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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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진 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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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 한복판에 서 있는 유리 건물은 언제나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날이 맑아도, 비가 내려도, 건물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무관하게 반짝였습니다.
광화문 사거리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자리한 그 건물의 이름은 한강타워였습니다.
지하 5층, 지상 35층. 그중 16층부터 22층까지는 한강종합법률사무소가 점유하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로펌이었습니다.
소속 변호사만 이백 명이 넘었고, 연간 매출은 국내 중견 기업의 연매출을 훌쩍 넘겼습니다.
그 건물의 21층 창가 자리에, 한때 김동민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를 좋아했습니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북한산 능선이 보였습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산의 색이 달라졌고, 그것이 유일하게 그를 위로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서류를 뒤적이다 고개를 들면 산이 있었습니다.
그 산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김동민이 한강종합법률사무소에 입사한 것은 법학전문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던 해였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그는 세 곳의 대형 로펌에서 동시에 제안을 받았습니다.
한강을 선택한 것은 보수가 가장 높아서가 아니었습니다.
인수합병 부문의 선임 파트너가 직접 연락을 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파트너는 전화 통화를 마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가 제출한 논문을 읽었네. 구조를 보는 눈이 있어."
그 말이 김동민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남들이 서류를 보는 방식으로 사건을 보지 않았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는 그런 평가를 갈망해 왔었습니다.
입사 초반 3년은 혹독했습니다.
새벽 두 시에 퇴근하는 날이 일주일에 사흘은 됐습니다.
계약서 한 줄의 해석을 두고 밤새 선례를 뒤지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기업 인수합병이란 결국 구조의 싸움이었습니다.
어느 쪽이 더 많은 위험을 떠안는지, 그 위험을 어디에 숨기는지, 계약서 안에서 어떻게 책임의 선을 긋는지를 다투는 일이었습니다.
김동민은 그 싸움에서 탁월했습니다.
5년차가 되던 해, 그는 팀 내에서 가장 복잡한 딜을 단독으로 마무리했습니다.
해외 사모펀드가 국내 중견 제조업체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숨겨진 부채를 계약 조건 안에 정확하게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딜이 마무리된 날, 선임 파트너는 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습니다.
"자네가 이 업계에서 오래 살아남을 사람이야."
그 말은 칭찬이었지만, 동시에 뭔가 기묘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오래 살아남는다는 것이 이 바닥에서 어떤 의미인지, 그때의 그는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해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1년 뒤의 일이었습니다.
사건의 이름은 협성스틸이었습니다.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협성스틸은 대형 기계 부품을 제조하는 중견 기업이었는데, 이 회사가 매각을 추진하면서 한강이 법률 자문을 맡게 되었습니다.
매각 실사 과정에서 김동민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습니다.
공장 안전 점검 기록이 있었습니다.
내부 감사 자료였는데, 그 안에는 반복적으로 지적된 설비 결함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산소 절단기의 배관 이음새가 불량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이 세 차례에 걸쳐 같은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 번 모두 조치 여부 란에는 '처리 완료'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현장 사진도 있었습니다.
김동민은 사진을 꼼꼼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배관 이음새는 처리 완료된 상태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팀장에게 이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팀장의 반응은 조용했습니다.
그는 서류를 가볍게 덮으며 말했습니다.
"자네가 해야 할 일은 거래가 성사되도록 조건을 조율하는 거야. 현장 실사는 우리 소관이 아니야."
그날 저녁, 김동민은 혼자 사무실에 남아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았습니다.
북한산은 어둠 속에 사라져 있었습니다.
빌딩의 불빛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거래는 성사되었습니다.
협성스틸은 매각되었고, 김동민의 팀은 성공 보수를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14개월 뒤, 협성스틸 화성 공장에서 폭발 사고가 났습니다.
산소 절단기 배관 이음새에서 가스가 누출되었고, 인근에서 용접 작업 중이던 하청업체 노동자 두 명이 현장에서 사망했습니다.
김동민은 그 뉴스를 출근길 지하철에서 보았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다음 역에서 내렸어야 했지만, 내리지 못했습니다.
지하철은 계속 달렸습니다.
그날 이후 그는 달라졌습니다.
정확히 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흔들리기 시작하던 것이 완전히 무너진 것이었습니다.
3개월 뒤, 그는 한강종합법률사무소에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사유란에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선임 파트너가 직접 그를 불러 만류했습니다.
"자네가 여기서 쌓은 것들이 얼마나 귀한지 알아? 다시 생각해."
김동민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는 나왔습니다.
그가 새로 사무실을 연 곳은 영등포구 문래동이었습니다.
낡은 산업 단지와 예술인들의 작업실이 뒤섞인 동네였습니다.
4층짜리 건물의 2층에, 보증금 오백만 원짜리 공간을 빌렸습니다.
간판에는 글씨 세 자만 써 넣었습니다.
'김동민 법률사무소'
처음 6개월은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노동 관련 법률 공부를 처음부터 다시 했습니다.
인수합병을 다루던 사람이 갑자기 노동 사건을 맡는다는 것을 세상은 이상하게 보았습니다.
그 시선에 그는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일곱 달째 되던 날, 처음 의뢰인이 찾아왔습니다.
경기도 안산의 봉제 공장에서 일하다 손가락이 절단된 노동자였습니다.
산재 처리가 안 된다는 통보를 사업주에게서 받았다고 했습니다.
김동민은 그 사건을 받았습니다.
6개월을 싸웠습니다.
결과는 승소였습니다.
그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 뒤로 3년이 흘렀습니다.
사무소에는 이제 사무장 한 명이 있었습니다.
최수빈이라는 이름의, 법학전문대학원 2학년생이었습니다.
졸업하면 대형 로펌에 가겠다고 했지만, 지금은 이 작은 사무소에서 실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11월의 어느 날 아침, 한 여자가 사무소 문을 밀고 들어왔습니다.
여자는 삼십대 중반으로 보였습니다.
작업복 위에 얇은 점퍼를 걸치고 있었습니다.
핸드백도 없었고, 서류 봉투 하나만 들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무표정이었지만, 눈 아래가 검게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최수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맞이했습니다.
여자는 봉투를 탁자 위에 조심스럽게 놓으며 입을 열었습니다.
"변호사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 목소리는 작았지만, 조용히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무너진 사람의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포기한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었습니다.
최수빈이 안쪽 문을 두드렸습니다.
잠시 후, 김동민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는 여자를 바라보았습니다.
서류 봉투와, 작업복과, 눈 아래의 그늘을 차례로 보았습니다.
"들어오세요."
여자가 고개를 숙이며 들어왔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박성희였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은 3주 전에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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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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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라 불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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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가 봉투를 테이블 위에서 펼쳤습니다.
그 안에 든 것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사망진단서 한 장, 고용보험 가입 증명서 한 장, 그리고 사고 당일 현장의 사진 몇 장이었습니다.
사진은 핸드폰으로 찍은 것들이었습니다.
화질은 거칠었지만, 담긴 것은 명확했습니다.
철골 구조물이 쓰러져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 무언가가 있었지만, 사진은 그것을 정면으로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옆에 서 있는 안전모를 쓴 사람들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김동민은 사진을 한 장씩 천천히 들여다보았습니다.
박성희는 말을 시작했습니다.
떠듬거리지 않았습니다.
이미 여러 번 연습한 것처럼, 그러나 아직 완전히 굳어지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남편의 이름은 박준오였습니다.
올해 마흔두 살이었습니다.
용접 기술 자격증을 갖고 있었고, 업계 경력 14년이었습니다.
진성산업이라는 하청업체 소속이었습니다.
그 진성산업은 대성중공업의 협력사였습니다.
대성중공업은 경기도 평택에 있는 대형 중공업 기업으로, 주력 사업은 산업용 설비 제조와 플랜트 시공이었습니다.
사고가 난 곳은 평택 본공장 5호 동의 증설 공사 현장이었습니다.
그해 8월부터 진성산업이 하청을 받아 진행하고 있던 작업이었습니다.
새 용접 설비를 설치하기 위한 철골 보강 공사였습니다.
사고가 난 것은 11월 둘째 주 화요일 오후 세 시 십칠 분이었습니다.
박준오는 3미터 높이의 비계 위에서 작업 중이었습니다.
그 비계가 갑자기 한쪽으로 쏠렸고, 그는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떨어지면서 아래에 쌓여 있던 철제 부자재를 덮쳤습니다.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었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72시간 뒤에 숨을 거두었습니다.
사망 원인은 다발성 장기 부전이었습니다.
추락으로 인한 내부 출혈이 원인이었습니다.
김동민은 서류에서 눈을 들었습니다.
"비계 설치 업체는 어디입니까?"
박성희가 말했습니다.
"그걸 저도 알아보려 했는데요. 현장 소장이 진성산업 자체 설치라고 했는데, 진성산업 쪽에서는 외부 업체에 맡겼다고 하더라고요."
김동민이 받아 적었습니다.
"산재 신청은 하셨나요?"
"했습니다. 그런데 진성산업이 보험 관계자 쪽에 사고 경위서를 제출했는데, 거기에 남편이 작업 안전 수칙을 어겼다고 적혀 있었어요."
"어떤 수칙을요?"
"안전 벨트를 착용하지 않았다고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김동민이 말했습니다.
"사진에서는 안전 벨트 고리가 비계 위에 걸려 있는 게 보입니다."
박성희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그녀의 눈에 무언가가 흔들렸습니다.
"저도 그걸 봤어요. 그래서 가져온 거예요."
김동민은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안전 벨트의 고리가 비계 난간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착용자는 비계 아래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했습니다.
벨트를 착용하고 있다가 충격으로 풀렸거나, 처음부터 착용하지 않고 걸어만 놓은 것이거나.
"현장 소장 이름이 뭡니까?"
"오현식이요."
"노동부 조사는 받으셨나요?"
"근로감독관이 나왔었어요. 장기명이라는 분이요. 사진 찍고 진술서 받고 갔는데, 그 뒤로 연락이 없어요. 한 달이 넘었어요."
김동민은 잠시 뭔가를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그가 들고 있는 사진에는 또 하나의 디테일이 있었습니다.
비계 옆에 세워진 경고판이었습니다.
안전 수칙을 나열한 철판이었는데, 그 판의 하단 일부가 구겨져 있었습니다.
무언가에 부딪힌 흔적이었습니다.
그 흔적은 사고 전에 생긴 것인지 후에 생긴 것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아래, 아주 작게, 무언가가 적혀 있었습니다.
글자가 흐릿했습니다.
김동민은 사진을 화면에 가까이 가져갔습니다.
날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고 당일보다 사흘 앞선 날짜였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박성희가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현장에서 같이 일하던 분이에요. 남편이 쓰러졌을 때 옆에 있었대요. 나중에 저한테 몰래 보내줬어요."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그녀는 다시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분이 이름은 밝히지 말아달라고 했어요. 아직 그 현장에서 일하고 있거든요."
김동민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서류 봉투를 조심스럽게 닫았습니다.
"사건을 맡겠습니다."
박성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습니다.
김동민은 그 표정을 보았습니다.
안도가 아니었습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최수빈이 대성중공업의 공시 자료를 뽑아왔습니다.
대성중공업은 코스피에 상장된 기업으로, 시가 총액이 1조 원을 넘었습니다.
협력사만 전국에 삼십여 곳이었고, 이 중 다섯 곳이 상시 현장 작업에 투입되어 있었습니다.
그 다섯 곳 중 하나가 진성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성중공업의 법무팀장은 이재원이었습니다.
김동민은 그 이름을 보았을 때 잠시 멈추었습니다.
이재원은 한강종합법률사무소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였습니다.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같은 층에서 3년을 함께했습니다.
그가 대성중공업 사내 변호사로 옮긴 것은 김동민이 사무소를 연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습니다.
김동민은 그 이름을 한 번 보고 서류를 덮었습니다.
최수빈이 물었습니다.
"아는 분이세요?"
"알았던 사람이에요."
그 차이가 어떤 의미인지, 최수빈은 묻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오전, 김동민은 고용노동부 평택지청에 전화를 했습니다.
장기명 감독관을 연결해 달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연결이 되었습니다.
장기명은 사건 번호를 확인하고 잠시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말했습니다.
"현재 조사 진행 중입니다. 결과가 나오면 통보하겠습니다."
"조사 중이라면 어느 단계입니까?"
"현장 조사는 완료됐고, 서면 조사 중입니다."
"비계 설치 업체 확인은 됐습니까?"
짧은 침묵이 있었습니다.
"조사 내용은 공개할 수 없습니다."
김동민은 통화를 마쳤습니다.
그 짧은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조사는 진행 중이 아니었습니다.
조사는 어딘가에서 막혀 있었습니다.
그것이 어디서 막혔는지, 그는 아직 몰랐습니다.
하지만 막힌 곳이 있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유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을 찾는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그는 차를 몰고 평택으로 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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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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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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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의 겨울은 바람이 날카로웠습니다.
대성중공업 5호 동 공사 현장은 여전히 가동 중이었습니다.
사고로 인한 중단은 이틀로 끝났습니다.
사흘째부터 공사가 재개됐다는 사실을 김동민은 서류를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현장 외부 펜스 앞에 차를 세웠습니다.
정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출입증이 없었고, 외부인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펜스 안쪽으로,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람 속에서도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멈추는 일이 없었습니다.
김동민은 현장 근처의 포장마차로 들어갔습니다.
공사판 옆에는 으레 그런 것들이 있었습니다.
뜨거운 국물 냄새가 났습니다.
그는 오뎅 탕 한 그릇을 시켰습니다.
자리에 앉아 국물을 마시면서 주위를 살폈습니다.
옆 테이블에 두 사람이 앉아 있었습니다.
작업복 차림이었고, 안전모를 옆에 내려놓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인 것 같았습니다.
그들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김동민은 듣지 않으려 했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몇 가지 단어가 들렸습니다.
비계, 보험, 그리고 박준오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실례합니다. 저 박준오 씨 아는 사람인데요."
두 사람이 동시에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경계하는 눈빛이었습니다.
김동민은 명함을 내밀었습니다.
"변호사예요. 유족 측에서 사건을 맡아달라고 해서요."
한 사람이 명함을 받았습니다.
읽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잠깐 바라보더니 다시 명함을 내려놓았습니다.
"저희는 잘 몰라요."
"그렇군요. 혹시 사고 당일 현장에 계셨나요?"
"저희는 다른 구역이에요."
대화는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날 때, 명함을 가져간 사람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오 소장한테 물어보는 건 소용없을 거예요."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나갔습니다.
김동민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오현식 소장.
그날 오후, 그는 진성산업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평택시 서탄면 외곽에 자리한 낡은 건물이었습니다.
간판도 수수했고, 주차장도 좁았습니다.
그러나 들어가 보니 사무실은 예상보다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직원 중 한 명이 그를 맞이했습니다.
김동민이 신분을 밝히자, 직원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소장님은 지금 자리를 비우셨어요."
"언제 돌아오실지 아세요?"
"모릅니다."
김동민은 자신의 명함을 남겼습니다.
돌아오는 길, 그는 박성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남편 분이 비계 설치에 관해 이야기하신 적 있었나요? 작업 전에 불안하다거나, 설비 상태에 대해 뭔가 말씀하신 적이요."
박성희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갔다 오면 오늘 좀 위험했다고 한 적 있었어요. 근데 그게 늘 하는 말이어서 저도 크게 생각 안 했는데. 사고 나기 한 주 전쯤에 비계가 좀 흔들리더라고 그랬어요."
"그 말을 언제 하셨나요?"
"저한테요? 저녁 밥 먹으면서요."
"혹시 그때 남편분이 현장 소장이나 다른 사람한테 그 사실을 얘기했다고 하셨나요?"
긴 침묵이 있었습니다.
"말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소장이 걱정 말라고 했대요."
김동민은 메모를 했습니다.
작은 노란 포스트잇에, 두 줄짜리 메모였습니다.
'비계 이상 사전 인지 가능성. 소장 인식 여부.'
그 메모가 나중에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때 그는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사무소로 돌아온 김동민은 최수빈과 함께 진성산업의 사업자등록 내역과 대성중공업과의 계약 관계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진성산업은 7년 전에 설립된 작은 회사였습니다.
대성중공업과는 5년 전부터 협력 계약을 맺고 있었습니다.
계약 조건은 전형적인 하청 구조였습니다.
대성중공업이 공사의 범위와 기간을 정하고, 진성산업은 그 안에서 인력을 조달해 작업을 수행했습니다.
안전 관리 책임은 진성산업이 독립적으로 부담한다는 조항이 있었습니다.
김동민은 그 조항을 두 번 읽었습니다.
이런 조항들은 늘 비슷한 방식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책임을 아래로 내려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원청은 작업을 발주하고, 하청은 작업을 수행하며, 사고가 나면 하청이 책임을 집니다.
그 구조 안에서 원청은 늘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리는 면책이 아니었습니다.
법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그랬습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63조는 도급인의 안전 및 보건 조치 의무를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수급인의 근로자가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 도급인은 해당 작업에 관한 안전 기준을 준수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해석이었습니다.
대성중공업은 자신들이 도급인이 아니라 시설 소유자라는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작업을 직접 지시한 것이 아니라 공간만 제공했다는 논리였습니다.
그 논리가 얼마나 유효할지는 법원이 판단하는 것이었습니다.
최수빈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비슷한 판례 있어요. 2019년 대법원 판결인데요. 원청이 작업 시간과 방법을 실질적으로 지시했다면 지배 관리 의무가 인정된다고 했어요."
김동민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면 대성중공업이 진성산업에 작업 일정을 어떻게 지시했는지가 중요하겠네요."
"계약서에는 진성산업이 자율적으로 시행한다고 되어 있는데요."
"계약서에 쓰인 것과 실제로 운영된 방식이 같을 리 없어요. 현장 일지를 찾아야 해요. 작업 지시서, 안전 점검 기록, 그리고 현장 회의록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걸 어떻게 구하죠?"
김동민은 잠시 생각했습니다.
"일단 소송을 제기합니다. 제소와 동시에 문서 제출 명령 신청을 합니다. 그러면 법원이 대성중공업 측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도록 명령할 수 있어요."
"상대방이 안 내면요?"
"안 내면 그 자체가 증거가 됩니다. 법원은 문서 제출을 거부한 사실을 해당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할 수 있어요."
최수빈은 그것을 적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날 밤, 김동민은 혼자 사무실에 남아 소장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피고는 대성중공업 주식회사와 진성산업 유한회사, 두 곳이었습니다.
청구의 원인은 안전 관리 의무 위반으로 인한 손해배상이었습니다.
원고는 박성희와 그녀의 두 자녀였습니다.
소장을 쓰면서, 그는 박준오라는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사진 한 장만 보았습니다.
박성희가 보여준 핸드폰 안의 사진이었습니다.
웃고 있는 남자가 작업복 차림으로 서 있었습니다.
안전모를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마흔두 살.
3미터 아래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장의 마지막 줄을 쓰고, 김동민은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첫 줄부터 읽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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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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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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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이 접수된 것은 12월 첫째 주였습니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에 제출했습니다.
사건은 민사 손해배상으로 분류되었고, 담당 재판부가 배정되었습니다.
대성중공업 측에 소장이 송달되던 날, 김동민은 뉴스 기사 하나를 보았습니다.
경제 뉴스였습니다.
대성중공업이 동남아시아 플랜트 시공 사업 수주에 성공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수주 규모는 2천억 원이었습니다.
기사 하단에는 대성중공업 대표이사의 말이 인용되어 있었습니다.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시공 능력을 세계에 증명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그 기사를 인쇄해서 파일에 끼워두었습니다.
사흘 뒤, 대성중공업의 법률대리인이 선임계를 제출했습니다.
이름은 권혁수였습니다.
그 이름을 보자 최수빈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권혁수 변호사요? 기업 방어 전문으로 업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분인데요."
김동민은 고개를 들지 않고 말했습니다.
"알아요."
권혁수는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성현법률사무소의 대표 변호사였습니다.
대형 기업의 형사 방어와 민사 소송을 전담하는 곳이었습니다.
구성원 변호사만 열다섯 명이 넘었습니다.
그 규모만으로도 이미 상대가 얼마나 진지하게 이 사건을 다루려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로 선임계가 들어왔습니다.
이재원이었습니다.
대성중공업 법무팀장으로서 사내 법률 대리인 자격이었습니다.
김동민은 그 이름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습니다.
약 3주 뒤, 첫 번째 준비 기일이 열렸습니다.
법정에 들어서자 상대방 측이 먼저 와 있었습니다.
권혁수와 그의 소속 변호사 두 명이었습니다.
이재원도 있었습니다.
이재원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이재원이 먼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인사였습니다.
김동민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준비 기일은 본격적인 공방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주장 요지를 확인하고 향후 일정을 조율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날, 권혁수가 꺼낸 말은 김동민의 예측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권혁수는 서류를 정돈하며 말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대성중공업은 작업을 직접 지시한 사실이 없습니다. 진성산업이 독립적인 계약자로서 작업을 수행했으므로 원청의 지배 관리 책임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또한 사고 원인은 피재자 본인의 안전 수칙 위반이 직접적인 기여 요인임을 주장합니다."
피재자 본인의 안전 수칙 위반.
김동민은 그 표현을 들으며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았습니다.
재판장이 원고 측에 반박 의견을 물었습니다.
김동민이 말했습니다.
"원고 측은 대성중공업이 실질적으로 작업 시간, 작업 방식, 현장 인력 배치에 관한 지시 권한을 행사했음을 입증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작업 지시서, 현장 안전 점검 기록, 대성중공업 측 현장 담당자와 진성산업 소장 사이의 연락 기록 등의 제출을 요청할 것입니다."
재판장이 메모를 했습니다.
권혁수가 즉각 반응했습니다.
"해당 자료들은 기업의 내부 영업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제출이 어렵습니다."
재판장이 말했습니다.
"문서 제출 명령 신청을 통해 판단하겠습니다."
기일은 짧게 끝났습니다.
복도에서, 이재원이 김동민에게 다가왔습니다.
권혁수는 이미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이재원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래간만이야."
김동민이 말했습니다.
"그렇네요."
이재원이 잠시 침묵하더니 말했습니다.
"이 사건, 쉽지 않을 거야."
"알아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다른 뜻 없어."
김동민은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이재원의 눈빛은 복잡했습니다.
경고인지, 걱정인지, 혹은 다른 무언가인지 단번에 읽히지 않았습니다.
"압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먼저 복도를 걸어 나왔습니다.
그날 오후, 문서 제출 명령 신청서를 작성하면서 그는 한 가지 전략을 정했습니다.
증거는 상대방이 숨기려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제출하기 싫어하는지를 보면, 무엇이 핵심인지 드러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능한 한 많은 종류의 서류를 신청했습니다.
작업 일보, 안전 점검 일지, 현장 지시 문서, 담당자 연락 기록, 비계 설치 승인서, 협력사 안전 교육 이수 기록까지.
그중에서 상대방이 특히 저항하는 것이 있을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찾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진성산업 측의 법률대리인도 이 시점에 선임되었습니다.
작은 로펌의 변호사였습니다.
대성중공업과 비교할 수 없이 적은 규모였습니다.
그것은 하청 구조가 법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는 방식이었습니다.
김동민은 그 사실을 박성희에게 설명했습니다.
사무소에서의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박성희는 조용히 들었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이길 수 있을까요?"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긴다는 것이 어떤 의미냐에 따라 달라요. 손해배상을 받는다는 의미라면, 가능성은 있습니다. 원청의 책임을 법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의미라면, 더 많은 싸움이 필요합니다."
"제 남편이 잘못한 게 아니라는 걸 밝히는 것도요?"
김동민은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박성희는 무릎 위에 놓인 손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남편이 14년을 일했어요. 한 번도 사고 난 적 없었어요. 현장에서 제일 꼼꼼하다는 소리 들었어요. 근데 죽고 나서 규칙 어긴 사람이 됐어요."
그 말 뒤에는 오랜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김동민은 그 침묵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 알았습니다.
분노였습니다.
그러나 표면으로 나오지 않는 분노였습니다.
오래도록 눌러서 단단해진 분노였습니다.
그것은 가장 무거운 종류의 감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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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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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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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이 지나고 2월이 왔습니다.
법원은 문서 제출 명령을 일부 인용했습니다.
작업 일보와 안전 점검 일지, 그리고 비계 설치 관련 승인 서류를 제출하도록 대성중공업에 명령했습니다.
단, 내부 연락 기록과 담당자 간의 통신 내역은 인용하지 않았습니다.
대성중공업이 제출한 서류들은 두툼했습니다.
박스 하나에 가득 찬 분량이었습니다.
그러나 두꺼운 것이 언제나 많은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김동민과 최수빈은 며칠에 걸쳐 그 서류들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작업 일보는 형식적으로 작성된 것들이었습니다.
누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는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누구의 지시로 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비계 설치 승인서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승인서의 서명란에는 진성산업 소장 오현식의 이름만 있었습니다.
대성중공업 측의 확인 서명은 없었습니다.
안전 점검 일지를 보았습니다.
총 8회의 점검 기록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점검은 사고 열흘 전이었습니다.
점검 항목 중에는 비계 안전이 있었습니다.
결과란에는 '이상 없음'이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최수빈이 말했습니다.
"점검했는데 이상 없다고 했네요. 이게 우리한테 불리한 거 아닌가요?"
김동민이 점검 일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습니다.
"점검자 이름을 봐요."
최수빈이 들여다보았습니다.
"오현식이요."
"진성산업 소장이 자기 현장을 자기가 점검하고 이상 없다고 했습니다. 독립된 점검이 아니에요."
"그게 문제가 되나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 규칙에 따르면,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 현장은 안전 관리자를 별도로 지정해야 합니다. 진성산업이 그 규모에 해당하는지 확인해야 해요."
최수빈이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잠시 뒤, 그녀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이거나 공사 금액 120억 원 이상인 경우 안전 관리자 선임 의무가 있네요. 진성산업은 상시 근로자가 37명이에요. 그리고 이번 하청 계약 금액은 확인이 안 되는데요."
"계약 금액은 법원에 추가 제출 명령 신청을 해요. 그게 120억 미만이면 선임 의무가 없어요. 그런데 만약 대성중공업이 하청 공사를 쪼갰다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쪼갠다는 게 무슨 뜻이에요?"
"하나의 대형 공사를 여러 개의 소규모 계약으로 나눠서 발주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각 계약의 금액이 낮아지고, 안전 관리자 선임 의무를 회피할 수 있어요."
최수빈이 멈추었습니다.
"그런 게 실제로 있어요?"
"흔합니다."
그 말이 사무소 안에 잠시 가라앉았습니다.
3월 초, 첫 번째 반전이 왔습니다.
박성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변호사님, 누군가 저한테 연락이 왔어요."
"누구한테요?"
"진성산업 쪽 사람인 것 같아요. 이름은 안 밝혔는데, 합의를 제안하고 싶다고 했어요."
김동민이 물었습니다.
"합의 금액이 얼마라고 했나요?"
"5천만 원이요."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5천만 원.
박준오가 14년을 일했습니다.
두 자녀가 있었습니다.
큰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었고, 작은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습니다.
5천만 원.
"어떻게 하실 건가요?"
박성희가 말했습니다.
"거절할 거예요. 근데 무서워요. 이게 협박인지 아닌지 모르겠어요."
김동민이 말했습니다.
"녹음이 있습니까?"
"혹시 몰라서 바로 틀었어요."
"그 파일 저한테 보내주세요. 그리고 이후 연락이 다시 온다면 즉시 알려주세요."
녹음 파일이 왔습니다.
김동민은 그것을 들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였습니다.
조심스러웠지만, 압박감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길어지면 모두에게 힘들 것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그 파일을 저장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법원에 증거 보전 신청서를 제출했습니다.
동시에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에 위력에 의한 합의 시도 혐의로 고발장을 접수했습니다.
권혁수가 대응했습니다.
공식 입장문이었습니다.
합의 제안은 대성중공업이나 진성산업이 지시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차원의 연락이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입장문 자체가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개인의 행동이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그 개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알고 있다는 것은 관여했다는 것과 가까웠습니다.
김동민은 그 입장문을 파일에 추가했습니다.
그 무렵, 그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박성희가 처음 가져온 사진을 찍은 사람이었습니다.
연락처는 박성희를 통해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여전히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름은 밝히기를 꺼렸습니다.
만남은 평택 외곽의 한 식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사십대 초반의 남자였습니다.
손이 굵었고, 얼굴에 작업 흔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에 말을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김동민도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박 씨가 쓰러지기 사흘 전에, 비계 한쪽이 기울었어요. 저도 봤어요."
"현장 소장에게 보고했나요?"
"박 씨가 했어요. 저는 옆에 있었고요."
"소장이 뭐라 했나요?"
"내가 알아서 한다고 했어요."
"알아서 한다고 했는데, 비계는 그대로였나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대로였어요."
"그것을 증언해줄 수 있습니까?"
남자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일을 잃어요."
"그렇습니다."
"가족이 있어요."
"압니다."
다시 침묵이 왔습니다.
식당 바깥으로 트럭 한 대가 지나갔습니다.
남자가 말했습니다.
"생각해볼게요."
그게 전부였습니다.
김동민은 명함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돌아오는 길, 그는 차 안에서 오랫동안 운전대를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시동을 걸지 않았습니다.
증인이 없다면, 사전에 비계의 이상을 보고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사고는 피재자의 부주의로 정리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면 배상 책임은 진성산업에 국한될 것이었습니다.
대성중공업은 빠져나갈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한 남자에게 일자리를 잃을 것을 알면서 증언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옳은 것인지, 혹은 옳다는 말만으로 충분한 것인지, 그는 오래도록 생각했습니다.
시동을 건 것은 한참 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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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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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그 안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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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이 되었습니다.
첫 번째 본 변론 기일이 열렸습니다.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민사합의 법정이었습니다.
법정은 작지 않았지만, 큰 것도 아니었습니다.
재판장 한 명, 배석 판사 두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방청석은 대부분 비어 있었습니다.
박성희가 앞줄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 옆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양측 변호인이 각자의 주장을 진술했습니다.
권혁수가 먼저 발언했습니다.
그의 말은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요점만 담겼습니다.
대성중공업은 진성산업에 공사를 도급했습니다.
그 도급 계약에서 진성산업은 독립적인 수급인으로서 자체적인 안전 관리 책임을 부담합니다.
대성중공업은 현장에 별도의 안전 담당자를 배치하지 않았으며, 작업 방법과 순서에 관한 지시를 내린 사실이 없습니다.
사고는 진성산업 소속 근로자인 박준오 씨가 안전 벨트를 미착용한 상태에서 비계 위에서 작업하다가 발생한 것으로, 이는 피재자의 과실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대성중공업은 이 사건 사고에 대한 사용자 책임 또는 도급인 책임을 부담하지 않습니다.
재판장이 원고 측의 반박을 요구했습니다.
김동민이 서류를 정돈했습니다.
그리고 말을 시작했습니다.
피고 대성중공업은 작업에 관한 지시를 내린 사실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원고 측이 확보한 작업 일보 분석에 따르면, 진성산업이 작업을 수행하는 방식과 시간이 대성중공업의 생산 일정과 정확하게 연동되어 있었음이 드러납니다.
이는 진성산업이 독립적으로 일정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대성중공업의 일정에 종속되어 운영되었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비계 설치에 관한 안전 점검 기록을 보면, 점검자가 진성산업 소장 오현식 단독이었으며, 대성중공업 측의 확인 절차가 없었습니다.
이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요구하는 도급인의 안전 점검 의무를 대성중공업이 이행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피재자 박준오 씨의 안전 벨트 미착용 여부에 대해서는, 현장 사진에 비계 난간에 안전 벨트 고리가 걸려 있는 것이 확인됩니다.
벨트 고리의 위치는 피재자가 작업 중에 착용했다가 추락 충격으로 이탈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추가 감정을 통해 규명되어야 합니다.
재판장이 메모를 하면서 물었습니다.
"원고 측에서 주장하는 대성중공업의 작업 지시 연동 관계는 어떻게 입증하실 계획입니까?"
"작업 일보와 대성중공업의 내부 생산 계획표를 비교 분석할 예정입니다. 현재 대성중공업의 생산 계획표에 대한 추가 문서 제출 명령 신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권혁수가 즉각 반응했습니다.
"생산 계획표는 기업의 핵심 영업 비밀에 해당하며, 재판과 무관한 범위의 자료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김동민이 말했습니다.
"영업 비밀 해당 여부는 법원이 판단하는 것입니다. 원고 측은 비공개 심리를 통해서라도 열람이 가능하도록 허용해줄 것을 요청드립니다."
재판장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문서 제출 명령 신청을 검토하겠습니다. 다음 기일까지 양측이 추가 주장과 증거를 정리해 제출하십시오."
기일이 끝났습니다.
법정 밖에서, 박성희가 김동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잘 된 건가요?"
"절반입니다. 상대방이 어디를 막으려는지는 확인했어요."
"어딘가요?"
"생산 계획표예요. 그것이 공개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박성희는 고개를 끄덕이는 듯 했지만, 완전히 이해한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오후, 사무소로 돌아온 김동민에게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습니다.
이재원에게서 개인 전화가 왔습니다.
"오늘 저녁 시간 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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