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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책방

CCTV가 말하지 못한 이야기

by 제 4의 창 2026. 5. 8.

https://youtu.be/_-hO94HIuRY

제1장 — 사건 발생, 오전 열한 시 사십 분

경상남도 남해시에 있는 한성공업고등학교는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에 세워진 학교입니다. 교문에서 바라보면 낡은 3층 건물이 회색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고, 운동장 가장자리에는 녹슨 철봉이 줄지어 있습니다. 학교 벽면에는 "기술로 미래를 열자"라는 붉은 글씨가 페인트가 벗겨진 채로 남아 있습니다. 그 글씨를 오가며 읽은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천이십사년 십일월 십이일 화요일 오전 열한 시 사십 분.

그 시각, 2학년 실습실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습니다.

실습실 복도 바깥에 서 있던 3학년 학생 두 명이 먼저 소리를 들었습니다. 금속을 가공하는 소리, 장비가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갑작스러운 인간의 비명. 세 소리는 거의 동시에 들렸습니다. 학생들은 잠시 멈췄다가, 뛰어서 도망쳤습니다. 그것이 그들이 목격자로 남게 된 이유이기도 하고, 목격자로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습실 안에서는 담임교사인 오재현이 오른팔에 부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오재현은 당시 스물여덟 살이었습니다. 한성공업고등학교에 부임한 지 두 해가 되지 않은 젊은 교사였고, 금속 가공 전공으로 지방 사범대학교를 졸업한 뒤 이 학교에서 처음으로 교단에 선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오른쪽 전완부에는 날카로운 도구에 의한 열상이 생겨 있었고, 상처 길이는 나중에 의료 기록상 약 십이 센티미터로 확인되었습니다.

그 맞은편에는 김동민이 서 있었습니다.

열아홉 살. 3학년. 졸업까지 석 달이 채 남지 않은 학생이었습니다. 그의 손에는 실습용 금속 절삭 공구, 일명 스크레이퍼가 들려 있었습니다. 손잡이 부분은 오래된 고무로 감겨 있었고, 그 끝의 날 부분에 핏자국이 묻어 있었습니다. 동민은 서 있었습니다.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눈은 바닥을 향해 있었고, 입술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습니다.

신고 전화는 총 세 통 접수되었습니다. 오전 열한 시 사십삼 분, 사십오 분, 사십팔 분에 각각 걸려온 것입니다. 세 통 모두 학교 직원들이 걸었습니다. 학생 중에는 신고자가 없었습니다.

경찰이 도착한 것은 신고 접수로부터 열두 분 뒤였습니다.

남해경찰서 형사팀장 강준호가 현장에 들어섰을 때, 동민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강준호는 스물한 해 동안 형사로 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강력계를 거쳐 형사팀장으로 승진했고, 지역에서 해결한 사건 수는 이백 건이 넘었습니다. 그는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동민을 관찰했습니다. 소년은 위협적이지 않았습니다. 눈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공구는 이미 그의 손 안에서 힘이 빠진 채 늘어져 있었습니다.

강준호는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공구 내려놔."

동민은 말이 없었습니다. 팔이 서서히 내려가더니, 공구가 바닥에 금속성 소리를 내며 떨어졌습니다. 그것이 동민이 현장에서 한 전부였습니다.

현장 보존이 이루어지고, 동민은 현행범으로 연행되었습니다. 오재현은 구급대원에 의해 처치를 받고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실습실 안에는 작업대가 뒤집혀 있었고, 금속 부품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실습 일지가 책상 위에 펼쳐진 채 남아 있었고, 그 위에 핏방울 몇 점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진 기록을 담당한 과학수사 요원은 그 광경을 촬영하면서 한 가지를 메모했습니다. 바닥에 흩어진 금속 부품들이 특정한 방향으로 쏠려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품들은 실습실 입구 쪽으로 날아간 것이 아니라, 창문 쪽으로 쏠려 있었습니다. 작업대가 뒤집힌 방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날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사건은 당일 오후부터 지역 뉴스에 보도되기 시작했습니다.

"한성공고 교사 흉기 피습, 학생 현행범 체포."

제목은 짧았습니다. 하지만 그 짧은 제목 안에 담긴 이야기는, 세상 사람들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길고 복잡한 것이었습니다.

남해시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은 기억하는 사람들이 드물 정도로 오래된 일이었습니다. 지역 주민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부모들은 학교 앞에 모여들었습니다. 누군가는 흥분했고, 누군가는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교문 앞에는 이내 취재 차량이 들어섰습니다. 남해 지역 신문사 기자 윤서진이 그중에 있었습니다. 스물여섯 살, 지역지에 입사한 지 삼 년 차인 기자였습니다. 그녀는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학교 정문 앞을 촬영하기 시작했습니다. 학부모들의 얼굴, 경찰차의 사이렌, 교문 위의 낡은 학교 이름 현판. 그녀는 기사를 쓰면서 이 사건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느낌의 정체를 특정하기엔 아직 아는 것이 너무 없었습니다.

동민은 경찰서로 이송되는 차 안에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손목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그는 차창 밖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눈은 무릎 위에 고정된 채였습니다. 무릎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무릎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동민의 눈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취조실에서의 첫 대면은 오후 두 시가 조금 넘어 이루어졌습니다. 강준호가 마주 앉았고, 동민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는,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태에 가까웠습니다. 입이 열리지 않았고, 입이 열리더라도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침묵인지 거부인지 공황인지는 그 자리에서는 판단이 불가능했습니다.

강준호는 그 점을 기록했습니다. 피의자가 묵비권 행사 여부 고지를 이해했는지 불분명. 진술 불가 상태.

의뢰서가 발송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국선 변호인 지정 요청. 피의자 김동민. 관할 법원 경남가정법원 소년부.

그리고 서울에서 그 의뢰서를 받아 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박성희, 서른다섯 살.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이자 국선 변호인 명단에 등록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서류를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잠깐 바라보았습니다. 평범한 소년 사건처럼 보였습니다. 한 달이면 결론이 날 사건처럼 보였습니다. 그녀는 기차표를 예약했습니다.

남해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박성희는 사건 개요를 읽었습니다.

열아홉 살 남학생. 흉기 상해. 피해자는 담임교사. 현행범 체포. 현재 진술 거부 상태.

그녀는 서류를 덮었습니다. 창밖으로 남부 지방의 겨울 들판이 지나갔습니다. 하늘은 낮고 무거웠습니다. 풍경은 소리 없이 빠르게 스쳐지나갔습니다. 박성희는 눈을 감지 않고 그 풍경을 바라보았습니다. 무언가를 느끼려는 것처럼, 혹은 무언가를 느끼지 않으려는 것처럼.

기차가 남해역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은 더욱 낮아지고 있었습니다.


제2장 — 침묵의 기록, 혹은 아무도 열지 않은 파일

박성희가 남해경찰서에 도착한 것은 사건 발생 이틀째 오후였습니다.

건물 입구에는 경비 직원이 앉아 있었고, 복도 끝에서 형광등이 미세하게 깜박이고 있었습니다. 그 깜박임은 일정한 주기가 아니었습니다. 불규칙했습니다. 박성희는 그 복도를 걸으면서 냄새를 맡았습니다. 오래된 건물 특유의 먼지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섞여 있었습니다. 경찰서라는 곳이 가진 냄새였습니다. 그녀는 이 냄새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국선 변호인으로 처음 임명된 것은 서른 살 때였습니다. 그 이후 다섯 해 동안 청소년 관련 사건을 열여섯 건 담당했습니다. 청소년 보호 시설에서의 자원봉사는 로스쿨 재학 중부터 시작해서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이 년간 이어졌습니다. 그 경험들이 그녀를 형사 사건 전문 변호사가 아닌, 청소년 인권 전문 변호사로 만들었습니다.

동민을 처음 만난 것은 접견실에서였습니다.

방은 좁았습니다. 테이블 하나, 의자 두 개. 벽면은 연한 베이지색으로 칠해져 있었지만 군데군데 손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동민은 박성희가 들어서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테이블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리듬이 있는 동작이었습니다. 일정했습니다.

박성희는 소리 없이 앉았습니다.

동민의 손가락 두드리는 소리가 테이블 위에서 조용히 울렸습니다. 톡, 톡, 톡. 박성희는 말을 꺼내지 않고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소리가 멈춘 것은 삼십 초쯤 지나서였습니다. 동민의 손이 멈추었고, 그제야 그는 천천히 눈을 들었습니다.

눈이 컸습니다. 충혈되어 있었습니다. 잠을 자지 못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박성희는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변호사 박성희. 오늘부터 동민의 국선 변호인을 맡게 되었다고. 동민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입이 열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응 자체가 없었습니다. 마치 소리를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박성희는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런 순간을 여러 번 겪어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서류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질문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테이블 위에 조용히 종이 한 장과 연필을 올려놓았습니다.

"말하기 어려우면 여기에 써도 됩니다."

동민은 종이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오 초, 십 초, 이십 초. 그리고 연필을 집었습니다.

종이 위에 적힌 것은 두 단어였습니다.

어머니. 보고 싶어요.

박성희는 그 두 단어를 읽고 서류 가방을 닫았습니다. 그날 접견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동민의 어머니 김정숙은 같은 날 오후 늦게 경찰서에 도착했습니다. 쉰한 살. 남해시 인근 어촌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여성이었습니다. 남편은 동민이 초등학교 삼 학년 때 사고로 사망했습니다. 그 이후 정숙은 혼자 동민을 키웠습니다. 식당 일은 새벽 다섯 시에 시작해서 밤 열 시에 끝났습니다. 동민이 자라면서 말이 점점 줄어들었을 때, 정숙은 그것이 사춘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동민이 학교에서 자주 사고를 쳤을 때, 정숙은 아이가 원래 그런 성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동민이 밤마다 귀를 틀어막고 잠을 못 자는 날들이 이어졌을 때, 정숙은 아이가 예민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숙이 처음으로 아이의 학교 상담 기록을 요청한 것은 동민이 중학교 이 학년 때였습니다. 하지만 담임교사는 "특별한 기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정숙은 그 말을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말은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록이 없었습니다. 기록을 만든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박성희는 경찰서 복도에서 정숙을 잠깐 만났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말은 많지 않았습니다. 정숙은 손수건을 손에 쥐고 있었고, 그것을 계속 만지작거렸습니다. 박성희는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절차를 간략히 설명했습니다. 정숙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은 복도 끝을 향해 있었습니다. 아들이 있을 방향이었습니다.

강준호 형사팀장은 그날 저녁 내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한 가지 사항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동민의 이전 학교 기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한성공업고등학교 입학 이후의 기록. 기록들은 전반적으로 단편적이었습니다. 결석 횟수, 성적 분포, 수상 이력, 상벌 기록. 그런데 한 가지 항목이 반복해서 나타났습니다. 상벌 기록 중 "징계 유보" 항목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두 차례, 고등학교 입학 후 세 차례. 사유는 모두 "교우 관계 문제"였습니다.

강준호는 그 항목 옆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징계 유보. 교우 관계 문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기록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사유가 너무 추상적이었습니다. 가해자인지, 피해자인지, 혹은 둘 다인지. 그것은 기록에 없었습니다. 강준호는 다음 날 학교 교감과 면담을 예약했습니다.

한성공업고등학교 교감 이명수는 예순 살이었습니다. 교직 생활 삼십오 년 차. 전임 교감이 정년퇴직한 자리를 이어받아 이 학교에 온 지 삼 년이 되었습니다. 그는 사건 발생 직후 교육청에 보고서를 제출했고, 학부모 대책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언론에는 "현재 경찰 조사에 협조 중이며 학교 차원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입장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모든 것을 그는 신속하게 처리했습니다. 이십 년 넘게 관료 조직 안에서 살아온 사람만이 가진 신속함이었습니다.

강준호가 면담에서 첫 번째로 요청한 것은 학교 폭력 관련 기록이었습니다.

이명수는 잠깐 멈췄습니다. 그 멈춤은 아주 짧았습니다. 일 초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강준호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학교폭력 신고 접수 기록, 상담 일지, 그리고 김동민 학생 관련 징계 심의 회의록 일체를 요청합니다."

이명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협조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자료를 준비해서 내일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내일. 강준호는 그 단어를 마음속에 새겼습니다.

다음 날 이명수가 제공한 자료 묶음은 얇았습니다. 학교폭력 신고 접수 건수는 해당 연도 기준 전교에서 총 두 건이었습니다. 둘 다 학생 간 언어 다툼이었고, 두 건 모두 당사자 간 합의로 종결되었습니다. 상담 일지는 전교 학생 이백십오 명 중 총 삼십 건이었습니다. 동민의 이름은 그 목록에 없었습니다. 징계 심의 회의록은 해당 연도 기준 한 건뿐이었는데, 내용은 교칙 위반 흡연 사안이었습니다.

강준호는 자료를 읽고 다시 이명수를 바라보았습니다.

"학교 내 시시티브이 열흘치 영상 원본을 확보하겠습니다. 영장을 받을 예정이니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명수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협조하겠다고 다시 말했습니다.

형광등 소리가 교감실 천장에서 희미하게 울렸습니다. 창밖으로 학교 운동장이 보였습니다. 철봉 그림자가 운동장에 길게 누워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운동장이었습니다.

그날 밤, 박성희는 숙소에서 동민의 의료 기록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국선 변호인으로서 요청 가능한 범위 내의 자료였습니다. 기록을 읽으면서 그녀는 손가락을 멈추었습니다.

동민은 초등학교 사 학년 때 처음으로 아동정신건강센터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담당 선생님의 소견서에는 "언어 표현 지연, 청각 자극에 대한 과민 반응, 감각 처리 어려움 의심"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소견서에는 전문적인 검사를 권유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그 검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정숙이 비용 문제로 후속 방문을 하지 않은 것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후 동민의 의료 기록은 감기, 치과 치료, 중학교 입학 전 건강 검진 등 일반적인 항목으로만 채워져 있었습니다. 정신건강과 관련한 기록은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박성희는 그 소견서의 날짜를 다시 확인했습니다. 십이 년 전이었습니다.

열 살 때의 소견서. 그 이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다시 들여다보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노트에 적었습니다.

감각 과민. 언어 표현 장애 의심. 전문 검사 미실시. 이후 지원 없음.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습니다.

아무도 몰랐는가, 아니면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는가.

창밖에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남해의 늦가을 비는 소리 없이 내리다가 갑자기 굵어졌습니다. 박성희는 커튼을 치지 않고 그 빗소리를 들었습니다. 유리창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 빗물이 흘러내리는 소리. 그 소리들 사이에서 그녀는 동민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테이블 위에 연필로 적은 두 단어.

어머니. 보고 싶어요.


제3장 — 피해자와 가해자, 그 경계에 대하여

검사는 이루어졌습니다.

사건 발생 나흘째 되던 날, 동민은 법원 명령에 의해 정신과 감정 평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경남대학교병원 소속 아동청소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황민준이었습니다. 사십이 세. 발달 장애와 감각 처리 장애를 전공으로 임상 경험 십오 년을 가진 의사였습니다. 그는 동민과 총 다섯 차례의 면담을 진행했고, 표준화된 행동 척도 검사 세 가지와 신경인지 기능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황민준이 작성한 감정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피검자는 감각 처리 통합의 어려움이 두드러지며, 특히 청각 자극과 신체 접촉에 대한 방어 반응이 임상적으로 유의미하게 관찰되었습니다. 언어를 통한 내적 상태 표현에 만성적인 어려움을 보이며, 이는 신경발달적 특성에서 기인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사건 당일 행동은 장기간 누적된 스트레스 환경 아래에서 발생한 자율신경계 과부하 반응으로 해석될 수 있으나, 이는 의학적 판단일 뿐 법적 책임 여부의 판단은 별개의 사안입니다.

보고서는 진단명을 직접 명기하지 않았습니다. 황민준은 명확한 진단보다 행동 패턴과 기능 수준을 기술하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박성희와의 면담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진단 이름을 붙이면 사람들은 그것만 봅니다. 하지만 제가 본 이 학생은 진단명 한 줄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십 년 동안 지원을 받지 못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이 보고서에 담으려 했습니다."

박성희는 그 말을 받아 적었습니다. 법정 증인 요청 대상으로 황민준의 이름을 먼저 올렸습니다.

한편, 검찰 측에서는 피해 교사 오재현의 진술 확보에 집중했습니다. 오재현은 부상 치료 후 퇴원하여 자택에서 조사를 받고 있었습니다. 담당 검사 최태수는 서른여덟 살. 서울 법대를 졸업하고 검사로 임관한 지 십 년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청소년 강력 사건 전담 팀에 있었고, 이번 사건을 단순 상해가 아닌 학교 내 교권 침해 중대 사안으로 접근했습니다.

최태수가 오재현으로부터 받은 첫 번째 진술 내용은 공식 기록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었습니다.

오재현 교사는 수업 중 작업 지시를 따르지 않는 동민에게 반복적으로 주의를 주었고, 동민이 이에 반응하지 않자 어깨를 가볍게 잡았습니다. 이후 동민이 갑자기 작업대 위의 공구를 집어 교사의 팔을 그었으며, 그 과정에서 소리를 질렀고 작업대를 뒤집었습니다. 교사는 즉각 상황을 통제하려 했으나 이미 부상을 입은 상태였습니다.

이 진술은 언론을 통해 부분적으로 유출되었습니다. 정확한 출처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윤서진 기자가 그 내용을 처음 접한 것은 익명의 경찰서 관계자 제보였습니다. 그녀는 기사를 쓰기 전에 확인 절차를 거치려 했습니다. 경찰에 공식 확인을 요청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학교 측에 문의했지만 "수사 중 사항에 대해서는 답변하기 어렵다"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윤서진은 결국 "관계자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기사를 올렸습니다.

기사 제목은 "교사 폭행 학생, 수업 중 갑자기 공구로 공격"이었습니다.

기사는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 순위에 "한성공고 교사 폭행"이 올랐습니다. 댓글은 수백 개가 달렸습니다. 대부분의 댓글은 동민에 대한 비난이었습니다. 일부는 소년법 폐지를 요구했습니다. 일부는 오재현 교사를 응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동민의 이름은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소년 보호의 원칙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해시 한성공고 3학년 학생"이라는 표현만으로도 학교 주변에서는 누구인지 알아채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동민의 고등학교 동기 중 한 명이 사회관계망서비스에 동민의 실명을 직접 언급하는 글을 올린 것은 사건 발생 사흘째였습니다. 그 글은 다음 날 삭제되었지만, 이미 수백 번 공유된 뒤였습니다.

박성희는 그 상황을 파악하고 법원에 보도 관련 임시조치 요청서를 제출했습니다. 법원이 조치를 결정하는 데까지는 며칠이 걸릴 것이었습니다. 그 며칠 동안 동민의 이름은 인터넷 곳곳에서 살아 숨쉬었습니다.

강준호는 한성공업고등학교의 시시티브이 영상 열흘치를 확보했습니다.

영상 분석을 시작한 것은 사건 발생 나흘째 오후였습니다. 분석을 담당한 것은 강준호 본인이었습니다. 경찰서 영상 분석실은 창문이 없는 작은 방이었습니다. 모니터 두 대, 선풍기 한 대, 빈 커피 캔 두 개. 강준호는 그 방에서 여섯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사건 당일 영상이 아니었습니다.

그 전 열흘간의 영상이었습니다.

복도 영상, 계단 영상, 학교 앞 출입문 영상. 강준호는 그것들을 천천히 돌려보았습니다. 동민이 등장하는 장면들을 중심으로 타임코드를 메모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한 장면에서 영상을 멈추었습니다.

사건 발생 사흘 전 오후 두 시 오 분. 복도에서 동민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 뒤를 세 명의 학생이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동민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영상에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몸짓은 보였습니다. 한 명이 동민의 배낭을 쳤습니다. 동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계속 걸었습니다. 다른 한 명이 동민의 어깨를 밀었습니다. 동민이 비틀거렸습니다. 세 번째 학생이 웃음을 터트렸습니다. 영상 안에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 웃음은 보였습니다.

동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냥 걸어서 화면 밖으로 사라졌습니다.

강준호는 그 장면의 타임코드를 메모하고 화면을 정지시켰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기록지에 천천히 적었습니다.

사건 발생 전 삼 일. 피의자에 대한 신체 폭력 정황. 가해 학생 특정 필요.

그는 그 세 명의 학생 얼굴을 확대해 인쇄했습니다. 그리고 화면 안에서 그들이 서 있는 방향을 확인했습니다. 복도 끝에 시시티브이가 있었습니다. 그 시시티브이의 방향이 마침 그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아주 운이 좋은 방향이었습니다. 혹은, 애초에 그 복도에는 시시티브이가 그것 하나뿐이었고, 그 방향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을 것이었습니다.

강준호는 영상 분석을 이어갔습니다. 다른 날들의 영상도 하나씩 돌려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학교 실습동 내부의 시시티브이 영상 중, 사건 당일을 포함한 이틀간의 영상 파일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파일 자체가 없었습니다.

서버 로그를 확인해 보니 그 시간대의 파일이 삭제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기록되지 않은 것으로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시스템 오류 코드가 남아 있었습니다. 오류 발생 시각은 사건 발생 하루 전이었습니다.

우연이라고 볼 수도 있었습니다.

강준호는 그것을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4장 — 재판 전야, 증거들이 말하기 시작하다

소년부 심리가 아닌 형사 재판으로의 이송 결정이 내려진 것은 사건 발생 삼 주 후였습니다.

박성희는 그 결정에 강하게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만 열아홉 살로 소년법 적용 대상이며, 피의자의 발달적 특성과 성장 환경을 고려하면 교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논리를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검찰 측은 피해자가 교사이고 흉기를 사용한 상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법원은 검찰의 입장을 받아들였습니다.

박성희는 짐을 남해시 숙소로 옮겼습니다. 이 사건이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경남지방법원 형사 제삼 단독 판사 김병찬이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김병찬은 오십삼 세. 판사 경력 이십오 년. 과거 서울 중앙지법에서 형사부를 담당하다가 지방으로 내려온 인물이었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증거 중심으로 판단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것이 이 사건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는 아직 알 수 없었습니다.

검사 최태수는 공소장을 준비하면서 피해자 오재현의 진술을 핵심으로 삼았습니다. 추가적으로 현장에 있던 다른 교직원 한 명의 진술도 확보했습니다. 행정실 직원 양미경. 사십오 세. 그녀는 사건 당일 실습동 복도에 있었으며, 비명을 듣고 실습실 문 앞으로 달려갔다가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지 못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최태수는 이 진술을 보강 증거로 채택했습니다.

박성희는 이 단계에서 핵심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녀가 선택한 방향은 무죄 주장이 아니었습니다. 사건의 인과관계와 맥락을 재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이 사건이 순간적인 폭력 행위가 아니라 장기간 방치된 환경이 만들어낸 결과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 내 폭력 상황의 실체를 드러내야 했습니다.

강준호가 확보한 시시티브이 영상 속 세 명의 학생은 빠르게 특정되었습니다. 같은 학년 3학년 학생들이었습니다. 최민재, 이준호, 박태현. 세 명 모두 열여덟, 열아홉 살이었습니다. 강준호는 세 명을 차례로 불러 조사했습니다.

최민재는 처음부터 영상에 찍힌 장면을 "가볍게 장난친 것"이라고 진술했습니다. 이준호와 박태현도 비슷한 말을 반복했습니다. "늘 그랬다", "동민이 그냥 넘어갔다",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는 표현들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들의 진술은 유사했습니다. 너무 유사했습니다.

강준호는 각각 다른 날, 다른 순서로 세 명을 불렀음에도 표현이 거의 같다는 점을 기록에 남겼습니다.

사전에 이야기를 맞춘 정황 있음.

세 학생의 부모는 모두 법적 조치를 두려워하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강준호가 학교 폭력 가해 조사라는 것을 분명히 했을 때, 이명수 교감이 직접 강준호에게 연락을 해왔습니다. "학교 측에서도 자체 조사를 진행 중이니 경찰의 조사가 학생들에게 과도한 심리적 압박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강준호는 그 연락을 무시했습니다.

박성희는 황민준 의사에게 정식으로 법정 증인 신청을 요청했습니다. 황민준은 동의했습니다. 그는 이 사건을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사례라고 판단했고, 단순히 개인의 병리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가 관여되어 있다는 소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공판 기일은 이듬해 일 월로 잡혔습니다.

그 사이, 두 가지 일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지역 신문사 기자 윤서진이 작성한 심층 기사였습니다. 그녀는 동민의 사건 배경을 추적하면서 학교 내부 관계자 한 명으로부터 비공식 제보를 받았습니다. 제보 내용은 충격적이었습니다. 학교 측이 동민에 관한 학교폭력 신고를 실제로 두 건 접수했지만, 이를 공식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구두 합의 형태로 처리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학교폭력예방법상 모든 신고는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보고되어야 하지만, 두 건 모두 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것이 제보자의 주장이었습니다.

윤서진은 이 내용을 기사로 쓰기 전에 학교에 공식 입장을 요청했습니다. 학교는 "사실무근"이라고 답했습니다.

기자는 기사를 썼습니다. 이번에는 "관계자에 따르면"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쓴 기사였습니다.

기사 제목은 "학교는 알고 있었다. 다만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다"였습니다.

두 번째는 동민의 어머니 정숙이 박성희를 찾아온 것이었습니다.

정숙은 손에 낡은 노트를 들고 있었습니다. 파란색 표지에 손때가 묻어 있는 학생용 노트였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박성희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애가 혼자 쓴 겁니다. 제가 몰랐어요. 방 청소하다가 찾았어요."

박성희는 노트를 열었습니다.

노트 안에는 날짜와 함께 짧은 문장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동민의 글씨였습니다. 또박또박하고 단정하지만 작은 글씨였습니다. 날짜는 일 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있었습니다.

"오늘 또 맞았습니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말해봐야 달라지는 것이 없으니까요."

"선생님한테 말하러 갔습니다. 선생님은 수업 중이라고 했습니다. 다음에 오라고 했습니다. 다음에 다시 갔습니다. 선생님은 없었습니다."

"오늘은 복도에서 제 배낭을 빼앗겼습니다. 기계 설계 노트가 안에 있었습니다. 노트를 돌려받지 못했습니다."

"실습실에서 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계는 소리를 지르지 않으니까요."

박성희는 노트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그녀의 손이 점점 조용해졌습니다. 숨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날짜만 있고 문장이 없었습니다. 사건 발생 하루 전 날짜였습니다. 날짜 옆에 작은 점 하나가 찍혀 있었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박성희는 노트를 덮고 천천히 정숙을 바라보았습니다.

정숙은 울고 있었습니다. 소리 없이. 손수건을 입에 대고.

박성희는 그날 밤, 그 노트를 들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이 사건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더 이상 "직감"이 아닌 "사실"로 알게 되었습니다.


제5장 — 법정, 진실이 부서지는 장소

일 월의 법정은 차가웠습니다.

경남지방법원 형사 제이 호 법정은 작은 편이었습니다. 방청석은 삼십 석 남짓. 판사석 뒤로 대한민국의 문장이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형광등 불빛은 차갑고 균일했습니다. 사람들의 얼굴을 그 불빛 아래에 놓으면 누구든 조금씩 창백해 보였습니다.

첫 공판이 열린 날, 방청석은 절반이 채워져 있었습니다. 정숙이 맨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윤서진 기자가 측면 자리에 앉아 수첩을 꺼냈습니다. 동민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상하 베이지색 법원 지급 점퍼를 입고 있었습니다. 눈은 테이블 위를 향해 있었습니다.

검사 최태수가 공소 요지를 낭독했습니다. 목소리는 또렷했고 느렸습니다.

피고인 김동민은 수업 중 담임교사의 정당한 지도를 거부하고, 실습용 도구를 이용하여 교사의 신체에 위해를 가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충동적 행위가 아니라 교육 환경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피해 교사는 현재도 신체적 후유증과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최태수의 목소리는 낭독 내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박성희가 반박 변론 요지를 제출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명확했습니다.

피고인은 장기간의 학교폭력 피해를 신고하였으나 학교 측으로부터 적절한 보호 조치를 받지 못하였고, 사건 당일 교사의 신체 접촉은 피고인에게 심각한 감각적 충격으로 작용하였음을 의학적으로 입증할 것입니다. 이 사건은 가해와 피해의 단순한 구도가 아닌, 반복적인 구조적 방치가 만들어낸 결과입니다.

방청석에 미세한 동요가 있었습니다.

피해자 오재현이 증인석에 선 것은 두 번째 공판일이었습니다. 그는 오른팔에 흉터가 있었습니다. 상처는 아물었지만 흔적은 남아 있었습니다. 증인석에 앉은 그는 차분해 보였습니다. 최태수의 주신문에 명확하게 답했습니다. 사건 당일 상황을 순서대로 설명했고, 어조에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는 교사로서 정당한 지도를 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습니다. 동민이 아무런 예고 없이 공구를 집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박성희의 반대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먼저 오재현의 교직 경력을 확인했습니다. 한성공업고등학교 부임 이 년 차. 이전에 다른 학교 근무 이력이 없다는 것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증인은 피고인이 감각 처리에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까."

오재현은 잠깐 멈추었습니다.

"알지 못했습니다."

"증인은 담임교사로서 피고인의 생활 기록부를 열람할 권한이 있었습니까."

"있었습니다."

"피고인의 이전 학교 기록 중 심리 지원 필요 소견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적이 있습니까."

"없었습니다."

"왜입니까."

"그런 기록이 있는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몰랐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담임교사로서 학생의 기록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말씀이십니까."

최태수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판사 김병찬이 박성희에게 눈을 돌렸습니다. 박성희는 질문의 방향을 조정했습니다.

"사건 당일 피고인의 어깨를 잡기 전에, 피고인에게 신체 접촉이 이루어질 것임을 미리 알렸습니까."

"수업 중에 그런 절차를 밟지는 않습니다."

"왜 그날 어깨를 잡았습니까."

"말을 해도 반응이 없어서, 직접 주의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피고인이 말을 들을 수 없었던 이유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법정이 잠시 조용해졌습니다. 오재현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김병찬 판사가 박성희를 향해 말했습니다. "변호인, 증인의 주관적 추정을 요청하는 질문은 지양하십시오."

"알겠습니다."

박성희는 잠깐 서류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증인은 사건 발생 전 삼 일, 복도에서 피고인이 다른 학생들로부터 신체적 접촉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까."

오재현의 얼굴에 변화가 있었습니다. 미세했습니다. 하지만 박성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박성희는 서류를 한 장 꺼내 법원 서기에게 제출 신청을 했습니다. 시시티브이 영상 캡처본과 타임코드였습니다.

"이 영상은 사건 발생 삼 일 전 오후 두 시 오 분에 촬영된 것입니다. 영상 안에 증인이 복도 끝에서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확인됩니다."

법정은 다시 한번 조용해졌습니다. 이번에는 더 무거운 정적이었습니다.

오재현은 영상을 보았습니다. 천천히 고개를 숙였습니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셨지만, 영상에는 증인이 있습니다. 증인은 그 상황을 보고 어떤 조치를 취하였습니까."

오재현은 길게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따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방청석에서 작은 소리가 새어 나왔습니다. 정숙이 입을 틀어막고 있었습니다.


제6장 — 반전의 반전, 감춰진 상담 기록

세 번째 공판일에 제출된 증거물이 법정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박성희는 재판 이틀 전, 강준호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강준호는 이번 수사에서 학교 내부 관계자의 비공식 협조를 통해 한 가지 문서를 입수했다고 했습니다. 해당 문서의 존재는 공식 기록에 없었습니다.

한성공업고등학교 상담실 비공개 기록물이었습니다.

상담실은 교내 공식 상담 일지 외에, 담당 교사가 개인적으로 보관하던 별도 노트가 있었습니다. 그 노트를 작성한 사람은 전 담당 상담 교사 류지은이었습니다. 류지은은 그 학기 초에 개인 사정으로 사직했고, 그녀가 떠나면서 그 노트는 상담실 서랍 안에 남겨졌습니다. 이명수 교감이 그 노트를 이후 처리했다고 진술했지만, 실제로 그것은 서랍 안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내부 협조자는 학교 행정실 직원이었습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노트를 강준호에게 건넸습니다.

노트 안에는 류지은이 동민과 진행한 상담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공식 상담 일지에는 동민의 이름이 없었지만, 비공개 노트에는 총 일곱 차례의 상담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날짜는 그해 사 월부터 칠 월까지였습니다. 마지막 상담 날짜는 류지은이 사직하기 이 주 전이었습니다.

노트의 내용 중 일부를 법정에서 박성희는 인용했습니다.

학생 김 모는 반복적으로 특정 학생들로부터 신체 접촉과 언어 폭력을 경험하고 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직접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했으며, 상담 초기에는 말 대신 직접 그림을 그려 상황을 표현했습니다. 상담 중 학교폭력 피해 신고 절차를 안내하였고, 학생은 신고 의사를 보였습니다. 학교폭력 관련 담당 부장교사에게 구두로 전달하였으나 이후 공식 접수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채 퇴직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개인적인 유감을 기록에 남긴다.

법정은 그 문장들이 낭독되는 동안 소리가 없었습니다.

최태수 검사가 즉각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증거 수집 과정의 적법성을 문제 삼았습니다. 정식 영장 없이 수집된 문서라는 지적이었습니다. 박성희는 해당 문서가 학교 내부에서 임의로 은닉된 공공 성격의 업무 기록이라는 점을 들어 반박했습니다. 김병찬 판사는 증거 채택 여부를 보류하고, 류지은 전 교사를 증인으로 소환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류지은이 증인석에 선 것은 그로부터 열흘 후였습니다.

현재 서른두 살. 퇴직 후 비영리 단체에서 청소년 심리 지원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증인석에 오르면서 딱 한 번 방청석의 정숙을 보았습니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류지은은 고개를 짧게 숙였습니다.

주신문에서 박성희가 물었습니다.

"증인이 작성한 비공개 상담 기록이 공식 상담 일지에 등재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류지은은 천천히 대답했습니다. 공식 일지 등재를 위해서는 당사자의 동의와 부장교사의 결재가 필요한 절차가 있었는데, 동민의 경우 내용의 민감성 때문에 먼저 부장교사에게 구두로 보고했다고 했습니다. 부장교사는 "좀 더 지켜보자"고 했습니다.

"'좀 더 지켜보자'는 말 이후에 어떤 후속 조치가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증인이 퇴직할 때 그 기록을 상담실에 남긴 이유는 무엇입니까."

류지은은 잠깐 멈추었습니다.

"후임 상담 교사가 확인할 수 있도록 남겼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말을 잇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엇입니까."

"후임 교사가 배치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상담실이 한 학기 동안 비어 있었습니다."

방청석 어딘가에서 누군가 낮게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최태수의 반대신문이 이어졌습니다.

"증인은 피고인이 신체적 위협을 행사할 가능성에 대해 상담 중 파악한 적이 있습니까."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증인의 상담 내용은 피해자 교사에 대한 위해 행위의 예측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류지은은 잠깐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습니다. 그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두 가지는 다릅니다."

법정 안에서 다시 한번 정적이 흘렀습니다.

김병찬 판사가 다음 기일을 공지했습니다. 그리고 폐정을 선언하기 전, 류지은에게 한마디를 했습니다.

"증인, 추가 자료가 있으면 제출하십시오."

류지은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방청석을 나서던 윤서진은 수첩에 빠르게 메모했습니다. 내일 기사 제목이 이미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상담실은 비어 있었다. 한 학기 내내."


제7장 — 피해자의 균열, 시스템의 고백

일곱 번째 공판일.

황민준 의사가 증인석에 앉았습니다.

법정 안은 그날 유독 조용했습니다. 바깥에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법원 건물 유리창에 빗소리가 낮게 울렸습니다. 황민준은 증인 선서를 하고 안경을 고쳐 쓴 뒤, 마이크 앞에 앉았습니다.

박성희의 주신문은 차분하게 시작되었습니다.

"피고인을 검사한 결과, 피고인의 상태를 어떻게 판단하셨습니까."

황민준은 전문적인 언어를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법정에서 전문 용어는 종종 의미를 가려버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설명했습니다. 이 학생은 소리에 극도로 민감합니다. 특히 예상치 못한 소리나 갑작스러운 신체 접촉에 공황에 준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의학적으로 확인됩니다. 이런 특성을 가진 사람이 반복적인 신체 위협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어느 시점에서 방어 반응이 통제 불가능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 사건에서 일어난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러한 특성이 학교 측에 알려졌더라면 사건을 방지할 수 있었겠습니까."

최태수가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가정적 질문이라는 이유였습니다. 판사는 이의를 받아들였습니다. 박성희는 방향을 바꿨습니다.

"이러한 신경발달적 특성을 가진 학생이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황민준이 대답했습니다.

"누적된 스트레스가 해소되지 않고 쌓입니다. 이 학생이 십 년 넘게 공식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기록으로 확인됩니다. 그 시간 동안 이 학생이 어떤 방식으로 버텨왔는지는 그 학생 본인만이 알겠지만, 의학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매우 오랜 시간 동안 물을 채운 댐이 마지막에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방청석에서 기침 소리가 한 번 났습니다. 그 외에는 소리가 없었습니다.

최태수의 반대신문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황민준에게 직접적으로 물었습니다.

"증인은 피고인의 행동이 어떤 의미에서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보십니까."

"의학적 판단의 영역을 벗어난 질문입니다."

"그렇다면 증인은 피고인의 행동이 의지적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입니까."

황민준은 잠깐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행동이 의지적이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지가 작동하는 환경 자체가 장기간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법적 면책의 근거가 됩니까."

"그것은 제가 판단할 사안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를 이해하지 않고 이 사건을 판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판사 김병찬이 메모를 했습니다. 박성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날 오후 검찰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최태수는 자신의 상급자인 지방검찰청 형사부장 검사에게 이 사건을 보고했습니다. 내용은 재판의 방향이 예상보다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형사부장은 사건의 사회적 파장을 고려하여 구형을 명확히 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최태수는 그 지시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그는 사건을 다시 검토했습니다. 학교 측의 기록 은폐 정황, 상담 기록 미등재, 시시티브이 파일 오류. 이것들이 피고인의 유죄를 희석시키지는 않는다고 그는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이 사건의 배경이 단순하지 않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최태수는 밤 늦게 혼자 사무실에 남아 공소 유지 전략을 재검토했습니다. 그 시간, 사무실 창밖에는 남해의 밤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후, 예상치 못한 증인이 법정에 나타났습니다.

이명수 교감이었습니다.

검찰 측 증인으로 신청된 이명수는 원래 학교의 정상적인 운영과 사고 대응 절차를 증언하기 위해 서게 되어 있었습니다. 최태수가 준비한 신문 내용은 학교가 정상적인 학교폭력 예방 시스템을 운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향이었습니다.

하지만 박성희의 반대신문이 시작되었을 때,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교감 선생님, 류지은 전 상담교사로부터 피고인에 관한 학교폭력 구두 보고를 받은 적이 있습니까."

이명수가 대답했습니다.

"직접 받은 적은 없습니다. 담당 부장교사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담당 부장교사는 그 내용을 교감에게 보고했습니까."

"기억나지 않습니다."

"교감의 기억에는 없다는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지난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학교폭력 기록 일체를 요청했을 때, 교감이 제출한 자료에는 해당 사안이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까."

"그렇습니다."

"왜 포함되어 있지 않았습니까."

"공식 접수된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박성희는 잠깐 멈추었습니다. 법정 전체가 그 침묵 속에 있었습니다.

"교감 선생님,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 측이 인지한 모든 학교폭력 관련 사안을 공식 접수 여부와 관계없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이명수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알고 있었습니다."

법정 안이 흔들렸습니다. 실제로 흔들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공기가 바뀌는 것이, 앉아서 보는 모든 사람이 느꼈습니다.

정숙은 뒷자리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윤서진의 손이 수첩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제8장 — 판결, 그리고 남은 질문들

판결 기일은 이 월 마지막 주 목요일로 잡혔습니다.

그 전날 밤, 박성희는 남해 숙소에서 짐을 챙겼습니다.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이튿날이 지나면 이 도시를 떠나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짐을 챙기다가 멈추었습니다. 노트 하나가 손에 잡혔습니다. 동민이 쓴 노트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이 사건을 진행하면서 정리한 메모 노트였습니다. 첫 장에는 남해에 도착한 날 날짜가 적혀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에는 법정에서 나온 문장들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상담실이 한 학기 동안 비어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습니다."

박성희는 노트를 닫았습니다.

판결이 선고되는 법정은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취재진의 카메라가 법원 앞에 늘어섰습니다. 윤서진도 그중에 있었습니다. 방청석 뒷자리에는 정숙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중년 여성이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여성은 류지은이었습니다.

피해자 오재현은 법정에 오지 않았습니다.

동민은 피고인석에 앉아 있었습니다. 평소보다 조금 더 꼿꼿하게. 눈은 여전히 테이블 위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이전보다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습니다.

김병찬 판사가 판결문을 펼쳤습니다.

판사의 목소리는 법정에서의 모든 날들 중 가장 느렸습니다.

피고인 김동민에 대한 특수상해 혐의에 대하여.

법원은 먼저 사건의 기본 사실을 정리했습니다. 교사에게 실습 공구를 이용하여 상해를 입혔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피고인도 인정한 사항입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사건의 배경에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음을 인정합니다.

하나, 피고인은 신경발달적 특성으로 인해 감각 자극에 대한 방어 반응이 일반적 수준을 현저히 초과하며, 이는 공신력 있는 전문의의 감정에 의해 확인되었습니다.

둘, 피고인은 재학 기간 중 반복적인 또래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이에 대한 학교의 인지와 보호 조치가 법적 의무에 미치지 못했음이 증거에 의해 인정됩니다.

셋, 상담 기록의 미등재와 후속 상담 지원의 공백은 학교폭력예방법이 요구하는 학교의 의무와 상충합니다.

넷, 사건 당일 발생한 신체 접촉은 피고인의 신경발달적 특성에서 볼 때, 피고인에게 심각한 심리적 충격으로 작용했을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판사의 목소리가 여기서 잠깐 멈추었습니다.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법정 전체에 울렸습니다.

법원은 이 사건을 단순 폭력 행위로만 판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원의 역할은 사회적 구조의 실패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난 법률적 행위에 대해 판단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법원은 다음과 같이 선고합니다.

피고인 김동민에 대하여, 특수상해죄를 적용함에 있어 형사 책임은 인정됩니다. 다만 피고인의 연령, 신경발달적 특성, 사건에 이르게 된 구조적 환경, 그리고 사건 이후 피고인이 보여준 태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징역 일 년에 집행유예 이 년을 선고합니다. 아울러 전문 심리치료 이십사 회 이상 이수를 부과합니다.

그리고 법원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학교 당국의 학교폭력예방법 의무 위반 사항에 대해 교육청과 관련 기관에 감사를 권고합니다.

법정은 소리 없이 진동했습니다.

동민은 판결을 듣는 동안 고개를 들지 않았습니다. 집행유예라는 말이 낭독될 때, 그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에서 한 번 가볍게 움직였습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정숙은 류지은의 손을 잡고 있었습니다.

박성희는 기록을 정리하면서 눈을 들어 동민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였습니다.

판결이 끝나고 법정이 해산되는 시간, 박성희는 복도에서 동민과 잠깐 마주쳤습니다.

그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박성희를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충혈된 눈이었습니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한 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이전에 없던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박성희는 정확하게 특정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접견실에서 마주친 눈과는 달랐습니다.

동민은 그냥 걸어나갔습니다.

박성희는 그 뒷모습을 잠깐 바라보다가, 방향을 돌렸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조용히, 각자의 자리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명수 교감은 교육청 감사를 받았습니다. 감사 결과 학교폭력예방법 의무 위반이 인정되어 징계 절차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최종적으로 견책 처분을 받았습니다. 일부에서는 그 처분이 너무 가볍다고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교사 개인에게 과도한 책임을 묻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양쪽 다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오재현은 판결 이후 학교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병가를 낸 뒤 이듬해 봄에 의원면직 처리되었습니다.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오른팔 흉터가 아물었는지 어땠는지도, 기록에는 없습니다.

류지은은 비영리 단체에서 청소년 심리 지원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했습니다. 그녀는 그 뒤로 상담 노트를 서랍에 넣지 않았습니다. 상담 내용을 반드시 공식 시스템에 등록하고, 담당자가 교체될 때 반드시 인수인계를 확인하는 원칙을 스스로 세웠습니다. 그 원칙은 지금도 지켜지고 있습니다.

황민준 의사는 이 사건 이후 청소년 신경발달 특성과 학교 환경에 관한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논문은 학교 현장의 특수 교육 지원 체계 부재를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분석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논문은 교육부 정책 연구 참고 자료로 채택되었습니다. 정책이 실제로 바뀌었는지는 별개의 이야기입니다.

강준호 형사팀장은 이 사건 이후에도 남해경찰서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가끔 퇴근 후 혼자 남아 예전 사건 파일을 들여다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해결된 사건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들을 다시 읽었습니다. 놓친 것이 없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놓쳤을지도 모르는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윤서진 기자는 이 사건을 심층 보도한 기사 시리즈로 지역 언론 보도상을 받았습니다. 수상 소감을 묻는 자리에서 그녀는 말했습니다. 좋은 기사는 사건이 끝난 뒤에도 질문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이 사건이 자신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었다고.

김동민은 집행유예 기간 동안 의무 심리치료를 이수했습니다. 황민준 의사가 직접 담당했습니다. 치료 과정에서 동민은 점차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어 단위로, 이후에는 문장으로. 그가 가장 오래 이야기한 주제는 기계였습니다. 금속이 어떻게 깎이는지, 설계도가 어떻게 실제 부품으로 바뀌는지. 황민준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메모를 했습니다. 치료 기록이 아니라, 진심으로 흥미롭다는 메모였습니다.

집행유예 기간이 끝날 무렵, 동민은 지역 금속 가공 소규모 업체에 취직했습니다. 그 업체 사장은 그의 실력을 채용 면접에서 알아보았다고 했습니다. 동민이 손으로 직접 그린 설계도를 가져왔고, 사장은 그것을 보고 오 분 만에 결정을 내렸다고 했습니다.

정숙은 여전히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다섯 시에 시작해서 밤 열 시에 끝나는 하루였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아들이 말이 없어도 사춘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주말 저녁이면 아들 옆에 앉아 그가 그린 설계도를 함께 바라보았습니다. 무슨 그림인지 이해하지 못해도, 옆에 앉아 있었습니다.

박성희는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사무실 책상 위에는 새로운 의뢰서들이 쌓여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것들을 하나씩 열었습니다. 그리고 매번 첫 장을 읽으면서 같은 것을 떠올렸습니다. 취조실에서 동민이 연필로 쓴 두 단어.

어머니. 보고 싶어요.

그 두 단어는 그녀에게 무언가를 계속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그 순간 두 단어밖에 쓸 수 없었다고. 그것이 그의 한계가 아니라, 아무도 그에게 더 많은 말을 가르쳐주지 않았던 시간의 결과라고.


이 이야기는 끝났지만, 이 이야기가 말하는 것들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어느 학교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복도를 걷고 있습니다. 아무 말 없이. 말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말해봐야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일찍 배운 사람처럼.

상담실은 오늘도 어느 학교에서는 비어 있습니다.

기록은 쌓이고, 혹은 쌓이지 않습니다.

시스템은 존재하고, 혹은 이름만 존재합니다.

그 차이가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를 이 이야기는 이제 당신에게 묻습니다.

누가 그 침묵을 먼저 들었어야 했는가.

그리고, 당신이라면 들을 수 있었겠는가.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