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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책방

단 하루 결근으로 성과급을 잃은 노동자의 법정 싸움

by 제 4의 창 2026. 5. 1.
제1장  균열의 시작
서울의 늦가을은 언제나 그렇듯 사람의 마음을 먼저 무너뜨립니다. 찬바람이 광화문 광장을 가로질러 불어오던 그날 오후, 김동수는 여의도의 한 카페 창가에 앉아 손 안의 서류 봉투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창밖으로는 한강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은행잎을 무더기로 쓸어가고 있었고, 카페 안은 점심시간이 끝난 직후의 어수선한 정적이 가득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노트북을 들여다보거나 핸드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도 창가 구석 자리에서 서류 봉투를 쥔 채 굳어 있는 한 남자를 눈여겨보지 않았습니다.
봉투 안에는 그가 오 년 가까이 다닌 회사, 대한소프트웨어에서 발송한 공문 한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두꺼운 크라프트지 위에 찍힌 회사 직인은 선명했고, 그 아래 적힌 문구는 더욱 선명했습니다. 성과급 지급 제외 통보였습니다. 그는 이 봉투를 처음 받았을 때, 뭔가 착오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황당한 현실을 마주할 때 흔히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봉투를 세 번째 뜯어 읽을 때쯤에는 착오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회사는 정확하게 규정을 집행한 것이었습니다.
김동수는 카이스트 전산학과를 졸업한 뒤 실리콘밸리에서 삼 년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미국 서부의 작은 스타트업에서 시작하여 중견 아이티 기업으로 옮겨가면서 그는 분산 처리 시스템과 클라우드 인프라 설계에서 손꼽히는 실력을 갖추었습니다. 동료들 사이에서 그는 말은 적고 코드는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회의에서 좀처럼 의견을 먼저 내지 않았지만, 자신이 맡은 작업에서는 아무도 따라오기 어려운 완성도를 냈습니다. 팀장들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귀국 후 대한소프트웨어에 입사하여 클라우드 인프라 팀의 수석 개발자로 재직하였습니다. 회사는 국내 상장 아이티 기업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였고, 인재를 유치하는 데 공격적이었습니다. 김동수에게 제시된 연봉 패키지는 그가 미국에서 받던 것과 비교해도 크게 처지지 않았습니다. 부모님 곁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마음이 없었다면, 굳이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의 손에서 나온 코드들은 회사의 핵심 플랫폼 전반에 퍼져 있었고, 팀 내에서도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평가 등급은 매년 에이 플러스였습니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달랐습니다.
그해 봄, 김동수의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이른 아침 화장실에서 쓰러진 것을 이웃 노인이 발견했고, 김동수는 병원 응급실에서 연락을 받았습니다. 서울 외곽 경기도 광주의 요양병원으로 옮겨지기까지 한 달이 걸렸습니다. 그 한 달 동안 김동수는 서울과 광주를 거의 매일 오갔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오 년 전에 세상을 떠났고, 형제도 없었습니다. 병원 침대에서 눈을 뜨지 못하는 아버지 곁을 지키는 사람은 그뿐이었습니다.
김동수는 연차를 모두 소진한 뒤에도 병원을 오갔습니다. 지각도 있었고, 조퇴도 있었습니다. 팀장에게 보고하고 대체 근무를 조율하면서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려 했지만, 달력 위에 쌓인 결근과 단축 근무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오른쪽 편마비는 재활 치료를 시작하면서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언제 또 다른 발작이 올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의사는 가능하면 곁에 있어주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김동수가 병실에 들어설 때마다 눈이 흔들렸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회사의 성과급 지급 규정은 명확했습니다. 당해 연도 근무일수가 이백이십오일 이상인 자에게 성과급을 지급한다. 단 하나의 조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김동수의 그해 실제 근무일수는 이백이십사일이었습니다. 단 하루 차이였습니다. 회사는 규정에 따라 성과급 지급 대상에서 그를 제외하였고, 그 결정을 서면으로 통보한 것이었습니다.
성과급 액수는 오백만 원이 아니었습니다. 대한소프트웨어의 성과급은 연봉의 이십 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책정되었고, 김동수의 경우 사천이백만 원에 달하는 돈이었습니다. 그가 아버지 병원비로 써야 할 돈이었습니다. 재활 치료비와 요양 비용을 계산할 때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숫자였습니다. 그가 올해 기대하며 버텨온 숫자였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봉투를 받기 이틀 전이었습니다. 인사팀에서 성과급 지급 대상자 명단이 회람되었고, 거기서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을 때 처음으로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하였습니다.
카페 창밖으로 은행잎이 흩어졌습니다. 김동수는 커피잔을 한쪽으로 밀어놓고 서류 봉투를 다시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의 눈동자에는 분노도 눈물도 없었습니다. 다만 결심이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단단한 결심이었습니다. 그는 먼저 노동부 고용노동지청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진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전에 먼저 변호사를 찾아야 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한성희 변호사의 사무실은 서초동 법원 근처 오 층짜리 건물 삼 층에 있었습니다. 간판은 크지 않았지만 노동법 전문이라는 문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 문구 아래에는 더 작은 글씨로 개인 사건 전담이라는 부연이 붙어 있었습니다. 대형 로펌의 화려한 간판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김동수에게는 신뢰감을 주었습니다.
한성희는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연수원 이십구 기를 수료하였습니다. 대형 로펌에서 사 년을 일하다가 독립하여 개인 사무소를 열었습니다. 로펌에 있는 동안 그는 주로 기업 측을 대리하였습니다. 노동 사건에서 기업의 논리를 구성하고 근로자의 청구를 막아내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일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법정에서 이기고 나서도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상대방의 얼굴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특히 어린 자녀를 키우는 여성 노동자가 임금을 받지 못해 소송을 냈다가 기술적인 법리에 막혀 패소한 사건 이후, 그는 오래 고민하였습니다. 그리고 독립하였습니다. 노동법 전문이라는 간판을 달고, 개인 사건만 맡기로 하였습니다.
노동 사건을 전문으로 하게 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습니다. 로펌 시절 그가 맡은 사건의 상대방은 언제나 이름 없는 노동자들이었고, 그 사건들에서 이길 때마다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감각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독립한 지 사 년이 되었습니다. 사무실 규모는 작았지만 사건 해결률은 높았고, 입소문으로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김동수가 한성희의 사무실 문을 두드린 것은 통보 서류를 받고 열흘 후의 일이었습니다. 그는 노동부 고용노동지청에 먼저 진정을 넣었고, 조정이 결렬된 뒤에야 민사소송을 결심하였습니다. 조정 과정에서 회사 측 담당자는 규정대로 처리한 것이라는 말만 반복하였습니다. 협상의 여지는 전혀 없었습니다. 그 태도가 오히려 김동수의 결심을 굳혔습니다. 친구 소개로 찾아온 이 사무실에서 그는 처음으로 사건 전체를 털어놓았습니다.
한성희는 말이 많은 변호사가 아니었습니다. 서류를 펼쳐놓고 출퇴근 기록을 들여다보면서 그는 오랫동안 침묵하였습니다. 이백이십사일. 이백이십오일. 단 하루의 차이가 만들어낸 사천이백만 원의 공백. 숫자는 냉정했습니다. 그러나 한성희에게 그 숫자는 단순한 계산이 아니라 질문이었습니다. 이 기준은 정당한가. 이 기준은 합리적인가. 그리고 이 기준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가.
김동수가 돌아간 뒤, 한성희는 한참을 의자에 앉아 기록들을 넘겼습니다. 출퇴근 데이터는 정확하였습니다. 아버지가 쓰러진 날을 기점으로 결근이 시작되었고, 수술 전후 며칠은 아예 자리가 비었습니다. 그러나 병원에서 보낸 날들에도 그는 팀 메신저에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동료 개발자에게 코드 리뷰를 요청하였고, 긴급한 버그를 원격으로 처리하였습니다. 몸은 병원에 있었지만 일은 계속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한성희는 밤늦게까지 자료를 뒤졌습니다. 근로기준법을 펼쳤고, 관련 판례들을 검색했습니다. 성과급의 법적 성격에 관한 논문들을 프린트하여 형광펜으로 줄을 쳤습니다. 법원 도서관에서 내려받은 자료만 해도 수십 건이었습니다. 창밖에는 서초동의 늦은 밤이 조용히 깔려 있었고, 사무실 안에는 서류 넘기는 소리만 가득했습니다.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성과급이 임금인지 아닌지, 근무일수 제한 조건이 합리적인 차별인지 불합리한 차별인지, 취업규칙의 내용이 법적으로 유효한지. 이 세 가지 질문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습니다. 어느 하나를 건드리면 다른 것이 흔들렸습니다. 쉬운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한성희는 이런 사건을 좋아했습니다. 쉬운 사건은 재미가 없었습니다. 법의 경계가 흐릿한 곳에서, 판사가 고민하게 만드는 사건에서, 그는 자신이 변호사임을 실감하였습니다. 단순한 승패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이 어떤 방향으로 결론이 나느냐에 따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의 권리가 달라질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를 책상 앞에 붙들어 두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한성희는 김동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건을 맡겠다는 말과 함께,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함께 전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그는 창 너머 법원 건물의 회색 외벽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안에서 이루어질 공방의 윤곽이 이미 그의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성과급 하나를 둘러싼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숫자로 사람을 재단하는 시스템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법이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인지, 한성희는 아직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답을 찾는 과정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였습니다.
제2장  증거의 무게
소송을 제기하기로 결심한 뒤, 한성희와 김동수는 사건의 뼈대를 세우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청구 원인을 무엇으로 구성할 것인가. 어떤 논거로 법원을 설득할 것인가. 이 두 가지 질문이 초기 전략의 전부였습니다. 첫 번째 회의는 한성희의 사무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화이트보드에 사건의 구조를 그려나가면서 두 사람은 두 시간 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김동수는 기술자다운 정밀함으로 자신의 근무 기록 전체를 정리하여 가져왔습니다. 날짜별로 출퇴근 시간, 결근 사유, 그날의 원격 근무 여부까지 표로 만들어 놓은 자료였습니다. 한성희는 그것을 보면서 이 의뢰인이 만만치 않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한성희가 먼저 착수한 것은 증거 수집이었습니다. 법정에서 이기는 사람은 논리가 가장 그럴듯한 사람이 아닙니다. 증거가 가장 충실한 사람입니다. 이것은 그가 로펌 시절부터 뼛속 깊이 새긴 원칙이었습니다. 논리는 흔들릴 수 있지만 증거는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물론 증거도 해석에 따라 달리 보이기는 하지만, 그 해석을 다툴 수 있는 것조차 증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김동수는 자신의 출퇴근 기록 전체를 출력하여 사무실로 가져왔습니다. 회사의 전자 출입카드 시스템에서 발급받은 자료였는데, 회사 측에서 이의를 제기할 경우를 대비하여 공증까지 받아두었습니다. 공증 사무소에서 서류에 도장이 찍히는 순간, 김동수는 이것이 정말 시작되었다는 것을 실감하였습니다. 기록에는 그해 봄부터 가을까지 아버지의 입원과 수술 일정에 맞춰 결근하거나 단축 근무한 날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오전에만 출근하여 네 시간 일하고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자리를 비웠습니다. 그러나 그런 날에도 그는 재택으로 코드를 작성했고, 동료들에게 업무를 인계하는 메일을 보냈습니다.
메일 기록이 또 하나의 핵심 증거였습니다. 김동수가 병원에서 노트북을 켜고 동료 개발자들과 주고받은 수십 통의 메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결근한 날 자정 무렵에 작성된 코드 리뷰 댓글도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수술을 받는 동안 복도 의자에 앉아 깃허브에 커밋을 올린 기록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회사를 쉰 것이 아니라 장소를 바꾸어 일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직접 증거였습니다. 한성희는 이 기록들을 날짜순으로 정리하여 증거 목록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한성희는 이 증거들이 법리 논쟁의 핵심이 될 수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회사 측 규정은 단순했습니다. 근무일수 이백이십오일 이상. 재택 근무 여부, 업무 기여도, 성과 등급은 모두 이 조건과 무관했습니다. 규정 자체가 그런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는 구조였습니다. 따라서 싸움의 본질은 그 규정 자체의 적법성이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를 쌓아도, 규정 자체가 유효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패소할 수 있었습니다. 한성희는 이 점을 김동수에게도 분명히 설명하였습니다.
한성희는 대한소프트웨어의 취업규칙 전문을 입수하였습니다. 정보공개 청구와 고용노동지청 자료를 통해 확보한 공식 문서였습니다. 취업규칙 제사십이조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당해 연도에 이백이십오일 이상 근무한 재직자에게 회사의 경영 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할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이백이십오일이라는 근무일수 기준이고, 다른 하나는 지급할 수 있다는 재량 표현이었습니다. 지급한다가 아니라 지급할 수 있다. 이 한 글자의 차이가 법정에서는 거대한 산이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급할 수 있다는 문구는 회사 측 입장에서는 유리한 표현이었습니다. 이것이 법적으로 임금이 아닌 은혜적 급부라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임금은 근로의 대가로서 반드시 지급해야 하는 것이지만, 은혜적 급부는 회사의 재량에 따라 지급 여부가 결정된다는 법리 때문입니다. 만약 성과급이 임금이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지면, 회사는 아무런 이유 없이 성과급 지급을 거부할 수도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백이십오일이라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사람을 제외하는 것은 규정대로 집행한 것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한성희는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보았습니다. 대한소프트웨어에서 성과급이 지급된 과거 이력을 검토한 결과, 이 회사는 창립 이래 한 번도 성과급 지급을 거부한 적이 없었습니다. 매년 이백이십오일 이상 근무한 직원 전원에게 빠짐없이 성과급이 지급되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관행이 아니었습니다. 법적으로는 이러한 지속적 지급이 근로자에게 계속적으로 지급이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권을 형성한다는 논리로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즉, 취업규칙에 재량이라고 쓰여 있더라도, 실제 운용이 의무적 지급처럼 이루어져 왔다면 그 실질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성희는 전직 직원 세 명을 접촉하였습니다. 회사를 퇴사한 개발자들로, 재직 당시 성과급을 정기적으로 수령했다는 진술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성과급이 연봉 협상의 기준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처음 입사할 때 인사팀이 제시한 연봉 패키지에는 기본급과 성과급이 명시적으로 구분되어 포함되어 있었고, 면접에서 직접 이 금액이 보장된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하였습니다. 신규 입사자들에게도 연봉 제안서에 성과급이 포함된 패키지 형태로 제시되었다고 했습니다. 한성희는 이 진술들이 성과급의 임금성을 뒷받침하는 정황 증거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세 명 모두 진술서에 서명하는 데 동의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성희는 불안한 구석이 있었습니다. 판례들이 일관되지 않았습니다. 대법원은 성과급의 임금 해당 여부를 일률적으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정기적이고 일률적으로 지급되었는지, 지급 기준이 취업규칙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는지, 사전에 지급이 확정되었는지 등을 종합하여 사안마다 다르게 판단하였습니다. 어떤 판례는 원고 쪽에 유리했고, 어떤 판례는 회사 쪽에 유리했습니다. 이 불확실성이 이 사건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습니다.
준비 기간 중 김동수가 가져온 또 다른 자료가 한성희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였습니다. 그해 초 회사 인사팀이 전 직원에게 발송한 이메일이었습니다. 제목은 이 년도 성과급 지급 예정 안내였습니다. 내용에는 올해도 전년 대비 성과급 재원이 확보되어 이백이십오일 이상 재직자 전원에게 지급 예정임을 안내드립니다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지급 예정이라는 표현이 핵심이었습니다. 회사 스스로 지급을 예정하고 그것을 직원들에게 공지한 것은 단순한 재량의 행사를 넘어 지급 확약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한성희는 이 이메일을 출력하면서 잠깐 멈추었습니다. 이것은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한 증거일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인사팀이 별 생각 없이 보낸 사내 공지 이메일 하나가 법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기업 법무의 허점이었습니다.
한성희는 이 이메일을 증거 목록의 맨 앞에 올려놓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회사의 입장을 흔들 수 있는 핵심 무기였습니다. 그리고 법정에서 그 무기를 꺼내드는 타이밍이 중요하였습니다.
소장은 열흘 후에 완성되었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된 그 서류의 청구 취지는 명확했습니다. 피고는 원고에게 사천이백만 원 및 이에 대한 소장 부본 송달일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이십 퍼센트의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 그리고 소송 비용은 피고가 부담하라. 한성희는 소장을 마지막으로 검토하면서 문장 하나하나를 천천히 읽었습니다. 오탈자 하나 없이 완벽하게 정리된 문서였습니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습니다.
서울의 법원 건물은 언제나 그렇듯 무겁고 차분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한성희는 접수창구에 소장을 제출하면서 잠시 그 건물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것도 단 하루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이었습니다. 이백이십사일과 이백이십오일 사이의 하루. 그 하루가 법 앞에서 무슨 의미를 갖는지를 이제 법원이 판단할 것이었습니다.
제3장  피고의 논리
피고 대한소프트웨어의 소송 대리인으로 선임된 것은 법무법인 강남의 수석 변호사 박재형이었습니다. 박재형은 서울대학교 법학과 수석 졸업에 사법고시 차석 합격이라는 이력을 가진 인물로, 기업 자문과 노동 분쟁에서 이십 년 경력을 자랑하는 베테랑이었습니다. 그의 승소율은 업계에서 정평이 나 있었고, 특히 노동 사건에서 기업 측을 대리하는 방식은 간결하고 공격적인 것으로 유명하였습니다. 그가 선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한성희는 입술을 한 번 가볍게 깨물었습니다. 쉽지 않은 상대였습니다.
박재형은 소장을 받아든 날 저녁 담당 팀과 함께 사건을 분석하였습니다. 법무법인 강남의 회의실에는 변호사 두 명과 보조 인력 두 명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소장과 첨부 증거들이 테이블 위에 펼쳐졌고, 화이트보드에는 쟁점이 하나씩 정리되어 갔습니다. 박재형의 판단은 빠르고 단호했습니다. 이것은 회사가 충분히 방어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업의 인사 자율권을 확인하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박재형의 첫 번째 방어 논리는 성과급의 법적 성격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대한소프트웨어의 취업규칙은 성과급 지급을 의무가 아니라 재량으로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지급할 수 있다는 문구가 그것을 뒷받침하였습니다. 그는 관련 대법원 판례를 꼼꼼히 검토하였습니다. 지급 여부나 지급률이 회사의 재량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 성과급은 임금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 다수 확인되었습니다. 임금이 아닌 급부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지급 조건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 오랜 법원의 태도였습니다. 이 논리는 탄탄하였습니다. 박재형은 관련 판례 여섯 건을 선별하여 답변서에 인용하기로 하였습니다.
 
두 번째 논리는 근무일수 기준의 합리성이었습니다. 성과급은 경영 성과에 대한 보상이라는 성격상, 회사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기간을 기준으로 지급 대상을 정하는 것은 합리적인 재량의 범위 안에 있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백이십오일이라는 기준 자체가 자의적인 숫자가 아니라, 연간 총 근무일수를 기준으로 일정 비율 이상을 충족한 자에게 지급하겠다는 합리적 결정에 해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기준을 도출할 때 인사팀이 작성한 검토 보고서도 남아 있었습니다. 연간 평균 근무일수 이백오십이일을 기준으로 약 구십 퍼센트를 충족한 경우를 지급 기준으로 설정하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것을 근거 자료로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논리는 형평의 문제였습니다. 만약 이백이십사일을 충족한 원고에게 성과급을 지급해야 한다면, 이백이십삼일을 충족한 사람은 어찌 되는가. 이백이십이일은. 이백일은. 어느 선에서 기준을 그어야 하는가. 기준은 어딘가에 반드시 있어야 하며, 그 기준에 따른 결과를 한 명 한 명에게 따로 적용하려 한다면 취업규칙의 존재 이유 자체가 흔들린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기준이 있고, 원고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전부라는 것이었습니다. 박재형은 이 논리가 재판장에게 설득력 있게 들릴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기준선의 어디에 있느냐보다 기준선 자체가 합리적으로 존재하는지가 중요하며, 이 사건에서 그 기준선은 합리적으로 존재하였습니다.
박재형은 답변서를 준비하면서 특히 인사팀의 이메일에 대한 반론을 세밀하게 다듬었습니다. 그것이 상대방이 중심 증거로 사용할 것임을 직감하였습니다. 상대방이 전직 직원들의 진술서를 받아둔 것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대형 로펌의 정보력은 이런 경우에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박재형의 반론은 이랬습니다. 해당 이메일은 지급 예정 안내였을 뿐, 법적 구속력이 있는 지급 약정이 아닙니다. 예정이라는 표현은 확약이 아니라 계획을 뜻하는 것이며, 실제 지급은 이백이십오일이라는 취업규칙상의 조건을 충족한 경우에만 이루어진다는 것이 회사의 일관된 입장이었습니다. 취업규칙은 이미 공시되어 있었고, 원고 역시 이를 알고 있었으며 동의하에 재직하고 있었습니다.
박재형 팀은 추가로 내부 자료를 정리하였습니다. 지난 삼 년간 근무일수 미달로 성과급 지급에서 제외된 직원이 열두 명이었습니다. 이 열두 명 모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즉, 이 기준이 업계에서나 회사 내부에서나 일관되게 적용되어 왔다는 선례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원고만 문제를 삼는 이유가 무엇인가. 오히려 원고에게만 예외를 인정하는 것이 다른 직원들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다는 논리도 준비하였습니다. 이 역차별 논리는 재판장에게 인상을 줄 수 있는 반전 카드였습니다.
그러나 박재형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취업규칙 변경 절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대한소프트웨어의 성과급 관련 조항은 수 년 전 이미 근로자 과반수 동의를 받아 적법하게 개정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개정 과정에서 직원 대표와 협의가 이루어졌고, 이백이십오일이라는 기준도 그 협의의 산물이었습니다.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더라도 합리적 이유가 있다면 유효하다는 판례를 인용할 계획이었습니다. 원고 측에서 규정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주장하더라도, 당시 근로자들이 동의하였고 합리적 이유도 존재하므로 이는 적법한 취업규칙이라는 방패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박재형은 답변서를 완성한 뒤 혼자서 다시 읽었습니다. 논리의 흐름을 점검하였습니다. 허점이 없는지 반대 입장에서 따져보았습니다. 몇 군데를 다듬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상대방인 한성희를 의식하였습니다. 소장을 읽으면서 그 글쓰기의 방식이 날카롭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쉬운 상대는 아닐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 자체는 피고 측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박재형은 유지하였습니다. 법은 감정이 아니라 규정과 논리를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변론 기일이 잡혔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열두 부. 재판장은 이종석 부장판사였습니다. 이 법원에서 십오 년을 재직한 원로로, 노동 관련 사건에 정통하기로 이름난 판사였습니다. 그의 재판은 길게 늘어지는 법이 없었습니다. 핵심을 짧게 파고드는 방식이었습니다. 박재형은 이 판사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과거에도 이 판사 앞에서 몇 번 선 적이 있었습니다. 장황한 설명보다 간결한 핵심이 통하는 재판장이었습니다.
법정에는 양측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원고석에는 한성희와 김동수, 피고석에는 박재형과 회사의 인사부장 최형철이 앉았습니다. 최형철은 이 사건이 법정까지 오게 된 것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습니다. 오 년을 다닌 직원이 소송을 걸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가 처리해야 할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박재형이 처리할 것이었습니다.
재판장이 서류를 훑어보다가 안경을 고쳐 쓰고 입을 열었습니다. 이종석 부장판사가 첫 마디를 던졌습니다. 본 사건의 핵심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이 사건 성과급이 근로기준법상 임금에 해당하는지. 둘째, 근무일수 이백이십오일이라는 지급 요건이 합리적인 차별에 해당하는지. 양측은 이 두 가지 쟁점에 대해 충실한 주장과 증거를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재판장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날카로움이 있었습니다. 한성희는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으면서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속으로 그는 이미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재판장이 쟁점을 두 가지로 정리한 것은 양측 모두 예상한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쟁점에서 누가 더 설득력 있는 논거를 제시하느냐였습니다.
서울 가을의 법정 안은 외부의 바람 소리 하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침묵 속에서 이 사건의 첫 공방이 시작되었습니다. 225일이라는 숫자가 법의 언어 앞에 서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사람의 삶을 재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지, 이제 법이 답해야 할 차례였습니다.
제4장  법리의 격돌
두 번째 변론 기일은 한 달 뒤였습니다. 양측 모두 치밀하게 준비를 마쳤고, 법정 안의 공기는 처음부터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습니다. 이종석 부장판사는 오전 열 시 정각에 개정을 선언하였습니다. 방청석은 이전 기일보다 조용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이미 첫 기일의 분위기를 통해 이것이 단순한 임금 청구가 아님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한성희가 먼저 발언권을 받았습니다. 그는 서류 더미에서 준비서면을 꺼내어 천천히 펼쳤습니다. 펼치는 동작이 느렸습니다. 그것은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재판장에게 자신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태도이기도 하였고, 법정의 공기를 장악하는 방식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사건 성과급은 실질적으로 임금에 해당한다는 것이 원고의 핵심 주장입니다. 피고 회사는 창립 이래 단 한 번도 지급 자격을 갖춘 직원에 대해 성과급 지급을 거부한 적이 없습니다. 매년 이백이십오일 이상 재직한 전원에게 빠짐없이 지급하였으며, 연봉 협상에서도 이 성과급이 패키지의 일부로 제시되었습니다. 이는 지급의 정기성, 일률성, 확정성 세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것입니다.
한성희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습니다. 취업규칙의 문언이 지급할 수 있다고 표현되어 있더라도, 실제 운용이 의무적 지급과 다를 바 없었다면 법원은 그 실질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합니다. 형식이 실질을 이겨서는 안 됩니다.
한성희는 대법원 판례 하나를 인용하였습니다. 성과급이 비록 지급 여부를 재량으로 규정하고 있더라도, 실제로는 지급이 관행화되어 있고 근로자가 이를 당연히 수령할 것으로 기대할 합리적 근거가 있는 경우에는 임금으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었습니다. 그리고 피고 인사팀이 발송한 이메일을 증거로 제출하였습니다. 올해도 전년 대비 성과급 재원이 확보되어 이백이십오일 이상 재직자 전원에게 지급 예정임을 안내드립니다. 이 문구를 그는 천천히 읽었습니다. 법정 안에 그 문장이 울려 퍼졌습니다.
피고 측에서 바로 반박이 나왔습니다. 박재형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습니다. 지급 예정이라는 표현은 계획의 통보일 뿐입니다. 그것이 법적 구속력 있는 지급 약정이 되려면 근로계약서나 단체협약에 명시적으로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피고 회사의 근로계약서에는 성과급 지급이 의무 사항으로 기재된 바 없습니다. 취업규칙의 문언 그대로 재량 지급입니다. 더불어 원고는 입사 시 취업규칙의 내용을 인지하고 있었으며, 이에 동의하여 재직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박재형은 이어서 다른 대법원 판례를 제시하였습니다. 지급 기준이 취업규칙에 의해 사용자의 재량으로 정해지는 경우, 해당 급부는 근로의 대가로 당연히 지급되어야 하는 임금이 아니라 사용자의 호의적 급부에 해당한다는 판결이었습니다. 이 판결은 원고 측이 인용한 판례와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두 판례가 법정 안에 나란히 놓였습니다. 어느 판례가 이 사건에 더 가까운가. 그것이 이제 재판장의 몫이었습니다.
이종석 부장판사가 입을 열었습니다. 두 분 모두 관련 판례를 인용하셨는데, 서로 방향이 다릅니다. 이 점에 대해 원고 측은 어떻게 구별하시겠습니까.
한성희가 차분하게 답했습니다. 저희가 인용한 판례와 피고 측 판례의 차이는 지급의 반복성과 확정성 여부입니다. 피고 측 판례에서의 성과급은 지급 여부 자체가 불확실한 경우였습니다. 회사의 경영 성과가 부진한 해에는 실제로 지급이 이루어지지 않은 전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피고 회사는 단 한 번도 지급 자격 요건을 갖춘 직원에게 성과급을 주지 않은 사례가 없습니다. 지급은 관행적으로 확정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피고 측 판례와는 사실관계가 다릅니다.
박재형이 즉각 반박하였습니다. 원고 측 논리대로라면 모든 회사에서 지급 기준을 충족한 직원에게 성과급을 주어온 것만으로도 그것이 임금이 되어버립니다. 그렇다면 기업은 한 번이라도 성과급을 지급하면 그것이 영구적 의무가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입니다. 성과급은 기업이 성과를 공유하는 방식이며, 그 방식을 결정하는 권한은 경영진에게 있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이종석 부장판사가 다시 끼어들었습니다. 피고 측 변호인, 그렇다면 피고 회사의 성과급 재원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백이십오일 미달이라는 단일 기준만으로 지급을 거부한 것은 무엇을 근거로 한 것입니까. 재량이라면 어떤 범위까지 재량이 인정되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박재형이 잠깐 멈추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짧은 멈춤이었지만, 한성희는 놓치지 않았습니다. 재판장의 질문이 피고 측에게 부담스러운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박재형이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취업규칙에 명시된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은 적법하게 성립된 것입니다. 재량의 행사는 그 기준의 범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경우 이백이십오일 기준을 충족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구분하는 것이 재량의 내용입니다. 재원의 충분 여부는 지급 의무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한성희가 즉각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재량이 합리적 이유 없이 근로자를 차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면, 취업규칙 그 자체가 근로기준법 제육조에 위반될 수 있습니다.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 금지 조항입니다. 이백이십오일 기준이 합리적 이유 있는 차별인지 아닌지가 이 사건의 또 다른 핵심입니다. 그리고 원고의 결근은 자발적 선택이 아니라 아버지의 뇌졸중이라는 불가피한 의료적 상황에서 발생한 것입니다. 그 점에서 일반적 결근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재판장님의 현명한 판단을 구합니다.
이종석 부장판사가 안경을 벗고 눈을 가늘게 떴습니다. 그것은 그가 사건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는 표시였습니다. 법정 안의 공기가 잠깐 멈추는 듯했습니다. 재판장은 양측을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그 시선에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균형이 있었지만, 물음의 방향만큼은 명확하였습니다.
원고 측은 이백이십오일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점에 대해 구체적인 논거를 다음 기일까지 제출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원고의 근무일수 감소 원인이 개인적 사정이었는지, 그리고 그 사정이 회사가 기준을 설정할 때 고려했어야 하는 사항인지에 대해 주장과 증거를 보강해 주십시오. 피고 측은 이백이십오일이라는 기준이 도출된 경위와 그 합리적 근거에 대해 추가 자료를 제출해 주십시오.
변론은 이십오 분 만에 일단락되었습니다. 양측이 법정을 나서면서 한성희와 박재형은 짧게 눈이 마주쳤습니다. 서로를 인정하면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눈빛이었습니다. 말 한마디 없는 그 교환이 오히려 이 싸움의 긴장을 압축하고 있었습니다.
법정 복도에서 김동수가 한성희에게 다가섰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이 가득하였습니다. 오늘 잘 됐나요. 김동수가 물었습니다. 한성희는 짧게 말했습니다. 아직은 어떻게 갈지 모릅니다. 그러나 재판장이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습니다. 법원 건물 밖으로 나오자 서울의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습니다. 김동수는 코트 깃을 세우면서 잠깐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구름 사이로 희미한 해가 보였습니다. 아버지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이 소송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것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제5장  위기의 그림자
세 번째 변론 기일이 다가오기 열흘 전, 한성희는 법원 도서관에서 오래된 판례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그의 발밑에 구멍이 뚫리는 느낌을 주는 판결이었습니다. 판례 데이터베이스를 뒤지던 중 관련 검색어에 걸린 문서였는데, 제목을 보는 순간 손이 멈추었습니다. 서울고등법원. 노동. 성과급. 근무일수. 이 단어들이 화면 위에 나란히 떠 있었습니다.
십오 년 전 서울고등법원이 선고한 판결이었습니다. 사안은 이 사건과 유사했습니다. 어느 대기업이 근무일수 이백이십일 미달을 이유로 한 직원의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았고, 해당 직원이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원고 측은 지급 관행의 일관성과 임금성을 주장하였고, 피고 측은 취업규칙의 적법성을 방패로 삼았습니다. 그 판결에서 법원은 취업규칙에 명시된 근무일수 기준이 취업규칙으로서의 효력을 가지며,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경우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 이유 있는 차별에 해당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결과는 원고 패소였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판결이 대법원에서 상고기각으로 확정되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상급법원도 이 논리를 그대로 인정한 것이었습니다. 상고기각이라는 세 글자가 화면 위에서 무거운 무게로 짓눌렀습니다. 한성희는 판례 전문을 출력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 읽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이 사건과의 유사성이 두드러졌습니다. 지급 관행의 일관성. 취업규칙의 적법성. 근무일수 기준의 합리성. 이 세 가지가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어져 있었습니다.
한성희는 판례 복사본을 손에 쥔 채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도서관 창으로 보이는 법원 건물 안뜰에는 낙엽이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관리하는 사람이 없는지 낙엽은 이미 바람에 흩어져 구석구석 쌓였습니다. 그것이 어쩐지 이 사건의 앞날처럼 보였습니다. 하나씩 쌓이는 불리한 조건들. 아직은 무너지지 않았지만 무게는 느껴지는 상황.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판례는 결론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차이를 찾아야 했습니다. 그 판례와 이 사건 사이의 사실관계 차이, 법리 해석의 여지, 그리고 이 사건에서만 존재하는 독특한 요소들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판례를 구별하는 것. 그것이 변호사의 핵심 기술이었습니다.
검토 결과, 그 판례의 원고는 근무일수를 미달한 이유가 자발적인 장기 여행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석 달간 해외 여행을 떠나면서 결근이 발생한 경우였습니다. 즉, 스스로 선택하여 결근한 경우였습니다. 이 사건의 김동수는 달랐습니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뇌졸중이라는 불가피한 상황에서 결근이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자발적 결근과 불가피한 결근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 합리적이냐는 새로운 질문을 낳았습니다. 한성희는 이 차이를 다음 준비서면에서 강조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구분이 법적으로 얼마나 유효한지는 불확실하였습니다. 취업규칙은 결근의 이유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근무일수만 기록하였습니다. 법원이 취업규칙의 문언을 넘어서 결근 이유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볼 것인지, 그것은 판사의 판단에 달려 있었습니다. 법원이 취업규칙의 문언에 충실한 해석을 택한다면, 결근 이유는 고려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반대로 법원이 실질적 합리성을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결근 이유가 핵심 요소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며칠 뒤, 더 큰 문제가 터졌습니다. 피고 측이 제출한 추가 증거가 도착하였습니다. 박재형 팀이 발굴한 자료였습니다. 봉투 안에는 여러 장의 서류가 들어 있었고, 한성희는 그것을 넘기다가 손을 멈추었습니다.
그것은 김동수가 입사하던 해에 작성된 근로계약서 별지였습니다. 거기에는 성과급은 당해 연도 근무 성과 및 재직 기간에 따라 회사의 재량으로 지급 여부 및 지급액을 결정하며, 지급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지급되지 않을 수 있음을 동의합니다라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김동수의 서명이 있었습니다. 날짜는 입사 첫날이었습니다.
한성희는 이 서류를 보고 오랫동안 침묵했습니다. 김동수에게 연락을 취하였습니다. 이 서류 기억하십니까. 김동수는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입사 당시 수십 장의 서류를 한꺼번에 서명하는 과정에서 자세히 읽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인사팀 담당자가 빠르게 설명하며 서명을 요청했고, 다들 그냥 서명하는 분위기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서명이 있는 이상, 그것은 법적 동의로 간주될 수 있었습니다. 내용을 이해했는지의 여부와 법적 효력은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강력한 반론이었습니다. 원고가 성과급의 불확정적 성격을 미리 인지하고 동의하였다면, 그 기준에 따라 성과급을 받지 못한 것을 두고 회사에 책임을 물을 근거가 약해질 수 있었습니다. 계약 자유의 원칙은 당사자들이 합의한 내용을 법원이 함부로 뒤집지 않는다는 것을 내포합니다. 이것이 한성희에게는 밤새 고민거리가 되었습니다.
한성희는 밤새 이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였습니다. 먼저 근로계약서 별지의 내용이 취업규칙과 일치하는가를 점검하였습니다. 만약 근로계약서가 취업규칙보다 근로자에게 불리한 조건을 담고 있다면 그것은 무효라는 근로기준법의 규정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근로계약서 별지의 내용이 취업규칙과 대체로 동일한 방향이었기 때문에, 이 논리를 적용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 별지 조항이 약관이라면 약관규제법을 적용할 수 있었습니다. 사업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약관에서 고객의 권리를 부당하게 제한하는 조항은 무효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성과급이 임금이 아닌 은혜적 급부라고 볼 경우, 그 지급 기준을 제한하는 약관 조항이 부당한 권리 제한에 해당하는지가 불명확하였습니다. 순환 논리였습니다. 성과급이 임금인지 아닌지의 판단이 먼저 이루어져야 그 이후의 논리가 성립하였습니다.
한성희는 또 다른 각도로 접근해 보았습니다. 입사 첫날 수십 장의 서류를 한꺼번에 서명하게 하는 관행이 근로자에게 계약 내용을 충분히 검토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라면, 그것은 근로기준법상 명시 의무 위반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근로기준법은 사용자가 근로계약 체결 시 임금 등 근로 조건을 서면으로 명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서명을 받는 것과 내용을 명시하는 것은 다를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 변론 기일 이틀 전, 한성희는 김동수를 사무실로 불렀습니다. 사건의 흐름을 설명하였습니다. 불리한 증거가 나왔습니다. 싸움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나 포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법원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한성희의 목소리는 담담하였습니다. 걱정을 숨긴 담담함이었지만, 김동수에게는 그 담담함이 필요하였습니다.
김동수는 오랫동안 테이블 위의 커피잔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저는 잘못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법이 어떻게 보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은 압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습니다.
 
한성희는 그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를 다시 떠올렸습니다. 법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규정과 논리를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그 규정과 논리가 결국 사람의 현실과 어떻게 맞부딪히는지, 그 충돌의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법원이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한성희가 독립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서울의 밤은 길고 조용하게 깔렸습니다. 한성희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서류들을 새로 쌓아놓고 맨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딘가에 반전의 실마리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 그 확신만이 그를 붙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실마리는 반드시 사건 안에 있을 것이었습니다. 밖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는 일. 그것이 변호사의 일이었습니다.
제6장  숨겨진 자료
반전의 실마리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왔습니다.
네 번째 변론 기일을 앞두고 열흘이 남은 어느 날 오후, 한성희 사무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번호가 표시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그런 전화는 받지 않았지만, 그날따라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목소리는 낮고 조심스러웠습니다. 자신을 대한소프트웨어의 전직 인사팀 과장 이진수라고 밝힌 그는 말을 이어가기 전에 잠깐 망설였습니다.
내부에 자료가 있습니다. 변호사님이 아셔야 할 내용입니다.
한성희는 그 말을 들으며 몸이 조금 긴장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전화는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건이 법원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알려진 상황에서, 무언가를 양심적으로 말하고 싶은 사람이 용기를 내어 건 전화였습니다. 그것은 대개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었습니다.
이진수는 작년 말에 대한소프트웨어를 퇴사하였습니다. 인사팀에서 팔 년을 근무하면서 성과급 지급 기준의 운용 과정을 직접 담당하였던 인물이었습니다. 퇴사 이유는 팀 내 불화였다고 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지만, 말 끝에서 억울함이 묻어났습니다. 그가 가져온 것은 회사 내부 검토 문서였습니다. 정확히는 사 년 전 인사팀이 성과급 지급 기준 개편안을 검토하면서 작성한 내부 보고서였습니다. 그는 퇴사할 때 이 자료를 몰래 복사해 두었다고 했습니다. 언제가 필요할 것 같아서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그 보고서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당시 인사팀은 이백이십오일 기준이 근로자의 질병, 가족 돌봄, 기타 불가피한 사유로 인한 결근에는 예외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내부적으로 검토하였습니다. 즉, 의료적 이유나 가족 돌봄이 결근의 원인인 경우에는 근무일수 미달을 이유로 성과급에서 제외하는 것이 불합리할 수 있다는 검토가 이미 존재하였던 것입니다. 보고서에는 법적 리스크라는 항목도 있었습니다.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고서는 경영진에 올라간 뒤 기각되었습니다. 기각 이유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검토 보류라는 표시만 있었습니다. 기각을 결재한 사람의 이름은 당시 대표이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이백이십오일 기준은 아무런 예외 조항 없이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습니다. 법적 리스크를 내부에서 인지하고 있었지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한성희는 이 자료를 손에 받아들고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회사 스스로가 이 기준에 예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증거였습니다. 기준이 합리적이라면, 예외를 검토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예외를 내부적으로 검토했다는 것 자체가 이 기준에 불합리한 측면이 있음을 회사 스스로 인정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우려한 것이 아니라 법적 리스크라는 표현을 써서 명시적으로 기록한 것이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기각 이후의 흐름이었습니다. 이진수에 따르면, 그 검토가 기각된 직후부터 인사팀 내에서는 이 기준을 둘러싼 논란이 지속적으로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 기준이 결국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팀 내에 있었지만, 경영진이 현상 유지를 고집하였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회사가 이 기준의 잠재적 위험을 알면서도 그것을 유지한 것임을 의미하였습니다. 단순한 과실이 아니라 인지된 위험의 방치였습니다.
한성희는 이진수에게 증인으로 법정에 서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이진수는 망설였습니다. 자신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전직 직원이 회사의 내부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민감한 문제였습니다. 취업규칙에 따라 비밀 유지 의무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동의하였습니다. 이 기준 때문에 억울하게 성과급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미 다른 직원들도 이 기준에 걸려 성과급을 받지 못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김동수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인사팀은 침묵하였습니다.
이진수의 증언 준비와 함께, 한성희는 또 다른 방향에서 추가 자료를 확보하였습니다. 대한소프트웨어의 경쟁사인 다른 세 개 대형 아이티 기업들의 성과급 지급 규정을 수집하였습니다. 그 세 개 회사 중 두 곳은 근무일수 기준을 두고 있었지만, 모두 질병이나 가족 돌봄을 이유로 한 결근은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규정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한 곳은 아예 근무일수 기준 없이 재직 여부만을 조건으로 하였습니다. 즉, 업계의 일반적인 기준에서도 대한소프트웨어의 규정은 예외 없는 엄격한 기준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이것은 그 기준이 업계 표준에 비추어 불합리하다는 논거를 강화해 주었습니다.
한성희는 이 자료들을 정리하면서 이 사건의 구조가 바뀌었음을 느꼈습니다. 방어에서 공격으로. 위기에서 기회로. 단 하루의 차이가 만들어낸 불합리함이, 이제 회사의 내부 자료에 의해 그 불합리함이 입증되는 구조로 전환되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변론 기일에 법정에 선 한성희는 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였습니다.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억누른 자신감이었지만,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것을 박재형도 느꼈습니다. 상대방이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 것. 노련한 변호사의 직감이었습니다.
이진수 증인이 증언대에 섰습니다. 그는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말할 때 시선이 방청석을 향하지 않고 바닥을 향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말의 내용은 명확하였습니다. 재판장의 확인을 거친 뒤, 한성희가 질문을 시작하였습니다.
증인은 재직 기간 중 성과급 지급 기준의 예외 적용 여부를 검토한 사실이 있습니까.
이진수가 답했습니다. 있습니다. 사 년 전 인사팀 내부에서 질병이나 가족 돌봄을 이유로 한 결근에 대해 근무일수 미달 예외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였습니다.
그 검토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경영진에서 보류 결정을 내렸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전달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검토 문서에 법적 리스크 관련 내용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현행 기준이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한성희가 내부 보고서를 증거로 신청하였습니다. 박재형이 이의를 제기하였습니다. 이 문서는 정식 결재 문서가 아니라 내부 검토안에 불과합니다. 회사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더불어 이 문서가 어떤 경위로 외부에 유출되었는지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재판장이 개입하였습니다. 문서의 진정성립은 확인이 필요합니다. 증인 이진수, 이 문서가 귀하가 직접 작성하거나 관여한 것입니까.
이진수가 답하였습니다. 직접 작성한 문서는 아닙니다만, 해당 검토 업무에 팀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문서의 내용은 당시 검토 내용과 일치합니다.
재판장은 증거 채택 여부에 대해 신중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잠시 서류를 들여다보다가 다음 기일까지 원본 확인 절차를 거쳐 채택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였습니다.
한성희는 내부 보고서의 내용이 증거로 채택되지 않더라도 이진수의 증언 자체로 중요한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이미 성과를 거두고 있었습니다. 회사가 이 기준의 예외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법적 리스크를 인지하였다는 사실. 그 사실이 법정에서 공기 중에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재판장도 그것을 들었습니다.
박재형도 흔들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반격하였습니다. 내부 검토가 있었다는 사실이 현재의 취업규칙 자체를 무효로 만들지는 않습니다. 기업은 다양한 경영 방안을 검토하며, 그것이 채택되지 않은 경우 현행 규정이 유효하게 존속합니다. 검토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현행 규정이 불합리하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검토하고 채택하지 않았다는 것은 현행 기준을 유지하겠다는 경영적 결정이었습니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맞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한성희는 그것만을 노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재판장의 머릿속에, 이 기준이 합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의혹의 씨앗을 심는 것. 그것이 오늘의 목표였습니다. 씨앗은 뿌려졌습니다.
법정을 나서면서 한성희는 자신이 파놓은 씨앗이 자라기를 기다렸습니다. 다음 기일까지, 이종석 부장판사는 이 사건을 어떤 방향으로 바라보게 될 것인가. 그 판단의 무게가 이제 법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 침묵 속에 내려앉았습니다. 결전은 이제 한 번 더 남아 있었습니다.
제7장  판결의 전야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변론 기일 전날 밤, 한성희의 사무실에는 밤새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이 사건의 모든 서류를 펼쳐놓고, 재판장이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를 반복하여 시뮬레이션하였습니다. 커피를 세 잔 마셨고, 마지막 잔은 식어서 버렸습니다. 자정이 넘어 사무실 건물의 다른 불들이 모두 꺼진 뒤에도 그는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의 진행 상황을 정리하면 이러하였습니다. 첫째, 성과급의 임금 해당 여부. 이 부분에서는 양측 모두 유력한 판례를 갖고 있었고, 재판장은 어느 한쪽으로 명확하게 기울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인사팀의 지급 예정 이메일과 과거 지급의 일관성은 원고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 이메일이 재판 진행 중 피고 측에서 특별한 반론을 내놓지 못한 부분이 눈에 띄었습니다. 둘째, 근무일수 기준의 합리성. 이 부분에서는 이진수의 증언과 경쟁사 비교 자료가 원고 측에 의미 있는 무게를 실어주었습니다. 회사 스스로 예외 필요성을 검토했다는 사실과 업계 평균 기준이 예외를 인정한다는 사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습니다. 셋째, 김동수의 서명이 담긴 근로계약서 별지. 이것은 여전히 원고에게 부담이었습니다. 법원이 이 서명을 얼마나 무겁게 볼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한성희가 주목한 것은 재판장의 질문 패턴이었습니다. 이종석 부장판사는 내내 피고 측에게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백이십오일이라는 기준이 어떻게 도출되었는지, 그 기준에 예외 없이 적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재원이 충분함에도 단 하루 차이로 지급하지 않는 것이 재량의 적절한 행사인지. 이 질문들은 재판장이 단순히 법리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준의 실질적 합리성을 검토하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었지만, 그 방향이 원고에게 완전히 불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성희는 과도한 낙관도 경계하였습니다. 판사는 질문으로 입장을 드러내지 않는 법입니다. 이종석 부장판사가 피고 측에 불편한 질문을 던진 것이 반드시 원고 승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의 논리에 허점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일 수도 있었습니다. 법리적으로 따졌을 때, 취업규칙의 유효성은 여전히 피고 측에 유리하였습니다. 합법적으로 성립된 규정을 따른 것이 문제가 된다면, 기업들은 법적 불확실성 속에 놓이게 된다는 주장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한성희는 최후 변론의 구조를 다시 짰습니다. 첫 번째 파트는 임금성 논거의 정리였습니다. 두 번째 파트는 기준의 불합리성에 대한 강화였습니다. 세 번째 파트는 이 사건이 단순히 성과급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 규정이 사람의 삶과 충돌하는 지점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하나도 빠뜨려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길게 늘어지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법이었습니다. 간결하고 핵심적이어야 했습니다.
박재형 역시 마지막 기일을 앞두고 최후 논변을 가다듬었습니다. 그는 이진수의 증언이 예상보다 큰 파장을 일으켰음을 인정하였습니다. 내부 보고서의 증거 채택 여부는 재판장이 보류한 상태였지만, 그 내용이 법정에서 이미 공개된 이상 재판장의 인식에서 완전히 지워지기는 어려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정적인 타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내부 검토가 기각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회사가 현행 기준의 유지를 결정했음을 의미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마지막 변론에서 강조할 예정이었습니다.
또한 박재형은 만약 원고가 승소할 경우의 파급 효과를 최후 논변에서 제기할 생각이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이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전국의 수많은 기업들이 비슷한 소송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 그것이 기업 경영의 예측 가능성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다는 점. 물론 이것은 법리 논쟁과는 결이 다른 정책적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재판장도 판결이 가져올 파급 효과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법 현실주의라는 것이 존재하였습니다.
최후 변론 당일, 법정에는 방청객도 몇 명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노동 관련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노동 단체 관계자, 기업 인사 담당자, 법학자 몇 명이 조용히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이 원고석과 피고석을 번갈아 향하였습니다.
이종석 부장판사가 개정을 선언하였습니다. 오늘은 최후 변론 기일입니다. 양측이 최종 주장을 진술하신 뒤 결심합니다.
한성희가 먼저 서류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차분함 아래에 긴장이 있다는 것을 법정 안의 모든 사람이 느꼈습니다. 차분함과 긴장이 함께 있을 때, 그것은 가장 설득력 있는 말투가 됩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한 사람이 아버지의 뇌졸중으로 인해 단 하루가 부족했습니다. 그 하루 때문에 사천이백만 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회사 내부의 자료는 이 기준에 예외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회사 스스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법은 규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 규정이 합리적인지, 그 합리성의 기준이 사람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판단하는 것이 법원의 역할입니다.
그는 잠깐 멈추었다가 계속하였습니다. 성과급이 임금이라는 점, 이백이십오일 기준이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에 해당한다는 점, 그리고 이 기준이 사실상 가족 돌봄을 수행하는 근로자를 간접적으로 불이익 처우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점을 거듭 강조합니다. 같은 근무 환경에서 가족의 갑작스러운 병환이라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한 근로자가, 자발적 결근자와 동일하게 취급된다는 것은 법이 추구하는 공정성과 거리가 있습니다. 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구합니다.
박재형이 일어섰습니다. 그는 논리적이었고 간결하였습니다.
원고 측의 주장은 감정에 호소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법은 감정이 아니라 법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취업규칙은 적법하게 성립되었고 오래도록 일관되게 적용되어 왔습니다. 원고는 그 취업규칙에 서명하고 동의하였습니다. 규정을 알면서도 규정이 불합리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자신에게 불리할 때만 규정을 부정하는 논리입니다. 법원이 이를 허용한다면, 취업규칙의 존재 이유 자체가 흔들립니다. 기업 경영의 예측 가능성도 무너집니다. 이 사건의 판결은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선례가 될 것입니다. 법원의 냉철한 판단을 부탁드립니다.
재판장이 양측을 천천히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결심합니다. 판결 선고는 육 주 후로 잡겠습니다.
망치 소리가 짧게 울렸습니다. 법정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가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한성희는 서류를 정리하면서 깊게 숨을 들이마셨습니다. 김동수는 옆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법정을 나서면서 긴 복도를 걸었습니다. 복도 끝 창으로 서울의 겨울 하늘이 보였습니다. 차갑고 높고 아무 표정이 없는 하늘이었습니다.
육 주. 그 시간은 아주 길기도 하고 아주 짧기도 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어떤 방향으로든 끝이 날 것이었습니다. 한성희는 복도를 걸으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였습니다. 남은 것은 법원의 몫이었습니다.
 
 
제8장  225일의 의미
판결 선고일 아침, 서울에는 눈이 내렸습니다. 함박눈은 아니었습니다. 가늘고 단단한 눈발이 바람에 실려 법원 건물 유리창에 부딪혔습니다. 이른 아침 서초동 일대는 아직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법원 앞 광장에도 발자국이 드문드문 남아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위로 새 눈이 덮이고 있었습니다.
김동수는 이른 아침부터 서초동에 나와 근처 카페에서 한성희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커피를 시켜놓고 마시지 않았습니다. 손이 차가웠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법원 건물이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오늘 저 건물 안에서 무슨 말이 나오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어제 전화하였습니다. 내일 결과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별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화를 끊기 전에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를 하였습니다. 그 말이 생각났습니다.
한성희가 들어섰습니다. 외투를 정리하면서 자리에 앉은 그는 김동수를 바라보았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말 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오늘로 모든 것이 결정될 것이었습니다. 준비된 것은 모두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그저 법원이 이 사건을 어떤 눈으로 보았는지를 확인하는 일만 남아 있었습니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한성희는 창밖의 눈발을 바라보았습니다. 눈은 계속 내렸습니다.
오전 열 시, 법정이 열렸습니다. 이종석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손에 쥐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오늘도 방청석에는 지난 기일보다 더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노동 관련 언론 기자들도 두 명이 와 있었습니다. 사진 촬영은 허용되지 않는 법정이었지만, 기자들은 수첩을 꺼내어 준비하였습니다.
재판장이 판결문 낭독을 시작하였습니다.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건조하고 낮았습니다. 그러나 법정 안의 모든 사람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사건 번호 이 년도 가합 삼만이천육십칠호 임금 청구 사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합니다.
주문. 피고는 원고에게 사천이백만 원 및 이에 대한 소장 부본 송달일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십이 퍼센트의 비율로 계산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 소송 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
법정 안이 잠깐 멈추었습니다. 한성희의 손이 테이블 위에서 미세하게 떨렸습니다. 김동수는 눈을 감았습니다. 이겼습니다. 단지 그 두 글자가 머릿속에서 조용히 울렸습니다.
그러나 재판장은 주문만 읽고 멈추지 않았습니다. 판결 이유를 이어서 낭독하였습니다. 그것이 오늘 이 판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주문은 결과였지만, 이유는 이 판결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법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합니다. 첫째, 이 사건 성과급은 피고 회사가 창립 이래 이백이십오일 이상 재직한 직원 전원에게 한 번의 예외 없이 지급해 왔고, 입사 제안 과정에서도 연봉 패키지의 일부로 제시되어 왔습니다. 이는 지급의 정기성과 일률성을 갖추어 근로기준법상 임금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합니다. 피고 인사팀이 지급 예정 안내를 공식 이메일로 발송한 것은 단순한 계획 통보가 아니라 지급 확약에 준하는 의사 표시로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이백이십오일 근무 요건에 대하여. 이 기준은 표면상 중립적으로 보이나, 질병 치료나 가족 돌봄과 같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한 결근에 대해서도 예외 없이 적용될 때, 그러한 상황에 처한 근로자를 실질적으로 불이익하게 처우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피고 회사 내부 자료는 회사 스스로가 이러한 예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동종 업계 기업들이 이와 유사한 상황에 예외를 인정하는 규정을 두고 있는 점도 참고합니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원고의 근무일수 감소가 아버지의 뇌졸중이라는 불가피한 의료적 사정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외 없이 성과급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로서 근로기준법 제육조를 위반한 것으로 판단합니다.
셋째, 근로계약서 별지에 성과급의 불확정성에 관한 동의 조항이 있다는 피고의 주장에 대하여. 이 조항은 임금 청구권을 사전에 포기하는 성격을 가질 수 있어, 강행법규인 근로기준법의 임금 관련 규정에 반하는 경우 그 효력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성과급이 임금으로 인정되는 이상, 그 청구권을 사전 동의로 박탈하는 조항은 무효입니다.
판결 이유 낭독이 끝났습니다. 재판장이 망치를 내려놓으면서 말했습니다. 이상으로 선고를 마칩니다.
법정을 나서면서 한성희는 복도에서 박재형과 마주쳤습니다. 두 사람은 짧게 눈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박재형은 조용히 말했습니다. 항소 여부는 회사와 협의하겠습니다. 한성희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승패를 초월한 어떤 무게가 있었습니다. 같은 싸움을 다른 방향에서 싸운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깥으로 나오자 눈은 멈추어 있었습니다. 서울의 겨울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고, 법원 건물 앞 광장에는 찬 햇살이 쏟아졌습니다. 눈 위로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습니다. 김동수는 한성희 옆에 서서 잠시 그 햇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눈가가 붉어졌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말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한성희는 그 옆에서 코트 단추를 잠그면서 생각하였습니다. 이겼습니다. 그러나 이 판결이 남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오래 생각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법원이 맞다고 했다는 것이 곧 세상이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작은 변화는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가 포기하지 않고, 법의 언어로 불합리함에 이의를 제기할 때. 그 이의가 받아들여질 때.
이 판결은 법원의 공식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이후 유사 사건의 선례가 되었습니다. 노동법 학자들은 이 판결이 성과급의 임금성 판단 기준을 정교화했다는 점과, 취업규칙상 조건 요건이 불가피한 사유로 인한 결근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으로 적용될 경우 합리적 이유 없는 차별이 될 수 있다고 판시한 부분에 주목하였습니다. 특히 기업이 내부적으로 기준의 불합리성을 인식하면서도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경우, 그 사실이 차별의 합리성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새로운 논점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대한소프트웨어는 이 판결 이후 취업규칙 개정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질병 치료 및 가족 돌봄을 이유로 한 결근에 대해서는 근무일수 산정에서 일정 부분 예외를 인정하는 조항을 추가하는 방향으로 검토가 이루어졌습니다. 법무팀과 인사팀이 공동으로 작업하였습니다. 항소 여부에 대해서는 결국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다시 상급법원에서 다루어지며 더 광범위한 선례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조용히 마무리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박재형은 이 사건 이후 한동안 노동법 분야에서 기업 자문 전략을 재검토하였습니다. 근무일수 기준에 예외 조항을 두지 않는 방식이 법적으로 안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을 몇몇 고객사에 전달하였습니다. 그것은 변호사로서의 역할이었고, 동시에 이 사건이 그에게도 무언가를 남겼다는 표시였습니다.
한성희는 이 판결문을 사무실 벽에 붙여두었습니다. 사건이 끝날 때마다 그러는 것이 그의 오래된 습관이었습니다. 그것은 승리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이 일이 왜 필요한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군가의 하루가 누군가의 전부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그를 이 자리에 앉아 있게 하는 이유였습니다.
김동수는 판결 이후 몇 달 뒤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셨습니다. 재활이 더딘 아버지는 이제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받은 성과급은 요양원 비용과 치료비로 대부분 쓰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돈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싸웠던 것은 단 하루가 만들어낸 불합리한 벽이었습니다. 그 벽이 법의 이름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을 법원이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는 무엇보다 컸습니다.
일요일 오후 김동수는 아버지를 면회하러 요양원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햇볕이 잘 드는 방에 누워 있었습니다. 오른손은 여전히 불편하였지만, 말은 조금씩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들어서자 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이겼냐. 아버지가 물었습니다. 이겼어요. 김동수가 답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침묵이 어떤 말보다 많은 것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백이십오일이라는 숫자는 여전히 어딘가에 살아 있었습니다. 다른 회사의 취업규칙 안에, 다른 누군가의 출퇴근 기록 안에, 다음 분쟁을 기다리며 잠복하고 있었습니다. 숫자는 중립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인간의 삶에 적용하는 방식은 결코 중립적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이 사건이 남긴 질문이었습니다. 기준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사람이 기준에 맞추어야 하는가. 그 질문은 법정이 아닌 곳에서도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법은 모든 것을 해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법은 질문을 남겼습니다. 기준이 있다고 해서 그 기준이 반드시 정의인 것은 아니라는 것. 숫자가 사람을 재단할 때, 그 숫자가 어떤 맥락 위에 있는지를 묻는 것이 법의 역할이라는 것. 그리고 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누군가는 법정에 서야 한다는 것.
서울의 겨울은 길었습니다. 그러나 그 끝에는 언제나 봄이 왔습니다. 느리고 불확실하게. 그러나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