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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1월의 서울은 유난히 일찍 어두워졌습니다. 해가 지고 나면 도시의 불빛이 켜지는 속도보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는 속도가 더 빨랐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한강을 따라 올라와 골목골목을 훑고 지나갔고, 그 바람 속에는 겨울이 코앞에 있다는 냄새가 배어 있었습니다. 낙엽은 이미 다 떨어진 뒤였고, 앙상하게 남은 가로수 가지들이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긴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보도블록 위를 걷는 사람들은 저마다 옷깃을 여미며 걸음을 서둘렀고, 누구도 옆 사람의 얼굴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김동민은 마포구 공덕동에 있는 낡은 오피스텔 건물 앞에 서 있었습니다. 건물 외벽에는 곰팡이 자국이 번져 있었고, 현관문 위에 달린 전등은 한쪽이 깜빡이다 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건물 입구 옆 우편함에는 꺼내지 않은 우편물이 삐져나와 있었습니다. 그 중 몇 장은 그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지만 꺼내지 않았습니다. 어떤 소식도 지금의 그에게 반가운 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손에 편의점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있었습니다. 봉지 안에는 소주 두 병과 삼각김밥 하나, 그리고 해열제 한 박스가 들어 있었습니다. 사흘째 감기 기운이 있었지만 병원에 갈 여유는 없었습니다.
서른여섯 살의 김동민은 한때 중견 건설회사의 현장 소장이었습니다. 경기도 안양에 있는 사립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군 복무를 마치고 건설업계에 뛰어들었습니다. 입대 전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이 일이 자신에게 맞는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흙 냄새와 콘크리트 냄새, 철근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건물이 올라가는 과정을 눈앞에서 지켜보는 일이 그에게는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학벌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남들보다 더 일찍 현장에 나갔고, 남들보다 더 늦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도면을 읽는 법을 스스로 익혔고, 안전 관리 자격증과 건설 관련 기술 자격증을 야간 학원을 다니며 차례로 따냈습니다. 발로 뛰고, 땀으로 일한 끝에 서른둘의 나이에 작은 주택 공사 현장의 소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 당시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고, 막 세 살이 된 딸이 있었습니다. 작은 전세 아파트였지만 그것이 그의 전부였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운이라는 것은 항상 같은 편에 있어 주지 않았습니다. 2022년 초, 그가 소속된 회사는 자금난으로 부도 처리되었습니다. 계약 직전까지 갔던 대형 아파트 단지 공사 수주가 무산되면서 회사 전체가 흔들렸고, 그 여파가 고스란히 현장 직원들에게 밀려왔습니다. 퇴직금은 분쟁 속에 묶였고, 밀린 급여 일부는 아직까지 받지 못했습니다.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냈지만 절차는 더디게 진행되었고, 변호사 비용을 댈 여력도 없었습니다. 동민은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중견 이상 건설사들은 경력보다 학력을 먼저 물었고, 중소업체들은 임금이 너무 낮았습니다. 열두 군데에 이력서를 냈습니다. 세 군데에서 면접을 봤습니다. 합격 통보는 한 군데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아내 이수진은 딸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떠났습니다. 법적으로 이혼이 성립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은 2022년 여름에 끝났습니다. 이수진이 가방을 싸는 동안 동민은 거실 소파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무언가를 붙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미안하다고 말하면 되는 것인지, 기다려달라고 말하면 되는 것인지. 어느 말도 지금 이 상황에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이수진은 마지막으로 동민과 마주쳤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무너지는 걸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요." 그 말이 비수처럼 박혔습니다.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누군가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오는 것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진짜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날 밤 그는 딸 하람이가 쓰던 이불을 꺼내 안고 오랫동안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울지는 않았습니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 어떤 공백이 그의 안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오피스텔 방 안으로 들어서자 퀴퀴한 공기가 코를 찔렀습니다. 창문을 오랫동안 열지 않은 냄새였습니다. 작은 방 한켠에는 구겨진 이력서들이 쌓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연체 고지서 몇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월세 미납 안내문이 순서대로 겹쳐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빈 커피 종이컵 하나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을 치울 힘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냥 보기 싫어서 외면했던 것인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습니다. 월세는 두 달이 밀린 상태였고, 통장 잔액은 십사만 원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봉지에서 소주를 꺼내 첫 잔을 따랐습니다. 전화기를 확인했습니다. 오늘 세 군데에서 면접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 군데 모두 연락이 없었습니다.
두 번째 잔을 마시는 동안, 그의 생각은 딸아이 하람이에게로 흘러갔습니다. 이제 여섯 살이 된 하람이는 얼마 전 어린이집 발표회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했습니다. 이수진에게서 온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하람이가 무대에서 웃고 있는 짧은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하람이는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머리에는 흰색 리본이 달려 있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또래 아이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그 얼굴에는 아무런 근심이 없었습니다. 세상이 다 자기 편인 것처럼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동민은 그 영상을 열두 번 반복해서 봤습니다. 열세 번째에는 재생 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 안쪽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꽉 막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딸이 저렇게 웃을 수 있는 세상에 자신은 어디 있어야 하는 것인지. 그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한 채 그는 소주잔만 들었습니다.
소주 한 병이 바닥을 드러낼 무렵, 그의 휴대폰이 울렸습니다. 모르는 번호였습니다. 받지 않았습니다. 잠시 후 문자가 왔습니다. "선배, 나야. 재훈이. 오늘 잠깐 볼 수 있어? 좋은 소식 있어." 최재훈이었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으로, 지금은 서울 서대문구에서 작은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였습니다. 재훈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람을 모으는 재주가 있었습니다. 말이 많고 낙관적이었으며, 늘 무언가를 도모하는 눈빛이었습니다. 예전에 한 번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가 흐지부지된 적이 있어서 동민은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달리 갈 곳도 없었고, 방 안에 혼자 앉아 있기도 싫었습니다.
그는 두 번째 소주병을 들고 일어났습니다.
약속 장소는 마포 쪽 포장마차였습니다. 골목 안쪽에 자리 잡은 포장마차는 주황색 천막이 바람에 찰랑거리고 있었고, 안에서는 연탄불에 끓는 어묵 국물 냄새가 흘러나왔습니다. 재훈은 이미 와 있었고, 테이블에는 소주와 닭발, 그리고 빈 잔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재훈은 동민이 들어서자 손을 들어 반겼습니다.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먼저 한 잔을 하고 기다린 것 같았습니다. 재훈은 금세 흥분된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강원도 쪽에 소규모 리조트 개발 프로젝트가 있는데, 현장 관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경력직을 원하고 있고, 학력 조건은 따로 없다고 했습니다. 월 사백오십만 원에 숙소 제공이었습니다.
"이번엔 진짜야. 내가 직접 사장 만나봤어."
동민은 잔을 받아 마셨습니다. 반쯤은 믿었고, 반쯤은 믿고 싶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 시간 넘게 술을 마셨습니다. 재훈은 최근 회사 일이 잘 풀리고 있다며 신이 나 있었고, 동민은 듣는 역할을 했습니다. 재훈의 이야기는 빠르게 돌아갔습니다. 새로 계약한 강남 오피스 인테리어 건, 다음 달에 진행할 카페 리모델링 건, 그리고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투자자 이야기까지. 동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습니다. 부러운 마음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습니다. 재훈도 특별한 학벌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는 멈추지 않았고, 동민은 어느 순간 멈춰버렸습니다. 그 차이가 지금 이 테이블 위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포장마차를 나왔을 때는 밤 열한 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찬 공기가 얼굴을 때렸습니다. 동민은 취기를 느꼈습니다. 두 곳에서 소주를 합쳐 세 병 이상을 마신 셈이었습니다. 발바닥이 바닥에 착 달라붙는 느낌이 없었고, 시야의 가장자리가 조금씩 흐릿했습니다. 재훈은 택시를 잡아서 먼저 떠났습니다. 동민은 잠시 서 있었습니다. 포장마차 앞 골목에는 아직 몇 명의 사람들이 지나다녔습니다. 누군가는 웃으며 전화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편의점 봉지를 들고 빠른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갔습니다. 그 모두가 저마다의 방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앞에는 골목 입구에 세워둔 자신의 차가 있었습니다. 2016년식 중고 아반떼였습니다. 긁힌 자국이 두 군데 있었고 오른쪽 사이드 미러는 작은 흠집이 나 있었지만, 그것은 그가 가진 몇 안 되는 재산 중 하나였습니다. 면허를 딴 것은 스물두 살 때였고, 그 후로 단 한 번도 음주운전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지켜온 몇 안 되는 선이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고 생각했고, 음주 후 운전은 그 선 안에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는 차 앞에 서서 잠시 멈췄습니다.
집까지는 걸어서 이십 분 거리였습니다. 택시를 타면 만 원 정도 나올 것이었습니다. 통장에 남은 돈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피곤함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생각했습니다. 세 군데 모두에서 연락이 없었던 오늘 하루를. 이수진이 떠난 후 혼자 버텨온 열여섯 달을. 하람이의 웃음을 열두 번 반복해서 보다가 열세 번째를 누르지 못했던 그 순간을. 그는 차 문을 열었습니다.
핸들을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시동을 걸면서 그는 잠깐 망설였습니다. 그 망설임은 삼 초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시간, 그에게 그 삼 초는 너무 짧았습니다.
서울 마포구 도화동 사거리를 지날 무렵, 신호등이 초록에서 노란색으로 바뀌었습니다. 동민은 속도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노란불이 들어왔을 때 그의 발은 브레이크 위에 있지 않았습니다. 신호가 빨간색으로 바뀌었을 때 이미 교차로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오른쪽에서 직진 신호를 받고 달려오던 마티즈 차량이 있었습니다. 상대방 운전자는 동민의 차를 보고 핸들을 꺾으려 했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웠습니다. 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와 함께 충격이 왔습니다.
충격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에어백이 터지고, 앞 유리에 금이 가는 소리가 났습니다. 차체가 옆으로 밀리는 느낌이 들었고, 귀 안쪽에서 뭔가가 압력을 받는 것처럼 먹먹해졌습니다. 그는 잠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코에서 무언가 흘러내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손으로 닦아보니 피였습니다. 에어백에 얼굴이 부딪혔을 때 생긴 찰과상이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았습니다. 마티즈 운전석 쪽 문이 크게 찌그러져 있었습니다. 차 지붕이 한쪽으로 살짝 뒤틀려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동민은 차 문을 열었습니다. 다리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무릎이 핸들 아래에 부딪혔던 것입니다. 그는 간신히 차에서 내려 사고 차량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아스팔트 위에 유리 파편이 흩어져 있었고, 상대방 차량 밑에서 오일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마티즈 운전석 창문 너머로 여자가 보였습니다. 중년의 여자였습니다.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눈을 뜨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습니다. 목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괜찮으세요? 괜찮으세요?"
대답이 없었습니다.
주변에서 차들이 멈추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이미 119에 전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누군가는 스마트폰으로 사고 현장을 찍고 있었습니다. 동민은 그 자리에 서서 다리를 떨었습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방금 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몇 초가 더 필요했습니다. 그가 여기 서 있는 이유가, 이 상황이 벌어진 이유가, 방금 자신이 한 선택이, 그 모든 것이 마치 다른 사람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습니다.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처음에는 멀리서 들렸다가,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그 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면서 동민은 비로소 현실로 돌아왔습니다. 자신이 서 있는 이 차가운 아스팔트 위로, 날카로운 11월의 밤공기 속으로.
그리고 그는 알았습니다. 이 순간부터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이 바뀌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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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 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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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현장에는 세 대의 경찰차가 도착했습니다. 그 뒤를 따라 구급차가 들어서면서 도화동 사거리는 순식간에 파란색과 빨간색 불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불빛이 주변 건물 외벽에 반사되어 거리 전체가 명멸했습니다. 구경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누군가는 통화를 하며 상황을 전했습니다. 구급대원들이 마티즈 쪽으로 달려갔고, 경찰관 두 명이 동민에게 다가왔습니다.
"사고 차량 운전자분이세요?"
동민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음주 여부 확인 좀 해야 합니다."
경찰관이 음주 측정기를 꺼냈습니다. 동민은 순순히 불었습니다. 기계에서 수치가 나왔습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187 퍼센트. 면허 정지 기준의 두 배가 넘는 수치였습니다. 면허 취소 기준인 0.08 퍼센트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경찰관은 측정 결과를 다시 한 번 확인하더니 옆에 있던 동료 경찰관에게 눈짓을 보냈습니다.
경찰관이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했습니다.
"면허증 주시겠어요?"
동민은 손을 바지 뒷주머니로 가져갔습니다. 지갑을 꺼내 열었습니다. 그런데 운전면허증이 없었습니다. 기억을 더듬었습니다. 지난달 갱신 기간이 지났는데 경제적 형편 때문에 미뤄두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도로교통공단에서 보낸 갱신 안내 우편을 받았을 때, 그는 이미 다른 걱정들에 묻혀 있었습니다. 면허 갱신 비용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 비용을 내야 한다는 생각을 할 공간이 머릿속에 없었던 것입니다.
"면허가... 갱신이 안 됐어요."
경찰관이 잠시 그를 바라봤습니다.
"갱신 기간이 언제 만료됐습니까?"
"지난달... 지난달 십오일입니다."
경찰관은 무전기를 들었습니다. 잠시 후 다른 경찰관이 노트북이 든 가방을 들고 현장 차량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데이터베이스를 조회하는 데는 이 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조회 결과는 간단했습니다. 김동민, 만 36세. 운전면허 갱신 기간 경과로 인한 면허 효력 정지 상태. 사실상 무면허 운전에 해당한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었습니다.
현장 처리 담당 경찰관은 그에게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도로교통법상 면허 갱신을 기간 내에 하지 않아 면허가 실효된 상태에서 운전을 한 것은 무면허 운전으로 간주됩니다. 거기에 혈중 알코올 농도 0.187 퍼센트의 음주 운전이 추가되면, 이는 단순 교통 사고가 아니라 형사 입건 대상이 됩니다. 더욱이 사고로 인해 상대방 운전자가 부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구급대원들이 마티즈 운전자를 들것에 실어 구급차에 태우는 장면이 보였습니다. 여자는 의식은 있었지만 목 부분을 고정한 채로 이송되고 있었습니다. 경추 부상이 의심된다는 구급대원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구급차의 문이 닫히고 사이렌이 울리면서 차량이 멀어졌습니다. 동민은 그 후미등이 사라지는 것을 바라봤습니다. 한 사람의 밤이 저 차 안에 있었습니다. 자신이 만들어낸 상황으로 인해.
그는 경찰차에 태워졌습니다.
마포경찰서 교통조사계에는 밤 열두 시가 지나서 도착했습니다. 넓지 않은 사무실에는 형광등이 환하게 켜져 있었고, 천장 형광등 하나는 미세하게 깜빡거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사건으로 나와 있는 경찰관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키보드 소리와 프린터 소리, 간간이 들리는 전화벨 소리가 방 안을 채웠습니다. 동민은 의자에 앉혀졌습니다. 손목에 수갑은 채워지지 않았지만, 그 차이가 그다지 위안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담당 조사관은 이민호 경사였습니다.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단단한 인상의 남자였습니다. 눈 아래에 깊은 다크서클이 있었고, 소매를 약간 걷어붙인 채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동민 앞에 조사서 양식을 펴놓고 기계적으로 항목을 채워나갔습니다. 이름, 생년월일, 주소, 직업. 직업란에서 동민은 잠깐 멈췄습니다. 현재는 무직이었습니다. 이민호 경사는 그것을 별다른 감정 없이 적었습니다.
"오늘 얼마나 마셨습니까?"
"소주를 세 병 정도요."
"언제부터 마셨습니까?"
"저녁 여덟 시쯤부터입니다."
"혼자 마셨습니까?"
"아니요. 친구와 함께요."
조사는 꼼꼼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이민호 경사는 음주 장소, 마신 술의 종류와 양, 음주 종료 시간, 운전 경위, 사고 발생 상황까지 하나하나 물었습니다. 동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거짓말을 할 기력도, 거짓말을 해야 할 이유를 궁리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저 물음에 답했습니다. 진술서에 서명을 할 때 그의 손이 약간 떨렸습니다. 이민호 경사는 그 손을 잠깐 봤다가 시선을 거뒀습니다.
조사 도중 이민호 경사가 잠깐 손을 멈추더니 물었습니다.
"면허 갱신은 왜 안 하셨습니까?"
동민은 잠시 바닥을 내려다봤습니다.
"돈이 없었습니다."
이민호 경사는 다시 양식에 뭔가를 적었습니다.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표정에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그가 커피 자판기 종이컵 하나를 가져다 동민 앞에 놓는 것을 보고, 동민은 그 남자가 무감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피해자 박성희, 56세, 가정주부. 이것이 구급대원 보고를 통해 들어온 상대방 차량 운전자의 정보였습니다. 사고 직후 인근 서울 서부 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박성희는 경추 3번과 4번 사이의 인대 손상과 오른쪽 어깨의 타박상으로 진단받았습니다. 치료 기간은 최소 사 주 이상으로 예상된다는 의사의 소견이 전해졌습니다.
그 소식이 담당 경찰관 입에서 나왔을 때, 동민은 눈을 감았습니다. 오십육 세의 여자가 응급실 침대에 누워 있을 것이었습니다. 낯선 천장을 바라보며 목을 움직이지 못한 채. 그녀에게는 가족이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녀를 걱정하며 병원으로 달려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오늘 밤 자신의 선택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조사를 마치고 귀가는 허용되었습니다. 단, 출국 금지 조치가 취해졌고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소환에 응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경찰서 문을 나서자 이른 아침의 찬 공기가 그를 감쌌습니다. 동쪽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거리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일상의 방향으로 걷고 있었습니다. 동민의 일상은 어젯밤 어딘가에서 멈춰 있었습니다. 어디서부터 뭘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지갑 안에는 오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걷기 시작했습니다. 방향은 정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뒤, 그에게 공식적인 수사 개시 통보가 날아왔습니다.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 음주운전) 및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 검찰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구속 영장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도 통보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동민은 그 서류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단어들이 눈 위를 지나쳤지만 처음 몇 번은 의미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름이 피의자라는 단어 앞에 붙어 있는 것을 바라봤습니다.
동민이 법정에 설 가능성이 생긴 것은 바로 그 순간부터였습니다.
그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는 경기도 이천에 혼자 살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동민이 고등학교 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그 후 이천에 있는 작은 밭을 일구며 혼자 지내셨습니다. 한 번도 짐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하셨던 어머니였습니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은 뒤에도 한동안 침묵이 흘렀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숨소리만 들렸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변호사는 구했니?"
동민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 말이 꾸짖음도 위로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직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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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 재판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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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부 지방법원은 마포구 공덕동의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붉은 벽돌과 유리로 된 외관은 권위보다는 기능에 충실한 인상을 주었고, 법원 현관 앞 계단에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드나들었습니다. 변호사 가방을 든 사람들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고, 서류를 손에 쥐고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법원이라는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직업의 장소이고, 누군가에게는 일생에서 가장 무거운 순간을 맞는 장소였습니다. 건물 앞 화단에는 작은 나무들이 정갈하게 심어져 있었지만, 그것을 눈에 담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판사가 있었고, 검사가 있었고, 변호사가 있었고, 그리고 그들 사이 어딘가에 피고인들이 있었습니다.
2024년 2월의 첫 공판 기일이 잡히기까지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두 달 동안 동민의 삶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무너졌습니다. 재훈이 소개해주겠다던 강원도 현장 관리자 자리는 경찰 조사 개시 소식이 알려지면서 자연스럽게 없던 일이 되었습니다. 재훈에게서는 짧은 문자 하나가 왔습니다. "미안해 선배, 사장이 좀 어렵다고 하네." 동민은 그 문자를 받고 한동안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화가 나지 않았습니다. 재훈이 나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당연한 세상의 반응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피스텔 월세는 석 달째 밀렸고, 건물주는 내용증명을 보내왔습니다. 이수진에게 하람이를 보러 가겠다는 연락을 했다가 거절당했습니다. 이수진의 답은 짧았습니다. "지금은 아니에요."
변호사를 구하는 문제는 예상대로 어려웠습니다. 국선 변호인을 신청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경찰서에서 들었지만, 법원 접수처에서 안내를 받아보니 사선 변호인을 선임할 여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도 복잡했습니다. 서류를 준비하고 제출하는 과정이 이미 그에게는 벅찼습니다. 법은 절차 속에 있었고, 그 절차를 이해하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동민은 결국 어머니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어머니는 이천 집 명의로 된 소액 보험 하나를 해지하고 삼백만 원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돈을 건네면서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건네는 손이 떨렸습니다. 동민은 그 돈을 받아 들고 허리를 굽혔습니다. 오랫동안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그 돈으로 선임한 변호사가 최낙현이었습니다.
최낙현 변호사는 서울 은평구에 작은 법률 사무소를 운영하는 사십 대 중반의 변호사였습니다. 법학전문대학원 출신이 아닌, 오래된 사법고시를 통해 변호사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그를 어떤 면에서 덜 화려하게 보이게 했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더 현실적으로 보이게 했습니다. 형사 전문이라고 자신을 소개했지만, 그의 책상 위에는 이혼 소송 서류와 임금 체불 진정서가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화려한 사무소가 아니라 사람들의 실제 문제들 곁에 있어왔다는 증거처럼 보였습니다. 처음 만남에서 그는 동민의 사건을 꼼꼼히 들은 뒤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사건 자체는 무겁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그 말이 동민에게 처음으로 희미한 빛처럼 들렸습니다.
최낙현 변호사가 파악한 핵심 쟁점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면허 효력 정지 상태가 법적으로 무면허 운전과 동일하게 취급될 수 있는지의 여부였습니다. 면허를 한 번도 취득하지 않은 사람과 갱신 기간을 넘긴 사람을 같은 선상에 놓는 것이 타당한가, 하는 법 해석의 문제였습니다. 둘째, 음주 운전의 위험성과 실제 사고 간의 인과관계를 어느 정도로 볼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음주 운전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사고의 전체적인 경위와 피해의 인과관계는 더 세밀하게 따져볼 여지가 있었습니다.
검찰은 사건을 담당한 공판 검사 황지현에게 배정했습니다. 황지현은 삼십 대 후반의 여성 검사로, 서울법학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뒤 사법연수원을 거쳐 지방 검찰청에서 교통 전담 부서를 맡은 경력이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날카로운 인상이었고, 법정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는 것이 그녀에 대한 동료들의 평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맡은 사건의 기록을 반드시 두 번 이상 처음부터 읽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해야 서류 뒤에 있는 사람과 상황이 보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사건 기록을 검토하며 흔하지 않은 요소 하나를 포착했습니다. 피해자 박성희의 부상 정도가 단순 타박상 수준을 넘어선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추 인대 손상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만성 통증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향후 치료 기간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병원 측 소견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 교통 사고가 아닌 중상해 사건으로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었습니다.
황지현은 공소장 초안을 작성하며 죄목을 세 가지로 정리했습니다.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 도로교통법 위반(무면허운전), 그리고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위험운전치상). 마지막 죄목은 음주나 약물 상태에서의 운전으로 사람을 다치게 한 경우 가중 처벌하는 조항이었습니다. 이 죄목이 인정될 경우, 집행유예를 받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공소장을 작성하면서 피해자 박성희의 현재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현재 물리치료를 받으며 통원 치료 중이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의 일상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동민이 서울 서부 지방법원 302호 법정에 들어선 것은 2024년 2월 14일, 수요일 오전 열 시였습니다. 방청석은 절반 정도 차 있었습니다. 앞쪽에는 당일 여러 사건의 방청을 위해 나온 로스쿨 학생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노트북을 펼치거나 필기 노트를 준비한 채 들어오는 사람들을 관찰했습니다. 중간 쯤에는 피해자 박성희의 남편으로 보이는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습니다. 짙은 회색 코트를 입은 그는 두 손을 무릎 위에 얹고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동민은 그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가 곧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 눈빛 안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를 느꼈지만, 그것을 더 오래 바라볼 수는 없었습니다.
담당 재판장은 김성진 판사였습니다. 오십 대 중반의 과묵한 인상이었습니다. 흰 머리카락이 관자놀이 쪽에 섞여 있었고, 안경 너머의 눈은 법정 전체를 한 번 훑고 나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는 공판이 시작되자 판례집을 탁자 위에 내려놓으며 사무적으로 절차를 진행했습니다.
"피고인은 김동민이 맞습니까?"
"예."
"오늘 공판은 기소 내용 확인 및 피고인 모두 진술을 중심으로 진행하겠습니다."
황지현 검사가 기소 내용을 낭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하고 명료한 목소리였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없이, 마치 사실 자체가 그 자리에서 읽히는 것처럼. 일자, 장소, 혈중 알코올 농도 수치, 면허 효력 상태, 사고 경위, 피해자 부상 내역이 차례로 읽혔습니다. 법정 안은 정적이었고, 그 정적 속에서 숫자들이 공중에 떠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0.187 퍼센트. 사 주 이상의 치료 기간. 경추 인대 손상. 동민은 그 단어들이 자신을 묘사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듣는 동안 그것이 자신의 이야기라는 실감이 자꾸 흐릿해지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낙현 변호사가 피고인 측 모두 진술을 했습니다. 그는 피고인이 죄를 인정하며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진술했습니다. 다만 면허 갱신 지연에 이르게 된 경위와 피고인의 생활 형편을 감안해달라는 취지를 덧붙였습니다. 목소리는 차분했고, 과장하지 않았습니다.
동민은 피고인석에 앉아 똑바로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판사를 보았습니다. 검사를 보았습니다. 방청석에 있는 박성희의 남편을 힐끗 보았습니다. 그는 팔짱을 끼고 입을 굳게 닫은 채 앉아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공판은 그렇게 마흔 분 만에 끝났습니다.
법정을 나오면서 최낙현 변호사가 말했습니다.
"두 번째 공판이 핵심입니다. 증거 조사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판결의 방향을 가릅니다."
동민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법원 건물을 나와 계단을 내려가면서, 뒤를 한 번 돌아보았습니다. 건물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표정이 없다는 것은 이 건물이 수천 명의 사람을 맞이하고 보냈다는 것이고, 그 사람들 모두에게 이 건물은 저마다의 무게로 남아 있을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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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 법리의 칼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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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공판은 3월 첫째 주에 열렸습니다. 이른 봄이었지만 법원 주변 나무들은 아직 잎을 내밀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아직 차가웠습니다. 법정 분위기는 첫 날과는 달랐습니다. 검사 측 증거 조사와 피고인 측 반박이 본격적으로 맞붙는 자리였기 때문에, 법원 서기는 공판 시작 전부터 서류들을 꼼꼼히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방청석도 첫 번째 공판보다 조금 더 채워져 있었습니다.
황지현 검사는 증거를 순서대로 제출했습니다. 첫 번째는 현장 음주 측정 결과서였습니다. 혈중 알코올 농도 0.187 퍼센트라는 수치가 기재된 공식 문서였고, 측정 시각과 측정 장비 고유번호까지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도로교통공단에서 발급한 면허 조회 결과서였습니다. 면허 갱신 기간 만료일, 갱신 이행 여부, 현재 면허 상태가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황지현 검사는 각 증거를 제출하면서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그러나 각 사실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법정이 인식하도록.
세 번째 증거가 제출되었을 때 법정 안의 온도가 조금 달라졌습니다.
그것은 피해자 박성희에 대한 의사 소견서였습니다. 사고 직후 진단서가 아니라, 사고 발생 두 달 뒤에 작성된 추가 소견서였습니다. 내용은 예상보다 심각했습니다. 경추 손상으로 인한 지속적인 신경 압박 증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향후 물리치료와 경우에 따라 수술을 요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치료 기간 추정은 최소 육 개월 이상으로 늘어나 있었습니다. 통원 치료 비용과 향후 발생 가능한 수술 비용에 대한 예상치도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황지현 검사는 증거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피해자는 사고 이전에 경추 관련 기저 질환이 없었습니다. 사고로 인한 충격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판단됩니다. 이는 피고인의 음주 무면허 운전이 단순 사고가 아닌, 실질적이고 중대한 신체 침해를 야기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최낙현 변호사가 반박에 나섰습니다.
"증거 방법에 대한 이의가 있습니다. 해당 소견서는 사고 발생 두 달 후 작성된 것으로, 사고와 현재 증상 사이의 인과관계를 단정 짓기 어렵습니다. 중간에 다른 물리적 요인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김성진 판사가 양측을 번갈아 봤습니다.
"검사 측에서는 인과관계를 입증할 추가 자료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피해자가 입원해 있는 동안의 진료 기록 전체를 추가 증거로 제출하겠습니다. 중간에 다른 사고나 외부 요인에 의한 손상 기록은 없습니다."
이때 최낙현 변호사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에서 반격을 시도했습니다.
그는 따로 준비한 서류 봉투를 열었습니다. 교통 공학 전문가가 작성한 사고 분석 보고서였습니다. 변호사가 법정 밖에서 따로 선임한 전문가의 의견서였습니다. 최낙현은 법원이 문을 닫은 뒤에도 사무실에 남아 이 보고서를 준비했습니다. 어렵게 마련한 선임료의 일부를 이 분석에 썼습니다.
"사고 당시 현장 교통 카메라 영상과 스키드마크 분석 결과, 피고인 차량의 사고 직전 속도는 시속 32킬로미터에서 36킬로미터 사이로 추정됩니다. 이는 해당 도로 제한 속도인 시속 50킬로미터를 크게 밑도는 수치입니다. 또한 상대방 차량인 마티즈의 사고 직전 속도는 시속 45킬로미터에서 50킬로미터로 추정되며, 충격의 주요 방향과 에너지 분포를 고려했을 때 피해자의 경추 손상은 마티즈 차량의 에어백 미작동 및 헤드레스트 미조정 상태와도 연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법정이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몇 명이 고개를 들어 변호사를 바라봤습니다. 피해자의 남편이 자세를 바꿨습니다.
황지현 검사가 즉시 반발했습니다.
"전문가 의견서의 경우 작성자를 증인으로 신청하여 신문해야 적절히 검토될 수 있습니다. 또한 피해자 차량 내부 상태는 피고인의 책임을 면제하는 요소가 될 수 없습니다. 피고인이 음주 무면허 상태로 신호를 위반하지 않았다면 사고 자체가 없었을 것입니다."
최낙현 변호사가 다시 받았습니다.
"저 역시 전문가 증인 신청을 할 것입니다. 다만 오늘 이 자리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피해의 인과관계가 피고인 측 일방에서만 기인한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사고는 복합적 요인으로 발생하며, 피해의 경중 역시 여러 조건에 의해 영향을 받습니다. 이것이 피고인의 위법을 정당화하지는 않지만, 형량을 결정하는 데 있어 고려될 수 있는 요소입니다."
김성진 판사는 양측 의견을 듣고 잠시 기록을 검토한 뒤 입을 열었습니다.
"전문가 증인 신청을 양측에서 받겠습니다. 다음 기일에 증인 신문을 진행하겠습니다."
동민은 피고인석에서 이 모든 것을 듣고 있었습니다. 법리의 언어는 그에게 낯선 것이었지만, 지금 자신의 운명이 이 방 안에서 벌어지는 논쟁에 달려 있다는 것은 분명하게 느꼈습니다. 최낙현 변호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뭔가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충분한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법정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그에게는 여전히 해독이 어려운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였고, 그 세계에서 자신은 그저 이름만 있는 존재처럼 느껴졌습니다.
공판 후 변호사 접견실에서 최낙현이 말했습니다.
"오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사고 분석 보고서가 판사에게 인상을 남긴 것 같아요."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다만 쉽지는 않습니다."
동민은 잠시 침묵했습니다.
"피해자는 어떻습니까? 합의 시도를 해볼 수 있을까요?"
최낙현 변호사는 얼굴에 복잡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피해자 측에서 합의 자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남편분이 강력한 처벌을 원하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그는 잠깐 말을 멈췄습니다. 접견실 창문 밖으로 법원 주차장이 보였습니다. 차들이 질서 있게 줄지어 있었습니다.
"피해자에 대해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조사를 좀 더 해보겠습니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동민은 당장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변호사가 그것을 굳이 언급했다는 사실 자체가, 그를 밤새 뒤척이게 만들었습니다. 오피스텔 천장을 바라보며 그는 박성희라는 이름을 생각했습니다. 오십육 세. 가정주부. 사고 현장에서 눈을 뜨고 있었지만 초점이 없었던 여자. 그녀가 무엇을 숨기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밝혀진다면 자신의 재판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동민은 그 상상을 멈췄습니다. 상대방에게서 무언가 약점을 찾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구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도 알고 있었습니다. 법정은 도덕의 자리가 아니라 사실과 법리의 자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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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 뒤집힌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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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낙현 변호사가 "모르는 뭔가"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몇 가지를 포착하고 있었습니다. 오랜 형사 변호 경험에서 비롯된 촉이었습니다. 사건 기록을 다시 처음부터 읽을 때 어딘가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완벽하게 정리된 것들이 오히려 의심스러울 때가 있었습니다.
사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의 조서에는 피해자 박성희가 현장에서 의식이 있었고, "술 냄새가 났다"는 목격자 진술이 짤막하게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진술은 피해자에 대한 것이 아니라 가해자인 동민에 대한 것으로 처리되어 있었습니다. 최낙현은 그 부분을 다시 읽었습니다. 문맥이 조금 애매했습니다. 진술자가 "술 냄새가 났다"고 했을 때, 그것이 동민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사고 현장 전체를 묘사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했습니다. 그 불분명함이 미세한 균열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사고 현장 근처 편의점 두 곳의 폐쇄회로 영상을 확인했습니다. 법원 측에 영상 확보를 요청한 것은 아니었고, 직접 발품을 팔았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사무소를 나와 버스를 타고 마포 도화동으로 갔습니다. 편의점 직원에게 사고 당일 밤 열 시에서 열한 시 사이의 영상을 부탁했습니다. 한 군데는 영상이 덮어쓰여져 있었습니다. 두 달이 지나 있었기 때문에 이미 지워진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 군데에서는 영상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편의점은 저장 주기가 더 길었습니다.
화면 속에서 마티즈 차량이 편의점 주차장에 서는 장면이 포착되었습니다. 박성희로 보이는 여성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습니다. 손에는 봉지가 하나 들려 있었습니다. 편의점 조명 아래에서 봉지 안의 형태가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캔 음료나 소형 주류를 담기에 충분한 크기와 무게감이었습니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급하지도 느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오른발이 왼발보다 조금 늦게 따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시각은 사고 발생 약 삼십 분 전이었습니다.
최낙현은 그 편의점에서 당시 근무자를 직접 만났습니다. 근무자는 스물 후반으로 보이는 남성이었고, 사고 당일 저녁 근무를 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캔 맥주 두 개랑 과자를 사갔어요. 저녁에 조용한 분이었는데요." 최낙현은 그 근무자의 연락처를 받고, 진술서에 서명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반전의 씨앗이었습니다.
세 번째 공판 기일에 최낙현 변호사는 두 가지를 법정에 제출했습니다. 편의점 폐쇄회로 영상 사본과, 편의점 근무자의 진술서였습니다. 황지현 검사는 즉각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지만, 눈빛이 조금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피해자의 음주 여부는 피고인의 책임과 무관합니다. 피고인이 신호를 위반하고 음주 무면허 상태에서 운전한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최낙현 변호사가 반론을 폈습니다.
"저는 피해자의 음주 여부가 형사 책임의 경중을 가리는 데 직접적인 요소가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고 발생의 복합적인 요인을 고려해 달라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음주 상태에서 운전했다면, 그녀의 반응 시간과 판단 능력 역시 사고 발생에 일정한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피고인의 위법을 경감시키는 주장이 아니라, 사건 전체의 경위를 더 정확하게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김성진 판사가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습니다.
"피해자가 음주 운전 상태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현장에서 음주 측정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피해자는 사고 직후 응급 이송되었고, 당시 혈중 알코올 농도 측정은 피의자인 김동민에 대해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 말이 법정 안에 떠돌았습니다. 누군가는 메모를 했고, 누군가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황지현 검사는 표정 하나 흩트리지 않고 말했습니다.
"피해자는 피의자가 아닙니다. 현장에서 음주 측정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절차상 당연한 일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피고인 측은 당시 현장 최초 대응자의 메모에 술 냄새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이 부분이 충분히 조사되었는지에 대해 재판부의 검토를 요청드립니다."
김성진 판사는 잠시 기록을 검토했습니다. 조용한 법정 안에서 그가 서류를 넘기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현장 출동 경찰관을 증인으로 채택하겠습니다. 당시 현장 상황에 대한 진술을 듣겠습니다."
그것은 최낙현 변호사가 원하던 결정이었습니다. 법정 안 분위기가 미묘하게 흔들렸습니다. 황지현 검사는 메모를 했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박성희의 남편은 자세를 바꾸며 앞으로 몸을 기울였습니다. 그의 얼굴에 무언가 불안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그것을 최낙현 변호사가 보았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한편, 검찰 쪽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황지현 검사는 추가 조사를 통해 동민이 음주를 했던 포장마차 인근의 폐쇄회로 영상도 확보했습니다. 영상에는 동민과 재훈이 포장마차를 나오는 장면, 그리고 동민이 잠시 서 있다가 차 쪽으로 걸어가는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화면의 화질은 선명하지 않았지만, 동민의 행동은 충분히 식별이 되었습니다. 화면에서 동민의 걸음걸이는 흔들렸습니다. 명백히 취해 있었습니다. 재훈이 택시를 잡아 떠난 뒤, 홀로 남은 동민이 잠시 서 있다가 차 쪽으로 걸어가는 그 모습은, 말없이 많은 것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검사는 이 영상을 법정에 제출했습니다.
"피고인이 자신이 음주 상태임을 스스로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운전을 선택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단순한 판단 착오가 아니라 고의적인 법 위반에 해당합니다."
동민은 그 영상을 봤습니다. 화면 속의 자신을 봤습니다. 비틀거리며 차 쪽으로 걸어가는 그 모습을 봤습니다. 그것이 그였습니다. 그날 밤의 그였습니다.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법정의 화면 속에서 그 삼 초의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냥 취한 사람이 차에 타는 장면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더 결정적인 반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네 번째 공판 기일, 현장 출동 경찰관 강현태 순경이 증인석에 섰습니다. 그는 삼십 대 초반의 젊은 경찰관으로, 사고 당일 밤 최초로 현장에 도착한 두 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증인석에 앉은 그는 단정한 모습이었지만 약간 긴장해 보였습니다. 자신의 진술이 재판의 향방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었습니다.
최낙현 변호사가 물었습니다.
"피해자 차량에 가장 먼저 접근했을 때의 상황을 설명해 주십시오."
강현태 순경이 답했습니다.
"피해자분이 의식은 있었고, 상당히 혼란스러운 상태였습니다. 목이 움직이지 않아서 구급 조치를 기다리는 동안 제가 옆에 있었습니다."
"차 내부에서 특이한 냄새가 있었습니까?"
강현태 순경은 잠깐 멈췄습니다.
"알코올 냄새가 났습니다."
법정이 조용해졌습니다. 그 침묵은 짧았지만 충분히 무거웠습니다. 방청석에서 박성희의 남편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습니다.
황지현 검사가 재반문했습니다.
"그 알코올 냄새가 피해자에게서 난 것인지 차량 내부의 다른 요인에 의한 것인지 확인했습니까?"
강현태 순경이 잠시 멈췄습니다. 그의 눈이 잠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습니다.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피해자 이송이 급박해서..."
"피해자에 대한 음주 측정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피해자는 부상 피해자였기 때문에 음주 측정 대상으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황지현 검사가 판사를 향해 말했습니다.
"현장 경찰관의 증언은 피해자의 음주 사실을 입증하지 않습니다. 단순히 냄새가 났다는 증언일 뿐입니다. 이것으로 피해자의 책임을 논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최낙현 변호사가 받았습니다.
"저 역시 피해자의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사고 당시 피해자 역시 음주 상태에서 야간 운전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이 사고 발생의 복합적 원인 중 하나였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는 것입니다. 피해자가 정상적인 음주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다가오는 차량에 더 신속하게 반응하여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법정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김성진 판사가 양손을 모아 탁자 위에 얹은 채 생각에 잠겼습니다. 잠시 후 그는 다음 기일을 고지했습니다. 양측 추가 증인과 최후 변론을 위한 일정이었습니다.
법정 밖으로 나오면서 동민은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박성희의 남편이었습니다. 그는 복도 벽에 기대어 서 있었고, 동민을 보는 눈빛이 아까와는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는데, 지금은 그 안에 불안이 섞여 있는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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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 긴장의 정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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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공판은 4월 중순에 열렸습니다. 봄이 왔지만 법정 안은 여전히 계절과 무관하게 차가웠습니다. 법원 청사 바깥에는 벚꽃이 한창이었습니다. 분홍빛 꽃잎이 바람에 흩어져 주차장 바닥 위를 굴러다녔습니다. 그 아름다움과 법정 안의 무거운 공기가 묘하게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날 방청석에는 처음 보는 얼굴들이 더 들어왔습니다. 법원 담당 취재 기자 한 명도 눈에 띄었습니다. 이 사건이 작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동민은 느꼈습니다. 기자의 시선이 잠깐 자신을 향했다가 노트로 내려갔습니다. 그 순간 동민은 자신이 이름이 아니라 사건 번호로 존재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황지현 검사는 이날 최후 논고를 위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그녀는 차분하게 종합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법정에서 그녀의 목소리는 항상 일정했습니다. 높아지지도 낮아지지도 않았습니다. 그 일관성이 오히려 말의 무게를 더해주었습니다.
"피고인 김동민은 혈중 알코올 농도 0.187 퍼센트, 즉 정상적인 판단과 운동 능력이 심각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운전했습니다. 면허 갱신을 이행하지 않아 사실상 무면허 상태였습니다. 이 두 가지 위법 행위가 결합되어 피해자 박성희에게 경추 인대 손상을 포함한 중상해를 야기했습니다. 변호인 측이 제기한 피해자 음주 가능성은 법적 의미에서 피고인의 책임을 감경할 수 있는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피고인이 신호를 위반하고 교차로에 진입하지 않았다면 사고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피고인에 대해 징역 2년을 구형합니다."
징역 2년.
그 숫자가 법정 안에서 무거운 돌덩이처럼 떨어졌습니다. 동민은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습니다. 표정을 지을 여유가 없었습니다. 머릿속에서 그 숫자가 반복되었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 하람이가 여섯 살에서 여덟 살이 되는 시간. 최낙현 변호사는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앞을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오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공판이 끝나고 법원 복도에서 최낙현 변호사는 한 사람과 마주쳤습니다. 피해자 박성희의 딸이었습니다. 이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고, 눈이 빨개져 있었습니다. 그녀는 변호사에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들은 법원 1층 구석에 있는 벤치로 이동했습니다.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이것이었습니다.
사고 당일 저녁, 박성희는 딸과 전화 통화를 했다는 것입니다. 통화 중에 어머니 목소리가 평소와 달랐고, "좀 마셨어, 괜찮아"라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은 차를 몰면 안 된다고 말렸지만, 어머니는 집이 가깝다며 끊었다고 했습니다. 딸은 그 이후 사고 소식을 들었고, 어머니가 입원한 뒤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말했지만, 아버지가 이것을 밝히면 오히려 어머니가 사건에서 불리해질 수 있다며 입을 막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잘못한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버지가 저한테 말하지 말라고 해서... 근데 이렇게까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습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었고, 어머니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상황에서 어머니의 잘못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가 나선 것은, 아마도 그 불균형이 그녀에게 더 무거웠기 때문일 것이었습니다.
최낙현 변호사는 딸의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그날 밤 변호사는 동민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동민은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전화기를 귀에 댄 채로 오피스텔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거리의 불빛들이 흐릿하게 보였습니다. 반전이라는 것은 기쁨과 복잡한 감정이 동시에 몰려오는 것이라는 걸, 그는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실이 한 가정의 균열에서 왔다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가벼운 감정이 될 수는 없었습니다.
여섯 번째 공판, 최낙현 변호사는 박성희의 딸을 증인으로 신청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박지은이었습니다. 법정에 들어선 그녀는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차분한 회색 재킷을 입고 있었고, 걸음이 조용했습니다. 그녀는 선서를 하고 증인석에 앉았습니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피해자의 남편이 딸과 눈을 마주쳤습니다. 그는 딸에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작지만 분명한 몸짓이었습니다. 그러나 딸은 앞을 바라봤습니다.
최낙현 변호사가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사고 당일 어머니와의 통화 내용, 통화 중 느꼈던 어머니의 음주 여부에 대한 판단, 아버지가 입을 막았다는 상황이 하나씩 진술되었습니다. 방청석이 술렁였습니다. 법원 기자가 빠르게 무언가를 받아 적었습니다. 담당 서기가 기록을 빠르게 받아 적었습니다. 피해자 남편의 손이 무릎 위에서 천천히 쥐어졌습니다.
황지현 검사가 반문했습니다.
"어머니가 '좀 마셨다'고 말한 것이 실제 음주 운전을 할 정도의 수준이었다고 단정 짓기 어렵지 않습니까?"
박지은은 잠시 생각했습니다.
"목소리가 조금 둔했어요. 평소 어머니가 조금만 마셔도 목소리가 변해서, 저는 마셨다는 걸 알았어요."
"어머니가 실제로 음주 측정을 받지 않았으니 확인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맞아요. 그런데 저는 사실을 말하는 거예요."
그 대답이 법정 안에 짧고 단단하게 남았습니다. 황지현 검사는 더 이상 반문하지 않았습니다. 질문을 멈추는 것이 오히려 강한 반응처럼 보였습니다. 그녀는 자리에 앉으며 메모를 계속했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 안에서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남편은 방청석에서 딸을 향해 저음으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법원 직원이 조용히 제지했습니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이 그의 분노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동민은 피해자의 남편을 바라봤습니다. 오랫동안 그 남자를 분노의 대상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자신에게 강한 처벌을 원하는 사람으로.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남자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다쳤고, 그 사실을 어떻게든 감싸려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감싸는 방식이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었다 해도, 그 동기가 어디서 왔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동민은 눈을 돌렸습니다. 이해한다는 것이 용서한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용서할 위치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김성진 판사는 이날 심리를 마치며 짧게 말했습니다.
"양측 최후 변론은 다음 기일에 듣겠습니다. 판결은 그로부터 이 주 후에 선고하겠습니다."
동민은 법정을 나서며 뒤를 돌아봤습니다. 박지은이 복도 구석에서 아버지와 무언가를 주고받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표정은 굳어 있었고, 딸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손이 딸의 팔을 잡으려 했다가 멈추는 것이 보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쌓인 무언가가 그 동작 하나에 담겨 있었습니다.
동민은 그냥 걸었습니다. 법원 건물 밖을 나오자 봄 햇살이 따뜻했습니다. 벚꽃 잎 하나가 그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가 바람에 날아갔습니다. 따뜻하다는 것이 지금 자신에게 어울리는 감각인지 아닌지를, 그는 잠시 헷갈렸습니다.
최낙현 변호사가 옆에서 말했습니다.
"잘 됐습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판사가 이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변호사는 하늘을 잠깐 바라봤습니다. 구름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법정이 무서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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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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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 변론 기일은 4월 마지막 주에 열렸습니다. 법원 안팎에서는 벚꽃이 거의 다 지고 초록 잎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계절은 이미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봄이 왔다가 가는 것처럼 이 재판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동민은 그날 아침 일찍 일어났습니다.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났다기보다는 그냥 눈을 뜬 채로 밤을 보낸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조금 먹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반찬을 하나 더 놓아주셨습니다.
황지현 검사는 최후 논고에서 자신의 주장을 다시 한 번 정돈된 언어로 펼쳤습니다. 그녀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녀의 목소리 안에는 단단한 확신이 담겨 있었습니다. 법정에서 수많은 사건을 다루어 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차가운 선명함이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피고인은 음주 상태이고 면허 효력이 없는 상태에서 신호를 위반하여 타인에게 중상해를 입혔습니다. 피해자의 음주 가능성이 제기되었지만, 이는 법정에서 확인되지 않은 추론입니다. 또한 설령 피해자가 일정한 음주 상태였다 해도, 그것이 피고인의 위법 행위를 면책하거나 감경하는 법적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은 피고인의 신호 위반이었습니다. 법원이 이 사실을 분명히 확인하고 상응하는 판결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최낙현 변호사는 마지막 변론에서 천천히 말을 골랐습니다. 법정을 향한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명확했습니다. 몇 날 밤을 이 변론을 준비하면서 보냈을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말의 구조 속에서 느껴졌습니다.
"피고인 김동민은 이 법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거나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음주 운전을 했습니다. 면허 갱신을 제때 하지 않았습니다. 신호를 위반했습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재판부에 하나의 물음을 드리고 싶습니다. 법이 추구하는 것은 처벌인가, 아니면 정의인가 하는 것입니다. 피고인은 회사 부도로 일자리를 잃었고, 가정이 해체되는 경험을 했으며, 극도로 어려운 경제적 상황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습니다. 그 선택이 잘못된 것임을 피고인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사건에서 피해자 역시 음주 상태에서 운전을 했을 가능성이 증거와 증언을 통해 제기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일방적인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가 아닙니다. 복합적인 책임의 문제입니다. 재판부가 이 점을 헤아려 피고인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법정은 조용했습니다.
동민은 고개를 들어 판사를 봤습니다. 김성진 판사는 양측 변론을 들으면서 내내 고개를 숙이고 기록을 보거나, 손끝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리거나 했습니다. 그의 표정에서 아무것도 읽을 수 없었습니다. 판사라는 사람들이 그 표정을 훈련하는 것인지, 아니면 수십 년의 법정 생활이 그 표정을 만드는 것인지 동민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 과묵함이 지금 자신에게는 더 두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판결 선고일은 2024년 5월 첫째 주 화요일이었습니다.
그날 동민은 이른 아침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는 오겠다고 했지만, 동민은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혼자 듣겠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습니다. "조심히 가거라."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짧은 그 말 안에 어머니가 하고 싶은 말이 모두 들어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법원으로 가는 동안 동민은 창밖을 바라봤습니다. 거리에는 아침 출근길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커피를 든 사람, 이어폰을 낀 사람,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해 가는 사람들. 그들 모두에게 오늘은 평범한 화요일이었습니다. 동민에게만 이 하루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법정은 평소보다 조금 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기자도 두 명이었습니다. 방청석에는 이번에도 박성희의 남편이 앉아 있었습니다. 딸 박지은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최낙현 변호사는 동민의 옆에 앉아 서류를 정리했습니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습니다. 특별히 할 말이 없었습니다. 이미 모든 말은 법정에서 다 했습니다.
오전 열 시 정각, 김성진 판사가 입장했습니다. 법정이 일어섰습니다.
"주문을 낭독하겠습니다."
그 몇 마디가 나오는 데 걸린 시간은 아마 삼 초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민에게는 그 삼 초가 몇 분처럼 느껴졌습니다. 귀가 먹먹했습니다. 법정 안의 모든 소리가 한 점으로 모이는 것 같았습니다.
"피고인 김동민을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에 처합니다. 아울러 사회봉사 240시간 및 음주 운전 치료 강의 수강을 병과합니다."
판사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최낙현 변호사는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 숨소리가 동민의 귀에 들렸습니다. 동민은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판사는 판결 이유를 읽어 내려갔습니다. 그 긴 이유 낭독이 이어지는 동안 동민은 그 말들을 듣는 동시에 듣지 못했습니다. 단어들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가슴속 어딘가에서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피고인의 행위는 음주 무면허 운전이라는 명백한 법 위반이며,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신체 피해를 야기한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본 재판부는 다음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였습니다. 첫째, 피고인이 수사 개시부터 최종 공판까지 일관되게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고 반성의 태도를 보였다는 점. 둘째, 피고인의 경제적 상황이 면허 갱신 지연에 영향을 미쳤다는 정황이 확인된다는 점. 셋째, 피해자 역시 음주 상태에서 운전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증인 진술을 통해 제기되었으며, 이는 사고 발생의 책임이 일방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다만 이것이 피고인의 위법 행위를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이를 종합하여 집행유예 처분이 적절하다고 판단합니다."
방청석에서 박성희의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그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법원 직원이 제지했습니다. 그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분노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다쳤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 속에 있는데, 법정에서 그 아픔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낄 때의 분노를.
동민은 그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외면이 아니었습니다. 그 남자의 눈을 마주 볼 자격이 아직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판결 이후 법정 밖 복도에서 동민은 벽에 기대어 섰습니다. 다리에 힘이 없었습니다. 최낙현 변호사가 옆에서 말했습니다.
"잘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3년 동안 집행유예 기간입니다. 추가 범죄가 있으면 실형으로 갑니다. 잊지 마세요."
동민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다짐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복도의 형광등 빛 아래에서, 그가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었습니다. 오늘 이 날을, 이 법정을, 저 복도 끝에서 사라진 피해자 남편의 뒷모습을, 박지은의 떨리는 목소리를,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그 11월의 밤을. 그는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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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장 —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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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이 나고 이틀 뒤, 동민은 공덕동 오피스텔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건물주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최후 통보를 보낸 지 이미 한 달이 지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을 둘러봤습니다. 작은 창 하나가 있었고, 그 창으로는 맞은편 건물 외벽만 보였습니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창이었습니다. 이 방에서 얼마나 많은 밤을 그 창을 바라보며 보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짐은 많지 않았습니다. 박스 두 개에 옷과 책 몇 권, 하람이 사진이 들어간 액자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그 액자는 하람이가 두 살 때 찍은 사진이었습니다. 작은 모자를 쓰고 웃고 있는 하람이. 이 방에 들어올 때 가져왔고, 이 방을 나갈 때 다시 가져가는 사진이었습니다. 그는 짐을 들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이 방에서 보낸 시간들을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밤을 이 좁은 공간 안에서 혼자 버텼는지를. 그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 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지 않았을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이천에 있는 어머니 집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대문 앞에 서서 아들을 맞이했습니다. 두 사람은 특별한 말을 나누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박스를 하나 들어 안으로 들어갔고, 동민이 나머지 짐을 들고 따라갔습니다. 집 안은 조용했습니다. 익숙한 냄새가 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맡아온 된장과 나무와 흙의 냄새가 섞인, 이 집만의 냄새였습니다. 그 냄새가 무언가를 무너뜨렸습니다. 동민은 부엌 문 앞에 서서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부뚜막 위에 된장국이 끓고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밥이나 먹어."
그것이 어머니가 꺼낸 첫 마디였습니다. 동민은 그 말이, 어머니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강한 위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판결이 어떻게 났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밥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살아 있는 한 밥을 먹는다는 것, 그리고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순간 그에게 필요한 전부였습니다.
사회봉사 명령 집행은 한 달 뒤 시작되었습니다. 동민에게 배정된 곳은 경기도 이천 인근 노인 요양 시설이었습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여덟 시부터 오후 두 시까지 총 이십사 주간 복지 관련 보조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 시설에 처음 들어서면서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를 바로 느꼈습니다. 어르신들의 느린 걸음과 조용한 목소리, 그리고 간간이 들리는 텔레비전 소리. 시간이 다른 속도로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처음 출근하는 날, 그는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깨끗한 셔츠를 입었습니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봤습니다. 오래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오늘 이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였습니다. 그냥 나갔습니다.
시설에서 만난 담당 사회복지사는 박진현이라는 이름의 삼십 대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동민에게 업무를 설명하면서 특별한 판단이나 여과 없이 대했습니다. 사회봉사 명령을 이행하러 온 사람을 대하는 특별한 시선 같은 것이 없었습니다. 그냥 오늘 새로 온 보조 인력이었습니다. 그 평범한 대우가 동민에게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오늘 할 일은 어르신들의 식사 보조와 산책 동행이었습니다.
동민은 팔십이 세의 노인과 함께 시설 마당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노인은 걷는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한 걸음 한 걸음 바닥을 확인하며 걸었습니다. 동민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마당을 두 바퀴 돌았습니다. 마당 한켠에 심겨진 감나무에는 이제 막 새잎이 돋아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연한 초록빛 잎사귀들이 5월의 햇살 아래에서 빛났습니다.
노인이 걸음을 멈추더니 그 나무를 한동안 바라봤습니다. 동민도 함께 멈추어 섰습니다. 노인이 나지막하게 말했습니다.
"이 나무가 여기 심어진 지 벌써 이십 년이 됐어."
동민은 그 말에 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답이 필요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함께 나무를 바라봤습니다. 이십 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나무.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을 바라봤을 나무. 계절이 바뀌는 것을 몸으로 겪었을 나무. 지금 새 잎을 내밀고 있는 나무.
마당을 걸으면서 동민은 하람이를 생각했습니다. 딸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아직은 어려서 아버지의 사건을 알지 못하지만, 언젠가는 알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 딸에게 어떤 아버지가 되어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했습니다. 변명할 수 있는 아버지가 아니라, 설명할 수 있는 아버지이고 싶었습니다. 잘못을 했고, 그 결과를 받았고, 그리고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를 딸에게 보여줄 수 있는 아버지이고 싶었습니다.
음주 운전 치료 강의는 법원 지정 전문 기관에서 열두 시간 과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모두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십 대 후반부터 육십 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있었고, 저마다의 이유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강의 첫 날, 강사가 물었습니다. "왜 운전하셨습니까?" 각자가 저마다의 이유를 댔습니다. 잠깐이면 될 것 같아서, 집이 가까워서, 택시가 안 잡혀서, 급한 일이 있어서. 이유는 다양했지만 결과는 모두 같은 자리로 이어졌습니다.
동민은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짧게 말했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강의실이 잠깐 조용해졌습니다. 강사가 동민을 잠시 바라봤습니다. 그 말이 강의 전체를 통틀어 가장 정직한 말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유가 있다는 것과 그 이유가 정당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이수진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하람이를 보고 싶으면 주말에 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조건 없는 제안이었습니다. 동민은 그 문자를 받고 자리에서 잠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이수진이 이 연락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생각했을지를 알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동민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하람이에게 아버지를 돌려주는 것이었습니다. 동민은 답장을 보내면서 손이 조금 떨렸습니다.
"고마워요. 갈게요."
그 주말, 이수진의 친정집 앞에서 하람이를 만났습니다. 하람이는 아버지를 보자마자 달려왔습니다. 작은 몸이 그의 다리에 안겼습니다. 달리는 속도가 망설임 없이 빨랐습니다. 오래 보지 못했어도 아이에게 아버지는 아버지였습니다. 아이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습니다. 그냥 안겼습니다. 동민은 그 아이를 꽉 안았습니다. 무릎을 굽혀 아이의 눈높이로 내려갔습니다.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참아지지 않았습니다. 하람이가 고개를 들더니 말했습니다.
"아빠, 왜 울어?"
"그냥."
"울지 마."
"응."
아이의 손이 그의 볼을 두 번 두드렸습니다. 그 작은 손이 그 어떤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했습니다.
두 사람은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하람이는 연두색 외투를 입고 있었습니다. 초여름의 햇빛 아래에서 그 연두색이 유난히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공원 안에는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이 있었고, 강아지를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있었고,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마다의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동민도 그 안에 있었습니다. 한 아이의 손을 잡고.
하람이가 분수대 앞에서 발을 멈추더니 비눗방울 통을 꺼냈습니다. 이수진이 미리 챙겨준 것이었습니다. 하람이는 비눗방울 불대에 입을 대고 조심스럽게 불었습니다. 방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햇빛을 받아 무지개빛으로 반짝이다가 터졌습니다. 다시 불었습니다. 이번에는 두 개가 떠올랐습니다. 하나는 금방 터졌고, 하나는 좀 더 오래 떠다녔습니다.
동민은 그것을 바라봤습니다.
법정의 그늘 아래에서 무너진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직업도, 가정도, 자존심도, 모두 한때 부서졌습니다. 그러나 부서진 것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것들은 다른 모양으로 다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집에서 들었던 된장국 냄새처럼, 공원 벤치에서 하람이가 건넨 작은 손바닥의 온기처럼. 비눗방울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방울이 떠오르는 것을 막을 필요는 없었습니다.
판결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선택의 시작점이었습니다. 김동민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잘못된 선택이 삶을 어떻게 흔드는지를, 그리고 그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그는 이제 몸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몸으로 안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과 다릅니다. 잊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쩌면 지금 그가 가진 유일한 자산이었습니다.
하람이가 비눗방울을 다시 불었습니다. 이번에는 여러 개가 한꺼번에 올라갔습니다. 크고 작은 방울들이 뒤엉키며 공중에 떠올라 햇빛을 받아 반짝이다가 하나씩 터졌습니다. 하람이가 박수를 쳤습니다.
"아빠, 봤어?"
"응, 봤어."
"예쁘지?"
동민은 잠시 그 방울들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봤습니다.
"응. 예쁘다."
그는 하람이 곁에서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이 햇빛 아래에, 이 아이 곁에 있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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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법정의 그늘 아래 — 전 8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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