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골책방

사실혼 인정? 판례가 말하는 충격적 기준

by 제 4의 창 2026. 5. 1.

 

제1장 의뢰인의 고백

https://youtu.be/GpUDqkSu99A

 
━━━━━━━━━━━━━━━━━━━━━━━━━━━━━━━━━━━━━━━━━━━━━━━━━━
 
서울의 11월은 유독 차갑습니다. 도심을 가르는 바람이 골목골목을 훑고 지나가면, 행인들은 저마다 몸을 웅크리며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광화문 인근의 고층 빌딩 숲 사이로 낮은 하늘이 짓눌리듯 드리워져 있던 그날, 김동혁은 사무실 창가에 서서 멀리 보이는 북악산의 능선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김동혁은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사법연수원을 거쳐 국내 최대 로펌 중 하나인 한성법률사무소에서 십이 년을 몸담아 온 변호사입니다. 마흔두 살의 나이에 파트너 변호사 자리까지 오른 그는 법조계에서 냉철한 현실주의자로 통했습니다. 감정이 개입된 사건일수록 더욱 논리와 숫자로만 접근하는 그의 방식은 동료들 사이에서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그는 이길 수 있는 사건만 맡았고, 이기기 위해서라면 의뢰인의 눈물보다 판사의 논리를 더 신뢰했습니다.
 
그날 오후 두 시, 비서 이지원이 조심스럽게 사무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변호사님, 예약 손님이 오셨습니다. 박성민 씨라고 하십니다."
 
김동혁은 창가에서 돌아서며 넥타이를 가다듬었습니다. 그는 이미 의뢰인의 사전 서류를 검토해 두었습니다. 사건의 개요는 단순해 보였습니다. 사실혼 관계에 있던 남성이 사망한 후, 공무원연금 유족급여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여성이 이의를 제기하는 행정소송이었습니다. 서류상으로는 흥미로운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건은 매달 수십 건씩 쏟아졌고, 대부분 비슷한 결말을 맞이했습니다.
 
사무실 문이 열리며 박성민이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마흔여섯 살이었습니다. 서울 동작구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 간호학과를 졸업한 후 이십여 년을 종합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로 일해 온 여성이었습니다. 키는 보통이었고 외모는 소박했지만, 눈빛만큼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눈 아래 옅은 다크서클이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음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짙은 남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손에는 두툼한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습니다.
 
박성민은 자리에 앉자마자 봉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르듯 눈을 감았다가 떴습니다.
 
"저는 정해준 씨와 칠 년을 함께 살았습니다.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부부였습니다."
 
김동혁은 그녀의 말을 메모하면서도 내심 이 표현이 법정에서 얼마나 약한 주장인지를 이미 계산하고 있었습니다. 감정의 무게와 법의 무게는 달랐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박성민은 천천히,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이야기를 꺼내듯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해준은 서울시 소속 행정공무원이었습니다. 서울 노원구청에서 근무하다 정년을 이 년 앞두고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그로부터 여섯 달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예순한 살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전 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성인 자녀가 둘 있었고, 그 자녀들이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시작되었습니다.
 
박성민 역시 공무원연금공단에 유족급여를 청구했습니다. 그녀는 칠 년간 정해준과 동거하며 생계를 함께 했고, 그가 쓰러졌을 때부터 임종에 이르기까지 곁을 지켰습니다.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로서 자신도 유족급여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공단은 박성민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사실혼 관계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김동혁은 서류 봉투 안에서 공단의 기각 통지문을 꺼내 읽었습니다. 기각 이유는 세 가지로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첫째, 동거 사실을 증명할 객관적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정해준의 전 처와 협의 이혼 후 재혼 의사를 밝힌 문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셋째, 주민등록상 주소가 분리되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류를 읽는 김동혁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이 사건의 난도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주민등록 주소 분리는 결정적인 약점이었습니다. 법원은 사실혼 관계를 인정할 때 동거 사실을 중시하는데, 주소가 다르다는 것은 공단이 동거를 부정하는 근거로 활용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주민등록 주소가 왜 분리되어 있었습니까."
 
박성민은 잠시 시선을 내렸습니다.
 
"해준 씨가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의 자녀들이 알면 복잡해진다고, 일단 이쪽 상황이 정리될 때까지만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 말은 법정에서 아무런 효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김동혁은 그 말 속에 담긴 감정의 무게를 모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것을 애써 무시하려 했습니다.
 
"증거 서류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박성민이 봉투에서 꺼내 놓은 것들은 다양했습니다. 함께 찍은 사진들, 공동으로 사용한 신용카드 내역, 정해준의 병원 진료 기록 중 보호자 란에 박성민의 이름이 적힌 서류, 정해준이 박성민에게 보낸 손편지 세 통,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여행을 다녀온 항공권 영수증이었습니다.
 
김동혁은 손편지를 집어 들었습니다. 편지지는 바래 있었습니다. 필체는 투박했지만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내용은 짧았지만, 두 사람이 단순한 동거 이상의 관계였음을 짐작하게 했습니다.
 
그는 편지를 내려놓으며 속으로 계산했습니다. 이 증거들은 관계의 존재를 암시하지만, 법적 기준인 사실혼의 실질적 요건을 입증하기에는 여전히 약했습니다. 사실혼은 단순한 애정 관계나 동거와는 달리, 사회적으로 부부 관계를 공인받을 수 있는 실질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 기준은 생각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이 사건, 쉽지 않습니다."
 
김동혁은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방식이었습니다. 의뢰인에게 희망을 파는 변호사가 아니라, 가능성을 정확히 계산해 주는 변호사가 되고자 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박성민의 대답은 짧았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포기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싸우고 싶습니다. 제가 그분과 함께한 칠 년은 진짜였습니다. 그것이 법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고 해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김동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의뢰인의 감정적인 발언에 흔들리지 않아 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박성민의 눈빛 속에서 무언가 다른 것을 보았습니다. 체념도 아니고 분노도 아닌, 조용하고 단단한 무언가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는 그때까지 이름 붙이지 못했습니다.
 
사건을 수임하는 서류에 서명하면서, 김동혁은 자신도 모르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급여 청구 소송이 아닐 수 있다고. 그 생각은 예상보다 오래, 그리고 깊이 그의 머릿속에 남게 됩니다.
 
사무실을 나서는 박성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김동혁은 창가로 다시 걸어갔습니다. 북악산의 능선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조용히, 그리고 단단하게.
 
사건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
 
제2장 보이지 않는 선
 
━━━━━━━━━━━━━━━━━━━━━━━━━━━━━━━━━━━━━━━━━━━━━━━━━━
 
수임을 결정하고 나서 김동혁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공무원연금법과 관련 행정 규칙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이 분야의 법령을 숙지하고 있었지만, 사건마다 적용 맥락이 달랐습니다. 법조문 자체보다는 그 조문이 어떻게 해석되어 왔는지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것은 십이 년의 경력이 가르쳐 준 진실이었습니다.
 
공무원연금법 제3조는 사실혼 관계에 있는 배우자를 유족으로 인정하는 조항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인정 기준은 법조문 자체에 명확히 정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해석은 판례와 행정 관행에 의존했습니다. 문제는 그 판례들이 일관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건에서는 주민등록 동일 주소를 강하게 요구했고, 어떤 사건에서는 실질적 동거가 인정되면 주소와 무관하게 사실혼을 인정했습니다. 그 경계는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선이었습니다.
 
김동혁은 조수 역할을 맡은 이십팔 세의 신입 변호사 최은채에게 관련 판례 분석을 지시했습니다. 최은채는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입사 첫해부터 탁월한 리서치 능력으로 주목받은 인물이었습니다. 작은 체구에 두꺼운 안경을 쓴 그녀는 언뜻 조용해 보였지만, 법리 분석에서만큼은 누구보다 집요했습니다.
 
최은채가 사흘 만에 정리해 온 판례 보고서는 총 사십이 페이지였습니다. 김동혁은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이 사건의 윤곽을 더욱 선명하게 파악했습니다.
 
사실혼 관계를 인정한 판결들의 공통점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 두 사람이 사회적으로 부부로 인식되었다는 증거가 있어야 했습니다. 주변 지인, 직장 동료, 가족 등이 두 사람의 관계를 사실혼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는 진술이 중요했습니다. 둘째, 경제적 공동체의 실질이 있어야 했습니다. 생활비를 공동으로 부담하거나, 재산을 함께 관리했다는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셋째, 혼인 의사가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법률혼이 되지 못한 것이 단순히 게을러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이혼 소송 진행이나 다른 불가피한 사정 때문이었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가져야 했습니다.
 
반면 사실혼 관계를 부정한 판결들은 대부분 이 세 가지 중 하나 이상이 결여된 경우였습니다. 그리고 공단의 기각 논리는 언제나 이 결여를 정교하게 파고들었습니다.
 
박성민의 사건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은 세 번째 요건이었습니다. 정해준은 전 처와 협의 이혼한 상태였지만, 재혼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힌 기록이 없었습니다. 그의 자녀들에게 박성민을 소개한 적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녀들은 박성민의 존재를 전혀 몰랐습니다. 이는 정해준 자신이 이 관계를 공식적인 부부 관계로 정립할 의사가 없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김동혁은 이 약점을 어떻게 공략할 것인지 밤새 생각했습니다. 법리적으로 정공법은 어려웠습니다. 혼인 의사를 직접적으로 입증하는 서류나 증언이 없는 상황에서, 간접적인 정황만으로 법원을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음 날 아침 박성민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를 물었습니다. 정해준이 생전에 자신의 지인들에게 박성민을 어떻게 소개했는지 확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였습니다.
 
박성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두 이름을 댔습니다. 하나는 정해준의 오랜 친구이자 직장 동료였던 유재현이었고, 또 하나는 두 사람이 자주 들르던 동네 식당의 주인 오선희였습니다.
 
김동혁은 그날 오후 유재현을 만났습니다. 유재현은 예순 살의 남자로, 노원구청에서 정해준과 이십 년 가까이 근무한 동기였습니다. 그는 소탈한 성격의 남자였고, 김동혁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했습니다.
 
정해준은 생전에 유재현에게 박성민을 여러 차례 소개했다고 했습니다. 사귀는 여자라고 소개한 적도 있었고, 한번은 이 여자랑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재현이 그 발언을 직접 들은 것은 술자리에서였고, 뚜렷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구체성이 떨어지는 진술이었습니다.
 
오선희를 만난 것은 다음 날이었습니다. 노원구의 작은 한식당을 운영하는 오선희는 쉰네 살의 여성으로, 두 사람이 주로 일요일 점심에 함께 찾아오던 단골이었습니다. 그녀는 두 사람이 오 년 넘게 같이 왔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정해준이 한번은 성민이는 내 마누라라고 오선희에게 농담처럼 말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역시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증언의 질은 생각보다 낮았습니다. 그러나 없는 것보다는 나았습니다.
 
김동혁은 또 다른 접근을 시도했습니다. 박성민이 정해준의 병원 진료 보호자 역할을 해 온 기록을 더 정밀하게 추적했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정해준이 입원한 병원에서의 기록을 살펴보니, 입원 당시 보호자로 등재된 사람은 박성민이었습니다. 정해준의 자녀들은 입원 이후에야 연락을 받았고, 수술 동의서에도 박성민의 서명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단서였습니다. 법적으로 수술 동의는 법정 대리인 또는 가장 밀접한 관계의 보호자가 할 수 있었습니다. 정해준이 의식을 잃은 긴박한 상황에서 병원이 보호자로 박성민을 인정했다는 것은, 두 사람의 관계가 공식적으로도 일정 부분 인식되고 있었음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공단 측 담당자와의 사전 협의에서 이 부분을 언급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은 단호했습니다. 병원이 보호자를 지정하는 것은 의료 편의의 문제이지, 법적 관계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논리였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사건을 준비하면서 김동혁은 점점 더 이 소송의 핵심이 법리가 아니라 사실 인정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법원이 어떤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느냐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은 증거의 양이 아니라 증거의 설득력이 결정했습니다.
 
그는 소장을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소장은 행정처분 취소를 구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공무원연금공단이 박성민에 대한 유족급여 청구를 기각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소장 초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김동혁은 평소의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글을 썼습니다. 그는 원래 사실과 법리만을 건조하게 나열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습니다. 그는 박성민이 정해준 곁에서 보낸 칠 년의 시간을 구체적으로 서술했습니다. 그의 뇌졸중 이후 박성민이 병원을 오가며 밤을 지새운 날들을, 그의 임종 순간에 손을 잡고 있었던 사람이 박성민이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의 장례를 치른 사람도 박성민이었다는 것을 썼습니다.
 
소장을 검토하던 최은채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변호사님, 이번 소장은 좀 다르네요."
 
김동혁은 대답하지 않고 소장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감정은 나중에, 지금은 논리가 먼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소장을 수정하지 않았습니다.
 
서울행정법원에 소장이 접수된 것은 수임으로부터 삼 주 후였습니다. 사건번호가 부여되었고, 첫 기일이 잡혔습니다. 이제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김동혁은 사무실 창가에 서서 다시 한번 북악산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이 사건이 어디로 흘러갈지 아직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무언가를 품고 있다는 것을.
 
━━━━━━━━━━━━━━━━━━━━━━━━━━━━━━━━━━━━━━━━━━━━━━━━━━
 
제3장 첫 번째 공방
 
━━━━━━━━━━━━━━━━━━━━━━━━━━━━━━━━━━━━━━━━━━━━━━━━━━
 
서울행정법원 제3호 법정은 창문이 없는 공간입니다. 높은 천장에서 형광등 불빛이 쏟아지고, 판사석과 당사자석 사이의 거리는 법정의 권위를 가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공간에 들어설 때마다 김동혁은 특유의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긴장이 아니라 집중이었습니다. 법정은 그에게 싸움터였고, 그는 그 공간에서 가장 선명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첫 번째 변론 기일이 열린 것은 소장 접수로부터 두 달 후였습니다. 피고 대리인은 공무원연금공단 측 법무담당관인 강태준이었습니다. 강태준은 사십대 초반의 남성으로, 공무원 출신의 행정법 전문가였습니다. 그는 법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었고, 행정 소송에서는 오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치밀한 논리를 구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재판장은 정혜정 판사였습니다. 오십대 초반의 여성으로, 서울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행정부 전담 재판부에 배치된 베테랑이었습니다. 그녀는 법정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고, 양측의 주장을 냉정하게 경청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첫 기일은 주로 쌍방의 주장을 확인하는 절차로 진행되었습니다.
 
김동혁은 원고 측 주장을 간결하게 정리했습니다. 박성민과 정해준은 칠 년간 사실상의 부부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그 실질은 법적 기준인 사실혼의 요건을 충족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피고 공무원연금공단이 원고의 유족급여 청구를 기각한 것은 사실혼의 법리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것이며, 재량권을 남용한 위법한 처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강태준의 반론은 논리적이었습니다. 공무원연금공단이 사실혼 관계를 심사할 때 적용하는 기준은 대법원의 판례와 행정 규칙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 기준에 따르면 박성민과 정해준의 관계는 법적 보호를 받는 사실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세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주민등록 주소의 분리, 정해준의 자녀들이 박성민의 존재를 몰랐다는 사실, 그리고 정해준이 생전에 재혼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기록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정혜정 판사는 양측의 주장을 듣고 나서 몇 가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녀가 김동혁에게 던진 질문은 예리했습니다.
 
"원고 측은 혼인 의사의 존재를 어떻게 입증할 계획입니까. 구체적인 증거 계획을 밝혀 주세요."
 
김동혁은 준비한 답을 냉정하게 제시했습니다. 첫째, 정해준의 지인들의 증언을 통해 그가 박성민을 배우자로 인식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겠다고 했습니다. 둘째, 두 사람의 경제적 공동체 증거인 공동 지출 내역과 생활비 계좌 이동 기록을 제출하겠다고 했습니다. 셋째, 정해준의 병원 치료 과정에서 박성민이 실질적 배우자로 행동했다는 의료 기록을 제출하겠다고 했습니다.
 
판사는 메모를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피고 측에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강태준은 공단 내부의 심사 기준과 절차를 문서로 제출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공단의 처분이 적법하고 합리적인 기준에 따른 것임을 증명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첫 기일은 짧게 끝났습니다. 다음 기일까지 양측은 증거 자료를 제출하기로 했습니다.
 
법원을 나서면서 박성민은 처음으로 김동혁에게 재판이 어떨 것 같냐고 물었습니다. 김동혁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쉽지 않다고, 그러나 불가능하지도 않다고.
 
박성민은 그 대답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걸었습니다. 그 뒷모습을 보면서 김동혁은 이 여성이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몰랐습니다.
 
두 번째 기일이 열리기 전, 김동혁은 집중적으로 증거를 보강했습니다. 박성민이 다니던 병원의 동료 간호사들과 면담했습니다. 그들은 박성민이 정해준에 대해 남편처럼 이야기했다고 증언할 의사를 밝혔습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우리 남편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증언도 있었습니다. 이것은 사회적 인식의 증거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김동혁은 정해준의 계좌 내역을 추적했습니다. 박성민이 제출한 공동 신용카드 내역 외에, 두 사람이 공동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계좌 이동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매월 정해준의 계좌에서 일정 금액이 박성민의 계좌로 이체된 내역이 있었습니다. 그 금액은 생활비에 해당하는 규모였습니다.
 
그러나 이 계좌 이동 기록을 증거로 제출하기 전, 한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정해준의 자녀들이 해당 계좌 기록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그들은 그 이체가 정해준이 박성민에게 빌려준 돈의 변제 형태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메모가 있다고 했습니다. 정해준이 남긴 가계부 형태의 수첩에 빌려줌이라고 적힌 기록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김동혁은 그 주장을 듣고 처음으로 심각하게 긴장했습니다. 만약 그 수첩의 기록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공단 측의 논리를 강화하는 증거가 될 수 있었습니다. 돈을 빌려준 관계라면, 그것은 경제적 공동체가 아니라 단순한 채권 채무 관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박성민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박성민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그런 적 없습니다. 그분이 저한테 빌려준 돈이 아니에요. 생활비였습니다."
 
"그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박성민은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오랜 침묵 끝에 그녀가 말했습니다.
 
"영수증 같은 건 없습니다. 그냥 살았으니까요."
 
그냥 살았으니까. 그 말이 김동혁의 머릿속에 오래 남았습니다. 법정은 그냥 살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법정은 증거를 요구합니다. 증거가 없으면 사실이 있어도 없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법의 냉혹함이었습니다.
 
두 번째 기일을 앞두고 김동혁은 전략을 재검토했습니다. 수첩 기록에 대한 반박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필적 감정과 기재 날짜 분석을 통해 수첩 기록의 신뢰성을 공격하는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박성민이 정해준에게 금전을 빌린 사실이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라도 입증할 다른 증거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최은채는 이 시점에서 중요한 발견을 했습니다. 그녀는 정해준이 생전에 가입한 생명보험의 수익자 지정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정해준은 은행 계좌와 달리, 생명보험의 수익자란에 박성민의 이름을 적어 두었습니다. 그 보험은 십 년 전 가입된 것이었고, 수익자 변경을 한 시점은 박성민과 동거를 시작한 지 이 년이 지난 시점이었습니다.
 
이것은 강력한 증거였습니다. 생명보험 수익자 지정은 단순한 경제적 거래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죽은 뒤 재산이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를 명확히 표현한 행위였습니다. 그것은 혼인 의사의 간접적 증거가 될 수 있었습니다.
 
김동혁은 이 증거를 두 번째 기일에 제출했습니다. 강태준은 당황한 기색 없이 즉각 반박했습니다. 생명보험 수익자 지정이 곧 사실혼의 배우자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그것은 단순히 신뢰하는 지인에게 재산을 남기려는 의사 표시일 수도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판사는 두 주장을 모두 기록에 남겼습니다. 그리고 다음 기일까지 양측에 추가 서면 제출을 요청했습니다.
 
법정을 나서면서 김동혁은 느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증거의 우열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판사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싸움이었습니다. 그것은 법의 해석이 아니라 사실 인정의 문제였고, 그 판단은 전적으로 판사의 심증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심증을 흔들기 위해서는 논리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김동혁이 처음으로 자신의 방식에 의문을 품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
 
제4장 균열
 
━━━━━━━━━━━━━━━━━━━━━━━━━━━━━━━━━━━━━━━━━━━━━━━━━━
 
세 번째 기일을 열흘 앞두고, 사건의 균열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김동혁이 사무실에 도착한 아침, 비서 이지원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봉투 하나를 건넸습니다. 발신인이 표시되지 않은 등기 봉투였습니다. 그는 봉투를 뜯었습니다. 안에는 두 장의 사진과 짧은 메모가 들어 있었습니다.
 
사진은 정해준과 다른 여성이 함께 찍은 것이었습니다. 찍힌 날짜는 박성민과 동거하던 기간 중반에 해당하는 시점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모습은 친밀해 보였습니다. 식당에서 마주 앉아 웃고 있었고, 손이 맞닿아 있었습니다. 메모에는 짧은 문장이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박성민 씨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것, 아시죠?
 
김동혁은 사진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갔습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어 왔습니다. 소송이 시작되면 누군가는 반드시 균열을 노립니다. 정해준의 자녀들이 보낸 것인지, 다른 누군가가 보낸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진의 존재 자체가 문제였습니다.
 
그는 박성민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가능한 한 감정 없이 사실을 전달했습니다.
 
박성민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녀는 짧은 침묵 끝에 말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 네 글자가 김동혁의 전략 전체를 흔들었습니다.
 
그날 오후 박성민을 직접 만났습니다. 그녀는 사무실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정해준은 동거 기간 중 한 차례 다른 여성과 짧은 관계가 있었습니다. 박성민은 그것을 일 년쯤 지난 뒤에 알았습니다. 두 사람은 크게 다퉜고, 정해준은 먼저 사과했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끝났습니다. 박성민은 그를 용서했고, 그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고 했습니다.
 
김동혁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빠르게 생각했습니다. 이 사실이 공단 측에 전달된다면, 그들은 이것을 두 사람의 관계가 진정한 부부 관계가 아니었다는 증거로 활용할 것이었습니다. 사실혼은 배타적이고 지속적인 관계여야 한다는 논리는 충분히 설득력 있었습니다.
 
"이것이 법정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압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박성민은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모았습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도 우리가 함께한 시간의 일부니까요. 아프지만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김동혁은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이 사건을 다른 각도에서 보았습니다. 법정에서 완전무결한 관계를 주장하는 것은 종종 역효과를 냅니다. 판사는 인간이고, 지나치게 완벽하게 포장된 주장은 오히려 신뢰를 잃기 쉽습니다. 반면 불완전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도 관계의 실질을 강조하는 접근은, 오히려 더 인간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세 번째 기일에 강태준은 예상대로 이 사진을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그는 이 사진이 두 사람의 관계가 배타적인 사실혼이 아니었음을 보여 주는 간접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형태는 사실혼의 본질적 요건인 부부 공동체의 성실한 유지를 충족하지 못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김동혁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반론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서면에 이렇게 썼습니다. 장기적인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위기,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은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일시적 동거가 아닌, 진정한 삶의 동반자 관계였음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법률혼 부부 사이에서도 외도는 발생하며, 그것이 혼인 관계를 즉시 무효화하지 않듯, 사실혼 관계에서의 위기와 화해 역시 그 관계의 실질을 부정하는 사유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 갈등을 극복하고 관계를 유지했다는 사실은 두 사람이 관계를 지속하려는 강한 의지가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 반론을 읽은 정혜정 판사는 잠시 서면에서 눈을 들었습니다. 그 순간의 표정이 어떤 의미인지 김동혁은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판사가 다음 말 없이 기록에 표시했다는 것만은 확인했습니다.
 
세 번째 기일 이후 사건은 더 깊은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공단 측이 새로운 증거 신청을 했습니다. 정해준이 남긴 수첩을 공식적으로 제출한 것이었습니다. 수첩은 낡은 검정색 가죽 표지에 손으로 쓴 기록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공단 측은 수첩 안에 빌려줌이라고 기재된 부분을 중점적으로 인용했습니다.
 
김동혁은 수첩의 원본을 열람하기 위해 신청했습니다. 법원은 이를 허가했습니다. 그는 최은채와 함께 법원 증거 열람실에서 수첩을 살폈습니다. 수첩의 필체는 고르지 않았습니다. 전반부와 후반부의 글씨체가 달랐습니다. 그것은 뇌졸중 전후의 신체 변화를 반영한 것일 수 있었습니다.
 
최은채가 수첩의 기재 일자를 정리하면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변호사님, 이 빌려줌 기록들이 전부 뇌졸중 발병 후 날짜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김동혁은 몸을 앞으로 숙였습니다. 최은채의 말이 맞았습니다. 빌려줌이라는 단어가 적힌 항목들은 모두 정해준이 쓰러진 이후에 기재된 것이었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사람이 직접 수첩에 기록을 남겼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본인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기재한 것이라면, 그것은 증거 조작의 가능성을 시사했습니다.
 
김동혁은 즉시 필적 전문가와 의료 전문가를 연결했습니다. 필적 분석과 뇌졸중 환자의 필기 능력에 관한 의학적 감정을 의뢰했습니다.
 
사건은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습니다. 단순한 사실혼 인정 여부를 넘어서, 이제 증거의 진위 여부가 쟁점이 되었습니다. 법정이 더 복잡해지고 있었습니다.
 
박성민은 이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말했습니다.
 
"해준 씨가 그런 수첩을 직접 쓸 수 없는 상태였다는 걸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매일 곁에 있었으니까요. 근데 누군가가 그걸 이용했다는 게, 그게 더 가슴이 아픕니다."
 
김동혁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박성민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오랫동안 그것이 그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순간, 그 생각이 조금 흔들렸습니다.
 
균열은 사건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김동혁 안에도 생기고 있었습니다.
 
━━━━━━━━━━━━━━━━━━━━━━━━━━━━━━━━━━━━━━━━━━━━━━━━━━
 
제5장 증인의 목소리
 
━━━━━━━━━━━━━━━━━━━━━━━━━━━━━━━━━━━━━━━━━━━━━━━━━━
 
필적 감정 결과는 열흘 후 나왔습니다. 감정서를 작성한 사람은 이십 년 경력의 필적 전문가 조병철이었습니다. 그는 수십 건의 법정 감정 경험을 가진 인물로, 법원에서도 신뢰성이 높은 증인이었습니다.
 
감정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수첩의 빌려줌 기재 부분과 다른 부분의 필체는 동일인의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압력, 획의 방향, 자모음의 비율 등 여러 기준에서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조병철은 뇌졸중 이후 신체 기능 저하로 인한 필체 변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제했지만, 변화의 폭이 일반적인 범위를 벗어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의료 감정 결과는 더 명확했습니다. 정해준이 입원한 병원의 신경과 담당 의사가 의료 기록을 근거로 작성한 소견서에 따르면, 정해준은 뇌졸중 발병 후 삼 주 이내에 필기를 포함한 정밀한 손 동작이 불가능한 상태였습니다. 빌려줌 기재 항목 중 두 건은 그 삼 주 이내에 해당하는 날짜에 기재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수첩 기록이 후에 추가되었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습니다.
 
김동혁은 네 번째 기일에 이 두 감정서를 제출했습니다. 법정의 분위기가 변했습니다. 강태준은 즉각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필적 감정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뇌졸중 후 필체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부분적으로 회복될 수 있다는 주장을 폈습니다. 그는 재감정 신청을 예고했습니다.
 
정혜정 판사는 양측의 주장을 듣고 나서 말했습니다.
 
"증인 신문이 필요하겠습니다. 다음 기일에 원고 측은 증인을 신청하고, 피고 측은 반박 서면을 준비하십시오."
 
증인 신문 기일은 두 주 후로 잡혔습니다.
 
김동혁은 증인을 엄선해야 했습니다. 법정에 서는 증인은 단순히 사실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판사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반대 심문에서 흔들리지 않아야 했습니다.
 
그는 세 명의 증인을 선정했습니다. 첫 번째는 유재현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정해준이 입원했던 병원의 수간호사 문진희였습니다. 그녀는 정해준이 의식이 있던 기간 동안 박성민을 배우자로 소개했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세 번째는 필적 전문가 조병철이었습니다.
 
증인 신문 전날 밤, 김동혁은 사무실에 혼자 남아 질문지를 검토했습니다. 그는 각 증인에 대한 주신문 질문과 예상 반대 심문 질문을 모두 정리했습니다. 강태준이 어떤 각도에서 공격할지를 미리 계산했습니다.
 
그때 박성민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습니다. 내일 어떻게 될까요, 라고 했습니다.
 
김동혁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답장을 보냈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말이었습니다.
 
증인 신문 기일, 법정에는 평소보다 긴장감이 흘렀습니다. 정해준의 자녀들도 방청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박성민은 앞줄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의 표정은 고요했습니다.
 
첫 번째 증인 유재현이 증인석에 섰습니다. 김동혁의 주신문은 체계적이었습니다. 유재현은 정해준이 박성민을 동반자로 소개했다는 사실을 진술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정해준의 생일을 보낸 것도 기억했습니다. 박성민에 대해 정식으로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도 했습니다.
 
강태준의 반대 심문은 날카로웠습니다. 그는 유재현에게 그 말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집요하게 물었습니다. 유재현은 날짜를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강태준은 그것을 파고들었습니다. 날짜도 기억 못하는 발언이 법적 증거로서 얼마나 신뢰성을 가지는지 의문이라고 했습니다.
 
유재현의 증언은 결정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예상된 결과였습니다.
 
두 번째 증인 문진희의 증언이 핵심이었습니다.
 
수간호사 문진희는 정해준이 의식을 회복한 직후의 일을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정해준이 처음 의식을 회복했을 때, 첫 번째로 찾은 사람이 박성민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정해준이 담당 의료진에게 이 사람이 내 아내라는 표현을 직접 사용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법정이 조용해졌습니다.
 
강태준은 즉각 반대 심문에 나섰습니다. 그는 아내라는 표현이 환자의 착각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뇌졸중 직후 환자는 혼돈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으며, 이 발언을 명확한 의사 표시로 볼 수 없다는 논리였습니다.
 
문진희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정해준 씨는 그 이후에도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서 박성민 씨를 아내라고 여러 차례 소개했습니다. 그것은 혼돈 상태의 발언이 아니었습니다."
 
강태준은 의료 기록에 그런 내용이 기재되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문진희는 공식 의료 기록에는 기재되지 않는다고 인정했습니다. 그것은 의료 기록이 아니라 구두로 이루어진 일상적인 소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재되지 않은 사실은 법정에서 종종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됩니다. 강태준은 그 점을 정확히 짚었습니다.
 
그러나 판사는 메모를 했습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무언가가 기록되었다는 것은 확실했습니다.
 
필적 전문가 조병철의 증언은 기술적이었습니다. 그는 감정 과정과 결과를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강태준은 재감정 신청을 통해 이 감정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증인 신문 기일이 끝났습니다.
 
밖으로 나오면서 박성민이 걸음을 멈추고 말했습니다.
 
"문 수간호사님이 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김동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 소송이 아직 절반도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더 어려운 국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그러나 그날 문진희의 진술 속에 담긴 한 문장이 그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습니다. 이 사람이 내 아내라는 표현. 그것은 단순한 발언이 아니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선 사람이 가장 먼저 불렀던 이름. 그 사실만으로도 무언가가 충분히 말해지고 있었습니다.
 
법이 그것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
 
제6장 반전의 실마리
 
━━━━━━━━━━━━━━━━━━━━━━━━━━━━━━━━━━━━━━━━━━━━━━━━━━
 
재감정 결과가 나오는 데는 삼 주가 걸렸습니다. 그 삼 주 동안 김동혁은 사건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그는 밤에도 판례를 읽었고, 주말에도 서면을 수정했습니다. 그런 그에게 최은채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이 사건에 특별히 더 몰입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김동혁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스스로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재감정 결과는 처음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감정인도 필체의 이질성을 인정했습니다. 다만, 확률 표현에서 가능성이 높다고만 결론 내렸을 뿐이었습니다. 단정은 아니었습니다. 강태준은 이 불확실성을 파고들었습니다. 확실하지 않은 증거는 증거로서 가치가 낮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그 시점에 사건의 흐름을 바꾼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왔습니다.
 
정해준의 누나였습니다.
 
정미희, 예순다섯 살의 여성이 김동혁의 사무실에 직접 찾아온 것은 증인 신문 기일로부터 열흘이 지난 저녁이었습니다. 그녀는 서울 마포구에 살았고, 정해준보다 네 살 많은 외동 누나였습니다. 그녀는 아무 예고 없이 나타났고, 이지원이 당황하며 연락을 했을 때 김동혁은 마침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정미희는 방에 들어서면서 먼저 사과부터 했습니다.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요."
 
그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이 사건의 구도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정미희는 박성민과 직접 아는 사이였습니다. 정해준이 살아 있을 때부터 박성민을 알았고, 두 사람의 관계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정해준이 주민등록 주소를 분리해 달라고 박성민에게 요청했던 구체적인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정해준의 큰아들은 아버지가 새 여성과 동거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 심한 갈등을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고성이 오가는 다툼도 있었습니다. 정해준은 자녀들과의 관계가 완전히 파탄 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박성민에게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자녀들을 천천히 설득하겠다고 했습니다. 주소를 분리한 것은 외부에 동거 사실을 숨기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자녀들과의 관계를 정리할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정미희는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정해준이 그녀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정해준은 누나에게 가끔 편지를 썼습니다. 스마트폰을 어색하게 다루는 구식 남자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편지 중 하나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성민이한테 미안하다. 아이들 때문에 혼인 신고를 미루는 것인데, 그 아이가 나를 믿고 기다려 주고 있어서 더 고맙고 더 미안하다. 빨리 정리하고 제대로 된 부부가 되고 싶다.
 
그 편지가 봉투 안에 있었습니다.
 
김동혁은 편지를 읽으면서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정황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정해준 본인이 직접 쓴 문서였습니다. 그것도 제삼자인 누나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자신의 입장을 조작하기 위한 문서가 아니라, 진심을 나눈 가족에게 쓴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의 날짜는 뇌졸중 발병 이 년 전이었습니다. 필체는 건강하고 힘찼습니다.
 
김동혁은 조용히 편지를 내려놓고 정미희를 바라보았습니다.
 
"왜 지금 오셨습니까."
 
정미희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습니다.
 
"조카들이 박성민 씨를 상대로 이런 식으로 대응하는 줄 몰랐습니다. 동생이 남긴 수첩에 누군가 추가로 기록을 남겼다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알았습니다. 동생이 원하지 않았을 일입니다."
 
그녀는 조카들과의 관계가 나빠질 것을 알면서도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동생의 진심이 왜곡되는 것은 더 보기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김동혁은 그날 밤을 꼬박 새워 서면을 작성했습니다. 정미희의 진술과 편지를 중심으로 한 추가 증거 신청서였습니다. 동시에 수첩의 빌려줌 기록이 정해준 본인이 작성한 것이 아닐 가능성을 더욱 강화하는 논리를 보강했습니다.
 
다섯 번째 기일, 추가 증거가 제출되었습니다.
 
강태준은 이 편지에 대해 즉각 반박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검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판사는 일 주일의 준비 기간을 주었습니다.
 
일 주일 후, 강태준은 서면으로 반론을 제출했습니다. 편지의 내용이 진심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정해준은 살아 있는 동안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실이 변하지 않는다는 주장이었습니다.
 
김동혁은 이에 대한 반론을 준비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의 핵심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사실혼은 혼인신고의 부존재가 아니라 그것을 못한 사정이 있었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정해준은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녀들과의 갈등을 해소한 뒤에 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완료되기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이것은 혼인 의사의 부재가 아니라, 혼인신고의 불가피한 지연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주장은 법리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있었습니다. 대법원 판례 중에는 혼인신고를 못한 불가피한 사정이 인정되는 경우 사실혼을 인정한 사례들이 있었습니다. 다만 그 사정이 얼마나 설득력 있게 인정되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
 
박성민은 이 모든 경과를 보고받으며 처음으로 긴 침묵 끝에 말했습니다.
 
"정미희 씨가 와 주셨다는 걸 알았을 때, 처음으로 해준 씨가 저를 지키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동혁은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추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의뢰인의 감정에 거리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박성민의 말이 그의 안에서 무언가를 건드렸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는 여전히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외면할 수 없는 감각이었습니다.
 
재판은 이제 최종 변론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
 
제7장 보이지 않는 기준
 
━━━━━━━━━━━━━━━━━━━━━━━━━━━━━━━━━━━━━━━━━━━━━━━━━━
 
최종 변론 기일은 소장 접수로부터 여섯 달 후였습니다. 서울의 봄이 법정 복도의 창문 너머에서 조심스럽게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벚꽃이 피기 전의 묘한 설렘과 긴장이 공기 중에 섞여 있었습니다.
 
김동혁은 그날 아침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했습니다. 그는 최종 변론 원고를 다시 읽었습니다. 수차례 고치고 또 고친 끝에 나온 글이었습니다. 그는 원고를 읽으면서 이 사건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는지를 처음으로 직접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처음 이 사건을 맡았을 때, 그는 이것을 행정 처분 취소 소송으로 분류했습니다. 법리 다툼이었고, 증거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는 이 사건이 그것보다 더 오래된 질문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법이 만들어 놓은 기준이 인간의 삶 전체를 담아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기준에 맞지 않는 것들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그는 변론 원고를 접고 법정으로 걸어갔습니다.
 
박성민은 법정 앞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짙은 회색 재킷을 입고 있었고, 표정은 조용했습니다. 김동혁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것이 그들 사이의 인사였습니다.
 
법정에 들어선 순간, 분위기가 달랐습니다. 방청석에는 정해준의 자녀들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정미희도 앉아 있었습니다. 두 집단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재판장 정혜정 판사가 입장했습니다. 법정이 일어섰다가 자리에 앉았습니다.
 
최종 변론은 원고 측이 먼저였습니다.
 
김동혁은 일어섰습니다. 그는 서류를 들고 있었지만, 발언을 시작하면서 서류를 내려놓았습니다. 그것은 평소의 그답지 않은 행동이었습니다. 최은채가 살짝 눈을 크게 떴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두 사람이 법적 기준에 맞는 서류를 남겼는지가 아니라, 두 사람이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지입니다. 법은 삶을 규율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삶이 법의 형식 안에 완전히 담기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박성민과 정해준은 칠 년 동안 서로의 일상을 나누었습니다. 그의 뇌졸중 순간에 가장 먼저 달려간 사람은 박성민이었습니다. 그가 마지막 숨을 쉴 때 손을 잡고 있었던 사람도 박성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누나에게 쓴 편지 속에서 정해준은 박성민을 아내라고, 자신이 부부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고 썼습니다. 이 모든 것이 법적 사실혼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 우리는 법의 기준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다시 물어야 합니다. 법의 기준은 삶의 실질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입니다. 그 도구가 삶의 실질을 외면하는 결과를 낳는다면, 그것은 기준의 적용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는 구체적인 법리를 이어 나갔습니다. 대법원 판례 중 혼인신고의 지연이 불가피한 사정에 의한 경우, 사실혼 관계를 인정한 사례들을 하나씩 인용했습니다. 정해준의 경우는 자녀들과의 갈등을 해소하려는 과정 중에 불가피하게 뇌졸중으로 인해 혼인신고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는 혼인 의사가 없었음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편지를 통해 명확하게 확인된 혼인 의사가 사정에 의해 실현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공무원연금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사실혼 배우자의 권리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 있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언급했습니다. 수첩 기록의 신뢰성 문제였습니다. 두 감정 결과가 모두 수첩의 빌려줌 기재 부분이 정해준의 필체와 다를 가능성을 지적했으며, 의료 기록은 해당 날짜에 정해준이 필기를 할 수 없는 상태였음을 보여 줍니다. 이 기록을 근거로 두 사람의 관계를 채권 채무 관계로 분류하는 것은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주장입니다. 법원이 이 점을 엄밀하게 판단해 주기를 요청합니다.
 
김동혁이 자리에 앉았습니다. 법정은 조용했습니다.
 
강태준이 일어섰습니다. 그의 최후 변론은 논리적이었습니다. 그는 공단의 기준이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수십 년간의 판례와 행정 관행이 축적된 결과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실혼의 기준을 느슨하게 적용하면, 제한된 재원인 유족급여를 적정한 수급권자에게 지급하는 공단의 책임이 흔들린다고 했습니다. 주민등록 주소의 분리, 자녀들에 대한 관계 미공개, 혼인신고의 부존재. 이 세 가지는 명확한 사실이며, 그 사실들은 두 사람의 관계가 공무원연금법이 보호하는 사실혼의 기준에 미치지 못함을 보여 줍니다.
 
그는 편지에 대해서도 반론을 폈습니다. 편지의 내용이 진심이라 하더라도, 칠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의사를 구체적 행동으로 실현하지 못한 것은 정해준 개인의 선택이었으며, 그 선택의 결과가 법적 효과로 연결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최후 변론이 끝났습니다. 정혜정 판사는 양측을 한 번씩 바라보고 말했습니다.
 
"선고 기일은 추후 통보하겠습니다."
 
법정이 종료되었습니다.
 
복도로 나오면서 박성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김동혁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봄의 햇살이 법원 건물 유리창을 통해 복도 바닥에 길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박성민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발을 멈추고 김동혁을 바라보았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더라도, 이 과정이 제게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김동혁은 잠시 그 말을 받아들이듯 멈추었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가 오랫동안 하지 않았던 종류의 대답이었습니다.
 
선고는 삼 주 후에 내려졌습니다.
 
정혜정 판사는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법정은 숨을 죽였습니다. 박성민의 손이 무릎 위에서 가늘게 떨렸습니다. 김동혁은 두 손을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고 전방을 바라보았습니다.
 
판결의 결론은 원고 일부 승소였습니다.
 
판사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원고와 망인 정해준의 관계는 사실혼의 실질적 요건 중 일부를 충족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특히 망인이 생전에 직접 작성한 편지에서 원고를 배우자로 인식하고 혼인 의사를 명확히 표현한 점, 망인의 병원 치료 전 과정에서 원고가 실질적 배우자의 역할을 담당한 점, 그리고 생명보험의 수익자로 원고를 지정한 점은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동거 이상이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로 인정됩니다. 다만, 주민등록 주소의 분리 기간 중 일부 구간에 대하여는 동거의 실질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고 보아, 유족급여 전액이 아닌 법원이 인정하는 기간에 해당하는 일부 금액에 한하여 청구를 인용합니다.
 
완전한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패배도 아니었습니다.
 
박성민은 판결문이 낭독되는 동안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읽히는 순간, 그녀는 조용히 눈을 떴습니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습니다.
 
법정 밖으로 나오면서 김동혁이 말했습니다.
 
"항소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완전 승소 가능성이 아직 있습니다."
 
박성민은 잠시 생각했습니다. 봄바람이 두 사람의 옷자락을 스쳤습니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변호사님, 오늘 재판에서 저는 이미 이겼습니다."
 
김동혁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잠깐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녀는 계속했습니다.
 
"저와 해준 씨 사이에 있었던 것들이, 판사님 앞에서 읽혔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제가 싸우려 했던 건 돈이 아니었으니까요."
 
김동혁은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십이 년 동안 법정을 자신의 무대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기기 위한 논리를 구축하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가 처음으로 느낀 것은 이겼다는 감각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를 보았다는 감각이었습니다. 법이 항상 보여 주지 못하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을.
 
그는 박성민이 걸어가는 방향을 바라보았습니다. 봄햇살 안으로 그녀의 뒷모습이 천천히 멀어졌습니다.
 
그는 손에 쥔 서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판결문의 사본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법적 기준의 충족 여부 외에, 당사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해 온 생활 공동체의 실질을 함께 고려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기준. 김동혁은 그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이것이 법의 불명확성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다르게 읽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기준이란 법이 제시하지 못하는 것들, 그러나 삶 속에서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들이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한 아침과 저녁들, 서로의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들,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손을 잡았던 기억들.
 
그것들은 법이 보여 주지 않아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김동혁은 법원 건물을 나서면서 처음으로 넥타이를 조금 느슨하게 했습니다. 봄바람이 그의 얼굴을 지나쳤습니다. 그는 북악산이 보이는 방향으로 걸었습니다.
 
법은 삶의 전부를 담을 수 없습니다. 그것이 법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법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담을 수 있는 것들을 더 정확하게 담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담기지 않은 것들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판사와 변호사가 필요합니다.
 
김동혁은 그것을 이 사건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는 다음 사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잠시 멈추어도 될 것 같았습니다.
 
벚꽃이 지기 전에, 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
 
에필로그
 
━━━━━━━━━━━━━━━━━━━━━━━━━━━━━━━━━━━━━━━━━━━━━━━━━━
 
박성민은 항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판결 이후 두 달이 지나 김동혁에게 짧은 편지를 보냈습니다. 종이 편지였습니다. 그 안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변호사님 덕분에 해준 씨와의 시간이 기록으로 남을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동혁은 그 편지를 책상 서랍 안에 넣어 두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처음으로 간직한 의뢰인의 편지였습니다.
 
정해준의 자녀들은 항소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정미희가 그들을 만나 긴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그 대화가 무엇이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공무원연금공단은 판결에 따라 인정된 기간에 해당하는 유족급여를 박성민에게 지급했습니다. 금액은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박성민은 그것을 통장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정해준이 생전에 좋아하던 절에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정해준의 기일에 그가 좋아하던 음식을 사는 데 썼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방식이었습니다.
 
최은채는 이 사건을 계기로 행정 소송과 사회적 약자의 권리 보호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 사건의 판결을 분석한 논문을 작성했고, 법학 학술지에 게재되었습니다.
 
김동혁은 그해 말 로펌 파트너 회의에서 처음으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공익 사건 수임 비율을 높이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동료들이 동의했습니다.
 
그것이 아주 작은 변화처럼 보였지만, 작은 변화들이 오랜 시간 쌓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법은 언제나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이 완전함을 향해 계속 나아가는 한, 법은 더 나은 것을 향해 움직입니다.
 
보이지 않는 기준. 그것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