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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책방

사막의 기도/ 십자군과 초승달의 이야기

by 제 4의 창 2026. 4. 5.

https://youtu.be/8mVx1v4c3WY

사막의 바람이 말하는 것들

지금으로부터 약 구백 년 전, 지중해 동쪽 끝자락에 위치한 도시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 도시의 이름은 예루살렘이었습니다.

황금빛 돔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오래된 돌벽마다 수백 년의 기도가 스며든 곳이었습니다. 세 종교의 신자들이 각자의 신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고, 향 연기와 사막 먼지가 뒤섞인 골목길에는 셀 수 없는 언어들이 흘러다니는 도시였습니다.

아침이면 교회 종소리가 울렸습니다. 그 위로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를 알리는 목소리가 높이 퍼졌습니다. 오래된 유대교 회당 앞에서는 희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기도문을 중얼거렸습니다. 세 개의 목소리는 예루살렘의 하늘에서 하나로 뒤섞였다가 흩어졌습니다. 마치 서로를 알아보기를 거부하면서도, 결코 완전히 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이 도시는 아름다웠습니다. 동시에 이 도시는 언제나 피로 얼룩져 있었습니다.

돌 하나하나에 기억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어떤 돌은 정복자의 손으로 쌓인 것이었고, 어떤 돌은 패자의 피로 물든 것이었습니다. 수백 년의 시간이 그 돌들 위를 지나갔고, 돌들은 묵묵히 그 모든 것을 품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돌은 단순한 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욕망과 신앙이 굳어진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신의 이름으로 이 도시를 원했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이 도시를 지키려 했고, 신의 이름으로 이 도시를 빼앗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신은 그 어느 쪽의 손도 들어주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 도시의 성벽은 무너지고 또 세워지기를 반복했으며, 정복자들은 피정복자가 되었고, 그렇게 순환은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께 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이것은 역사책에 기록된 위대한 왕들이나 교황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보다 훨씬 작은 이야기입니다. 두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서로 다른 신을 섬기고,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하며, 서로 다른 하늘 아래 태어난 두 남자. 그러나 같은 땅 위에서, 같은 도시를 바라보며, 같은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의 이름은 로베르였습니다. 프랑스 서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십자가를 등에 지고 동쪽으로 걸어온 젊은 기사였습니다. 그는 신앙이 강했고, 용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자신 안에 있는 어둠이었습니다. 어둠이란 늘 그런 것입니다. 빛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 그림자도 짙습니다.

또 한 사람의 이름은 타리크였습니다. 다마스쿠스 인근 마을에서 태어나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든 젊은 전사였습니다. 그는 가족을 사랑했고, 땅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알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자신이 지키려 한 것이 과연 신의 뜻인가, 아니면 인간의 욕망인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은 전쟁이 끝난 뒤에야 비로소 그를 찾아왔습니다.

사막의 바람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바람은 두 사람의 이름을 모래 속에 새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마치 이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그 끝을 알고 있는 것처럼.

바람은 또 이런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가장 극한의 상황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진짜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을. 전쟁터는 인간을 짐승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바람은 그 역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자, 이제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시작됩니다.


제 1장: 십자가와 초승달

서기 십이세기, 유럽의 한 항구도시에서 배 한 척이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새벽 안개가 항구를 덮고 있었습니다. 밧줄 매는 소리, 갑판 위에 짐을 싣는 소리, 병사들의 낮은 목소리들이 뒤엉켜 부두를 가득 채웠습니다. 횃불 여러 개가 물 위에 흔들리는 빛을 떨구고 있었고, 그 빛은 파도를 따라 끊임없이 일렁였습니다. 바다 냄새와 송진 냄새, 그리고 철 냄새가 한데 섞인 새벽이었습니다.

부두에는 수백 명의 병사들이 늘어서 있었습니다. 쇠사슬 갑옷이 새벽빛을 받아 차갑게 번쩍였습니다. 갑판 위에서는 깃발들이 바람에 펄럭였고, 그 위에는 하나같이 붉은 십자가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로베르는 그 군중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스물두 살이었습니다. 키가 크고 어깨가 넓었으며, 갈색 머리카락이 이마 위로 흘러내려 있었습니다. 그의 눈은 짙은 회색이었는데, 마치 폭풍이 오기 전 하늘의 색깔 같았습니다. 그 눈에는 열정이 가득했습니다. 그 열정이 과연 신앙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향한 갈망인지는, 아마 로베르 자신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열세 살 때 처음 검을 잡았습니다. 마을의 노기사에게서 검술을 배웠고, 열일곱에 기사 서임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보다 이른 나이에 먼 땅에서 전사했습니다. 아버지의 얼굴을 로베르는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섬겼던 신앙을, 그 신앙이 담긴 십자가를, 그는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어쩌면 이 원정이 그에게 아버지를 찾는 여정이기도 했는지 모릅니다.

"로베르, 준비됐느냐?"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 기사인 아르노였습니다. 서른이 넘은 베테랑 병사였고, 이미 두 번의 원정에서 살아남은 사람이었습니다. 얼굴에는 오래된 상처 하나가 왼쪽 뺨에서 턱까지 비스듬히 내려와 있었습니다. 그 상처는 첫 번째 원정에서 얻은 것이었습니다. 아르노는 그 상처에 대해 말하지 않았습니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준비됐습니다." 로베르가 짧게 대답했습니다.

"두렵지 않느냐?"

로베르는 잠시 멈췄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두려움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무언가가 가슴 속에서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는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보다 소명이 더 강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아르노가 낮게 웃었습니다. 그 웃음 속에는 무언가 씁쓸한 것이 섞여 있었습니다.

"소명." 아르노가 그 단어를 되뇌었습니다. "그래, 우리 모두 그 말을 했지. 첫 번째 원정을 떠날 때도, 두 번째 원정을 떠날 때도. 그러나 막상 성벽 앞에 서면, 소명이란 단어는 바람처럼 사라지고 남는 것은 오직 살아남아야 한다는 본능뿐이더구나."

"그래도 우리는 가야 하지 않습니까." 로베르가 말했습니다.

아르노가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습니다. 그리고 그저 어깨를 두드려주었습니다. 그것이 아르노가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대답이었습니다.

로베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았습니다. 저 너머 어딘가에 예루살렘이 있었습니다. 신의 도시. 모든 기도가 향하는 방향. 그 도시를 위해 자신의 검을 들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배가 서서히 출항하기 시작했습니다.

부두에 남은 사람들이 손을 흔들었습니다. 어떤 여성은 울고 있었습니다. 어떤 노인은 눈을 감은 채 기도문을 읊었습니다. 갑판 위의 병사들은 뒤를 돌아보지 않으려 했습니다. 돌아보면 마음이 흔들릴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로베르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앞만 보았습니다. 안개 너머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바다는 잔잔했습니다. 그러나 그 잔잔함은 오래가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한편, 그 같은 시각, 예루살렘으로부터 북쪽으로 며칠 거리 떨어진 사막 도시에서 타리크는 칼을 갈고 있었습니다.

흙벽돌로 지은 집이었습니다. 지붕은 낮고 천장에 매달린 등잔 하나가 가느다란 빛을 내고 있었습니다. 집 밖에서는 간간이 낙타 울음소리가 들려왔고, 사막 바람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와 등잔불을 흔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방 안의 그림자들이 춤을 추듯 일렁였습니다.

숫돌 위에서 쇠가 긁히는 소리가 밤공기를 갈랐습니다. 타리크의 손은 능숙했습니다. 이 일을 수백 번 반복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그 자신은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형." 뒤에서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열다섯 살 된 동생 유수프였습니다. 형과 닮은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훨씬 부드러웠습니다. 아직 전쟁이 무엇인지 온전히 알지 못하는 눈이었습니다. 그 눈에는 형에 대한 걱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걱정을 감추려 했지만 감추어지지 않는 그런 눈.

"자야 할 시간이다." 타리크가 말했습니다. 칼갈기를 멈추지 않으면서.

"형도 자야지요. 내일 출발이라고 했잖아요."

타리크는 잠시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칼날을 들어 달빛에 비추어 보았습니다. 날이 잘 서 있었습니다. 이 칼이 무엇을 베게 될지, 그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유수프, 너는 이번에 따라오면 안 된다." 그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싸울 수 있어요. 아버지가 가르쳐 주셨잖아요."

"아버지는 네가 살아있기를 원하셨을 거다." 타리크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감정이 배어 나왔습니다. "전쟁은 배운 대로 되지 않아. 나는 네가 거기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유수프가 다가와 형의 옆에 앉았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습니다. 등잔불이 흔들렸습니다. 두 형제의 그림자가 흙벽 위에서 함께 흔들렸습니다.

"형은 꼭 돌아와야 해요." 유수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명령이 아니라 간청이었습니다.

타리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손이 잠시 동생의 어깨 위에 얹혔습니다. 말보다 무거운 침묵이었습니다.

"형은 두렵지 않아요?"

타리크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칼집에 칼을 꽂았습니다. 그리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별들이 가득했습니다. 별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전쟁이 나든, 평화가 오든.

두렵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었습니다. 두렵다고 말하면 동생을 더 불안하게 할 것이었습니다. 타리크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자거라." 그것이 그의 대답이었습니다.

두 청년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같은 도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아직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한 채. 아직 서로의 눈을 들여다볼 날이 오리라는 것도 모른 채.

운명이란 그런 것입니다. 당사자에게는 언제나 느닷없이 찾아옵니다.


제 2장: 불타는 성벽

여러 달이 지났습니다.

로베르가 탄 배는 동쪽 해안에 닿았고, 십자군은 긴 행군 끝에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섰습니다. 그 여정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혹독했습니다. 사막의 열기는 갑옷 속을 용광로처럼 달구었고, 물은 언제나 부족했으며, 질병이 무기보다 더 많은 병사들을 쓰러뜨렸습니다.

행군 중에 로베르는 많은 것을 보았습니다. 벌레 먹은 빵을 나누어 먹는 병사들, 열사병으로 길가에 쓰러진 동료들, 어딘지도 모르는 땅에서 눈을 감는 사람들. 그들이 죽을 때 입술에 오른 말은 고향의 이름이거나, 어머니의 이름이거나, 신의 이름이었습니다. 때로는 그 셋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걸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신의 도시를 향해.

드디어 그 날이 왔습니다. 먼지 너머로 예루살렘의 성벽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날. 로베르는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황토색 성벽이 지평선 위에 솟아 있었고, 그 뒤로 황금빛 돔이 석양빛을 받아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수천 명의 병사들이 그 광경 앞에서 침묵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의 침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래 상상해 왔던 것이 마침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 찾아오는, 말을 잃게 만드는 종류의 감동이었습니다.

병사들 사이에서 누군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자 다른 병사들도 하나둘씩 따라 꿇었습니다. 로베르도 그렇게 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왜 눈물이 나는지도 모르면서.

그러나 그 감동은 곧 다른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공방전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벽에서 화살이 쏟아졌습니다. 돌덩이들이 투석기로부터 날아와 지면에 박혔습니다. 불덩이가 아치를 그리며 하늘을 가로질렀습니다. 병사들이 쓰러졌습니다.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로베르는 방패를 들고 앞으로 달렸습니다. 옆에서 아르노가 외쳤습니다.

"성벽 가까이 붙어라! 성벽에 가까울수록 화살이 미치지 못한다!"

그는 달렸습니다. 땅이 흔들렸습니다. 바로 앞에서 병사 하나가 화살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로베르는 잠깐 멈추었다가 다시 달렸습니다.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공기 속에 피 냄새가 배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쇠 냄새와 흙먼지 냄새와 뒤섞여 코를 찔렀습니다. 발밑의 땅이 무언가에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로베르는 그것이 무엇인지 내려다보지 않았습니다. 내려다보면 달리기를 멈출 것 같아서였습니다.

성벽 안쪽에서는 타리크가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는 성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수천 명의 십자군이 개미떼처럼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숫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성벽은 두꺼웠고, 수비군의 사기는 아직 높았습니다.

타리크는 성루를 따라 빠르게 이동하며 지시를 내렸습니다. 성벽의 약한 구간을 보강하고, 화살 보급이 원활하도록 연결선을 정비하고, 부상자를 즉시 후방으로 이송하도록 했습니다. 그의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이 정확했습니다. 두려움을 행동으로 누르는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기름을 더 가져와!" 그가 소리쳤습니다. "공성탑이 가까워지고 있다!"

십자군이 거대한 목조 공성탑을 밀며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안에는 병사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고, 탑 꼭대기에서 성벽으로 연결되는 도개교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불을 질러라!"

타리크의 명령과 함께 불붙은 기름단지들이 공성탑을 향해 날아갔습니다. 목재에 불이 붙었습니다. 순식간에 불꽃이 타올랐습니다. 탑 안에 있던 병사들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이 인간이 내는 소리라는 것을 타리크는 알고 있었습니다. 불타는 목재 안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살과 피를 가진 사람이 내는 소리라는 것을. 그 소리가 그의 귓속에서 오래 남을 것임을 그는 이미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음 명령을 내렸습니다. 전쟁에서는 그래야 했습니다.

며칠 간의 교전이 계속되었습니다. 성벽 밖에서는 십자군이, 성벽 안에서는 수비군이 각자의 방식으로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두 개의 기도는 같은 하늘을 향해 올라갔지만, 내용은 정반대였습니다.

밤이면 두 진영 모두 불을 피웠습니다. 성벽 밖의 불빛과 성벽 안의 불빛이 마주 보며 어둠을 갈라놓았습니다. 어느 불빛이든 그 앞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지침, 두려움, 그리고 그럼에도 다음 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의지.

그리고 마침내 성벽의 한 구간이 무너졌습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이었습니다. 북쪽 성벽 모퉁이, 오래된 하수도 위에 축조된 약한 부분이 공성 망치 앞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십자군이 그 틈으로 밀려들었습니다.

도시가 혼돈에 빠졌습니다.

로베르는 무너진 성벽 사이를 뚫고 들어갔습니다. 좁은 골목길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사람들이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이 아니었습니다. 민간인들이었습니다. 여성들, 아이들, 노인들.

로베르의 발이 멈추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기대했던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적의 병사들과 싸우러 온 것이었습니다. 신의 도시를 되찾으러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있는 것은 그저 겁에 질린 사람들뿐이었습니다.

어린아이 하나가 그의 앞에서 넘어졌습니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였습니다. 아이는 울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눈을 크게 뜨고 갑옷 입은 낯선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눈에는 공포가 아닌 순수한 의아함이 담겨 있었습니다. 마치 이것이 무슨 상황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로베르, 왜 서 있느냐!" 뒤에서 아르노가 소리쳤습니다. "앞으로 가라!"

그는 다시 달렸습니다. 그러나 그 골목길에서 본 눈빛들은,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그 날 밤, 전투는 이어졌습니다. 도시의 좁은 골목들에서, 시장통에서, 사원 앞뜰에서. 로베르는 싸우면서 자신이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는 정확히 말할 수 없었지만, 그것은 아마도 순수한 확신이었을 것입니다.

확신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사람은 두 가지 선택 앞에 섭니다. 더 강하게 믿으려 애쓰거나, 아니면 흔들리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로베르는 그날 밤 그 선택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어느 쪽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제 3장: 우물가의 대화

도시가 함락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전투는 아직 산발적으로 이어지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수비군은 이미 도시를 빠져나갔거나 항복했습니다. 승자들은 도시를 나누어 관리하기 시작했고, 패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했습니다.

정복 이후의 도시는 전투 중의 도시와는 다른 냄새를 풍겼습니다. 화약과 피 냄새 대신, 뒤집힌 살림살이들과 버려진 음식들이 부패하는 냄새가 골목마다 배어들었습니다. 버려진 신발 한 짝, 흩어진 그릇 파편들, 뜯긴 채 나뒹구는 옷가지들. 사람들이 살던 자리의 잔해는, 전쟁터의 잔해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처량했습니다.

로베르는 정찰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도시 동쪽 구역은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좁은 골목들 사이에는 항복하지 않은 병사들이 숨어 있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로베르는 두 명의 병사를 데리고 그 구역을 훑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우물이 있는 작은 광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멈추었습니다.

광장은 네 개의 골목이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가운데 우물이 있었고, 우물 주변으로 돌이 둥그렇게 쌓여 있었습니다. 담쟁이덩굴 하나가 그 돌 위를 기어올라 있었습니다. 무너진 도시 한가운데에서 그 덩굴만은 여전히 녹색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처럼.

우물 옆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습니다. 부상당한 남자였습니다. 왼쪽 팔에 천이 감겨 있었고, 그 천은 이미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수비군의 복장이었습니다.

남자는 로베르를 보았습니다. 로베르도 남자를 보았습니다.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습니다.

뒤에 있던 병사가 칼을 뽑았습니다. "처리하겠습니다, 기사님."

"기다려." 로베르가 말했습니다.

그는 남자를 자세히 보았습니다. 스물 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나이였습니다. 얼굴에는 먼지와 피가 뒤섞여 있었고, 눈에는 분노도 공포도 아닌 무언가가 담겨 있었습니다. 그것은 체념 같기도 했고, 또 어떤 면에서는 기묘한 평온함 같기도 했습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로베르가 아랍어로 물었습니다.

남자가 눈을 가늘게 떴습니다. 기사가 자신의 언어로 말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습니다.

"타리크." 남자가 대답했습니다.

로베르가 잠시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그리고 칼을 칼집에 꽂았습니다.

"로베르다. 나는."

"알고 싶지 않습니다." 타리크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목소리에 적의는 없었습니다. 그저 피곤함뿐이었습니다.

뒤에 있던 병사가 소근거렸습니다. "기사님, 이자는 적군입니다. 포로로 잡거나 처리해야 합니다."

"너희들은 먼저 돌아가거라." 로베르가 말했습니다. "나는 잠시 후에 가겠다."

병사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했지만, 결국 명령에 따라 골목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로베르는 타리크 맞은편 우물가에 앉았습니다. 두 남자 사이에 침묵이 다시 내려앉았습니다.

"왜 도망치지 않았느냐." 로베르가 물었습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독백처럼.

타리크는 잠시 우물 안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부상 때문입니다. 더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구나."

"당신은 왜 나를 죽이지 않습니까?" 타리크가 물었습니다. 그의 아랍어는 분명하고 또렷했습니다. "당신들이 이 도시에서 한 일들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로베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목격했고 또 스스로 행했던 일들이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 기억들은 이미 그의 내부 어딘가에서 돌이키기 힘든 방식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전쟁을 신의 뜻이라고 믿고 왔다." 로베르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르겠다."

타리크가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처음으로 제대로 그의 얼굴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들은 신의 뜻으로 이 땅을 빼앗으러 왔고, 우리는 신의 뜻으로 이 땅을 지키려 했습니다." 타리크가 말했습니다. "둘 다 신의 뜻이라면, 신은 무엇을 원하는 것입니까?"

그 질문은 로베르의 가슴 어딘가를 정확히 찌르고 들어왔습니다. 그는 대답을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사제로부터 배웠고, 지휘관으로부터 들었으며, 원정을 떠나는 내내 되뇌어왔던 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그 답을 입 밖에 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어쩌면 신은 양쪽 모두의 기도를 듣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로베르가 마침내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내린 가장 어려운 숙제인지도."

타리크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로베르는 알 수 없었습니다.

"물이 있느냐?" 타리크가 물었습니다. 목이 말랐는지 목소리에 갈라짐이 있었습니다.

로베르는 허리춤에서 물통을 꺼내 타리크에게 건넸습니다. 타리크는 잠시 망설이다가 받아 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두 남자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습니다. 멀리서 전투 소리가 들려왔다가 사라졌습니다. 우물가에 작은 새 한 마리가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올랐습니다.

우물 안에서 바람이 올라왔습니다. 지하 깊은 곳에서 오는 서늘한 공기가 두 사람의 얼굴을 스쳤습니다. 도시가 아무리 뜨거워도 우물 안은 차가웠습니다. 전쟁이 아무리 달아올라도 그 아래 어딘가는 차갑고 고요했습니다.

"당신을 놓아주겠다." 로베르가 마침내 말했습니다.

타리크가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모르겠다." 로베르가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그냥, 지금 이 순간, 그것이 옳은 것 같다."

타리크는 천천히 일어섰습니다. 팔의 상처가 쑤시는지 얼굴을 잠시 찡그렸습니다. 그리고 로베르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습니다. 감사도 아니었고, 굴복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의 몸짓이었습니다.

그는 골목 안으로 사라졌습니다.

로베르는 오래 우물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물을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 얼굴을 씻었습니다. 물은 차가웠습니다. 얼굴에 닿는 물의 온도가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는 타리크가 사라진 골목 쪽을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그 날 이후로 로베르는 몇 번이고 자신의 결정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적군 병사를 놓아준 것이 옳은 행동이었는지를. 전쟁의 규칙으로 보면 틀린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언가가 속에서 다르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 수도원에서 노인 사제에게 들은 말을 떠올렸습니다. 신앙이란 옳은 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것이라고. 그 말이 지금 비로소 조금 이해되는 것 같았습니다.

우물 위로 별이 하나 떨어졌습니다. 빠르게 사라지는 빛. 그것이 사라지는 방향을 로베르는 한참 바라보았습니다.


제 4장: 권력의 게임

도시를 점령한 이후, 예루살렘은 새로운 권력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십자군 진영 안에는 여러 파벌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도시를 신앙의 성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도시를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도시에서 취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무너진 도시보다 이미 다음 전쟁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신앙의 도시를 되찾았다는 감격은 생각보다 빠르게 식어갔습니다.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누가 이 도시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하는 아주 세속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성벽 안의 전투가 끝나자마자 다른 종류의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칼이 아닌 말로, 피가 아닌 계략으로 싸우는 전투였습니다.

그 마지막 부류에 속하는 사람이 바로 기사단장 에드몽이었습니다.

에드몽은 오십대 초반의 남자였습니다. 회색이 섞인 금빛 수염을 길렀고, 항상 금색 십자가가 새겨진 흰 외투를 입고 다녔습니다. 그의 눈은 연한 파란색이었는데, 그 눈빛은 늘 계산적이었습니다. 무엇을 보든, 그것이 자신에게 얼마나 이롭거나 해로운지를 먼저 따지는 눈이었습니다.

에드몽의 목소리는 항상 부드러웠습니다. 그것이 더 무서웠습니다. 분노할 때도, 명령을 내릴 때도, 협박할 때도 그의 목소리는 마치 친근한 조언을 건네듯 낮고 온화했습니다. 로베르는 그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로베르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에드몽은 그의 직속 상관이었습니다.

"로베르, 앉아." 에드몽이 말했습니다. 빼앗은 저택의 넓은 방 안에서 그는 이미 주인처럼 굴고 있었습니다.

방은 넓고 서늘했습니다. 벽에는 아랍어 문양이 새겨진 타일이 붙어 있었고, 바닥에는 화려한 무늬의 양탄자가 깔려 있었습니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이 방에는 다른 사람이 살고 있었을 것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로베르는 앉았습니다. 에드몽 맞은편에.

"네가 사흘 전에 적군 병사를 방면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에드몽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습니다.

로베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부상당한 병사였습니다. 전투 능력을 잃은 상대를 살해하는 것은 제 뜻에 맞지 않았습니다."

"네 뜻에 맞지 않았다." 에드몽이 그 말을 천천히 반복했습니다. "로베르, 여기는 전장이다. 네 개인적인 뜻을 펼치는 곳이 아니야."

"그 병사는 이미 전투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가 회복되면 다시 우리와 싸울 것이다." 에드몽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네가 오늘 살려준 손이 우리 병사의 목을 칠 것이다. 그것이 네 뜻에 맞느냐?"

로베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논리는 반박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다고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에드몽이 앞으로 몸을 기울였습니다. "나는 지금 중요한 임무를 준비하고 있다. 그 임무에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네가 적군 병사를 방면했다는 말을 들으니, 과연 네가 그 임무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인지 의심스럽구나."

"어떤 임무입니까?" 로베르가 물었습니다.

에드몽은 탁자 위에 양피지 하나를 펼쳤습니다. 지도였습니다. 예루살렘 동쪽 사막 지역을 나타낸 지도.

"이슬람 진영의 보급로다." 그가 손가락으로 지도 위 선 하나를 짚었습니다. "이 길을 통해 다마스쿠스로부터 물자와 병력이 유입되고 있다. 이것을 차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요충지를 먼저 장악해야 해." 그의 손가락이 지도 위 한 지점을 눌렀습니다.

"그 지점에는 마을이 있습니다." 로베르가 지도를 보며 말했습니다. "민간인들이 살고 있는."

에드몽의 눈빛이 차가워졌습니다.

"그 마을은 적군에게 보급품을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군사 목표물이다."

"여성과 아이들도 군사 목표물입니까?"

침묵이 흘렀습니다.

에드몽이 천천히 일어섰습니다. 그는 로베르의 뒤로 걸어가 창문 밖을 내려다보았습니다. 도시의 골목들이 내려다보였습니다.

"로베르, 너는 선한 병사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선함만으로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전쟁은 도덕이 아니라 목적으로 싸우는 것이다. 목적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그 목적이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을 정당화합니까?"

에드몽이 돌아보았습니다. 그의 눈에 무언가 위험한 것이 스쳤습니다.

"임무를 수행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만 대답해라."

로베르는 오래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마을을 공격하는 임무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보급로를 차단하는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 임무는 수행하겠습니다."

에드몽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그 미소가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로베르는 알아챘습니다.

"알겠다. 일단은 그렇게 하자." 에드몽이 말했습니다. "가봐라."

로베르가 방을 나왔습니다. 문이 닫히는 순간, 그의 등에 에드몽의 시선이 꽂히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시선은 따뜻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무언가를 재는 눈빛이었습니다. 언제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를 계산하는.

로베르는 뒷목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복도를 걸어나오면서 그는 에드몽의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발걸음 소리. 에드몽이 다시 창가로 걷는 소리였습니다. 마치 로베르가 떠난 자리에서 다음 수를 계산하기 시작한 것처럼.

사막의 태양은 뜨거웠지만, 그 방에서 나온 그는 추위를 느꼈습니다.


제 5장: 밤의 협정

로베르가 에드몽의 방에서 나온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그 일주일 동안 그는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에드몽의 말, 타리크와의 만남, 무너지는 성벽 사이로 달아나던 민간인들의 얼굴들. 모든 것이 뒤엉켜 그의 내부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교란시켰습니다.

에드몽의 지시로 소규모 정찰대를 이끌며 나간 출동들이 이미 세 차례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 모두 이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동할 예정인 경로에 미리 대기하고 있는 듯한 적군의 흔적. 정보가 너무 정확하게 새나간 것처럼 보이는 상황들. 로베르는 그것들을 하나하나 기억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그에게 전갈이 하나 왔습니다.

쪽지는 아랍어로 적혀 있었습니다. 내용은 단 두 줄이었습니다. 당신이 위험합니다. 동쪽 시장 뒷골목 우물가. 오늘 밤 삼경.

서명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베르는 누가 보낸 것인지 알았습니다.

그것이 함정일 수도 있었습니다. 경험 많은 전사라면 응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로베르는 갔습니다.

삼경의 예루살렘은 고요했습니다. 좁은 골목들 사이로 별빛만이 조각조각 내려앉았습니다. 낮의 열기는 사라지고 사막의 밤바람이 차갑게 불었습니다.

로베르는 갑옷을 벗고 평범한 외투만 걸쳤습니다. 허리춤에 짧은 칼 하나만 찼습니다. 골목은 어두웠지만 익숙해지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걸었습니다. 자신의 숨소리가 귓속에서 크게 들렸습니다.

우물가에 타리크가 서 있었습니다.

팔의 상처는 아물었는지 그쪽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복장은 민간인 옷으로 바꿔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어둠 속에서는 구분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베르는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우물가에서 처음 마주쳤던 그 눈빛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왔군요." 타리크가 말했습니다.

"왔다." 로베르가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아직 도시 안에 있느냐."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

타리크가 잠시 주변을 살피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에드몽 기사단장이 당신을 이용하려 합니다. 그는 당신에게 임무를 주고, 그 임무가 실패하도록 유도한 다음, 당신에게 죄를 씌울 생각입니다."

로베르의 눈썹이 좁혀졌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에드몽은 도시 안에 있는 우리 쪽 사람들과 이미 접촉했습니다. 보급로 차단 작전을 함께 꾸미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는 그 작전을 통해 당신 진영 내부에서 권력을 재편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너는 왜 나에게 이것을 알리느냐. 나는 너의 적이다."

타리크가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우물가에서 당신은 내 적이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나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빚을 남겼습니다. 나는 그 빚을 갚는 것입니다."

로베르는 타리크를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네 동기가 그것뿐인가."

타리크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습니다.

"에드몽이 꾸미는 일이 성공하면, 우리 쪽도 피해를 입습니다. 그는 어느 편에도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이 전쟁을 길게 끌수록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에드몽이 그런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잠시 말을 멈추었습니다. 밤바람이 골목 사이를 통과하며 낮은 소리를 냈습니다.

"나를 믿어야 하는 이유가 있느냐." 로베르가 물었습니다. "너도 나를 함정으로 이끌 수 있다."

"그렇습니다." 타리크가 인정했습니다. "당신에게 선택을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에드몽이 당신에게 준 임무를 그대로 따른다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를."

로베르는 생각했습니다. 지난 세 번의 출동. 너무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적군의 대기. 에드몽의 부드러운 미소.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그림을 이루었습니다.

"알겠다." 로베르가 말했습니다. "그 임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

타리크의 눈에 무언가가 반짝였습니다.

두 사람은 그 우물가에서 오래 이야기했습니다. 적이었고, 아마 내일이면 다시 적이 될 두 사람이. 그 밤만큼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별들이 머리 위에서 천천히 서쪽으로 기울어갔습니다.

헤어지기 직전, 타리크가 한 가지를 더 말했습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됩니까?"

"물어봐라." 로베르가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이 도시를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왔습니다. 그 긴 여정 동안 당신은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로베르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긴 행군의 기억들이 떠올랐습니다. 발에 물집이 잡히던 것, 더위에 쓰러진 동료들, 물이 없어 입술이 갈라지던 날들, 그리고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갔던 이유.

"처음에는 신의 뜻을 생각했습니다." 그가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중간에는 살아남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무엇을 위해 걸어왔는지를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타리크가 그 말을 듣더니 작게 웃었습니다. 처음으로 웃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그랬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오는 것을 알고 대비하면서, 처음에는 신앙으로, 다음에는 분노로, 그리고 나중에는 그저 가족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두 남자는 그 말이 가진 무게를 함께 느끼며 잠시 침묵했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고,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깃발 아래 싸웠지만, 그 여정의 본질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습니다.

"조심하십시오." 타리크가 마지막으로 말했습니다. "에드몽은 잃은 것에 대한 복수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로베르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반대 방향으로 헤어졌습니다.

각자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두 사람이 걸어간 방향은 달랐지만, 그 걸음의 무게는 닮아 있었습니다.


제 6장: 배신과 진실

이틀 후, 에드몽이 로베르를 다시 불렀습니다.

"보급로 차단 작전의 준비가 됐다." 에드몽이 말했습니다. "내일 새벽, 네가 직접 지휘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로베르가 대답했습니다. 표정에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병력은 열다섯 명이다." 에드몽이 덧붙였습니다. "기동성을 위해 소규모로 편성했다."

열다섯 명. 너무 적었습니다. 진짜 보급로 차단 작전이었다면 최소 다섯 배는 필요했습니다. 로베르는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습니다.

"출발 시간은?"

"새벽 두 시. 서쪽 성문으로 나가서 북쪽으로 돌아 동쪽 계곡으로 들어가라." 에드몽이 지도를 짚으며 경로를 설명했습니다. "계곡 입구에서 대기하다가 보급대가 지나가면 공격한다."

로베르는 지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그 경로는 타리크가 말한 것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그 계곡 입구에는 이미 적의 복병이 대기하고 있을 것이었습니다. 열다섯 명으로는 살아남기 힘든 숫자와 함께.

"알겠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평온하게 대답했습니다.

그 날 밤, 로베르는 아르노를 찾아갔습니다.

아르노는 병사 막사 뒤편 조용한 곳에서 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로베르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가 먼저 말했습니다. "표정이 좋지 않구나."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로베르가 말했습니다.

아르노는 칼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습니다.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말해봐라."

아르노는 로베르의 말을 끝까지 들었습니다. 말하는 동안 그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습니다.

"에드몽이 그런 짓을 꾸미고 있다고?" 아르노가 낮게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정보를 알려준 사람은 이슬람 쪽 병사입니다."

아르노가 잠시 침묵했습니다. "적군의 말을 믿는다는 것인가."

"지금까지 제 부대가 겪은 일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정찰을 나갈 때마다 누군가 우리의 경로를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정보가 에드몽으로부터 흘러나간 것이라면, 모든 것이 설명됩니다."

아르노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습니다. 그의 눈빛이 복잡하게 흔들렸습니다.

"에드몽은 원정군 총사령관의 신임을 받고 있다. 그를 고발하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내일 새벽에 증거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로베르가 말했습니다. "에드몽의 지시대로 움직이되, 경로만 바꾸겠습니다. 그리고 에드몽에게는 원래 경로대로 움직인다고 보고하겠습니다. 만약 그가 진짜로 적과 내통하고 있다면, 내가 바꾼 경로가 아닌 원래 경로에 복병이 대기하고 있을 것입니다."

아르노가 눈을 크게 떴습니다.

"그것은 위험한 도박이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로베르가 말했습니다.

아르노가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로베르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았습니다. "살아서 돌아와야 한다."

"그럴 것입니다." 로베르가 대답했습니다.

다음날 새벽, 로베르의 부대는 출발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말굽 소리를 최대한 죽이며 서쪽 성문을 빠져나갔습니다. 공기는 차가웠습니다. 사막의 새벽은 낮과 정반대였습니다. 지낮의 열기를 기억하는 몸이 그 차가움에 놀랐습니다.

에드몽이 지시한 북쪽 경로 대신, 그들은 남쪽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언덕을 우회하여 문제의 계곡 입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지점으로 올랐습니다.

날이 밝아올 무렵, 그들은 그 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계곡 입구에 기다리고 있어야 할 것은 보급대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이슬람 기병대 수십 명이 매복하고 있었습니다.

로베르의 부대가 예정대로 그 길로 들어갔다면,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병사들 사이에서 낮은 욕설과 탄식이 새어 나왔습니다.

"증거가 됩니까?" 로베르가 아르노를 돌아보며 말했습니다.

아르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도시로 돌아왔습니다.

에드몽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대가 돌아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의 얼굴에 스친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는, 로베르는 확실히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놀라움이었습니다. 그리고 당혹감이었습니다.

"작전이 어떻게 됐느냐?" 에드몽이 물었습니다. 그 물음 속에는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보고드릴 것이 있습니다." 로베르가 말했습니다. "기사단장님. 계곡 입구에 복병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운 좋게 살아남았습니다만."

그 순간 에드몽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이후 아르노가 나섰습니다. 원정군 총사령관에게 직접 보고했습니다. 목격자들의 증언과 함께. 에드몽은 조사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것들이 드러났습니다. 그가 도시 장악 이후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여러 편에 동시에 손을 뻗쳐 왔다는 것이.

에드몽의 금색 십자가 외투가 벗겨지는 날, 로베르는 멀리서 그 장면을 보았습니다. 에드몽의 눈빛이 로베르를 향했습니다. 분노와 경멸이 담긴 눈빛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또한 다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마치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로베르는 그 눈빛으로부터 시선을 돌렸습니다.

위안이 되지 않았습니다. 옳은 일을 했지만, 가볍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땅 위에서,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아르노는 그날 저녁 로베르를 찾아왔습니다.

"총사령관이 너를 부르고 싶어 한다." 아르노가 말했습니다. "에드몽의 일을 잘 처리했다고 한다."

로베르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잘 처리했다는 말이 옳지 않습니다. 그저 더 나쁜 결과를 피한 것뿐입니다."

아르노가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너는 예전과 달라졌다."

"달라졌습니까?" 로베르가 물었습니다.

"이곳으로 오던 날 너의 눈을 기억한다." 아르노가 말했습니다. "그 눈에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지. 지금 그 눈에는 다른 것이 들어와 있다."

로베르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르노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아르노가 조용히 덧붙였습니다. "나는 첫 번째 원정 이후에야 비로소 진짜 전쟁이 무엇인지 알았다. 너는 그것을 조금 일찍 배운 것일 뿐이다."

그 날 밤, 로베르는 예루살렘의 가장 오래된 구역을 혼자 걸었습니다. 좁은 골목들 사이로 여러 종교의 흔적이 겹겹이 쌓여 있었습니다. 어떤 돌에는 라틴어 비문이 새겨져 있었고, 그 위에는 아랍어로 다른 글귀가 덮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또 다른 언어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이 도시는 그 자체로 수천 년의 기도가 쌓인 장소였습니다.

로베르는 그 돌 앞에 오래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자신이 그 기도들 중 어느 하나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자신의 것조차도.

그것은 패배가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시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제 7장: 예루살렘의 새벽

계절이 바뀌었습니다.

뜨겁던 여름이 지나고 사막에도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안에서는 새로운 질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올바른 질서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습니다. 그저 새로운 것이었을 뿐입니다.

가을바람이 불면 예루살렘의 골목들은 다른 냄새를 풍겼습니다. 뜨거운 돌이 서서히 식으면서 풍기는 냄새, 서늘한 바람이 먼지를 들어 올리는 냄새, 어딘가에서 나는 향신료 냄새. 전쟁 중에도 도시는 살아있었습니다. 누군가는 빵을 굽고, 누군가는 아이를 돌보고, 누군가는 내일을 준비했습니다. 그것이 도시라는 것이었습니다.

로베르는 도시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원정의 공식적인 임무는 끝났습니다. 일부 병사들은 이미 유럽으로 돌아갔습니다. 로베르도 돌아가야 했습니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로, 그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로.

짐을 꾸리면서 로베르는 이곳에 처음 도착했던 날을 떠올렸습니다. 황금빛 돔을 처음 보았을 때의 전율. 그 전율은 지금도 기억되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달라져 있었습니다. 더 복잡해졌습니다. 더 무거워졌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이전보다 더 진실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밤, 그는 다시 한번 그 우물가로 갔습니다.

혼자서, 무기도 없이.

타리크가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 장소로 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두 사람이 처음 대화를 나눈 그 우물가가 마지막 인사를 해야 할 곳 같았습니다.

그러나 타리크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당신도 왔군요." 타리크가 말했습니다. 목소리에 놀라움은 없었습니다. 마치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네가 여기 있을 줄 몰랐다." 로베르가 말했습니다.

"나도 당신이 올 것을 몰랐습니다." 타리크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와 있습니다."

두 사람은 우물가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내일 떠납니다." 로베르가 말했습니다.

"돌아가서 무엇을 할 것입니까?" 타리크가 물었습니다.

로베르는 하늘을 보았습니다. 별들이 가득했습니다. 이 별들은 프랑스에서도 같은 별들일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보는 별들은 특별하게 보였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난 눈으로 바라보아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가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떠나올 때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의 뜻이 무엇인지,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여행에서 얻는 것이겠지요." 타리크가 말했습니다.

"너는 어떻게 될 것이냐." 로베르가 물었습니다.

"이 도시를 언제까지나 당신들이 가지고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타리크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언젠가 우리는 돌아올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때 또 전쟁이 될 것이다."

"아마도 그렇겠지요." 타리크가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전쟁을 바라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그저 현실을 인정하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전쟁 속에서도 지금 이 우물가 같은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반드시. 사람이 있는 곳에는."

"그 전쟁에서 우리가 다시 마주치면." 로베르가 천천히 말했습니다.

"그 때는 그 때의 이야기입니다." 타리크가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입니다."

로베르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유수프는 잘 있느냐. 네 동생."

타리크의 표정이 처음으로 부드러워졌습니다. "잘 있습니다. 살아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다행이구나."

"당신에게도 돌아갈 사람이 있습니까?"

로베르는 잠시 생각했습니다. 마을에 남겨두고 온 어머니. 함께 자란 이웃들. 어린 시절 뛰어다니던 들판. 그리고 자신이 떠나는 날 말없이 손을 흔들었던 사람들의 얼굴들.

"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러면 돌아가야겠군요."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 속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해, 공감, 그리고 이 만남이 이미 무언가를 바꾸어 놓았다는 희미한 인식.

로베르가 일어섰습니다.

타리크도 일어섰습니다.

그들은 악수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이 상황에 맞지 않는 몸짓이었습니다. 그러나 각자 상대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습니다. 거기에 담긴 의미는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로베르가 걸어 나갔습니다.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우물가에서 느낀 것은, 어떤 전쟁의 기억보다도 오래 그의 안에 남을 것이었습니다.

다음날 새벽, 로베르는 말에 올랐습니다. 예루살렘 서쪽 성문이 열렸습니다. 그는 한 번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황토색 성벽이 새벽빛 속에 서 있었습니다. 황금빛 돔이 떠오르는 해를 받아 조용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그가 상상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훨씬 슬프고, 그러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진실에 가까웠습니다.

성문 옆에 사람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민간인 복장이었습니다. 로베르는 그가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습니다. 타리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가볍게 고개를 들었습니다. 로베르도 고개를 들어 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을 몰았습니다. 서쪽으로.

성문이 천천히 닫혔습니다. 그 소리가 예루살렘의 새벽 공기 속에서 낮고 무겁게 울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 이야기의 한 장이 닫히는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에필로그: 모래 위의 이름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예루살렘은 다시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타리크가 말한 대로였습니다. 도시는 빼앗기고 되찾기를 반복했습니다. 성벽은 무너지고 다시 세워졌습니다. 새로운 이름들이 역사에 새겨졌고, 오래된 이름들은 잊혀졌습니다.

그러나 로베르는 그 여름을 잊지 않았습니다.

프랑스로 돌아온 그는 다시 원정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연로하셨고, 마을에는 그의 손이 필요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사의 삶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았지만, 전보다 훨씬 조용한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마을 아이들에게 검술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검술보다 먼저 가르친 것이 있었습니다. 검을 드는 자는 반드시 검을 내려놓는 법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힘이 강한 자일수록 그 힘을 쓰지 않을 이유를 먼저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그 말의 무게를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는 가끔 젊은이들에게 예루살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하는 이야기 속에는 영광스러운 정복의 서사가 없었습니다. 대신 우물가에 앉아 물을 나누었던 두 남자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신을 달리 부르면서도 같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던 두 사람의 이야기가.

어떤 젊은이들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그 이야기보다 전쟁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했습니다. 로베르는 그 모든 반응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야기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들을 준비가 된 귀에만 닿을 수 있었습니다.

타리크에 대해서는 로베르가 더 이상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가 살아있는지 아닌지도.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로베르는 그가 살아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유수프와 함께. 어딘가에서 여전히 하늘을 보며.

그리고 혹시, 타리크도 어딘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칼 대신 말을 가진 프랑크인 기사 이야기를. 우물가에서 물을 건네준 사람 이야기를.

사막의 모래는 모든 발자국을 지웁니다. 왕의 발자국도, 병사의 발자국도, 우물가에 앉아 물을 나누었던 두 남자의 발자국도. 모래는 차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에 새겨진 것들은, 바람이 지워도 남습니다.

이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것입니다. 어떤 전쟁도, 어떤 이름으로 불러도, 결국 그 안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적의 얼굴 속에서도 사람을 보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그러나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예루살렘의 돌벽에는 아직도 수많은 손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기도하는 손의 흔적, 싸우는 손의 흔적, 그리고 낯선 이에게 물통을 건넨 손의 흔적도.

역사는 승자들의 이름을 기록합니다. 그러나 역사가 기록하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물가에서 나눈 물 한 모금. 어둠 속에서 건넨 경고 한 마디. 마지막 이별에서 주고받은 말없는 눈빛. 그것들은 어느 책에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이야말로 인간이 인간이었다는 증거입니다.

이 오디오북을 들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사막의 바람이 오늘도 불고 있습니다. 그 바람은 모든 이름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들을 지우면서도, 잊지는 않습니다.