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BD3Ir-403Qk

《붉은 접견실》은 서울 중앙특별조사국을 배경으로 권력형 비리 사건과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심리 스릴러 오디오북입니다. 수석 조사관 김동진은 사건을 깔끔하게 마무리하라는 압박 속에서 진술을 조율하고, 변호사 서영희는 진술 오염과 삭제된 녹취파일을 추적하며 진실을 드러내려 합니다. 조사실에 술잔이 반입되었다는 충격적 주장과 감찰위원회의 개입은 사건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권력과 진실, 인간 심리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이 작품은 법정 드라마와 스릴러의 긴장감을 동시에 선사합니다.
서울의 겨울은 유독 잔인합니다.
차가운 바람이 도심 골목골목을 파고들고, 가로등 불빛은 아스팔트 위에 길게 누운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들어냅니다. 사람들은 코트 깃을 세우고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이 도시 어딘가에서는 어떤 진실이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묻지 않는 방식으로.
서울 중앙특별조사국 청사 지하 이 층.
조사실 복도에는 형광등이 깜박이고 있었습니다. 낡은 건물 특유의 냄새, 서류와 커피와 오래된 페인트가 뒤섞인 그 냄새가 복도 전체에 배어 있었습니다. 밤 열한 시였습니다. 복도 끝 조사실 사호의 문은 닫혀 있었고, 문틈 아래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그 안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세 달 후, 그 방 안에서 있었던 일이 법정에서 다투어지게 됩니다.
피고인은 조사실 안으로 술이 반입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조사관은 단호하게 부정했습니다. 삭제된 녹취파일이 있었고, 조작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조서가 있었습니다. 언론은 매일 새로운 의혹을 쏟아냈고, 감찰위원회는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명은 김동진. 서울 중앙특별조사국 수석 조사관. 이 사건의 핵심 조사관으로 지목된 인물입니다. 강원도 산골 출신. 명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고시 대신 이 길을 택한 사람입니다. 한때 이 기관에서 가장 정의롭다는 평판을 들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또 한 명은 서영희. 인권 전문 변호사. 부산 출신. 미국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국가기관 강압수사 피해자들을 변호하며 이름을 알린 사람입니다. 법정에서 그녀는 냉혹했습니다. 한 번 잡은 모순을 절대 놓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이유로 이 사건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한 사람은 진실을 숨기려 했고, 또 한 사람은 진실을 끄집어내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진실이 어느 쪽에 있었는지는 아무도 처음 생각했던 대로가 아니었습니다.
술잔은 거기 있었습니다. 분명히.
그런데 누가 그것을 들고 들어갔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거기에 있어야 했는지는, 재판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명확히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 이야기입니다.
제1장 수석 조사관의 방
서울 중앙특별조사국이라는 기관은 한국 수사 체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검찰도 아니고 경찰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자리 잡은 특수기관이었습니다. 설립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일반 수사기관이 손대기 어려운 권력형 비리, 고위직 비위, 대형 조직범죄를 전담하는 것이었습니다. 기관 내부에는 고도로 훈련된 조사관들이 있었고, 그들은 검사 못지않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김동진은 그 기관에서 십사 년을 보냈습니다.
입직 당시 그는 스물일곱이었습니다. 경북 산골, 마을 하나에 학교 하나가 전부인 작은 고향에서 올라온 청년이었습니다. 서울의 명문 법학과를 장학금으로 졸업했고, 사법고시 준비를 시작했다가 일 년 만에 접었습니다. 판사나 검사보다 현장에서 뛰는 수사관이 더 맞는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는 의아하게 여겼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십사 년 동안 그는 수많은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재계 이 순위 그룹 회장의 비자금 사건. 광역 지방자치단체장의 인허가 비리. 방산 업체의 납품 비리. 이름만 대면 아는 정치인의 측근 비리. 그는 매번 끝까지 파고들었고, 조직 내에서 실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수석 조사관 직함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십사 년이라는 세월은 사람을 바꿉니다.
처음에는 정의감이 전부였습니다. 불의한 권력에 맞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사명감이 모든 것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협박 전화를 받아도 굽히지 않았습니다. 상부의 불합리한 지시에도 소신껏 반박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직은 실적을 요구했습니다. 기소 가능성이 높은 사건일수록 우선순위를 받았습니다. 확실한 증거보다 빠른 성과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가 생겼습니다. 내부에서는 암묵적인 압박이 있었습니다. 상부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수사가 흘러가도록 조용히 조율하는 것, 그것이 능력 있는 조사관의 덕목으로 여겨지는 분위기였습니다.
김동진은 그 분위기에 서서히 익숙해졌습니다.
그것이 타협인지 적응인지, 그 경계는 생각보다 흐릿했습니다. 한 번 양보한 원칙은 두 번째를 더 쉽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가 되었을 때 그는 이미 그것이 양보라는 사실조차 잘 느끼지 못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 해 가을, 하명수 사건이 배정되었습니다.
하명수. 나이 오십칠 세. 전직 국가기관 고위 간부. 재임 당시 특정 기업에 대한 수사 정보를 유출하고 그 대가로 금품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증거는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었습니다. 다만 핵심이 빠져 있었습니다. 직접적인 금품 수수 정황을 확인해줄 진술이나 물증이 없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조사국 안에서도 민감한 사건으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하명수는 현직에 있을 때부터 조사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조사국 고위 간부들 중 일부는 그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습니다. 그를 너무 강하게 밀어붙이면 내부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시각도 있었고, 반대로 이번에 제대로 정리하지 않으면 기관 신뢰도에 타격이 온다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김동진에게 사건이 배정된 것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였습니다.
조사국장 박세훈은 그를 직접 불렀습니다. 청사 오 층, 창문 너머로 도심 야경이 내려다보이는 국장실이었습니다. 박세훈은 창가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김 조사관이 맡아요.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해."
깔끔하게 마무리한다는 말의 뜻을 김동진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기소에 충분한 혐의를 확보하되, 기관 내부로 불똥이 튀지 않도록 선을 지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대답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짧은 대답이 이후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조사는 사 주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김동진은 관련 자료를 면밀히 검토했습니다. 하명수와 거래 관계에 있었던 기업의 내부 문건을 확보했고, 통화 기록을 분석했으며, 관련자들을 차례로 불러 진술을 받았습니다. 조각들은 모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여전히 없었습니다.
그러다 하명수의 전직 보좌관이었던 이재갑이 등장했습니다.
이재갑은 하명수와 함께 일하다가 사이가 틀어진 인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말을 아꼈지만, 몇 차례 면담을 거치면서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알고 있는 내용은 구체적이었습니다. 날짜와 장소, 금액의 규모, 거래 방식까지 진술했습니다.
조사 팀 내부에서는 기대감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이재갑의 진술에는 내부 모순이 있었습니다. 조서를 다시 읽어보면, 같은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날짜를 말하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하명수와 만났다는 장소에 대한 묘사도 두 번의 진술에서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김동진은 그 점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묻어두기로 했습니다.
조서를 최종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는 모순이 두드러지지 않도록 표현을 조정했습니다. 사실의 내용을 바꾼 것이 아니라, 기술 방식의 문제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어차피 진술의 핵심 내용은 맞다고 믿었습니다. 표현의 문제였을 뿐이라고.
그 밤, 조사실 사호에서는 심야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재갑은 오후 여섯 시에 출석했습니다. 자정이 지나도록 조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복도 끝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는 소리가 간간이 들렸고, 조사실 안에서는 낮은 목소리들이 오갔습니다.
그날 밤 조사실 안으로 무언가가 반입되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은 세 달 후의 일이었습니다.
하명수 측 변호인이 재판 과정에서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조사 당일 밤, 조사실 안에 술이 있었습니다."
법정은 순간 조용해졌습니다.
그 말 한마디가 이 재판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조사국 청사 일 층 민원실 옆에는 아무도 잘 쓰지 않는 좁은 회의실이 있었습니다.
김동진은 사건 배정 이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 그 방에서 조사 팀원들과 처음 회의를 했습니다. 팀원은 세 명이었습니다. 부 조사관 한명철과 이성민, 그리고 행정 지원 담당 최경수였습니다.
한명철은 나이가 마흔으로 경력이 팔 년이었습니다. 꼼꼼하고 말이 적은 스타일이었습니다. 이성민은 서른셋으로 입직 사 년 차였습니다. 열정적이었지만 경험이 부족했습니다. 최경수는 기록 관리와 문서 처리를 전담하는 직원으로, 조사 내용에는 개입하지 않는 역할이었습니다.
회의는 짧았습니다.
김동진은 사건 개요를 설명했고, 역할 분담을 지시했습니다. 한명철에게는 금융 기록 추적을 맡겼고, 이성민에게는 관련자 동선 확인을 지시했습니다. 자신은 핵심 참고인 면담을 직접 맡기로 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 한명철이 잠깐 자리를 지켰습니다.
"조사관님, 이 사건 생각보다 복잡할 수 있습니다."
김동진은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무슨 얘기야?"
"위에서 원하는 그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그림에 맞추다 보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김동진은 짧게 웃었습니다.
"네가 너무 많이 생각하는 거야."
한명철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대화는 이후 김동진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 동안, 그는 그 대화를 반복해서 떠올렸습니다.
한명철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위에서는 분명히 원하는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그림에 맞추기 위해, 하지 말았어야 할 선택들을 했습니다.
제2장 변호인의 도착
서영희가 이 사건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법원 사건 공시를 통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발신자는 하명수의 딸이었습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지쳐 있는 감정이 분명히 묻어 있었습니다.
"아버지 사건을 맡아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서영희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보통 사건 의뢰를 받으면 일주일 이상 검토한 뒤 수임 여부를 결정했습니다.
"기록 먼저 보내주세요. 검토해 보겠습니다."
기록은 다음 날 도착했습니다.
두꺼운 서류 봉투 세 개. 조사 기록 요약본, 기소 검토 의견서, 그리고 하명수 측이 자체적으로 정리한 반박 자료였습니다.
서영희의 사무실은 서울 종로구의 오래된 빌딩 사 층에 있었습니다. 사무원 두 명과 보조 변호사 한 명이 전부인 작은 사무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사무실에서 그녀는 지난 칠 년 동안 굵직한 사건들을 맡아왔습니다.
국가기관 강압수사 피해자 변호, 양심선언 공무원 방어, 내부 고발자 보호 소송. 그녀의 커리어는 권력 앞에서 약자를 대리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언론은 그녀를 가리켜 인권변호사라고 불렀고, 그녀 자신은 그 호칭을 부담스럽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날 밤 그녀는 기록을 처음 펼쳤습니다.
조사 기록 요약본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날짜, 시간, 조사 장소, 참석자 명단. 그녀는 읽으면서 체크 표시를 해나갔습니다. 메모지에 의문 사항을 적어두었습니다.
첫 번째로 눈에 걸린 것은 심야 조사였습니다.
이재갑은 오후 여섯 시에 출석하여 다음 날 새벽 두 시 삼십 분까지 조사를 받았습니다. 총 여덟 시간 삼십 분. 참고인 신분이었습니다.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에게 이 정도 시간을 쓴다는 것은 이례적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눈에 걸린 것은 조서의 표현 방식이었습니다.
이재갑의 첫 번째 진술 조서와 두 번째 진술 조서를 나란히 놓고 읽으면, 같은 사실을 묘사하는 방식이 달랐습니다. 단순히 표현의 차이라고 보기에는 뉘앙스의 차이가 컸습니다. 특히 하명수와 금품을 주고받았다는 날짜 부분. 첫 번째 조서에서는 "그해 시월 말 무렵"이라고 기술되어 있었고, 두 번째 조서에서는 "그해 십월 이십이일"이라고 날짜가 특정되어 있었습니다.
어떻게 기억이 그렇게 정밀해졌을까.
서영희는 메모에 그 부분을 적어두었습니다.
세 번째로 걸린 것은 삭제 흔적이었습니다.
조사 기록에는 녹취파일 목록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사 당일 심야 시간대에 해당하는 파일이 목록에는 있었지만 실제 파일이 제출되지 않았습니다. 기록에는 "녹음 오류로 저장 불가"라고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녹음 오류.
서영희는 그 표현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조사국 조사실은 모든 조사가 녹음되어야 하는 시스템입니다. 녹음이 되지 않으려면 장비 자체가 고장이 나거나,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녹음을 중단해야 합니다. 우연한 오류는 가능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필이면 심야 조사 시간대와 겹친다는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녀는 자정이 넘어서야 기록 검토를 잠시 멈추었습니다.
창밖에는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사무실 형광등 아래, 그녀는 커피잔을 손에 쥔 채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이 사건을 맡아야 하는가.
하명수가 완전히 결백하다는 확신은 없었습니다. 기소 내용에 일정한 근거가 있다는 것은 기록만 봐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설사 그가 일부 혐의가 있더라도, 수사 과정이 적법해야 합니다. 진술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녹취는 보전되어야 하며, 조서는 진술자의 말을 왜곡 없이 기록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켜지지 않았다면, 혐의의 유무와 상관없이 문제 삼아야 합니다.
그것이 서영희가 이 일을 하는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녀는 하명수의 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수임하겠습니다."
서영희가 사건을 맡은 지 삼 일째 되던 날, 그녀는 사무실 책상 위에 관련 문서 전체를 펼쳐놓고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조사 기록과 증거 목록이었습니다.
그녀는 색깔별로 포스트잇을 준비했습니다. 노란색은 의문 사항, 빨간색은 모순 지점, 파란색은 추가 확인 필요 항목이었습니다. 문서 곳곳에 포스트잇이 붙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보조 변호사 이지수가 옆에서 정리를 도왔습니다.
"선생님, 녹취파일 관련해서 증거 신청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파일 자체는 삭제되었다 해도, 장비 로그 기록이 남아 있을 수 있거든요."
서영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맞아. 그 부분 신청하자. 장비 제조사 측에 기술 지원도 요청하고."
그녀가 다음으로 집중한 것은 이재갑의 진술 조서 비교 분석이었습니다.
두 조서를 인쇄해서 나란히 놓았습니다. 그리고 같은 사실을 기술한 대목들을 줄 단위로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형광펜을 들고 달라진 부분, 추가된 부분, 사라진 부분을 표시해나갔습니다.
두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형광펜 자국이 가득한 종이들이 쌓였고, 메모장에는 빼곡한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모순은 단순히 날짜 한 군데가 아니었습니다.
장소의 묘사가 달라져 있었고, 동석한 인물에 대한 표현이 달라져 있었으며, 가장 결정적으로는 하명수가 금품을 건네는 방식에 대한 설명이 첫 번째와 두 번째 조서에서 달랐습니다. 첫 번째 조서에서는 "봉투를 건네받았다"라고 되어 있었는데, 두 번째 조서에서는 "직접 손에 쥐어주었다"라고 표현이 구체화되어 있었습니다.
기억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구체적으로 변한다.
그것은 기억의 일반적인 작동 방식과 반대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흐릿해지거나 단순화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반대로 세부 내용이 더 선명해진다면, 그것은 누군가의 도움이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진술 오염.
서영희는 그 단어를 메모 맨 위에 적었습니다.
진술 오염이란 참고인이나 증인의 진술이 외부의 영향을 받아 원래의 기억과 다르게 변형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조사관이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거나, 반복 조사 과정에서 원하는 답을 암시하거나, 다른 진술 내용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 그 원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싸울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제3장 접견실의 밤
하명수를 처음 접견한 것은 수임 닷새 후였습니다.
구치소 접견실은 늘 그렇듯이 썰렁했습니다. 형광등 아래 나무 의자, 가운데에 놓인 칸막이 유리, 그리고 마이크를 통해 들려오는 소음 섞인 목소리들.
하명수는 생각보다 노쇠해 보였습니다.
전직 국가기관 고위 간부라는 직함과는 달리, 그는 구치소 생활로 살이 빠졌고 안색이 어두웠습니다. 그러나 눈빛만은 여전히 또렷했습니다.
"선생님이 맡아주신다니 다행입니다."
서영희는 형식적인 인사를 생략했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모두 솔직하게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유리한 것만 말해주시면 오히려 불리해집니다."
하명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녀는 조서에 기재된 내용들을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명수는 기소 내용의 상당 부분을 부인했습니다. 특히 이재갑의 진술에 대해서는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거짓입니다. 금품 거래는 없었습니다."
서영희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피의자의 자기변호는 기본입니다. 결백하다는 주장도, 모함이라는 주장도 모두 들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대로 믿는 것은 변호인으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이재갑 씨와는 언제부터 관계가 틀어졌습니까?"
하명수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재직 마지막 해였습니다. 인사 문제로 갈등이 있었습니다."
"구체적으로요?"
하명수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재갑이 원하는 보직을 얻지 못하면서 불만이 쌓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기관 내에서 여러 차례 마찰이 있었고, 결국 퇴직 이후 완전히 단절이 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서영희는 꼼꼼하게 메모했습니다.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질문은 마지막에 나왔습니다.
"그날 밤 조사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술이 있었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하명수는 잠시 망설였습니다.
"조사가 길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참고인이었는데 마치 피의자처럼 취급받았습니다. 자정이 지나고 나서였습니다. 조사관 중 한 명이 자리를 비웠다 돌아오더니, 뭔가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종이컵 두 개에 담긴 것이었는데, 냄새가 났습니다."
"냄새가 났다는 것은 어떤 근거로 술이라고 판단하셨습니까?"
"소주 냄새였습니다. 분명히."
"그것을 마셨습니까?"
"한 컵을 마셨습니다. 그 상황에서 거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서영희는 그 답변을 받아 적었습니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진술은 어땠습니까?"
"...어느 순간부터 기억이 흐릿해졌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 다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진술이었습니다. 동시에 검증이 필요한 진술이었습니다.
서영희는 접견을 마치고 나오면서 이미 여러 가지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술이 반입되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것은 단순한 절차 위반을 넘어 조사의 적법성 전체를 흔드는 문제였습니다. 진술의 임의성이 의심받을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조서 자체의 증거 능력이 문제 될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그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하명수 측의 변호 전략 전체를 다시 짜야 했습니다.
그녀는 구치소 주차장에서 차에 오르며 보조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지수 씨, 조사실 반입 물품 관련 내부 규정 전문 찾아줘요. 그리고 조사국 청사 출입 기록 열람 신청 준비해 주세요."
서영희는 이 사건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한 절차 위반 주장으로는 재판을 뒤집기 어려웠습니다. 필요한 것은 구조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었습니다. 수사의 전체 과정이 특정한 결론을 향해 설계되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다음 이 주일 동안 거의 매일 밤을 사무실에서 보냈습니다.
증거 목록을 다시 검토했고, 조서 비교 분석을 더 정밀하게 진행했습니다. 이재갑의 두 차례 진술 외에, 사건과 관련된 다른 참고인들의 진술도 분석했습니다. 진술들 사이의 일치와 불일치를 도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이재갑 외에 또 다른 참고인 오병철이라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명수의 재직 시절 관련 기업과 중간에서 접점을 가졌다는 의혹을 받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병철의 진술 조서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발견되었습니다. 첫 번째 진술에 비해 두 번째 진술에서 세부 내용이 더 구체화되어 있었고, 하명수에게 불리한 표현이 강화되어 있었습니다.
같은 패턴이 두 명의 참고인에게서 나타난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서영희는 이지수를 불렀습니다.
"이 두 사람의 조사 날짜를 확인해 줘요. 오병철 두 번째 진술이 언제였는지, 이재갑 두 번째 진술이 언제였는지."
이지수가 기록을 검토했습니다.
"오병철 두 번째 진술은 십월 십사일이고, 이재갑 두 번째 진술은 십월 이십일입니다."
"일주일 차이군요."
"네."
"그 사이에 두 사람이 만났을 가능성은?"
"기록상으로는 없습니다만, 기록에 안 남는 방법은 있을 수 있겠죠."
서영희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아니면 만난 것이 아니라, 조사관 쪽에서 한 사람의 진술 내용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준 것일 수도 있어요."
그것이 진술 오염의 전형적인 방식이었습니다.
서영희의 눈에 빛이 스쳤습니다. 그녀는 이미 법정에서 어떤 질문을 할지 머릿속에서 그려보고 있었습니다.
제4장 감찰의 시작
감찰위원회가 김동진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 것은 재판이 시작된 지 두 달이 지나서였습니다.
계기는 언론 보도였습니다.
수도권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두 곳이 같은 날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하명수 사건 수사 과정에서 심야 조사가 이루어졌고, 조사실 안에 주류가 반입되었다는 의혹이 있으며, 관련 녹취파일이 삭제 또는 손상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기사의 출처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익명의 관계자, 법조 관계자, 수사 통에 밝은 소식통이라는 표현들이 사용되었습니다.
김동진은 그 기사를 사무실에서 읽었습니다.
커피잔을 들다가 멈추었습니다. 기사 내용을 다시 읽었습니다.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누가 흘렸을까.
그는 조사 팀을 생각했습니다. 한명철, 이성민. 아니면 다른 누군가.
기사 내용은 상당히 구체적이었습니다. 단순히 소문이나 추측이 아니라, 내부 사정을 아는 사람이 제공한 정보임이 분명했습니다.
박세훈 조사국장은 그날 오후 김동진을 국장실로 불렀습니다.
"이 기사 어떻게 된 거야?"
김동진은 의연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도 알 수 없습니다. 내부 유출인지 외부 추측인지."
박세훈은 창가에 서서 바깥을 내다보았습니다.
"감찰위원회가 들여다보겠다고 합니다. 막을 수가 없어."
"감찰이 들어온다면 협조하면 됩니다. 조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습니다."
박세훈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문제가 없다는 게 맞아?"
짧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맞습니다."
박세훈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감찰위원회 조사는 이 주일 후에 시작되었습니다.
감찰위원회는 조사국 내부 기관이지만 독립적인 조사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원장은 오 년 이상 재직한 외부 전문가였고, 조사위원들은 내부 인력과 외부 인사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김동진은 첫 번째 감찰 면담에 출석했습니다.
면담실은 청사 육 층에 있었습니다. 창문 없는 방이었습니다. 테이블 맞은편에 위원 두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질문은 예상했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조사 기간, 심야 조사의 이유, 녹취파일 오류의 경위, 이재갑 참고인 진술 확보 과정.
김동진은 차분하게 답했습니다.
심야 조사는 참고인의 일정에 맞추다 보니 길어진 것이라고 했습니다. 녹취파일 오류는 장비 결함으로 기술팀에서 이미 확인된 사항이라고 했습니다. 주류 반입은 전혀 없었으며 그런 일이 가능하지도 않다고 했습니다.
그는 일관되게 답했습니다.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감찰위원 한 명이 물었습니다.
"이재갑 씨 진술 조서에 일부 표현상 변화가 있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참고인이 반복 조사를 통해 기억을 더 구체적으로 회상한 것입니다. 통상적인 수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조서 작성 과정에서 조사관이 특정 표현을 유도한 것은 아닙니까?"
"없습니다."
그 답변은 명확했습니다.
그러나 김동진이 면담실 밖으로 나오면서, 그의 표정에는 무언가 스쳐가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은 복도에서 스쳐가던 한명철이었습니다.
한명철은 조사관님 쪽을 바라보았다가 시선을 내렸습니다.
그도 이미 감찰위원회 면담 일정을 통보받은 상태였습니다.
감찰위원회 조사가 시작되면서 조사국 청사 내부 분위기는 달라졌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눈을 피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점심식사를 함께 하는 자리에서 대화가 줄었습니다. 누가 감찰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누구의 진술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김동진의 팀이 특히 시선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성민은 그 분위기를 버티기가 힘들어하는 것이 역력했습니다. 그는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짧았습니다. 이 상황이 어디로 흘러갈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점심 시간, 이성민이 김동진을 찾아왔습니다.
"조사관님, 잠깐 말씀 드려도 될까요?"
둘은 청사 뒷편 흡연 구역으로 나갔습니다.
"걱정이 많이 되는 것 같네."
"솔직히 말씀 드리면, 그날 밤에 대해서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다."
김동진의 눈이 순간 좁아졌습니다.
"어디서 그런 말을 해야 해. 감찰에서 따로 물었어?"
"아직은요. 그런데 조만간 물을 것 같습니다."
"무슨 기억을 말하는 거야."
이성민은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그날 자정 즈음에, 복도에서 봉지 든 사람을 봤습니다. 편의점 봉지 같은 것이었는데, 조사실 쪽으로 들어갔습니다."
침묵이 흘렀습니다.
"확실해?"
"네. 근데 누가 들고 들어갔는지는 제가 직접 들어간 것이 아니라서..."
"봉지 안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잖아."
"...네."
김동진은 담배를 한 모금 빨았습니다.
"그 기억은 감찰에서 굳이 꺼낼 필요 없어.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말하면 혼란만 커지고 네가 피해봐."
이성민은 잠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성민 자신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상관의 말을 거역할 만한 용기가 그에게는 없었습니다.
언론의 관심은 빠르게 커졌습니다.
처음 기사가 나간 이후 일주일 만에 세 개의 방송 프로그램이 이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조사국 측의 공식 입장은 "철저한 내부 조사 중"이라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언론의 확산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여론은 빠르게 양분되었습니다.
한쪽에서는 국가기관의 강압수사 의혹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피의자 측이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전략적 의혹 제기를 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법정 밖에서 이미 또 다른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김동진은 그 여론 흐름을 매일 모니터링했습니다.
조사국 홍보팀에서는 그에게 공식 입장 발표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거절했습니다. 법정 밖에서 여론전을 벌이는 것은 오히려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그는 내부적으로 자신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박세훈 국장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습니다. 직접적인 말은 없었지만, 이전과 달리 김동진과 단독으로 면담하는 시간을 피하는 것 같았습니다. 회의에서도 말을 아끼는 편이었습니다.
조직은 언제나 위기 상황에서 희생양을 필요로 했습니다.
김동진은 그것을 오랫동안 경험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그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 한 것이 바로 그즈음이었습니다.
제5장 법정 개전
재판 첫날, 서울 중앙법원 오 법정.
방청석은 절반 이상 채워져 있었습니다. 언론사 기자들이 앞줄에 자리를 잡았고, 법조계 관계자들도 여럿 눈에 띄었습니다. 관심이 높은 사건이었습니다.
피고인석에는 하명수가 단정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검사석에는 담당 검사 강태인이 앉아 있었습니다. 나이 마흔둘.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소속이었습니다. 차분하고 빈틈없는 스타일로 알려진 인물이었습니다. 이 사건을 기소한 것도 그였습니다.
변호인석에는 서영희가 앉아 있었습니다.
재판장 유성환이 입장하면서 법정이 조용해졌습니다.
공소사실 낭독이 시작되었습니다. 강태인 검사가 읽어 내려가는 공소 내용은 명확했습니다. 하명수가 재직 기간 동안 특정 기업의 수사 정보를 유출하고 그 대가로 총 사억 오천만 원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재갑의 진술과 금융 거래 분석 자료가 핵심 증거로 제시되었습니다.
서영희는 검사의 낭독을 들으면서 메모를 했습니다.
그녀의 메모는 이미 빼곡했습니다. 재판 준비를 하면서 정리한 내용들이었지만, 법정에서 직접 들으면서 더 보완할 부분을 찾아내고 있었습니다.
재판장이 피고인에게 물었습니다.
"피고인은 공소사실에 대해 어떻게 답하시겠습니까?"
하명수는 뚜렷하게 대답했습니다.
"전부 부인합니다."
방청석에서 웅성거림이 일었습니다.
첫 번째 증인 신문은 이틀 후에 진행되었습니다.
첫 증인은 이재갑이었습니다.
그는 법정에서도 차분했습니다. 검은색 정장 차림이었고,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눈빛은 피하지 않았습니다.
강태인 검사의 주신문이 먼저 진행되었습니다.
검사는 이재갑이 하명수의 보좌관으로 일했던 기간, 금품 수수가 이루어졌다는 구체적인 상황,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단계적으로 묻고 확인했습니다. 이재갑은 일관되게 진술했습니다.
주신문이 끝났습니다.
서영희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반대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증인은 이 조사 과정에서 총 몇 차례 조사를 받으셨습니까?"
이재갑이 생각했습니다.
"두 차례입니다."
"두 차례. 그렇군요. 첫 번째 조사는 언제였습니까?"
이재갑이 날짜를 말했습니다.
"두 번째 조사는요?"
이재갑이 대답했습니다.
"두 조사 사이에 기간이 일주일 있었군요."
"그렇습니다."
서영희는 잠시 서류를 살펴보는 척했습니다. 실제로는 이미 모든 것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증인은 첫 번째 조사에서 하명수 씨와 금품을 주고받은 시기를 '그해 시월 말 무렵'이라고 하셨습니다. 맞습니까?"
이재갑이 잠깐 멈추었습니다.
"...그런 표현을 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조사에서는 날짜를 '십월 이십이일'로 특정하셨습니다. 그 사이에 기억이 더 정확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생각해 보니 날짜가 기억났습니다."
"어떤 계기로 기억이 났습니까?"
이재갑은 잠시 말이 막혔습니다.
"...그냥 생각이 나서."
서영희는 몸을 앞으로 살짝 기울였습니다.
"그 기간에 다른 참고인들이나 관련자와 접촉한 일이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조사관 쪽에서 연락이 온 것은요?"
"비공식적인 접촉은 없었습니다."
"비공식적인 것은 없었다고 하셨는데, 공식적인 접촉은 있었습니까?"
이재갑이 또 한 번 막혔습니다.
"확인 연락이 한 번 있었습니다."
법정이 조용해졌습니다.
강태인 검사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서영희는 계속했습니다.
"그 확인 연락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일정 확인이었습니다."
"일정만 확인한 것입니까? 다른 내용은 없었습니까?"
"...날짜 관련해서도 잠깐 얘기가 나왔던 것 같습니다."
"어떤 얘기였습니까?"
이재갑은 눈을 내렸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서영희는 그 지점에서 질문을 잠시 멈추었습니다.
이재갑이 인정한 것은 단지 날짜 관련 이야기가 오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두 번째 조사에서 기억이 더 정밀해진 이유가 단순히 혼자서 떠올린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의 씨앗을 심는 것이 이 단계의 목표였습니다.
그녀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증인과 하명수 씨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인사 문제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데, 맞습니까?"
"그런 측면이 있었습니다."
"그 갈등이 이 사건과 관련된 진술을 하게 된 것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닙니까?"
"전혀 없습니다."
"전혀 없다. 단언하시는군요."
서영희는 다시 서류를 펼쳤습니다.
"제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증인은 하명수 씨 재직 당시 승진 심사에서 두 차례 탈락하셨습니다. 두 차례 모두 하명수 씨가 인사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맞습니까?"
방청석에서 다시 웅성거림이 일었습니다.
"...사실입니다."
"그리고 퇴직 이후에는 그 기관과 관련된 재취업 자리를 알아봤으나 여의치 않았다는 것도 맞습니까?"
이재갑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그것이 이 사건과 무슨 관련입니까?"
재판장이 개입했습니다.
"증인은 질문에 답해 주세요."
이재갑은 잠시 후 대답했습니다.
"재취업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 진술과는 무관합니다."
서영희는 더 이상 그 주제를 파고들지 않았습니다. 필요한 것은 이미 나왔습니다.
그녀는 재판장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이상으로 반대신문을 마치겠습니다."
첫 번째 증인 신문 이후,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법정 밖에서도 이재갑의 진술과 조사관과의 확인 연락 이야기가 빠르게 퍼졌습니다. 언론은 즉각 반응했습니다.
서영희는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했습니다. 법정 밖에서 언론과 대응하는 것은 자신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싸움은 법정 안에서 해야 했습니다.
강태인 검사 쪽에서도 내부적으로 긴장감이 높아진 것이 분명했습니다. 이재갑의 진술이 반대신문에서 흔들렸다는 사실을 검찰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다음 증인 신문에서는 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무렵, 조사국 내부에서 하나의 균열이 생겼습니다.
제6장 균열
한명철이 서영희의 사무실을 방문한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전화 한 통 없이 불쑥 찾아왔습니다. 오후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서영희가 사무실에 있었다는 것은 운이 좋은 일이었습니다.
한명철은 코트를 벗지도 않고 의자에 앉았습니다.
"저는 지금 여기 온 것을 나중에 후회할 수 있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왔습니다."
서영희는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건지요."
"저는 그날 밤 조사실 안에 있었습니다."
침묵이 흘렀습니다.
"계속하세요."
한명철은 코트 안주머니에서 메모지 한 장을 꺼냈습니다.
"저는 공식적으로 진술하기 전에 이것을 먼저 드리려고 왔습니다. 그날 밤 제가 기억하는 내용입니다."
서영희는 메모지를 받아들었습니다.
거기에는 날짜, 시간, 장소, 그리고 그날 밤 조사실 안에서 일어난 일의 개요가 적혀 있었습니다. 술이 반입되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들어간 사람이 누구인지도 적혀 있었습니다.
서영희는 두 번 읽었습니다.
표정을 관리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습니다.
"이 내용을 공식 증언으로 할 의사가 있으십니까?"
한명철은 짧게 대답했습니다.
"있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입니까?"
"저 혼자 이 사건의 짐을 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침묵을 지키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서영희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변호인의 입장에서 제가 드릴 수 있는 것과 드릴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절차에 대해서는 안내해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날 밤 서영희는 사무실에서 자정을 넘겼습니다.
한명철의 증언이 법정에서 효력을 발휘하려면 그것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단순히 조사관 한 명의 진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뒷받침하는 다른 증거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녀는 증거 목록을 다시 펼쳤습니다.
김동진은 한명철이 변호인 측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그다음 날 알았습니다.
청사 내부에서 소문이 빠르게 퍼졌습니다. 누가 처음 퍼트렸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전이 지나기 전에 이미 여러 사람이 알고 있었습니다.
김동진은 한명철을 찾았습니다.
복도에서 마주쳤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할 말 있나요?"
한명철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할 것입니다."
"팀 전체가 어떻게 되는지 생각해봤어?"
"조사관님이 먼저 생각하셨어야 했습니다."
그 말은 비수처럼 날카로웠습니다.
김동진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았습니다. 테이블 위에 놓인 파일들. 십사 년 동안 쌓아온 것들. 그 무게가 갑자기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는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박세훈이 김동진을 국장실로 다시 부른 것은 그로부터 사흘 후였습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국장실에는 박세훈 외에 감찰위원회 위원장이 동석해 있었습니다.
"김 조사관, 솔직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어요."
박세훈의 목소리는 차가웠습니다.
김동진은 그 순간 직감했습니다.
이미 결론이 나 있다는 것을.
"한 조사관의 진술이 변호인 측에 제공되었습니다. 그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기관이 입는 타격은 상당합니다."
감찰위원장이 말을 이었습니다.
"김 조사관이 자발적으로 경위서를 제출하고 조사에 성실히 협조한다면, 그것이 이후 판단에 반영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협박이었습니다. 우아하게 포장된 협박이었지만, 본질은 같았습니다.
스스로 일부를 인정하고 조직의 책임을 줄여라.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네가 뒤집어쓸 것이다.
김동진은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십사 년.
그는 천천히 눈을 떴습니다.
"경위서 제출은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사실만 쓸 것입니다."
박세훈의 눈에 무언가 지나갔습니다.
"사실이 뭔지 잘 생각하고 써요."
김동진은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날 밤 그는 처음으로 변호사를 찾았습니다.
자신을 위한 변호사였습니다.
조직에 맞설 준비를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동시에 이 상황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냉정하게 파악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선택한 변호사는 서영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서영희라는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 법정에서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그녀가, 어떤 패를 들고 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제7장 진실의 무게
두 번째 핵심 증인 신문은 재판이 시작된 지 여섯 주 후였습니다.
이번 증인은 김동진이었습니다.
그는 법정에서 증인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수석 조사관이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냥 한 명의 증인이었습니다.
강태인 검사의 주신문은 비교적 짧았습니다. 검사는 김동진에게 조사 과정의 합법성을 확인하는 질문들을 했고, 김동진은 기존 입장을 유지하며 답했습니다. 모든 절차가 적법했다. 주류 반입은 없었다. 녹취 오류는 장비 결함이었다.
그러나 주신문 내내 방청석은 조용했습니다.
모두가 기다리는 것은 반대신문이었습니다.
서영희가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법정 안의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그녀는 파일을 들고 천천히 증인석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증인은 조사 당일 밤 심야 조사가 진행된 것은 인정하십니까?"
"인정합니다."
"그 조사가 자정을 넘긴 것도 인정하십니까?"
"인정합니다."
"참고인 이재갑 씨가 총 여덟 시간 이상 조사를 받은 것도 인정하십니까?"
"인정합니다."
서영희는 파일을 펼쳤습니다.
"제가 이 법정에서 증거로 제출한 자료 중에, 조사국 청사 지하 이 층 자판기 거래 내역이 있습니다. 재판장님께 이미 제출되어 있습니다."
강태인 검사가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 자판기는 조사실 복도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거래 내역에 따르면, 그날 밤 열한 시 오십 분에서 다음 날 새벽 한 시 사이에 거래가 전혀 없었습니다. 약 한 시간 이십 분의 공백입니다."
김동진은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시간대에 조사실 복도를 오간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정하십니까?"
"복도를 오간 사람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제가 확인할 수 없습니다."
"증인 본인이 그 시간대에 복도로 나간 일이 있었습니까?"
"없습니다."
"팀원 중 누가 복도를 나갔는지도 모르십니까?"
"조사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서영희는 파일을 넘겼습니다.
"제가 이 법정에 제출한 두 번째 증거는 조사국 청사 지하 이 층 출입구 시시티브이 기록입니다. 그 기록에 따르면, 그날 밤 열두 시 이십 분에 누군가가 조사실 구역으로 진입했습니다. 이 영상은 법원에 제출되어 있습니다."
방청석에서 웅성거림이 일었습니다.
"그 인물이 든 것이 무엇인지는 영상만으로는 불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이재갑 씨의 진술에서 기억이 갑자기 구체화되기 시작한 시점과 겹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합니다."
강태인 검사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재판장님, 변호인이 증거와 무관한 추론을 하고 있습니다."
재판장이 검사를 바라보았습니다.
"변호인은 계속하십시오."
서영희는 잠시 검사를 바라본 뒤 다시 김동진 쪽을 향했습니다.
"증인, 이재갑 씨의 두 번째 진술에서 기억이 더 구체화된 것에 대해 증인이 어떠한 도움을 주었습니까?"
"없습니다."
"단언하십니까?"
"단언합니다."
서영희는 다시 파일을 넘겼습니다.
"증인이 그날 밤 이재갑 씨에게 이미 확보된 다른 참고인의 진술 내용 중 일부를 알려준 사실이 있습니까?"
이것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습니다.
김동진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습니다.
"없습니다."
"없다고요."
"없습니다."
서영희는 파일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습니다.
"이 법정에 조사국 내부 통화 기록을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재판장님 확인하셨습니다. 이재갑 씨 두 번째 조사 사흘 전, 증인의 업무용 전화에서 이재갑 씨 전화로 발신된 기록이 있습니다. 통화 시간은 사십이 분입니다."
법정이 고요해졌습니다.
"그 통화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김동진은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일정 관련 연락이었습니다."
"사십이 분 동안 일정만 확인했습니까?"
"조사 관련 사항도 논의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습니까?"
"...세부 내용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서영희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긴 침묵이었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법정 안의 모든 사람이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증인이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시니 더 이상 이 부분은 묻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사십이 분이라는 시간이, 그리고 그 통화 이후 이재갑 씨의 기억이 갑자기 정밀해졌다는 사실은, 이 법정이 판단하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파일을 닫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증인은 지금도 그날 밤 조사실 안에 주류가 없었다고 확신하십니까?"
김동진은 대답하기 전에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것이 불과 일 초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정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 일 초를 느꼈습니다.
"...없었습니다."
서영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반대신문을 마치겠습니다."
그날 저녁, 김동진은 혼자 청사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도심의 불빛이 멀리 펼쳐져 있었습니다. 바람이 차가웠습니다.
그는 오래 서 있었습니다.
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 법정에서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달라졌다는 것을 그도 느꼈습니다.
서영희는 그를 완전히 무너뜨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저 모순과 침묵을 드러냈습니다. 나머지는 법정이 판단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판단 앞에서, 그는 자신의 선택들을 다시 돌아보고 있었습니다.
제8장 마지막 반전
재판이 막바지에 이른 무렵,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감찰위원회가 내부 조사 결과를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그 내용은 김동진 개인의 행위를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서영희는 그 문서를 받아보고 자신의 사무실에서 읽었습니다.
삼 시간 후, 그녀는 이지수를 불렀습니다.
"이 문서 전체 다시 읽어봐요. 특히 부록 부분."
이지수가 읽기 시작했습니다.
감찰 결과 문서에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김동진이 하명수 사건에 대한 수사 방향을 임의로 조작했다는 의혹은 부분적으로만 사실이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위에 있었습니다.
조사국 상층부, 구체적으로는 박세훈 국장과 그의 직속 상관인 기획조정실장이 이 사건의 처리 방향에 대해 사전 협의를 했다는 내부 문건이 발견된 것이었습니다. 그 협의 내용은 하명수 사건을 기소 가능한 형태로 만들어 특정 목적에 활용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특정 목적.
그것은 당시 진행 중이던 조사국의 예산 확대 국회 심의와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하명수 같은 전직 고위 간부의 비리를 성공적으로 수사했다는 실적이 있으면, 예산 심의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김동진은 그 계획 안에서 실행자 역할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직접 기획한 것이 아니라, 이미 설계된 그림 안에서 움직인 것이었습니다.
이지수가 문서를 다 읽고 고개를 들었습니다.
"선생님, 이게 사실이라면..."
"사실이에요."
서영희는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았습니다.
이 사건의 전체 구조가 비로소 명확하게 보였습니다.
하명수에게 일부 혐의가 있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조사 전체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기획된 것이었습니다. 김동진은 그 목적을 위해 사용되었고, 수사 과정에서 절차를 어긴 것도 그 압박 속에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가해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였습니다.
그것이 진실의 복잡한 얼굴이었습니다.
서영희는 최후 변론에서 이 내용 전체를 다루었습니다.
법정 안은 조용했습니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 담긴 논리는 치밀했습니다.
"재판장님, 이 사건에서 피고인 하명수의 혐의 유무는 그 자체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이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된 자료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그녀는 이재갑의 진술 변화, 조사관의 사전 통화, 삭제된 녹취파일, 시시티브이 기록의 공백, 그리고 감찰위원회가 밝혀낸 상부의 사전 협의까지 하나씩 짚어나갔습니다.
"수사는 진실을 찾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수사는 처음부터 특정한 결론을 향해 설계되었습니다. 조사관 김동진은 그 설계의 실행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설계를 만든 것은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녀는 잠시 멈추었습니다.
"피고인이 완전히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재판에서 유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증거가 적법하게 수집되었어야 합니다. 참고인 진술이 오염되지 않았어야 합니다. 조서가 진실을 반영해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그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서영희는 법정 안을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증거 능력이 인정되지 않는 자료를 바탕으로 한 기소는, 그 내용의 진위와 관계없이 지지될 수 없습니다. 법의 절차는 형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을 보호하는 실질적인 방어벽입니다. 그 방어벽이 무너질 때, 피해를 입는 것은 피고인 한 명이 아니라 이 사회 전체입니다."
그녀는 서류를 정리했습니다.
"이상으로 최후 변론을 마칩니다."
법정은 잠시 침묵에 잠겼습니다.
판결은 이 주 후에 나왔습니다.
재판장 유성환은 판결 이유를 읽었습니다.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참고인 이재갑의 진술은 신뢰성에 중대한 의문이 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독립적인 증거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둘째, 수사 과정에서 절차적 적법성이 다수 지점에서 훼손되었습니다.
주문은 무죄였습니다.
방청석에서 탄식과 환호가 동시에 터졌습니다.
하명수는 눈을 감았습니다.
서영희는 판결문을 받아들고 눈을 내렸습니다.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한 기쁨으로 다가오지는 않았습니다. 이 판결은 진실이 무엇인지 확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사 과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정한 것이었습니다.
그 차이는 컸습니다.
김동진은 판결 당일 법정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감찰위원회의 징계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직위해제 상태였습니다.
박세훈 국장은 이미 사임했습니다. 기획조정실장도 직위해제되었습니다. 검찰이 별도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도 들렸습니다.
조직이 그를 보호하지 않았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는 그날 저녁 혼자 경북 고향 집을 향했습니다. 서울에서 차로 세 시간이 넘는 거리였습니다.
산골 마을. 어린 시절 자라던 집. 지금은 어머니 혼자 계셨습니다.
그는 도착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루에 앉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를 보고 잠시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가 국을 끓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밤, 오랜 시간 만에 그는 깊이 잠들었습니다.
잘못된 것들을 되돌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시작이라는 것을 그는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에필로그
재판이 끝나고 두 달이 지났습니다.
서울의 봄은 천천히 오고 있었습니다.
서영희의 사무실에는 새로운 사건 기록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녀는 이 사건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다음 사건으로 넘어갔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녀 안에서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명수가 정말로 결백했는가.
그 질문에 그녀는 여전히 명확한 답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렸지만, 그것은 수사 절차의 문제였지 하명수의 행위에 대한 완전한 면죄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법이 할 수 있는 것의 한계이기도 했습니다.
법은 적법한 절차를 통해 확인된 것만을 다룰 수 있습니다. 그 바깥에 있는 진실은 법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남습니다.
서영희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 일을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습니다.
절차를 지키는 것이 진실을 보호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재갑은 사건 이후 잠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그의 진술이 신뢰성 논란에 휩싸이면서 언론의 관심도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세 달이 지나고 나서 그는 지방의 작은 기업에서 고문직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조용히 일상으로 돌아간 것이었습니다.
그가 처음 한 말과 나중에 한 말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 그것은 그 자신만이 알고 있었습니다.
한명철은 감찰 조사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진술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불이익을 가져왔습니다.
조사국에서 사실상 한직으로 밀려났습니다. 동료들과의 관계도 어색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조용한 성격이었지만, 그 안에는 흔들리지 않는 것이 있었습니다.
이성민은 감찰 조사에서 자신이 복도에서 본 것을 뒤늦게 진술했습니다. 처음에 침묵했던 것에 대한 자책이 오래 이어졌습니다. 그는 이후 조사관으로 계속 일했지만,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 느꼈습니다.
김동진은 징계위원회에서 해임 처분을 받았습니다.
십사 년의 경력이 끝났습니다.
그는 항소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그는 짧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이 맞는 것 같아서."
이후 그는 고향에서 얼마간 지내다가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작은 법무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일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서영희의 이름을 검색했습니다.
그녀는 새로운 사건에서 또다시 권력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언론에서 다루어지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는 그 기사를 읽고 화면을 닫았습니다.
할 수 있는 말도, 해야 할 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자리에서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그에게는 작은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조사국 청사 지하 이 층, 조사실 복도.
형광등은 여전히 깜박이고 있었습니다.
낡은 건물 특유의 냄새, 서류와 커피와 오래된 페인트가 뒤섞인 그 냄새.
조사실 사호의 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그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짜 진실은 무엇인지를 완전히 알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도, 각자 기억하는 진실이 조금씩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진실이란 그런 것입니다.
하나의 공간에서 여러 개의 기억이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무엇이 법정 앞에 서는가는, 언제나 권력과 절차와 사람의 용기에 의해 결정됩니다.
술잔은 거기 있었습니다.
분명히.
그러나 그것이 누구의 손에 의해 거기 놓이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것이 필요했는지는, 이 이야기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도시 어딘가에서 침묵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서울의 봄이 오고 있었습니다.
도시는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조사실 복도에 형광등이 깜박이고 있었습니다.
《붉은 접견실》 완
이 작품은 완전한 창작물입니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 기관, 사건은 허구이며 실존 인물이나 실제 사건과 관련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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