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는 1860년 러시아 남부의 작은 항구 도시 타간로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의사이자 작가였으며, 짧고 정교한 단편소설로 인간 내면의 복잡함을 해부하듯 그려낸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그가 살았던 19세기 말 러시아는 귀족 사회가 서서히 무너지고 새로운 중산층이 등장하던 전환의 시대였습니다. 사람들은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 사랑과 의존, 외로움과 소속감 사이에서 흔들렸습니다. 체호프는 그 흔들림을 조용히 포착했습니다. 「귀여운 여인」은 1899년 발표된 작품으로, 사랑하는 대상에 따라 자신의 존재를 통째로 바꾸어가는 한 여인의 삶을 담담하게 그려냅니다.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함께 걸어가 보시겠습니다.
볼가 강의 지류가 도시 끝자락을 조용히 감싸 흐르는 작은 마을에, 올렌카라는 이름의 여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성은 플레먀니코바였지만, 그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올렌카라고 불렀고, 그 이름은 어쩐지 그녀의 둥글고 부드러운 얼굴과 꼭 어울렸습니다.
올렌카는 아버지의 집 마당 한쪽에 자리한 낡은 별채에 살고 있었습니다. 집 앞쪽으로는 목재로 지어진 작은 담장이 있었고, 뒤쪽으로는 오래된 사과나무 몇 그루가 늘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여름이면 그 나무들이 무성한 잎을 펼쳐 별채 창문에 서늘한 그늘을 드리웠고, 가을이면 붉은 사과들이 담장 너머로 하나둘 굴러 떨어지곤 했습니다. 올렌카는 그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청년이 되었으며, 이제 스물두 살의 나이로 아버지 없이 혼자 그 집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보기 드물게 온화한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눈은 맑고 커다란 것이, 흐린 날에도 어딘가 빛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뺨은 항상 살짝 붉었고, 입술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늘 가볍게 열려 있었습니다. 그녀의 표정에는 아무런 긴장이 없었습니다. 마을 어귀에서 빨래를 널다가 이웃 여인과 눈이 마주쳐도, 시장 골목에서 낯선 행상인을 지나쳐도, 그녀의 얼굴에서는 언제나 같은 따스함이 흘러넘쳤습니다. 그 온기가 어찌나 자연스럽고 진했던지, 처음 만나는 사람도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느끼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두고 '귀여운 여인'이라 불렀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외모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 속에는 그녀의 성격 전체가, 그녀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 전체가 담겨 있었습니다. 올렌카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랑이 그녀의 숨결이었고, 사랑이 그녀의 언어였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에는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아버지가 기침을 하면 그녀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곁에서 등을 두드렸습니다. 아버지가 친구들을 불러 카드 놀이를 하는 날이면, 올렌카는 부엌에서 잼을 끓이고 과자를 구워 그들의 상 위에 슬그머니 내놓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그 사랑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라, 마치 강물이 새로운 수로를 찾아 흐르듯, 다른 방향으로 서서히 흘러갔습니다.
그녀는 고모를 사랑했습니다. 고모는 멀리 살았지만, 올렌카는 한 달에 두 번씩 손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편지마다 고모의 건강을 걱정하는 문장이 가득했고, 마지막에는 반드시 고모가 좋아하는 절임 오이나 말린 무화과를 상자에 넣어 함께 보냈습니다. 고모가 답장을 늦게 보내면 올렌카는 며칠 동안 불안해하며 혼자 뜰을 서성였습니다.
그녀는 이웃의 노인도 사랑했습니다. 노인은 다리가 불편해 시장에 나가기 어려웠는데, 올렌카는 매주 목요일마다 자신의 장바구니에 노인의 몫까지 담아 돌아왔습니다. 노인이 고마워하며 손을 잡으면, 올렌카는 그 온기에 금세 눈물이 고였습니다.
그런 그녀였습니다. 사랑할 대상이 있을 때만 살아 있는 것처럼 숨을 쉬는 여인. 하지만 그것이 그녀에게 의식적인 선택이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올렌카는 자신이 그런 사람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웠고, 누군가를 돌보는 것이 호흡만큼이나 당연했습니다.
봄이 오고 나뭇잎이 돋아날 무렵이었습니다. 올렌카의 집 옆 마당 너머로 붉은 외벽의 목조 건물이 있었습니다. 그 건물은 '티볼리'라는 이름의 소규모 야외 극장으로, 여름이면 연극단이 들어와 공연을 올리고 가을이면 조용해지는 곳이었습니다. 올렌카는 어린 시절부터 그 건물의 붉은 벽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며 자랐습니다. 그 건물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될 거라고는, 그 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쿠킨이라는 남자가 티볼리 극장의 임차인으로 들어온 것은 그해 봄이 끝나갈 무렵이었습니다. 그는 모스크바에서 내려온 사람으로, 작은 체구에 노란 피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는 가늘고 날카로운 편이었으며, 말을 할 때면 항상 무언가에 불만이 있는 사람처럼 미간을 찡그렸습니다. 그는 극장 운영을 맡아 배우들을 불러 모으고, 공연 순서를 짜고, 입장권을 팔고, 야외 의자와 무대 조명을 직접 손봐야 했습니다. 혼자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탓에, 그는 늘 피곤해 보였습니다.
올렌카는 어느 날 저녁, 뜰에서 사과나무 아래에 앉아 책을 읽다가 울타리 너머에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쿠킨이 담장 쪽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또 비가 오려나. 매일 비야, 비. 지난주도 비 때문에 관객이 반도 안 왔어. 이러다 문 닫을 판이야."
올렌카는 그 말을 들으며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작고 지친 그 남자가 하늘을 향해 넋두리를 늘어놓는 모습이, 어쩐지 가슴 한구석을 건드렸습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울타리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습니다.
"많이 힘드시겠네요."
쿠킨은 고개를 돌려 올렌카를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이웃 여인이라고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올렌카의 눈빛은 진심이었습니다. 위로를 건네려는 인사치레가 아니라, 정말로 그의 고통을 느끼는 눈빛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저녁마다 울타리 곁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쿠킨은 매일 불평을 했고, 올렌카는 매일 그 불평을 받아들었습니다. 비가 오면 "당신이 안타깝네요"라고 말했고, 공연이 잘 풀리면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올렌카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냥 어느 저녁, 그가 담장 너머로 손을 흔들며 다가왔을 때, 그녀의 심장이 평소와 다르게 뛰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쿠킨과 올렌카는 그해 가을 결혼했습니다. 식은 조용했습니다. 마을 교회에서 가까운 이웃들이 모인 가운데 혼인 서약이 이루어졌고, 피로연은 올렌카의 집 뜰에서 열렸습니다. 사과나무 아래에 긴 식탁을 펴고 붉은 포도주와 절임 채소를 가득 올렸습니다. 쿠킨은 여전히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올렌카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결혼 첫날 밤, 올렌카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습니다. 곁에서 조용히 숨을 쉬는 쿠킨의 얼굴을 바라보며, 자신이 이 사람을 평생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물결처럼 밀려왔습니다. 그 생각은 의무가 아니었습니다. 기쁨이었습니다.
결혼 이후 올렌카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삶이 쿠킨의 삶이 되었습니다. 티볼리 극장의 세계가 통째로 그녀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아침마다 그녀는 쿠킨과 함께 극장으로 나섰습니다. 매표소 창구를 닦고, 의자 먼지를 털고, 무대 뒤편에 쌓인 소품들을 정리했습니다. 배우들이 도착하면 차를 끓여 내왔고, 분장 도구가 부족하다고 하면 직접 시내 상점을 돌아 구해 왔습니다. 그녀는 이 모든 일을 즐거움으로 했습니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올렌카는 매표소 안쪽에 앉아 입장권을 받고 자리를 안내했습니다. 관객들이 자리를 잡고 무대에 불이 켜지면, 그녀는 무대 뒤 어두운 복도에 서서 공연을 지켜보았습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장면에서 그녀도 함께 웃었고, 슬픈 장면에서 그녀는 손수건을 꺼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이 나가는 동안 그녀는 쿠킨 곁에 서서 그날 무대가 어떠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2막이 특히 좋았어요. 관객들이 집중하는 게 느껴졌어요."
쿠킨은 여전히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에게 세상은 항상 극장을 위협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비가 오면 관객이 줄었고, 경쟁 극장이 새 프로그램을 올리면 타격이 왔습니다. 배우들은 자주 다투었고, 공연 비용은 수입보다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사람들이 진지한 예술을 원하지 않아. 그냥 웃기고 가벼운 거만 찾는다고. 이 도시는 문화적으로 너무 낙후돼 있어."
올렌카는 그의 말에 진심으로 동의했습니다. 아니, 동의한 것이 아니라 그의 생각이 곧 그녀의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차이가 있다면, 동의는 자신의 의견이 있되 타인의 말을 수용하는 것이지만, 올렌카가 경험한 것은 그 이전의 자신의 의견이 사라지고 그의 의견이 자신의 것으로 채워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웃 여인이 찾아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연극 얘기가 나오면, 올렌카는 쿠킨의 말투로, 쿠킨의 논리로, 마치 자신이 극장 운영에 대해 평생 고민해온 사람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요즘 관객들은 진지한 연극을 보려 하지 않아요. 웃음만 원하는 거지요. 그러니 극장이 어떻게 예술을 지키겠어요."
이웃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올렌카가 남편의 의견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 여인인지 감탄했습니다.
올렌카는 행복했습니다. 극장 일이 고되어도, 쿠킨이 투덜거려도, 그녀는 그 모든 것이 좋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곁에 사람이 있었고, 밤에 잠들기 전에 누군가에게 오늘 하루를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할 대상이 있다는 것, 그것이 올렌카에게는 삶 그 자체였습니다.
봄이 지나 다시 여름이 왔습니다. 쿠킨은 배우 섭외를 위해 모스크바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그는 며칠이면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올렌카는 역에서 그를 배웅하며 손을 흔들었습니다. 기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녀는 발걸음을 돌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뜰의 사과나무는 이미 초여름의 무성한 잎을 펼쳐 두었습니다.
며칠이 지났습니다. 쿠킨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았습니다. 올렌카는 기다렸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오지 않았습니다. 불안함이 커지기 시작했을 즈음, 낯선 사람이 집을 찾아왔습니다. 모스크바에서 내려온 심부름꾼이었습니다. 그는 편지 한 장을 건네주고 아무 말도 없이 돌아갔습니다.
올렌카는 편지를 받아 들었습니다. 손이 떨렸습니다. 천천히 봉투를 열었습니다. 짧은 글이었습니다. 쿠킨이 모스크바에서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심장이었습니다. 의사는 오래된 심장 질환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올렌카는 편지를 들고 뜰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사과나무 잎이 바람에 흔들렸습니다. 그녀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소리는 울음이기도 했고, 비명이기도 했습니다. 이웃들이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올렌카는 침대에 누웠지만 잠들지 못했습니다. 방안에는 쿠킨의 외투가 걸려 있었고, 탁자 위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보던 공연 프로그램 종이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종이를 손에 들고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장례는 모스크바에서 치러졌습니다. 올렌카는 혼자 기차에 올라 장례식장으로 갔습니다. 관 앞에 서서 그녀는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울음은 이미 다 울었습니다. 눈물이 마른 자리에 무거운 고요가 들어앉았습니다.
올렌카는 홀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티볼리 극장에는 새 임차인이 들어올 것이었습니다. 쿠킨과 함께 쌓아온 세계는 단 한 통의 편지로 끝났습니다. 그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던 것이, 심장 하나가 멈추는 것으로 모두 사라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첫날 밤, 올렌카는 텅 빈 집을 천천히 걸어 다녔습니다. 부엌, 거실, 침실, 뜰. 어디에도 그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사과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오래도록 어둠을 바라보았습니다. 별이 많은 밤이었습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사랑을 다 쏟아낼 곳이 없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가장 무거운 고통이었습니다.
쿠킨이 세상을 떠난 지 석 달이 지났습니다. 올렌카는 여전히 상복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 석 달은 그녀에게 마치 잿빛 안개 속을 걷는 것과 같았습니다. 장을 보러 시내에 나가도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게 들렸고, 식탁에 앉아도 밥맛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무언가를 생각하려 해도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웃 여인들이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올렌카는 그 말들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하지만 그 말들이 그녀의 가슴 속 어디엔가 닿기 전에,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상실이 너무 큰 나머지, 위로조차 착지할 자리를 찾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가을 오후 푸스토발로프라는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바실리 안드레이치 푸스토발로프는 목재 상인이었습니다. 마을 변두리에 큰 목재 창고를 가지고 있었고, 인근 마을까지 목재를 납품하는 꽤 안정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은 남자였습니다. 목소리는 낮고 천천히 말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무게가 있었습니다.
그는 쿠킨이 쓰던 티볼리 극장 옆 창고 쪽 부지를 임차하는 문제로 올렌카를 찾아왔습니다. 아버지 시절부터 그 부지의 일부가 플레먀니코바 가문 소유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계약 조건을 이야기했습니다.
푸스토발로프는 간결하게 말했습니다. 숫자를 정확히 제시했고, 조건을 명확히 짚었습니다. 올렌카는 그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계약은 짧은 시간 안에 마무리되었습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설 때, 올렌카는 차를 한 잔 더 마시고 가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잠깐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앉았습니다.
두 번째 잔의 차가 놓인 탁자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사무와 관계없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올렌카는 쿠킨의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를 잃은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푸스토발로프는 말없이 들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상실은 사람을 단단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 말이 올렌카의 가슴 어딘가에 조용히 내려앉았습니다. 위로를 건네려는 수식어도 없었고, 감정을 과장하려는 몸짓도 없었습니다. 그냥 그 말 한 마디였습니다. 그것이 어쩐지 진짜 같았습니다.
그 뒤로 푸스토발로프는 이따금 올렌카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부지와 관련된 서류 문제로, 그다음에는 특별한 이유 없이.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올렌카 곁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올렌카는 그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그의 넓은 등, 굵은 손가락, 목재 창고에서 오는 소나무 냄새가 그에게서 풍겼습니다. 쿠킨이 가늘고 신경질적이었다면, 푸스토발로프는 단단하고 느렸습니다. 그 차이가 올렌카에게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안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들은 이듬해 봄, 결혼했습니다.
올렌카는 다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번에도 조용한 식이었지만, 이웃들이 더 많이 모였습니다. 쿠킨과의 결혼이 급작스러운 열정으로 시작된 것이었다면, 푸스토발로프와의 결혼은 조용하고 차분하게 무르익어 온 것이었습니다.
결혼한 뒤 올렌카의 삶은 다시 한번 변했습니다. 이번에는 목재 사업의 세계가 그녀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목재 창고의 사무를 함께 맡았습니다. 거래처 장부를 정리하고, 납품 일정을 확인하고, 목재 가격의 시세를 파악했습니다. 처음에는 낯선 숫자들과 나무의 종류가 혼란스러웠지만, 몇 달이 지나자 그녀는 소나무와 전나무의 가격 차이를, 건축용과 연료용 목재의 구분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이웃 여인들이 찾아오면 올렌카는 이야기했습니다.
"요즘 목재 값이 많이 올랐어요. 소나무는 어느 산지에서 들어오느냐에 따라 질이 달라지거든요. 건축용으로는 북쪽 지방 것이 좋고, 난방용은 상관없지요."
이웃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올렌카가 또 남편 일에 완전히 녹아들었다고 생각했지만, 딱히 이상하다고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이 올렌카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푸스토발로프는 올렌카의 그런 점을 좋아했습니다. 아내가 사업을 함께 이해하고, 거래처 사람들과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창고 일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이 그에게는 행복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이가 좋았습니다. 크게 웃거나 어딘가 넘치지 않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고요하고 따뜻했습니다.
겨울 저녁이면 창고 옆 사무소에서 함께 장부를 정리했습니다. 난로가 타오르는 소리와 연필 소리가 방 안에 가득 찼습니다. 차가 식어갈 즈음 올렌카가 새 찻물을 끓여 오면, 푸스토발로프는 잠시 연필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시선에는 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올렌카는 그 침묵이 따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6년을 살았습니다. 조용하고 안정된 6년이었습니다. 올렌카는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쿠킨과의 결혼이 불꽃처럼 타오르는 것이었다면, 푸스토발로프와의 결혼은 오래 타오르는 숯불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숯불도 언젠가는 꺼지는 법이었습니다.
푸스토발로프는 목재 창고에서 일하다 감기에 걸렸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아 보였습니다. 기침이 심해져도 그는 창고를 쉬지 않았습니다. 일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올렌카는 약을 준비하고, 목에 두를 수건을 데우고, 기침이 날 때 마실 꿀물을 끓였습니다. 하지만 기침은 점점 깊어졌고, 어느 날 밤부터 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의사가 불려왔습니다. 폐렴이었습니다. 올렌카는 그의 곁을 한 시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밤을 새워 이마의 땀을 닦았고, 약을 먹이고, 손을 잡고 앉아 있었습니다. 푸스토발로프는 열 속에서도 간간이 눈을 떠 올렌카를 바라보았습니다.
나흘이 지났습니다. 다섯째 날 새벽, 그는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뜨지 않았습니다.
올렌카는 그의 손을 잡은 채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손이 점점 차가워졌습니다. 바깥에서는 아직 새벽 어둠이 가시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상이었습니다. 두 번째 검은 상복이었습니다. 두 번째 텅 빈 집이었습니다.
올렌카는 창고를 정리했습니다. 거래처 사람들이 조의를 표하며 찾아왔고, 장부를 마무리하는 데 몇 달이 걸렸습니다. 그 일을 마치고 나서,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습니다.
집은 예전과 같았습니다. 뜰의 사과나무도 그대로였고, 별채의 창문도 그대로였습니다. 봄이 오면 꽃이 피었고, 여름이 오면 잎이 무성해졌습니다. 세상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계절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올렌카는 달라졌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도 오늘 해야 할 일을 알 수 없었습니다. 쿠킨과 살 때는 극장이 있었고, 푸스토발로프와 살 때는 창고가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필요로 하는 것이 있었고, 그 필요를 채우는 것이 그녀의 하루를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아무도 그녀를 필요로 하지 않았습니다.
올렌카는 장을 보러 시내에 나갔습니다. 이웃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녀도 인사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시장 한 바퀴를 돌면서 열 번도 넘게 발을 멈추고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제는 장바구니를 들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웃 여인 하나가 물었습니다.
"요즘 어때요. 올렌카. 얼굴이 많이 야윈 것 같던데."
올렌카는 괜찮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대답이 자신에게도 낯설었습니다. 예전에 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그녀는 극장 이야기를 하거나 목재 가격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 이야기들이 자신의 것이었고, 자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올렌카는 뜰에 앉아 책을 읽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글자들이 눈앞에서 떠다니기만 하고 의미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뜨개질을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실이 엉키고 나서 다시 풀 의욕이 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습니다. 사과나무에서 붉은 사과들이 한두 개씩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올렌카는 그 사과들을 주워 담으며 생각했습니다. 예전에 쿠킨은 이 사과로 잼을 담가달라고 했습니다. 푸스토발로프는 이 사과를 말려서 겨울 내내 차에 넣어 마셨습니다. 이제는 아무도 그 사과를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사과 바구니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잼을 담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냄비에 물을 올리고, 사과를 씻고, 껍질을 벗겼습니다. 설탕을 넣고 잘 저었습니다. 잼이 다 되어 병에 담을 즈음, 그녀는 이 잼을 누가 먹을 것인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웃들은 올렌카가 변했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예전의 그녀는 어디서나 이야기가 넘쳤습니다. 생기가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조용했습니다. 너무 조용했습니다. 마치 몸은 있는데 사람이 없는 것 같다고 어떤 이는 말했습니다.
그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올렌카는 자신이 점점 비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랑이 그녀를 채워주는 것이었다면, 사랑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빈자리가 무겁고 차가웠습니다.
겨울이 되었습니다. 눈이 내렸습니다. 올렌카는 난로 앞에 앉아 오래도록 불을 바라보았습니다. 불꽃이 흔들릴 때마다, 그 흔들림이 쿠킨의 목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푸스토발로프의 낮은 숨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불이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일기를 써보려 했습니다. 펜을 들고 종이 앞에 앉았습니다. 하지만 첫 줄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오늘 나는, 이라고 썼다가 멈추었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했습니까. 무엇을 느꼈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무것도.
봄이 다시 왔습니다. 눈이 녹고 흙냄새가 올라왔습니다. 올렌카는 뜰로 나와 사과나무 아래를 쓸었습니다. 겨울 동안 쌓인 낙엽들을 한쪽으로 긁어 모았습니다. 등이 땅에 가까이 낮아질 때마다, 흙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그녀의 코를 찔렀습니다.
스미르닌이라는 남자가 맞은편 집에 세를 들어왔습니다. 블라디미르 플라토니치 스미르닌. 그는 군인이었다가 전역하고 지금은 지방 시청 관할의 수의 검역 업무를 맡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서른다섯쯤 되어 보이는 나이였고, 키는 보통이었으나 얼굴에는 어딘가 피곤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내와 함께였습니다. 하지만 이웃들은 곧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부부가 사이가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아내는 자주 친정으로 갔고, 돌아왔다가 다시 가는 패턴이 반복되었습니다. 부부 사이에 오간다는 이야기는 담장 너머로도 들릴 만큼 때로 날카로웠습니다.
올렌카는 그들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했습니다. 부부가 서로를 다치게 하는 것을 보는 일은 늘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스미르닌이 혼자 뜰에 나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올렌카는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이웃인데요. 한번 인사나 할까 해서요."
스미르닌은 고개를 들었습니다. 올렌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녀의 얼굴에 담긴 따뜻함이 그에게도 전해졌는지, 그는 짧게 웃었습니다. 피곤함이 담긴 웃음이었지만, 진심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담장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미르닌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가축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한 검역, 병든 동물의 처리, 농가를 돌며 가축 상태를 점검하는 일들. 올렌카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것은 올렌카가 오랫동안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일. 그녀의 몸속 어딘가에서,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것이 조금씩 깨어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미르닌은 이후로도 가끔 올렌카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내가 친정에 가고 없는 날이면 더 자주 그녀의 집 쪽으로 건너왔습니다. 올렌카는 차를 내왔고, 저녁이면 간단한 음식을 나누었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조심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스미르닌에게 아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조심스러움이 두 사람이 서로의 곁에 있는 것을 막지는 않았습니다.
올렌카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그것은 서서히, 자신도 모르게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오지 않는 저녁에 그녀는 창문 곁에 서서 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저녁 어스름 속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가슴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스미르닌의 세계가 그녀의 세계로 스며들었습니다.
올렌카는 이웃들과 이야기할 때 가축 전염병 이야기를 했습니다. 검역의 중요성을, 도축장 위생 관리가 얼마나 소홀한지를, 수의사들이 얼마나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이웃들은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것이 올렌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세 번째 사랑에는 그늘이 있었습니다.
스미르닌의 아내가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친정에 갔다가 돌아오는 패턴이 이어졌고, 부부 사이의 분위기는 들쑥날쑥했습니다. 올렌카는 스미르닌이 아내와 함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창문 너머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창문을 닫고 방 안으로 돌아와 조용히 앉았습니다.
그것은 아팠습니다. 이전의 두 사랑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팠습니다. 쿠킨과 푸스토발로프를 잃은 것은 갑작스런 단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스미르닌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완전히 그녀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 애매함이 더 오래 지속되는 통증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스미르닌이 찾아와 말했습니다. 전근 명령이 났다고. 다른 지방으로 가야 한다고. 아내와도 결국 완전히 헤어지기로 했다고.
올렌카는 그 말을 들으며 무엇을 느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그 둘이 섞인 것인지. 아내와 헤어진다는 것은 어쩌면 기회처럼 들릴 수도 있었지만, 전근이 간다는 것은 그가 멀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스미르닌은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올렌카는 며칠 동안 그의 짐 싸는 것을 도왔습니다. 옷을 개고, 책을 묶고, 그릇을 포장지에 쌌습니다. 두 사람은 말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 침묵 속에 많은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떠나는 날 아침, 스미르닌은 올렌카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습니다.
"고마웠소."
그 말뿐이었습니다. 마차가 골목을 돌아 사라졌습니다.
올렌카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먼지가 가라앉고, 바퀴 소리가 멀어지고, 새 한 마리가 담장 위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올랐습니다.
세 번이었습니다. 세 번의 사랑이었고, 세 번의 이별이었습니다. 올렌카는 집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습니다. 마당은 조용했습니다.
올렌카는 이제 혼자 집을 지키는 중년의 여인이 되었습니다. 뜰의 사과나무는 조금 더 굵어졌고, 별채 벽의 목재는 낡아서 몇 군데 페인트가 벗겨졌습니다. 올렌카는 봄마다 벽을 새로 칠했습니다. 혼자서 사다리를 가져다 놓고, 붓을 들고, 꼼꼼하게 색을 입혔습니다. 할 일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습관처럼 하루를 채워나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뜰을 쓸었습니다. 장을 보러 갔습니다. 점심을 차려 먹었습니다. 오후에는 채소밭을 가꾸었습니다. 저녁에는 난로 앞에 앉았습니다. 그 순서가 매일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하루하루 속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웃들은 그녀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한때 그 마을에서 가장 살뜰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던 올렌카가, 이제는 말수가 줄고, 표정이 가라앉고, 거리에서 마주쳐도 짧게 인사하고 지나치는 여인이 되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이웃은 올렌카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전에는 그 여인 옆에 있으면 무언가 따뜻한 것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냥 평범한 사람 같아."
올렌카는 그 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이 점점 보통의 사람이 되어간다는 것을. 아니, 보통보다 더 적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습니다. 잠들면 그냥 잠드는 것이고, 깨면 그냥 깨는 것이었습니다. 쿠킨과 살 때는 꿈속에서도 극장 무대 위를 걷는 꿈을 꾸었습니다. 푸스토발로프와 살 때는 꿈속에서 목재 냄새가 나는 창고를 걷는 꿈을 꾸었습니다. 스미르닌과 함께하던 때는 꿈속에서 넓은 들판에 가축들이 뛰어다니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아무 꿈도 꾸지 않았습니다.
어느 가을 저녁이었습니다. 올렌카는 뜰에 앉아 낙엽이 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나무에서 잎이 하나씩 떨어질 때마다, 소리 없이 땅에 내려앉았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오래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 내 삶도 이와 같지 않은가. 하나씩 떨어지고, 소리 없이 사라지고.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그 생각이 슬프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이 더 이상하다고 그녀는 생각했습니다. 슬퍼야 하는데 슬프지가 않다는 것이.
겨울이 지나고 이른 봄이 왔습니다. 땅이 녹기 시작하고 처마에서 눈 녹은 물이 떨어졌습니다. 올렌카는 창고를 열어 봄 청소를 시작했습니다. 오래된 물건들을 꺼내 정리하다가, 쿠킨이 쓰던 공연 프로그램 묶음을 발견했습니다. 종이가 누래지고 가장자리가 부스러졌습니다. 그 위에는 쿠킨의 필체로 메모가 가득했습니다. 관객 수, 음향 문제, 배우 이름, 다음 공연 계획.
올렌카는 그것을 오래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상자 안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푸스토발로프의 장부도 나왔습니다. 그의 굵은 글씨로 적힌 목재 단가와 거래처 이름들. 올렌카는 그것도 한참 바라보다가 장부 옆에 놓인 연필 한 자루를 손에 들었습니다. 그 연필 끝이 뭉툭하게 닳아 있었습니다. 푸스토발로프가 마지막으로 쓰던 연필이었습니다.
청소를 마치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길에, 올렌카는 맞은편 집을 바라보았습니다. 스미르닌이 살다 간 집. 지금은 다른 가족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창문에 새 커튼이 걸려 있었고, 아이들이 뜰에서 뛰어다녔습니다.
올렌카는 그 아이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웃음소리가 담장 너머로 넘쳐 흘렀습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미소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마차 한 대가 골목으로 들어왔습니다. 낡은 마차였지만 짐이 많이 실려 있었습니다. 마차가 멈춘 것은 스미르닌이 살던 집 앞이었습니다. 마차에서 내리는 사람을 올렌카는 무심코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멈추었습니다.
스미르닌이었습니다.
그는 몇 해 전보다 조금 더 야위었고, 머리카락이 조금 더 희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익숙한 걸음걸이와, 외투를 걸치는 방식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는 마차에서 짐을 내리다가 시선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올렌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스미르닌은 손을 들었습니다. 인사였습니다. 올렌카도 손을 들었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마차에서 내린 것은 짐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열 살 남짓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마차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눈이 컸습니다. 그 아이가 달려가 스미르닌의 손을 잡았습니다.
"아빠, 여기가 새 집이에요?"
스미르닌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올렌카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가슴 안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것이, 아이의 목소리 한 마디에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사샤였습니다. 알렉산드르 스미르닌. 하지만 아버지도, 마을 사람들도, 올렌카도 그 아이를 사샤라고 불렀습니다.
스미르닌은 전근지에서 이혼을 마무리하고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그의 아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를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스미르닌은 아들을 혼자 키우며 다시 이 마을에서 수의 검역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올렌카는 그 사정을 이웃들에게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감각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 감각이 돌아왔습니다.
며칠이 지난 뒤 올렌카는 잼 한 병과 직접 만든 빵을 들고 맞은편 집 문을 두드렸습니다.
스미르닌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의 표정에 잠깐 놀람이 스쳤다가, 이내 따뜻해졌습니다.
"오랜만이오."
올렌카는 잼과 빵을 내밀었습니다.
"이사하느라 정신없으실 것 같아서요."
집 안에서 사샤가 뛰어 나왔습니다. 올렌카는 그 아이의 얼굴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크고 맑은 눈, 빠르게 움직이는 손발, 무언가 물어보고 싶은 듯 쳐다보는 시선. 올렌카는 그 아이를 바라보며 가슴 안에서 무엇인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름이 뭐야."
"사샤요."
"몇 살이야."
"열 살요. 아니, 곧 열한 살이에요."
"학교는 다니고 있어."
"네. 근데 여기 새 학교가 어디 있는지 몰라요."
올렌카는 그날 이후 사샤의 학교 문제를 스미르닌과 함께 알아보았습니다. 마을 학교의 위치를 확인하고, 등록 절차를 안내하고, 필요한 서류가 무엇인지 시청에 가서 직접 물어보았습니다. 스미르닌이 업무 때문에 바쁜 날이면, 올렌카가 사샤를 데리고 학교에 가서 담임 선생님께 인사를 시켰습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시작된 일이었습니다. 의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시작된 것이, 어느새 올렌카의 하루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사샤는 활기차고 호기심 많은 아이였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맞은편 올렌카의 집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습니다. 오늘 배운 것, 친구와 있었던 일, 선생님이 한 말, 점심으로 무엇이 나왔는지를 빠르게 쏟아냈습니다. 올렌카는 부엌에서 간식을 준비하며 그 모든 말을 들었습니다.
"올렌카 아주머니, 오늘 수학 시험이 있었는데요, 분수를 틀렸어요."
"분수? 어떻게 틀렸어."
"분모가 다를 때 더하는 방법을 몰랐어요."
올렌카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종이와 연필을 꺼내 아이 옆에 앉았습니다.
"이렇게 하는 거야. 분모를 같게 만드는 게 먼저야."
그 순간 올렌카는 무언가를 느꼈습니다. 설명하는 행위 자체에서 오는 기쁨이었습니다. 아이가 고개를 끄덕이고, 연필을 들고 직접 써보고, 맞았을 때 눈을 밝히는 것을 보는 기쁨이었습니다.
올렌카는 사샤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사랑은 이전의 것들과 달랐습니다. 남편을 향한 사랑, 연인을 향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올렌카에게는 어쩌면 가장 깊은 사랑이었습니다. 상대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분명했고, 자신이 그 필요를 채워줄 때 기쁨이 분명했습니다.
사샤의 세계가 올렌카의 세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학교 이야기를 했습니다. 요즘 어린이들에게 수학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선생님들이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는지, 학교 급식 문제가 어떠한지. 이웃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올렌카가 돌아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귀여운 여인이, 다시 살아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스미르닌은 그런 올렌카에게 고마워했습니다. 그는 혼자 아이를 키우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일이 일찍 끝나는 날은 직접 사샤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검역 일이 늦어지는 날이면 아이가 혼자 집에 있어야 했습니다. 그 빈자리를 올렌카가 채워주었습니다.
하지만 스미르닌은 올렌카에게 선을 그었습니다. 그는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태도가 분명히 전했습니다. 그녀를 고마운 이웃으로, 아들을 돌봐주는 따뜻한 어른으로 여길 뿐이었습니다. 올렌카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알면서도 그것이 괜찮았습니다. 이번에는 그 이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원하기보다는 이미 받고 있는 것이 충분했습니다.
어느 여름 밤이었습니다. 더위가 풀리지 않아 창문을 열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올렌카는 그날도 한참을 뒤척이다가 눈을 감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맞은편 집에서 사샤가 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두운 밤에 아이가 잠꼬대를 하며 우는 소리였습니다.
올렌카는 침대에서 일어났습니다. 발걸음이 빨라졌습니다. 가운을 걸치고 맞은편으로 건너갔습니다. 문을 두드리자 스미르닌이 나왔습니다. 그도 아이 소리를 듣고 일어난 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사샤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는 꿈을 꾸며 울고 있었습니다. 올렌카는 아이 곁에 앉아 이마를 쓸어주었습니다.
"괜찮아. 여기 있어. 여기 있잖아."
그 말에 사샤의 울음이 멎었습니다. 꿈속에서도 그 목소리가 닿은 것처럼, 아이가 조용해졌습니다. 올렌카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스미르닌은 문 옆에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표정은 어두웠지만, 그 어둠 안에 무언가 고마운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이후로 사샤는 가끔 올렌카의 집에서 자고 갔습니다. 스미르닌이 출장을 다녀오는 날이면, 아이가 혼자 집에 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올렌카는 아이를 위해 저녁을 차렸습니다.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아침에 학교 갈 준비를 도왔습니다.
그 일들이 그녀의 하루를 가득 채웠습니다.
어느 날 아침, 사샤가 학교에 가고 나서 올렌카는 혼자 뜰에 앉았습니다. 사과나무에서 작은 새 한 마리가 노래했습니다. 따뜻한 아침이었습니다. 올렌카는 차 한 잔을 손에 들고 그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느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살아 있는 것 같다는 것을. 아주 오랜만에, 진심으로.
하지만 그 평화가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올렌카는 알고 있었습니다. 스미르닌은 언제든 다시 전근을 갈 수도 있었습니다. 사샤는 자라날 것이었습니다. 자라난 아이는 더 이상 이웃 아주머니의 손을 잡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올렌카는 그것을 생각하다가, 차를 한 모금 마셨습니다.
지금은 지금이었습니다. 지금 이 뜰에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지금 저 나무에 새가 앉아 있었습니다. 지금 맞은편 집에서 사샤의 책가방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올렌카는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습니다. 바람이 불어와 사과나무 잎을 흔들었습니다. 그 소리가 마치 오래된 노래처럼 뜰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체호프는 「귀여운 여인」을 통해 묻습니다. 사랑은 자아를 완성하는가, 아니면 자아를 지우는가. 올렌카는 사랑할 때마다 살아났지만, 그 사랑은 매번 자신이 아닌 타인의 세계로 그녀를 데려갔습니다. 극장, 목재, 가축, 수학. 그것들은 모두 그녀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대상이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이 이야기는 의존적 사랑의 초상화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그 사람의 삶 전체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표현될 때, 그 사랑은 아름다운 동시에 위태롭습니다. 체호프는 올렌카를 비웃지 않습니다. 오히려 깊은 연민으로 바라봅니다. 그녀가 텅 비었을 때 가장 쓸쓸하고, 사랑할 때 가장 빛났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기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당신은 당신 자신으로 살아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