이 유리를 흔들었습니다. 집 안은 고요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요는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폭풍이 지나간 자리의 고요였습니다. 혹은, 폭풍 직전의 고요였습니다.
천장의 그림자가 흔들렸습니다. 등불이 깜빡거렸습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크로이체르 소나타의 선율이 끊임없이 울렸습니다. 그 음악이 이제는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경고였습니다. 혹은 고발이었습니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무언가의 존재를 알려주는 신호였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음악이란 무엇인가. 아름답다는 이유로 허용되지만, 실은 인간의 감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조종하는 것이 음악이다. 음악은 경계를 허문다. 낯선 두 사람 사이의 경계를. 이성과 감정 사이의 경계를. 허용되는 것과 허용되지 않는 것 사이의 경계를.
그 생각은 그를 위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편안하게 해 주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신의 감정을 음악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의심은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음악이 두 사람 사이에서 위험한 무언가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가 자신에게 제공한 설명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포즈드니셰프는 출장을 떠나야 했습니다. 지방 영지를 방문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며칠이 걸리는 여행이었습니다. 아내와 싸운 다음 날, 화해도 하지 않은 채, 그는 짐을 쌌습니다. 두 사람은 아침 식사를 함께 했지만, 거의 말이 없었습니다. 각자 자기 앞의 음식을 바라보았습니다.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났습니다.
역으로 향하는 마차 안에서, 그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돌아오겠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예정보다 일찍. 그리고 확인하겠다고. 무엇을. 그는 스스로도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알고 있었습니다. 단지 말하기 두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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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귀환 — 파멸의 문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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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영지에서의 사흘은 포즈드니셰프에게 지옥이었습니다. 업무를 처리하면서도 머릿속에는 끊임없이 모스크바의 집이 떠올랐습니다. 아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트루카체프스키가 방문했는가. 두 사람이 단둘이 있는가.
영지의 낡은 저택에서 보낸 첫날 밤, 그는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천장은 낡고 거무스름했습니다. 모스크바의 집 천장과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장면들은 모스크바에 있었습니다. 응접실. 피아노. 촛불. 두 사람.
그 장면들은 점점 구체적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흐릿하게 떠올랐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선명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선명함이 그를 더 괴롭혔습니다. 막연한 불안보다 구체적인 상상이 더 고통스럽습니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상상은 마치 현실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성으로 그 생각들을 막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성은 이미 그 전쟁에서 지고 있었습니다. 감정이, 공포가, 망상이 이성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밤마다 잠들지 못했습니다. 낮에도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영지의 관리인이 보고를 올릴 때, 포즈드니셰프는 그 말을 듣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눈은 관리인을 향해 있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둘째 날에는 편지를 쓰려 했습니다. 아내에게. 그러나 첫 줄을 쓰고 나서 멈추었습니다. 무엇을 쓸 수 있었을까요. 잘 있느냐고. 그 단순한 물음조차 그에게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잘 있느냐는 물음 뒤에, 혼자 있느냐는 물음이 숨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물음을 직접 쓰는 것은, 자신의 의심을 활자로 새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편지지를 구겼습니다.
사흘째 되는 밤, 그는 결정을 실행에 옮겼습니다. 짐을 챙기지도 않았습니다. 동행했던 하인에게만 짧게 말하고, 역으로 향했습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역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매표소의 불빛만 혼자 켜져 있었습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그의 숨이 하얗게 피어올랐다가 사라졌습니다.
기차가 오기까지 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그 한 시간 동안 그는 플랫폼 위를 걸었습니다. 앞으로, 뒤로. 멈출 수 없었습니다. 멈추면 생각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걸음이 생각의 속도를 늦추어 주었습니다. 조금은.
기차는 새벽에 모스크바에 도착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마차를 타지 않았습니다. 걸었습니다. 집까지. 새벽의 모스크바는 조용했습니다. 가로등이 짙은 안개 속에서 노란 빛을 발했습니다. 그 빛이 아스팔트 위에 젖어있는 물기에 반사되어 흔들렸습니다. 그의 발소리만이 그 거리에서 울렸습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그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무언가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걸음 속에서 그는 무엇을 생각했는지를 기차 안의 청취자에게 말했습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고. 그러나 발이 움직일수록 심장이 더 빠르게 뛰었다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척 걸었다고.
집 앞에 섰습니다.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밤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 응접실에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그 불빛을 바라보았습니다. 오래. 그 빛이 자신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읽으려는 것처럼.
그 불빛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냥 빛이었습니다. 그러나 포즈드니셰프에게 그 빛은 이미 하나의 증거였습니다. 이 시간에 불을 켜놓고 있다는 것. 혼자라면 이 시간에 불을 켜놓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 그는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증거를 보기도 전에.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조용히. 하인이 깜짝 놀라며 달려왔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손짓으로 그를 막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신호였습니다. 하인은 그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그 얼굴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입을 다물고 물러났습니다.
복도를 걸었습니다. 응접실 쪽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목소리. 두 사람의 목소리. 낮고 가까운. 웃음소리도 섞여 있었습니다. 그 웃음소리의 질감이, 포즈드니셰프의 기억 속에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기차 안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도, 그는 그 소리를 다시 듣고 있는 것처럼 표정이 굳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그 자리에 멈추었습니다. 심장이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다가 벼랑 끝에서 멈춘 것처럼, 멈추었습니다. 숨을 들이켰습니다.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그 호흡이 그를 안정시켰습니까.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음 걸음을 위해 힘을 모으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을 지나간 것들을 그는 기차 안에서 천천히 묘사했습니다. 분노. 공포. 슬픔.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덮이는 차가운 결의. 분노는 뜨거웠고, 공포는 차가웠습니다. 슬픔은 그 두 가지 사이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의는 그 모든 감정을 덮어버리는 안개 같은 것이었습니다. 느끼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 그것이 결의였습니다.
문을 열었습니다.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내와 트루카체프스키. 응접실 테이블에 앉아 있었습니다. 와인 잔이 있었고, 악보가 있었고, 빈 접시가 있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가 들어서는 순간, 두 사람이 동시에 그를 보았습니다.
그 순간의 정지. 포즈드니셰프는 그것을 기억했습니다. 세 사람이 모두 굳어버린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은 그 찰나. 와인 잔에서 피어오르는 향기가 느껴졌습니다. 벽난로에서 나무가 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것들이 그 순간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습니다.
트루카체프스키가 먼저 일어났습니다. 얼굴이 굳었습니다. 아내는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그 붉어짐. 포즈드니셰프는 그것을 결코 잊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당혹감이었는지, 두려움이었는지, 아니면 죄책감이었는지,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해석했습니다.
포즈드니셰프의 목소리는 놀랍도록 조용했습니다. 그는 인사를 했습니다. 트루카체프스키에게. 예상치 못했겠지만 일찍 돌아왔다고. 트루카체프스키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인사를 받았습니다. 짐을 챙기는 척, 빠른 시간 안에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문이 닫혔습니다. 그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가 사라졌습니다.
두 사람만 남겨졌습니다. 응접실 안에. 두 개의 와인 잔이 테이블 위에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앉아 있었다는 증거처럼. 포즈드니셰프는 그 잔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내가 말하려 했습니다. 포즈드니셰프가 먼저 말했습니다. 이 늦은 시간에, 그가 여기에 있었다고.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말투는 차분했습니다. 그러나 그 차분함이, 폭발 직전의 정적처럼 느껴졌다고 아내는 후에 말했을 것입니다. 아니, 그녀는 말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그날 밤 자신의 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기차 안에서 털어놓았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색깔이 다른 색깔로 완전히 변하는 순간과 같았다고 했습니다. 이전까지의 자신, 의심하고 괴로워하고 참아왔던 자신이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그 변화는 결정의 형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냥 일어난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진 것이었습니다.
그 다른 무언가의 이름을 그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습니다. 기차 안의 승객들이 알고 있었고, 지금 이 대본을 듣고 있는 당신도 알고 있습니다.
그날 밤, 무언가가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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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최후의 밤 — 파멸과 고백의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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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즈드니셰프는 기차 안에서 마지막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오랫동안 침묵했습니다. 등불이 흔들렸습니다. 기차가 어딘가의 역을 지나쳤습니다. 플랫폼의 불빛이 창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어둠. 그 어둠이 이전보다 더 짙게 느껴졌습니다.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밤도 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그 침묵 속에서 포즈드니셰프의 손을 보았습니다. 무릎 위에 놓인 두 손. 그 손이 아주 천천히 오므라들었다가, 다시 펼쳐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오므라들었습니다. 말을 하지 않는 동안, 그의 몸이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입을 열었을 때, 목소리는 달라져 있었습니다. 감정이 빠져나간 것처럼 건조하고 낮았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소진한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이 목소리로 그는 수없이 이 이야기를 자신에게 반복했을 것입니다. 밤마다. 홀로. 그리고 그 반복이 목소리에서 감정을 지워버렸을 것입니다. 고통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고통은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무감각이 일종의 보호막이 됩니다.
트루카체프스키가 돌아간 뒤, 아내와의 마지막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화라고 부르기 어려웠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묻고, 아내는 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묻고 답함은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결론을 내린 사람이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과정이었습니다.
응접실에는 벽난로의 불이 아직 타고 있었습니다. 그 불빛이 두 사람의 얼굴 위로 흔들렸습니다. 창밖에서는 바람이 불었고, 유리창이 간헐적으로 울렸습니다. 그 소리가 두 사람의 목소리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습니다. 집 안의 다른 모든 것들이 잠든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잠든 방들. 하인들이 잠든 방들. 오직 이 두 사람만이 이 공간에서 깨어있었습니다.
아내는 부인했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늦은 시간에 혼자 있던 것은 포즈드니셰프가 없는 동안 외로웠기 때문이었다고. 그리고 트루카체프스키는 음악을 논하기 위해 들른 것이라고. 그 말 하나하나는 진실이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니, 진실이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그러나 포즈드니셰프에게 그 진실은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그 말들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듣지 않았습니다. 그의 귀에 닿는 것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말의 표면이었습니다. 그 말들 뒤에 숨겨진 것을 그는 이미 자신만의 방식으로 읽고 있었습니다. 그 읽기는 자신이 오래 준비해 온 해석이었습니다. 어떤 말도 그 해석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분노의 눈물이었습니다. 억울함의 눈물이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그 눈물도 의심했습니다. 진심으로 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무장 해제시키기 위한 전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의심의 감옥에 갇히면, 상대방의 어떤 행동도 그 의심을 풀어주지 못합니다. 눈물도 웃음도 고요도 화도, 모두 의심의 재료가 됩니다.
그러나 그 눈물을 바라보면서 포즈드니셰프의 안에서는 무언가가 흔들렸습니다. 그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있었습니다. 오래된 감정이었습니다. 이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의 감정. 사교 모임의 살롱에서 그녀가 피아노를 치는 것을 보았을 때의 감정. 그 감정의 잔재가 아직 그의 어딘가에 살아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그를 더 위험하게 만들었습니다. 아직 무언가가 남아있을 때, 그 무언가가 배신당했다는 느낌은 더 날카롭습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말들이 과격해졌습니다. 그리고 포즈드니셰프의 손이 움직였습니다.
그 이후의 일을 그는 자세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던 다른 무언가가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변명이 변명이 될 수 없다는 것도 그 자신이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 안에 있던 것이라면, 그것은 자신입니다. 그 다른 무언가도 자신의 일부였습니다.
아내는 쓰러졌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아주 짧은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습니다. 벽난로의 불은 여전히 타고 있었습니다. 창밖의 바람은 여전히 불었습니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달라진 것 같았습니다. 그 방 안에서. 그 두 사람 사이에서.
그는 의사를 불렀습니다. 의사가 왔습니다. 그리고 경찰이 왔습니다. 그 모든 것이 마치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바라보는 것처럼, 현실감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그 순간들을 그저 지켜보았습니다. 자신의 몸이 거기 있었지만, 자신은 다른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그 분리가 일종의 자기 보호였는지, 아니면 이미 무언가가 깨져버린 결과였는지,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아내는 사흘을 더 살았습니다. 병원에서. 포즈드니셰프는 면회를 요청했습니다. 아내는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면회의 내용을 그는 길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내가 그를 용서했는지, 그에게 무슨 말을 남겼는지. 그것은 두 사람만의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침묵은 이 이야기 전체에서 가장 무거운 침묵이었습니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이 말해진 것들보다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아내가 죽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재판은 길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기억하는 것은 재판의 과정이 아니라, 아내의 죽어가는 얼굴이었습니다. 그 얼굴에서 두려움이 사라지고, 분노가 사라지고, 마침내 무언가 해방된 것 같은 표정이 나타났을 때. 포즈드니셰프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를 이해했습니다.
그것은 역설이었습니다. 자신이 그녀를 가두어 두려 했을 때, 그 시도 자체가 그녀를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그 시도가 최악의 방식으로 끝나는 순간, 그녀는 오히려 해방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이 그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그 표정이. 자신이 아내를 해방시켰다는 것. 그러나 그 해방이 죽음이었다는 것.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정당방위와 일시적 정신 착란. 변호사들이 만들어 낸 논리였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그 무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법이 인정하는 죄가 아니라, 그보다 더 근본적인 죄를.
그 죄는 아내를 죽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죄는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결혼을 환상으로 시작한 것. 아내를 하나의 독립된 인격이 아니라 자신의 소유물로 바라본 것. 의심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것. 자신의 공허함을 그녀가 채워주어야 한다고 믿은 것. 그녀가 자신의 구원이 되어야 한다고 기대한 것. 그 모든 것이 죄였습니다. 그리고 그 죄들이 쌓이고 쌓여, 마침내 그날 밤의 방 안에서 터졌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죽은 자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러나 죄는 죽지 않는다고. 그 죄는 자신 안에 살아서, 매일 밤 그를 찾아온다고. 기차 안에서, 낯선 사람에게 고백하는 이 순간에도, 그 죄는 여기 있다고.
기차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습니다. 어딘가의 큰 역이 가까워지는 것이었습니다. 플랫폼의 불빛들이 멀리서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도시가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포즈드니셰프는 말을 멈추었습니다. 창밖을 보았습니다. 동이 트기 시작하는 하늘. 어둠과 빛이 교차하는 그 경계의 색깔. 짙은 남색이 서서히 회색으로 바뀌어 가는 그 경계 위로, 첫 번째 빛의 선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 빛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아주 고요했습니다. 무언가를 내려놓은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아니면 아직 내려놓지 못한 사람이 내려놓은 척하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는 일어섰습니다. 짐을 챙겼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준 것에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오래된 습관적인 예의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마도 그 자신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진심과 습관이 너무 오래 같은 자리에 있으면, 둘을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그는 기차에서 내렸습니다. 플랫폼의 안개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이야기를 전하는 이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뒷모습은 무거웠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 가벼워진 것 같기도 했습니다.
고백이란 그런 것인지도 모릅니다. 죄를 지운 것이 아니라, 죄의 무게를 언어로 옮긴 것. 그 무게는 사라지지 않지만, 혼자 지는 것보다는 덜 무겁습니다. 아마도.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가. 그것이 속죄가 되는가. 그 대답은 아무도 모릅니다.
기차는 계속 달렸습니다. 그가 내린 뒤에도. 세상은 멈추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비극이 끝난 자리에서도, 삶은 계속됩니다. 기차는 달리고, 창밖의 풍경은 바뀌고, 이름 모를 역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은 각자의 생각 속으로 돌아갑니다.
포즈드니셰프의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남긴 질문들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소유와 사랑은 어떻게 다른가. 의심이 시작될 때, 우리는 어디에서 멈출 수 있었는가. 아니면, 애초에 멈출 수 없었던 것인가.
그 질문들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의 가슴 속에 남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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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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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이체르 소나타》는 단순한 범죄 서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심리의 가장 어두운 층위를 파고드는 탐침입니다. 톨스토이는 질투와 집착이 어떻게 사랑을 먹고 자라는지를, 그리고 결국에는 사랑 자신을 집어삼키는지를, 한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해부합니다.
포즈드니셰프의 비극은 그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이 이 작품을 더 무섭게 만듭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을 원했고, 행복을 원했고, 인정을 원했습니다. 그 평범한 욕망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자랐을 때, 그것이 파멸이 됩니다. 그 파멸의 씨앗은 그가 처음부터 품고 있었습니다. 아내를 자신의 구원으로 기대하는 것. 그녀를 독립된 존재가 아닌 자신의 일부로 보는 것. 사랑을 소유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하는 것.
1889년 러시아 사회는 이 작품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결혼의 신성함에 의문을 제기하고, 남성의 욕망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여성을 소유물이 아닌 존재로 바라볼 것을 촉구한 이 작품은 황실의 검열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살아남았습니다. 금지된 것들이 때로는 더 강하게 살아남습니다. 억압이 오히려 그 존재를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사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소유하고 있습니까. 그 차이를 알고 있습니까. 그 경계에서 당신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이 오디오북 대본은 톨스토이의 원작을 기반으로 현대 청취자를 위해 새롭게 재창작되었습니다. 원작의 정신과 심리적 깊이를 계승하되, 독자적인 문체와 구성으로 완전히 새롭게 쓴 작품임을 밝힙니다.
레프 톨스토이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비극이 아닙니다. 그것은 거울입니다. 우리는 그 거울 속에서 포즈드니셰프를 봅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 자신을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