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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책방

황혼 이혼과 연금 분할, 당신의 노후는 안전한가

by 제 4의 창 2026. 5. 2.

 

https://youtu.be/Bxeuq8hRd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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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 서류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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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이었습니다.

서울 외곽의 한 주택가, 30년 넘게 두 사람이 함께 살아온 집의 현관 앞에 노란 낙엽이 쌓이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들은 계단 위를 굴렀고, 아무도 쓸지 않았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박성희가 진즉에 빗자루를 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날 아침, 그녀는 식탁 앞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손에 쥔 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박성희는 올해 예순두 살이었습니다. 1962년 경남 통영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태어난 그녀는 넉넉하지 않은 집안 형편 탓에 대학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해에 어머니가 쓰러졌고, 맏딸이었던 그녀는 자연스럽게 집안을 떠맡게 되었습니다. 스물다섯 살에 결혼을 했고, 그 이후로는 한 번도 직장을 가져본 적이 없었습니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고, 남편의 식사를 챙기고, 집을 지켰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삶 전부였습니다.

식탁 위에는 서류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봉투는 이미 개봉되어 있었습니다. 안에서 꺼낸 서류는 접힌 채로 식탁 위에 펼쳐져 있었는데, 박성희는 그것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이제는 더 이상 읽지 않아도 내용을 외울 수 있었습니다. 서류의 제목은 간결했습니다. 이혼 청구 소장. 청구인은 한동민. 피청구인은 박성희.

그녀의 남편, 한동민이 법원에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습니다.

한동민은 예순다섯 살이었습니다. 경북 포항 출신으로, 부산에 있는 지방 해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물두 살부터 선원 생활을 시작한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화물선의 삼등 항해사로 시작해서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바다 위에서 보냈습니다. 국제 화물 운송 회사에 소속되어 원양 항로를 오가던 그는 마흔여섯 살에 선장 자격을 취득하고, 이후 십오 년간 대형 컨테이너선의 선장으로 근무했습니다. 육 개월을 바다에서 보내고 한 달을 집에서 쉬는 생활이 반복되었습니다. 그가 집에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훨씬 많았습니다.

박성희는 그런 남편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두 아이가 태어났을 때도 한동민은 바다 위에 있었습니다. 큰아들 한재원이 처음 걸음마를 떼던 날도, 딸 한미라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도 그는 집에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수술이 있던 날 밤에도 그는 태평양 어딘가를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박성희는 울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자신의 삶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서류 한 장이 그 삶 전체를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소장의 이혼 사유는 간단했습니다. 성격 차이. 그리고 혼인 관계의 회복 불가능한 파탄. 청구인 한동민은 두 사람 사이에 이미 실질적인 혼인 관계가 오래전에 종료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재산 분할에 관해서는 청구인이 단독으로 형성한 재산이 대부분이며, 피청구인의 기여도는 제한적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박성희는 커피잔을 내려놓았습니다. 손이 약간 떨렸습니다.

이혼 그 자체가 충격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이 결혼이 형식만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남편이 퇴직을 하고 집에 돌아온 뒤로,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서로에게 낯선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식사도 따로 했고, 대화도 거의 없었습니다. 침실도 언제부터인가 따로 쓰고 있었습니다.

충격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기여도가 제한적이라는 문장. 박성희는 그 문장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삼십칠 년. 그녀가 이 결혼 안에서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삼십칠 년 동안 집을 지키고, 아이를 키우고, 남편이 돌아올 때마다 새것처럼 집을 정돈하고, 그의 식사를 준비하고, 그의 짐을 풀고 씻기고, 다시 바다로 떠나는 그를 아무 말 없이 배웅하던 삶. 그 삶의 가치가 제한적이라고, 법원에 제출된 서류는 말하고 있었습니다.

박성희는 오랫동안 식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오전 열 시쯤, 그녀는 전화를 했습니다. 딸 한미라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음만 울리고 받지 않았습니다. 아들 한재원에게도 전화를 했습니다. 역시 받지 않았습니다. 두 아이 모두 서울 시내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각자의 가정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이런 일을 겪고 있는 줄은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구청 민원실 앞 벽에 붙은 법률 지원 안내문을 떠올렸습니다. 한 달 전쯤 동사무소에 갔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작은 안내문이었습니다. 무료 법률 상담. 가정 법원 연계. 소외 계층 우선 지원. 그때는 자신과 무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안내문의 전화번호가 선명하게 기억났습니다.

박성희는 다시 전화기를 들었습니다.

상담 예약은 생각보다 빠르게 잡혔습니다. 이틀 뒤, 오후 두 시. 서울 가정 법률 지원 센터. 그녀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처음으로 긴 숨을 내쉬었습니다. 떨리는 마음 한쪽에, 무언가 작고 단단한 것이 생기는 느낌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당장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히 포기가 아니었습니다.

창밖에서 바람이 불었습니다. 낙엽들이 다시 계단 위를 굴렀습니다. 아무도 쓸지 않는 낙엽들이었습니다.

그날 오후 늦게, 한동민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현관에 들어서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박성희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같은 집 안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며 저녁을 보냈습니다. 식탁 위의 서류봉투는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한동민은 그 봉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서재 쪽으로 걸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박성희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삼십칠 년을 함께 산 사람의 뒷모습이었습니다. 그 어깨가 낯설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낯선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생각이 슬픔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그 둘 다인지, 그녀는 아직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습니다.

이제 이 싸움은 시작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녀는, 질 생각이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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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 변호사와의 첫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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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박성희는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서울 가정 법률 지원 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센터는 낡은 오피스 빌딩 3층에 있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이 좁고 느렸습니다. 3층 복도에는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고, 그녀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서류를 들고 앉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젊은 여성도 있었고, 그녀 또래로 보이는 남성도 있었습니다. 모두들 말이 없었습니다. 각자의 사정을 가슴에 품고 침묵 속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박성희는 접수 창구에서 이름을 밝히고 소장 사본을 제출했습니다. 직원은 서류를 받아 파일에 끼우고 대기 번호표를 건네주었습니다. 열일곱 번이었습니다.

약 사십 분을 기다린 뒤, 그녀는 상담실로 안내받았습니다.

상담실은 작은 방이었습니다. 책상 하나, 의자 셋, 그리고 창문 하나. 창문 너머로는 맞은편 건물의 회색 외벽이 보였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 고개를 들며 그녀를 맞이했습니다.

이름은 윤서진이었습니다. 나이는 마흔이 채 되지 않아 보이는 여성이었습니다. 안경을 쓰고 있었고, 머리는 단정하게 묶고 있었습니다. 얼굴에는 오랜 시간 복잡한 사건들을 들어온 사람 특유의 차분한 표정이 있었습니다.

윤서진은 가정 전문 변호사였습니다. 서울 법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판사 임용 시험을 두 번 준비했다가 마지막에 변호사의 길을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이후 10년 넘게 가정 법원 관련 사건만 전담해 온 그녀는 법률 지원 센터의 촉탁 변호사로도 활동하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의뢰인들을 무료로 돕고 있었습니다.

박성희는 자리에 앉으며 소장 사본을 내밀었습니다.

윤서진은 서류를 펼쳐 훑어보았습니다. 읽는 동안 그녀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오히려 박성희에게는 위안이 되었습니다. 놀라지 않는 사람, 이런 상황을 처음 보는 게 아닌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잠시 후, 윤서진이 서류를 내려놓았습니다.

"혼인 기간이 삼십칠 년이시군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직업을 가지신 적이 있으셨나요?"

박성희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결혼 전 잠깐 봉제 공장에서 일한 것 말고는 없었습니다. 결혼 이후로는 전업주부였습니다.

윤서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남편분의 직업이 원양 선장이라고 하셨는데, 퇴직 전까지 연금 불입 기간이 얼마나 됩니까?"

박성희는 정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남편이 그런 것들을 이야기해 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윤서진은 다시 서류를 보면서 몇 가지를 메모했습니다.

"소장에 따르면, 청구인 쪽은 현재 두 개의 쟁점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습니다." 윤서진이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하나는 재산 형성에서 본인의 기여도가 압도적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질적 혼인 관계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근거로 재산 분할 비율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입니다."

박성희는 그 말을 들으며 어금니를 물었습니다.

"제가 한 일은 아무 가치가 없다는 건가요."

윤서진은 그 말에 즉시 반박했습니다. "아닙니다. 법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문제는, 상대방 변호사가 그렇게 보이도록 논리를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저희가 해야 할 일은 그 논리를 하나하나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그녀가 메모장을 펼쳤습니다.

"우선 가사 노동의 경제적 가치 문제입니다. 삼십칠 년 동안 전업주부로 생활하셨다면, 그 기간 동안의 노동에는 상당한 경제적 가치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통계청 기준으로 전업주부의 가사 노동 가치를 환산하면, 연간 최소 천오백만 원에서 이천만 원 수준입니다. 삼십칠 년으로 환산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 됩니다."

박성희는 자신의 삶이 숫자로 환산되는 것을 처음 들었습니다. 기묘한 느낌이었습니다. 그 숫자가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반영하지는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적어도 그것이 공식적인 언어로 인정받는다는 사실은 작게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연금 문제가 있습니다." 윤서진이 계속했습니다. "남편분이 선원으로 근무한 기간 동안 납입한 연금은 혼인 기간과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분할 연금 청구가 가능한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다만 이 부분은 남편분이 가입한 연금의 종류가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국민연금인지, 선원 특수 직역 연금인지, 아니면 사기업 퇴직 연금인지에 따라 법 적용이 달라지거든요."

박성희는 그것도 정확히 몰랐습니다. 남편의 재정에 대해 그녀가 아는 것은 거의 없었습니다. 월급이 어느 계좌로 들어오는지조차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남편이 생활비를 주면 받고, 모자라면 줄여서 썼습니다. 그것이 삼십칠 년이었습니다.

윤서진은 그 사실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녀의 표정에서 처음으로 약간의 걱정이 보였습니다.

"정보 접근권이 제한되어 있었군요." 그녀가 말했습니다. "상대 측에서 그것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재산 내역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로 싸우게 되면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남편분 명의의 금융 거래 내역, 부동산 등기, 퇴직금 및 연금 내역을 사전에 파악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박성희가 물었습니다.

"법원에 재산 명시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금융 감독원을 통한 금융 정보 조회도 가능합니다. 다만 이 과정에서 소송이 이미 진행 중이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와 함께 단계적으로 진행하시면 됩니다."

박성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먼저 여쭤보겠습니다." 윤서진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이혼 자체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막고 싶으신 건지, 아니면 이혼은 받아들이되 조건을 제대로 받아내고 싶으신 건지요."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박성희는 창문 너머의 회색 외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혼은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다만 제가 살아온 삼십칠 년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윤서진은 그 말을 적었습니다. 그리고 볼펜을 내려놓으며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싸울 수 있습니다."

박성희가 센터를 나왔을 때는 오후 네 시가 넘어 있었습니다. 거리는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걷다가 잠시 멈추었습니다. 바람이 불었고, 낙엽이 발 앞을 지나쳤습니다.

뭔가가 달라진 느낌이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이긴 것은 없었습니다. 아직 법정에도 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버스가 왔습니다. 그녀는 올라탔습니다.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박성희는 처음으로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슬퍼서가 아니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삼십칠 년 동안 참아온 무언가가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그녀의 전화기가 울렸습니다.

발신인은 아들 한재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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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장 : 가족이라는 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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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원은 서울 마포구에 살고 있었습니다.

서른다섯 살인 그는 인천 소재의 무역 물류 회사에서 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처럼 바다와 연관된 직업이었지만, 그는 선박에 올라탄 적이 없었습니다. 사무실 안에서 서류와 숫자를 다루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내와 다섯 살짜리 아들이 있었고, 마포구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평소 어머니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통화를 했지만, 부모님의 관계에 대해서는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었습니다.

전화를 받았을 때, 한재원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습니다. 그는 이미 아버지로부터 소식을 들은 후였습니다. 한동민이 먼저 아들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한테 연락 왔어요." 그가 말했습니다. "소송 이야기 들었어요. 어떻게 된 건지 직접 여쭤보고 싶어서요."

박성희는 버스 안에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서류를 받은 것, 변호사를 만난 것, 이혼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 핵심만 간략하게 이야기했습니다. 한재원은 그 말을 들으면서 한동안 침묵했습니다.

"아버지가 혼자 재산 형성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 저도 알아요." 그가 말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어머니, 법적으로 이게 얼마나 인정이 될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박성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중간에서 중재를 해볼게요. 아버지한테 한 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선의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성희는 그 선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습니다. 중재는 보통 약자에게 더 많은 양보를 요구합니다. 그녀는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재원아. 어머니는 중재가 필요한 게 아니다. 내 권리를 찾는 거야."

전화가 끊겼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잠깐 흐른 뒤였습니다.

다음 날, 딸 한미라가 집을 찾아왔습니다.

한미라는 서른둘이었습니다. 서울 동작구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었고,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를 닮아 얼굴 생김새가 단정했지만, 성격은 훨씬 직선적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복잡했습니다. 항상 집에 없는 아버지, 어쩌다 한 번 돌아와서 집 안의 모든 것을 자기 방식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향한 불만이 성인이 되어서도 가슴 어딘가에 남아 있었습니다.

미라는 부엌 식탁에 앉자마자 소장을 읽었습니다.

읽는 내내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습니다. 다 읽고 나서 서류를 내려놓으며 그녀가 말했습니다. "어머니 기여도가 제한적이라고요? 이게 말이 돼요?"

박성희는 커피를 따라 딸 앞에 놓아주었습니다.

"변호사 선임했어요?"

"법률 지원 센터에 갔다 왔다. 무료 상담이야."

한미라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무료로는 안 돼요, 엄마. 상대편에서 얼마짜리 변호사를 쓸지 알아요? 제대로 된 변호사를 써야 해요."

박성희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돈이 어디 있니."

"제가 낼게요. 부족하면 오빠한테도 말할 거예요." 한미라가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건 그냥 두 어른의 이혼이 아니에요. 엄마가 제대로 된 대우를 받아야 해요."

그날 저녁, 한동민이 집에 들어왔습니다.

거실 소파에 한미라가 앉아 있는 것을 보자, 그의 표정이 굳었습니다. 아버지와 딸은 짧은 눈빛을 교환했습니다.

"잘 있었냐." 한동민이 건조하게 말했습니다.

"아버지." 한미라가 직접적으로 말했습니다. "소장 봤어요. 엄마 기여도가 제한적이라고 쓴 거 맞아요?"

"그건 내 변호사가 쓴 거다."

"아버지 의사가 담긴 거잖아요."

한동민은 말없이 소파에 앉았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한 표정이 있었습니다. 싸우고 싶지 않다는 듯한 피로. 그러나 물러설 의사도 없다는 단호함.

"내가 사십 년 가까이 바다에서 번 돈이야. 그 돈으로 집도 샀고, 너희들도 키웠어."

"엄마가 집에서 한 일은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니냐. 내가 나가서 돈을 버니까 집에서 살 수 있는 거잖아."

한미라가 눈을 감았다가 떴습니다. 말을 조심하려는 듯 보였습니다.

"아버지." 그녀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제가 아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 엄마도 비슷한 상황에서 이혼을 했는데, 법원에서 가사 노동 기여도를 40퍼센트 이상 인정받았어요. 한국 법원이 그냥 지나치지 않아요."

한동민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공정하게 해주세요, 아버지." 한미라가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그게 전부예요."

그날 밤, 한동민은 서재에 오래 앉아 있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박성희는 딸의 손을 잠깐 잡았다가 놓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한동민의 변호사로부터 서면이 왔습니다. 변호사의 이름은 이준혁이었습니다. 사십대 후반의 남성 변호사로, 서울 강남에 사무실을 두고 있었습니다. 기업 분쟁과 재산 관련 소송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었고, 한동민의 전 직장 동료가 연결해 준 것이었습니다. 서면에는 이혼 조정 기일 출석 요청이 담겨 있었습니다.

조정 기일은 삼 주 후였습니다.

박성희는 그 서면을 들고 윤서진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기 너머에서 윤서진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차분하고,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예상한 수순입니다. 조정에서 먼저 합의를 유도하려는 겁니다. 조정 단계에서 낮은 조건으로 마무리되면 상대 측에 유리합니다. 조정을 거부하거나 결렬시켜야 본 재판으로 넘어갑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본 재판으로 가겠습니다." 박성희가 말했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증거를 모아야 합니다. 삼십칠 년 치 기여의 흔적들을요."

창밖에서 바람이 불었습니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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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 증거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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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 기일은 예상대로 결렬되었습니다.

이준혁 변호사 쪽에서 제시한 재산 분할 비율은 청구인 칠십, 피청구인 삼십이었습니다. 윤서진은 조정실에서 그 숫자를 듣고 잠시 표정을 관리했습니다. 박성희는 아무 감정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건은 서울 가정 법원 단독 재판부에 배당되었습니다.

담당 판사는 오현수였습니다. 나이 쉰다섯. 오랜 기간 가정 법원에서 재직해 온 인물이었습니다. 법원 내부에서는 꼼꼼하고 판단이 엄격하기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감정보다 논리, 말보다 증거를 중시하는 판사였습니다. 그것은 박성희 측에 도움이 될 수도 있었고, 도전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첫 번째 변론 기일이 잡혔습니다. 날짜는 삼 주 뒤.

그 삼 주 동안, 박성희와 윤서진은 증거를 수집했습니다.

윤서진이 요청한 것들은 박성희가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었습니다. 오래된 가계부. 가족 앨범. 아이들의 학교 행사 사진. 병원 영수증. 식재료 구매 내역이 담긴 오래된 영수증들. 한동민이 항해 중에 보낸 편지나 문자 내용. 집 수리 관련 기록. 이웃이나 지인들의 증언.

박성희는 집 안 구석구석을 뒤졌습니다.

다락방에서 오래된 종이 봉투들이 나왔습니다. 그 안에는 1990년대부터 기록한 가계부가 있었습니다. 노트 크기의 낡은 수첩들로, 날짜와 지출 항목이 깨알 같은 글씨로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쌀값, 반찬 재료비, 아이들 학원비, 의류비, 전기세, 수도세, 아파트 관리비. 그 아래에는 때때로 짧은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 재원이 기침을 했다. 미라가 학예회 발표를 했다. 남편이 올 날짜가 사흘 남았다.

박성희는 수첩들을 꺼내 식탁에 쌓으면서 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삶의 기록들이었습니다. 잊고 있었던, 또는 너무 당연해서 기억하지 않았던 날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윤서진은 가계부 기록을 보고 눈이 밝아졌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가사 노동의 지속성과 구체성을 입증하는 자료입니다. 상대 측에서 기여가 제한적이라고 주장하려면 이것을 정면으로 반박해야 합니다."

앨범에서는 수백 장의 사진이 나왔습니다. 아이들의 어린 시절, 명절 가족 모임, 한동민이 드물게 집에 있던 날들의 사진들. 한동민이 찍힌 사진들을 보면 그는 늘 잘 먹고, 잘 쉬고, 정돈된 환경 안에 있었습니다. 그 환경을 만든 손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박성희의 손이었습니다.

이웃 증인도 두 사람을 찾아냈습니다.

한 명은 옆집에 이십 년 넘게 살고 있는 김순자 씨였습니다. 예순여덟 살로, 박성희와는 오랜 친구 사이였습니다. 그녀는 한동민이 장기 항해를 나가 있던 수개월 동안 박성희가 혼자 집안을 꾸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 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명절 때 혼자 준비하던 모습 모두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기꺼이 증언을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다른 한 명은 한미라의 초등학교 시절 담임이었던 강선생이라는 분이었습니다. 이미 은퇴한 분이었지만, 당시 박성희가 학교 학부모 활동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는지, 아이들 교육에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연금 내역이었습니다.

윤서진이 법원을 통해 금융 정보 조회를 신청한 결과, 한동민의 연금 구조가 예상보다 복잡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는 국민연금 외에도 해운 업체 소속 시절 가입한 사적 퇴직 연금과, 선원법 기반의 특수 직역 연금을 함께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선원 특수 직역 연금의 경우, 배우자 분할 청구에 관한 규정이 국민연금보다 훨씬 제한적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윤서진이 조심스럽게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선원법 기반의 연금은 혼인 기간 기여 인정을 법원이 아닌 별도 심사 위원회를 통해 결정하는 구조입니다. 이 과정이 길고 결과가 불확실합니다. 상대 측에서 이 부분을 방패로 이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성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국민연금 분할 청구를 우선으로 하고, 퇴직 연금 분할 청구를 병행합니다. 선원 특수 연금에 대해서는 별도로 행정 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재판과 병행하거나 이후에 진행해야 합니다."

그 무렵, 상대 측에서 반격이 들어왔습니다.

이준혁 변호사가 제출한 준비 서면에는 새로운 주장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한동민이 결혼 전에 부모로부터 증여받은 토지 일부가 현재 부부 공동 명의 아파트의 초기 자금 일부로 사용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자금만큼은 한동민의 특유 재산으로 분류되어야 하며, 분할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윤서진은 그 서면을 읽으며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특유 재산 주장입니다. 이 부분은 입증 책임이 청구인 측에 있습니다. 그 자금이 실제로 이 아파트 매입에 사용되었다는 것을 그쪽에서 증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오래된 거래라면 자료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맞불을 놓아야 합니다."

박성희는 집의 등기 서류와 오래된 매매 계약서를 꺼냈습니다. 그것들을 윤서진에게 넘기며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이 집이 지어진 건 삼십 년 전이었습니다. 그때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고른 집이었습니다. 남편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 아직 벽지도 다 바르지 않은 아파트 안에 서서 두 사람이 함께 웃던 기억이 났습니다. 그 웃음이 이제는 증거 서류 안에 있었습니다.

박성희는 그 기억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덮었습니다.

지금은 감정이 아니라 자료가 필요한 때였습니다.

첫 번째 변론 기일이 사흘 앞으로 다가왔을 때, 윤서진이 연락을 했습니다.

"한 가지 더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남편분이 항해 중에 별도로 저축이나 투자를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혼인 기간 중에 제삼자에 대한 금전 지원이 있었는지도 확인이 필요합니다."

박성희는 그 말에서 무언가를 감지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윤서진은 잠시 말을 골랐습니다.

"상대 측의 자산 구조를 보면, 일부 항목이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재판 과정에서 그것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미리 대비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박성희는 수화기를 든 채로 오래 침묵했습니다.

그녀가 오랫동안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던 것들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오래 바다에 있을 때, 그 먼 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삼십칠 년 동안 한 번도 직접 묻지 않았습니다. 모르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했기 때문에.

이제 그것이 법정 위에 올라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창밖에는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11월 중순의 이른 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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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 법정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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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가정 법원 101호 법정이었습니다.

11월 하순의 아침, 법원 복도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접견실, 대기 의자, 안내 창구 앞에 줄을 선 사람들. 저마다의 사정을 품고 이 건물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박성희는 윤서진 변호사와 함께 101호 법정 앞 복도 의자에 앉아 기다렸습니다.

반대편 의자에는 한동민이 이준혁 변호사와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삼십칠 년을 함께 산 사람들이 같은 복도에서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준혁 변호사는 말쑥하게 차려입고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한동민은 양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것이 어색해 보였습니다. 평생 선복과 해양 작업복을 입어온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법정 문이 열렸습니다.

오현수 판사가 자리에 앉자, 양측 변호사가 자리에 섰습니다.

재판장이 먼저 사건 번호와 당사자를 확인했습니다. 이어서 소장의 청구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이혼 청구, 재산 분할 청구, 위자료 청구. 세 개의 청구 항목이 있었습니다.

오현수 판사는 차분하지만 예리한 눈빛으로 양측 변호사를 번갈아 보았습니다.

"양측은 가사 기여도와 재산 형성 기여도에 관해 상당한 입장 차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오늘 변론에서 양측이 주장하는 기여도의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준혁 변호사가 먼저 나섰습니다.

그의 말투는 매끄럽고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청구인 한동민은 삼십 년 이상 원양 항로를 항해하며 고소득 전문직 선장으로 근무했으며, 부부의 자산 대부분은 이 수입에서 형성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파트 매입 자금, 두 자녀의 교육비, 생활비의 전부는 청구인의 수입으로 충당되었으며, 피청구인은 가정을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했으나 직접적 재산 형성에는 기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재산 분할 비율은 청구인 칠십, 피청구인 삼십이 합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오현수 판사가 이준혁의 말이 끝나자 물었습니다. "피청구인이 가정을 관리한 기간 동안 청구인의 수입 활동이 가능했다는 점은 어떻게 봅니까?"

이준혁이 준비된 듯 즉각 답했습니다. "물론 피청구인의 역할이 전무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기여는 이미 생활비 지급이라는 방식으로 경제적 보상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판사는 그 말을 메모했습니다.

그리고 윤서진 변호사가 나섰습니다.

윤서진의 목소리는 낮고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자료 묶음을 들고 법정 앞으로 나왔습니다.

"재판장님, 피청구인 박성희는 1988년부터 2025년까지 삼십칠 년간 혼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전업주부로서 가정을 운영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청구인이 국내에 체류한 기간은 전체의 약 삼분의 일에 불과합니다. 나머지 삼분의 이의 기간 동안, 피청구인은 단독으로 가사를 수행하고, 자녀 양육을 담당하고, 가정을 유지했습니다."

그녀가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이것은 피청구인이 1991년부터 작성해 온 가계부입니다. 약 삼십 년치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월별 지출 항목, 자녀 교육 관련 지출, 주거 유지 관련 비용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피청구인이 관리한 가계는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청구인이 안정적으로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한 것입니다."

이준혁이 끼어들었습니다. "가계부는 지출 내역일 뿐입니다. 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를 입증하지는 않습니다."

오현수 판사가 이준혁에게 눈길을 주었습니다. "변호인, 발언 순서를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이준혁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윤서진이 계속했습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사 노동 가치 환산 기준에 따르면, 전업주부의 연간 가사 노동 가치는 최소 일천오백만 원에서 이천만 원에 달합니다. 삼십칠 년으로 환산하면 최소 오억 오천만 원에서 칠억 사천만 원에 해당합니다. 이 노동이 없었다면 청구인은 항해 중에 가정을 유지할 수 없었고, 현재의 자산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전제 조건이 충족될 수 없었습니다."

법정 안이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오현수 판사가 양측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재산 형성 기여도는 직접 기여와 간접 기여를 모두 포함합니다. 가사 노동이 간접 기여로 인정되는 것은 대법원 판례로 확립되어 있습니다. 다만 그 비율은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양측은 다음 기일까지 재산 현황 명세서와 각 항목별 형성 경위를 서면으로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변론 기일 종료 후 복도에서, 이준혁이 윤서진 쪽으로 걸어왔습니다.

"합의하시겠습니까? 재판 길어지면 양측 다 소모가 큽니다." 그가 조용하게 말했습니다.

윤서진은 표정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의뢰인이 원하는 것은 합당한 결론입니다. 서두를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의뢰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박성희는 법원 계단을 내려오면서 처음으로 법정이라는 공간이 어떤 곳인지를 몸으로 느꼈습니다. 말이 무기가 되고, 서류가 방패가 되는 공간. 감정은 가능한 한 감추고, 논리만 남기는 공간.

"잘 하셨습니다." 윤서진이 말했습니다.

박성희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직 시작이었습니다.

두 번째 변론 기일이 한 달 뒤에 잡혔습니다. 그 한 달 사이에, 사건은 다른 방향에서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준혁이 제출한 재산 명세서를 검토하던 윤서진이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한동민의 금융 계좌 내역 중에, 일정한 간격으로 해외 계좌로 송금된 기록이 있었습니다. 금액은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기간이 길었습니다. 2003년부터 2018년까지 십오 년에 걸쳐 분기당 일정 금액이 같은 계좌로 송금되어 있었습니다.

윤서진은 그 계좌를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변론 기일을 사흘 앞두고, 그녀가 박성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목소리에 무게가 있었습니다.

"박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직접 뵙고 싶습니다."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윤서진은 서류를 한 장 내밀었습니다. 박성희는 그것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해외 계좌로의 송금 내역, 그리고 그 계좌의 수신인 정보였습니다.

수신인의 이름은 여성이었습니다. 국적은 필리핀이었습니다. 이름 앞에는 한동민이라는 성이 붙어 있었습니다.

박성희는 그 서류를 오랫동안 바라보았습니다.

윤서진이 말을 이었습니다. "확인이 더 필요하지만, 이 송금 내역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재판부가 판단해야 할 사안입니다. 만약 혼인 기간 중에 제삼자와의 관계가 있었다면, 위자료 청구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금이 혼인 공동 재산에서 나갔다면, 재산 분할 산정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박성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 이름을 보면서, 묻지 않았던 것들을 떠올렸습니다. 긴 항해. 외국 항구. 수개월의 연락 두절. 그 시간 동안 남편이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그녀는 알고 싶지 않아서 묻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알게 되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아서, 알지 않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삼십칠 년이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윤서진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박성희는 천천히 서류를 내려놓았습니다.

"법정에 내겠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습니다. 그러나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정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이 분노였습니다. 그리고 그 분노는, 이제 무기가 될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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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 반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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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변론 기일의 법정 분위기는 첫 번째와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재산 분할 비율을 둘러싼 논쟁이 주가 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윤서진이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면서 법정의 무게 중심이 이동했습니다.

윤서진은 두 개의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하나는 한동민 명의 계좌에서 십오 년간 해외로 송금된 금융 거래 내역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 수신 계좌 명의에 관한 정보였습니다. 해외 공공 기록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확인된 자료였습니다.

이준혁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습니다.

"재판장님, 이 자료의 취득 경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합니다."

오현수 판사가 윤서진을 보았습니다. "증거 수집 경위를 설명하시기 바랍니다."

윤서진이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해당 금융 정보는 법원의 금융 거래 조회 명령에 의해 적법하게 취득된 것입니다. 해외 계좌 수신인 정보는 현지 공개 기록을 통해 확인한 것이며, 위법 수집이 아닙니다."

판사가 이준혁의 이의를 기각했습니다.

윤서진이 계속했습니다. "피청구인은 이 송금 내역이 혼인 관계 유지 기간 중에 제삼자에게 제공된 자금임을 주장합니다. 만약 이것이 부부 공동 생활비나 공동 재산에서 지출된 것이라면, 그 금액은 재산 분할 산정 기준이 되는 재산 총액에 포함되어야 합니다. 또한 혼인 기간 중 배우자 외 제삼자와의 관계가 있었다면, 이는 위자료 산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사항입니다."

오현수 판사가 이준혁을 바라보았습니다. "청구인 측 입장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이준혁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잠시 서류를 확인했습니다. 그 몇 초 동안, 법정 안은 조용했습니다.

"해당 송금은 청구인의 개인 소득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공동 재산과 무관합니다. 그 구체적 목적에 대해서는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렵습니다. 서면으로 별도 제출하겠습니다."

오현수 판사가 짧게 말했습니다. "다음 기일까지 그 내용을 서면으로 제출하십시오. 법원은 그 내용의 진실성 여부도 함께 검토하겠습니다."

법정에서 나오면서, 이준혁이 처음으로 윤서진에게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어디서 그걸 찾아냈습니까."

윤서진은 가방을 정리하면서 담담하게 대답했습니다. "의뢰인이 삼십칠 년을 참아왔습니다. 그 시간 안에 있었던 것들을 저는 찾았을 뿐입니다."

이준혁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날 저녁, 한동민은 혼자 서재에 있었습니다. 아무도 그 방 안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박성희는 그 문 앞을 지나치면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삼 일 후, 이준혁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협의 의사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송금 내역의 목적을 법원에 공개하기보다는, 조건을 재조정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윤서진은 박성희에게 그 내용을 전달했습니다.

"상대 측이 먼저 협의를 요청한 겁니다.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저희 쪽에서 조건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박성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했습니다.

"협의를 받겠습니다. 단, 조건은 제가 정하겠습니다."

윤서진이 메모를 했습니다.

박성희의 요구 사항은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부부 공동 명의 아파트의 시가 기준 재산 분할 비율을 5대 5로 적용할 것. 둘째, 한동민의 국민연금 혼인 기간 해당분에 대한 분할 청구를 인정할 것. 셋째, 위자료로 오천만 원을 지급할 것.

이준혁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에 대해서는 비율 조정을 전제로 논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위자료 항목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확인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박성희는 조건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협의는 결렬되었습니다.

사건은 다시 법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세 번째 변론 기일을 앞두고, 새로운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한재원이었습니다.

아들 한재원은 어머니 쪽 증인으로 출석하겠다고 윤서진에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윤서진은 그 사실을 박성희에게 전했습니다. 박성희는 놀랐습니다. 처음에 중재를 이야기하던 아들이었습니다.

"재원이가 왜요?"

윤서진이 조심스럽게 설명했습니다. "한재원 씨가 어릴 때부터 목격한 것들이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의 가사 활동, 아버지 부재 시 가정을 이끌어온 사실, 그리고 어떤 다른 것에 대해서도 말하겠다고 했습니다."

박성희는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세 번째 변론 기일 이틀 전, 한동민이 서재 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그가 거실로 나오는 것을 박성희는 등 뒤에서 느꼈습니다.

그가 식탁 의자를 당겨 앉았습니다. 박성희는 그를 보지 않았습니다.

"성희야."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것이 두 사람이 오랫동안 주고받지 않던 말의 방식이었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 낮고 지친 목소리로.

박성희는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한동민은 잠시 침묵했습니다.

"내가 잘못했어."

박성희는 그 말을 듣고 손에 쥔 컵을 내려놓았습니다. 오래 기다려 온 말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너무 늦게 온 말이었습니다.

그녀는 천천히 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삼십칠 년을 함께 산 남자의 얼굴이었습니다. 늙었습니다. 피로해 보였습니다. 어딘가 무너진 사람의 얼굴이었습니다.

박성희는 오랫동안 그 얼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 밤의 전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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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 진실이 드러나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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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변론 기일은 12월 초였습니다.

서울 가정 법원 101호 법정에 이번에는 방청객이 한 명 있었습니다. 한미라였습니다. 딸은 방청석에 앉아 두 손을 모은 채로 법정 앞을 바라보았습니다.

한재원은 증인석에 섰습니다.

그는 가정 법원의 증인석이 이렇게 낯선 자리일 줄은 몰랐다고 나중에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은 공간 안에서 서로를 상대로 싸우는 자리를 옆에서 지켜보는 일. 그것은 아들의 자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증인의 자격으로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오현수 판사가 증인에게 선서를 하게 했습니다.

윤서진이 먼저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한재원 씨, 어린 시절 아버지가 집에 계신 기간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일 년에 두세 달 정도였습니다. 나머지는 항상 어머니 혼자였습니다."

"어머니가 혼자 가정을 이끄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있습니까?"

"매일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안 계신 날이 없었습니다. 아버지가 안 계신 날이 많았던 것처럼."

방청석에서 한미라가 눈을 감았습니다.

"아버지가 계실 때와 안 계실 때, 집 안의 상황에 차이가 있었습니까?"

한재원은 잠시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오시면 집 안이 분주해졌습니다. 어머니가 더 바빠지셨습니다. 아버지를 맞이하는 준비, 식사 준비, 빨래. 그리고 아버지가 다시 나가시면 어머니는 혼자 그 일을 다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있든 없든 어머니는 쉬신 적이 없었습니다."

이준혁이 반대 신문을 시작했습니다.

"증인의 어머니가 가사 노동을 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버지의 재산 형성에 직접적인 기여가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까? 아버지는 바다에서 직접 일을 해서 돈을 번 것입니다."

한재원이 그 말을 들으며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아버지가 바다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집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머니가 없었다면 아버지는 아이들을 누구에게 맡기고 바다에 나갔겠습니까. 저는 아버지 덕분에 자랐지만, 그와 똑같이 어머니 덕분에 자랐습니다."

이준혁이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증인은 아버지의 해외 송금 내역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한재원은 표정이 굳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법정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이준혁이 질문을 이었습니다.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아버지가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오현수 판사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증인, 그 내용을 증언하실 수 있습니까?"

한재원이 잠시 멈추었습니다. 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한동민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한재원이 말했습니다.

"그 계좌는 필리핀 마닐라에 살고 있는 아이에게 보낸 돈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오래전 항해 중에 있었던 일로 태어난 아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자발적으로 그 아이의 생활을 지원해 왔다고 하셨습니다."

법정 안이 완전히 조용했습니다.

방청석에서 한미라가 손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박성희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 순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을 법정에서 확인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확인이 될 때까지는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알았습니다.

오현수 판사가 이준혁을 바라보았습니다.

"청구인 측에서 이 사실을 왜 자진해서 공개하지 않았습니까?"

이준혁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낮아져 있었습니다. "청구인은 해당 사안이 이 소송의 본질과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한 그것은 매우 오래전의 일이며, 이후 혼인 관계 파탄과의 인과 관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오현수 판사는 잠시 메모를 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법원은 이 사실을 혼인 관계 파탄의 귀책 사유 여부 판단에 고려하겠습니다. 또한 해당 송금 자금이 부부 공동 생활비 또는 공동 재산에서 유출된 것인지 여부도 추가로 검토할 것입니다."

이준혁이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해당 자금은 청구인의 개인 수입에서 충당된 것입니다."

오현수 판사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것은 법원이 확인할 것입니다."

증언이 끝난 후, 한재원이 증인석에서 내려오면서 어머니를 바라보았습니다. 박성희는 아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눈빛 안에 많은 것이 있었습니다.

법정이 끝난 후 복도에서, 이준혁이 윤서진을 불러 세웠습니다. 이번에는 조용한 목소리였습니다.

"재산 분할 비율 사오대 오오 수용합니다. 위자료 삼천오백만 원. 국민연금 분할 청구 인정. 이 선에서 마무리하시겠습니까?"

윤서진은 이 말을 박성희에게 전달했습니다.

박성희는 생각했습니다.

오래 생각했습니다.

"위자료는 오천만 원입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그것만큼은 양보하지 않겠습니다."

이준혁이 그 말을 들었습니다. 잠시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합의가 이루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반전의 전반부에 불과했습니다.

합의서에 서명하기 이틀 전, 윤서진으로부터 긴급 연락이 왔습니다.

"박 선생님, 큰일이 생겼습니다. 지금 바로 오실 수 있습니까?"

박성희가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윤서진의 표정은 보기 드물게 심각했습니다.

"상대 측에서 추가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이것을 보셔야 합니다."

그녀가 내민 서류는 오래된 서면이었습니다. 날짜는 2004년이었습니다. 내용은, 당시 박성희가 서명한 재산 관련 동의서였습니다. 한동민의 명의로 된 선박 지분 투자에 관한 동의서였는데, 서류 어딘가에 박성희의 서명이 있었습니다.

박성희는 그 서류를 들여다보았습니다.

"이게 무엇입니까?"

"상대 측의 주장은, 이 동의서가 박 선생님이 남편의 독자적 재산 운용에 동의했다는 근거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것이 유효하다면, 해당 선박 투자로 형성된 자산 일부가 청구인의 독자 재산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박성희는 그 서명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저는 이런 서류에 서명한 적이 없습니다."

윤서진이 눈을 좁혔습니다.

"확실합니까?"

"확실합니다. 이 서명은 제 것이 아닙니다."

법정 안의 두 번째 반전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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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 늦은 계절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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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작성된 동의서의 서명 진위 여부를 두고, 사건은 다시 법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윤서진은 필적 감정 전문가를 선임했습니다. 국립 과학 수사 연구원에서 이십 년 이상 필적 분석을 담당해 온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박성희의 다른 서명 자료들과 문제의 동의서를 비교 분석했습니다. 분석에는 약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론은 명확했습니다. 동의서의 서명은 박성희의 서명과 필적 특성이 다수 불일치했습니다. 서명의 필압, 획의 방향, 이니셜의 형태가 다른 자료와 상이했습니다. 감정 전문가는 위조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오현수 판사는 이 결과를 보고 이준혁에게 서면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이준혁은 해명 서면에서, 해당 동의서는 청구인이 직접 보관해 온 자료이며 작성 경위는 명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만 서명의 진위 논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필적 감정이 필요하다며 청구인 측 감정인을 별도로 선임하겠다고 했습니다.

청구인 측 감정인의 결과는 상반되었습니다. 유사점이 불일치점보다 많다는 소견이었습니다.

두 개의 상반된 감정 결과가 법원에 제출되었습니다. 법정은 두 감정 결과를 놓고 격렬한 논쟁의 장이 되었습니다.

네 번째이자 최종 변론 기일이었습니다.

오현수 판사는 먼저 두 감정 결과를 요약하며 각각의 신빙성에 관한 의견을 청취했습니다. 윤서진은 국립 과학 수사 연구원 감정인의 공신력을 강조하며, 청구인 측 감정인이 사적으로 선임된 상업 감정인이라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이준혁은 필적 감정 자체의 한계를 주장하며, 설령 서명에 문제가 있더라도 해당 동의서의 내용 자체가 법적 효력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고 맞받았습니다.

오현수 판사가 두 변호사의 주장이 끝난 후 발언했습니다.

"법원은 두 감정 결과의 신뢰성과 취득 방식을 모두 고려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사항을 청구인 측에 묻겠습니다. 이 동의서가 2004년에 작성되었다고 하는데, 그 당시 청구인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준혁이 잠시 멈칫했습니다.

"항해 중이었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정확한 기록은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청구인이 항해 중에 이 서류가 국내에서 작성되었다는 것입니까?"

이준혁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판사의 질문이 핵심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만약 한동민이 2004년에 해외 항해 중이었다면, 그 시점에 국내에서 두 사람이 함께 서명한 동의서라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윤서진이 다시 나섰습니다. "재판장님, 청구인의 2004년 항해 기록을 조회할 것을 요청합니다. 당시 청구인이 재직했던 선사의 출항 및 귀항 기록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준혁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20년 전 기록은 보존 여부를 알 수 없습니다."

오현수 판사가 말했습니다. "법원이 직권으로 해당 선사에 기록 조회를 요청하겠습니다."

그것으로 그날의 변론은 끝났습니다.

일주일 뒤, 선사로부터 회신이 왔습니다.

2004년 서명 날짜 기준으로, 한동민은 당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항구에 정박 중이었습니다. 국내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결정적이었습니다.

동의서는 효력을 잃었습니다.

오현수 판사는 최종 변론 기일을 별도로 열지 않고 서면 판결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판결 선고 기일이 잡혔습니다. 12월의 마지막 주였습니다.

판결문 낭독은 20분가량 이어졌습니다.

법원은 이혼 청구를 인용했습니다. 혼인 관계의 파탄이 인정되었고, 귀책 사유는 혼인 기간 중 배우자 외 관계와 그로 인한 신뢰 파탄으로 청구인 측에 더 크게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산 분할에 대해 법원은 이렇게 판시했습니다.

혼인 기간 삼십칠 년간 피청구인의 가사 노동 및 자녀 양육 기여도는 단순한 생활비 지급으로 대체될 수 없으며, 청구인의 직업 활동과 소득 창출을 가능하게 한 핵심 기여로 인정된다. 특유 재산 주장은 서류의 진정성 부재로 인하여 배척한다. 재산 분할 비율은 청구인 사십오, 피청구인 오십오로 정한다.

국민연금 혼인 기간 해당분 분할 청구는 인용한다.

위자료는 오천만 원으로 결정한다.

법정 안은 조용했습니다.

박성희는 판결문 낭독이 끝날 때까지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판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도 천천히 일어섰습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미 충분히 울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더 이상 울 힘이 없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가슴 안에서 무언가가 내려앉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오래 쥐고 있던 것을 놓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준혁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한동민은 법정을 나서면서 한 번 박성희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걸어갔습니다. 박성희도 그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복도에서 윤서진이 박성희의 손을 짧게 잡았습니다.

"이기셨습니다."

박성희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겼습니다. 그러나 그 승리가 온전히 기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재판의 승리도, 잃어버린 시간을 돌려주지는 않습니다. 그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판결이 확정된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박성희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서울 은평구의 작은 아파트였습니다. 혼자 살기에 넉넉한 크기였습니다. 재산 분할로 받은 금액으로 전세를 얻고, 나머지는 생활비로 모아두었습니다.

이사하던 날, 한미라와 한재원이 함께 왔습니다. 두 아이가 박스를 나르고, 냉장고를 정리하고, 커튼을 달았습니다. 아무도 많은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편했습니다.

저녁에 셋이서 작은 식탁에 앉아 배달 음식을 먹었습니다.

한재원이 밥을 먹다가 말했습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박성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습니다. "모르겠다. 그런데 나쁘지 않아."

한미라가 웃었습니다. 작고 조용한 웃음이었습니다.

새 아파트의 창문 너머로는 겨울 하늘이 보였습니다. 높고 맑았습니다. 나뭇가지들은 앙상했지만, 그 끝에 아주 작게 봄의 기운이 감도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2월의 끝이었습니다.

박성희는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를 하면서 삼십칠 년을 생각했습니다.

후회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습니다. 다르게 살았더라면, 더 일찍 목소리를 냈더라면, 하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 안에는 두 아이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키운 아이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 박스를 들고 와 주었습니다.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었습니다.

삼십칠 년을 살았습니다. 법정에서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그것이 가치 있었다는 것을 누군가 인정해 주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그녀는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것을 스스로가 먼저 인정하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설거지가 끝났습니다.

그녀는 행주로 손을 닦고, 새 아파트의 거실로 나왔습니다. 소파가 아직 새것 냄새를 풍겼습니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창문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예순두 살이었습니다.

늦은 계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끝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내일 아침, 오래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일을 알아보러 갈 생각이었습니다. 구청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수업. 강사가 필요하면 지원하겠다는 공고를 어디선가 본 기억이 있었습니다. 자격은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었습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선택을 하기에, 예순두 살은 늦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바람이 창문을 흔들었습니다.

박성희는 가만히 앉아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함께 산 시간은 어떻게 나누어지는가, 라는 질문에, 법은 숫자로 답했습니다. 사십오 대 오십오. 그러나 그 숫자가 삼십칠 년을 온전히 담지 못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습니다. 그리고 한동민도, 어딘가에서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시간은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함께 흘러간 것들은 나눌 수 없습니다.

다만 그 시간 위에서 앞으로 어떻게 걸을 것인가, 그것만이 남겨진 선택이었습니다.

박성희는 창문 너머의 어두워지는 하늘을 오래 바라보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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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계절의 선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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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창작물이며, 등장하는 모든 인물, 사건, 기관, 법률 절차의 구체적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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